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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발견 : 식민지 시기 만들어진 신라 표상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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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명 인문사회분야지원심화연구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05-079-AS0129
선정년도 2005 년
연구기간 1 년 (2005년 09월 01일 ~ 2006년 08월 31일)
연구책임자 황종연
연구수행기관 동국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공동연구원 현황 김현숙(덕성여자대학교)
윤선태(동국대학교)
이병진(세종대학교)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전통은 역사상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지속되어온 삶의 규범, 관습, 양식을 가리킨다. 그러나 실제 사회에서 전통이 존재하는 방식은 현재라는 특수한 시기의 특수한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의 근대 문화에서는 한국이라는 공동체의 유지, 발전을 위한 전통만들기의 작업이 종종 발견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본 연구에서 다루고자 하는 ‘신라’ 표상의 창출 작업이다. 식민지 시기를 통틀어 다방면에 걸쳐 이루어진 ‘신라’ 표상 창출은 당시 한국인의 지적, 상상적 능력이 전면적으로 동원된 작업이었을 뿐만 아니라 후대 한국의 정치 실험과 문화 건설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업이었다.
    근대 한국의 지식인들은 스스로의 문화적․역사적 동질성을 구축하고 그 우수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지금’보다 영광된 과거로 시야를 돌렸다. 근대 한국의 ‘고대’ 표상에서 왕조 ‘조선’은 망국과 부정의 표상이었으며, 반대로 그 너머의 시기인 ‘고대적인 것(특히 신라)’은 자기 정체성의 새로운 구축을 위해 재생되어야 할 긍정적 가치의 보고로 배치되었다. 특히, 사학, 문학, 미학, 언어학, 고고학(인류학), 미술사학 등 근대 학문의 각 분과에서 ‘신라’는 한국인을 규정하고 인식하는데 핵심적인 표상으로 기능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의 목적은 기존 연구들이 주목한 역사적 ‘사실’에 주목하기보다, 오히려 그것이 만들어낸 ‘신라’ 표상의 사례와 그 의미를 살피는 데 있다.
    ‘지금-여기’의 주체와 의미 있는 과거(전통) 사이의 연결짓기는 근대적 주체 형성 과정에 대한 연구에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항목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오늘날 많은 현대 이론은 주체가 언제나 유동하는 가변적인 상태에 있으면서 궁극적으로는 달성되지 않는 전체성과 자아됨의 환상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타자 또는 전통과 대면하는 것, 혹은 그에 대해 인식하는 것은 종종 가변적인 존재인 주체가 스스로를 안정적이고 확고한 동일자로 구성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식민지 조선의 경우는 타자 또는 전통과 연결된 주체 구성의 관계가 서구적 경험에서 분석된 사례보다 더욱 복잡하다. 아카데미의 학문 분과와 미적 영역에서 ‘신라’ 표상을 처음으로 구축한 것은 일본인들이다. 그들은 '신라'를 의미 있는 과거로 표상하면서 역사학과 미술사학, 인류학의 영역에서 일본은 고대의 신라사를 새롭게 구성하여 자기 기억의 영토로 만들고자 했다. 이와 같은 제국의 판도 안에서 타자이자 지배자인 ‘일본’을 대타적으로 인식했던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은 그 타자가 체계적으로 구축한 ‘신라’ 표상을 내면화하고, 또는 그것과 길항하며 자신의 주체성을 정립하는 데 활용했다. 본 연구팀의 연구는 제국 내부의 주체와 관련한 ‘신라’ 표상의 혼종적 양상과 피식민지민의 주체 구성의 고투 과정을 재현하여 정리할 것이다.
    식민지 시기 ‘주체-타자-전통’의 역동적인 관계성의 규명은 근대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를 둘러싼 최근의 논의에 대해서도 기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90년대 이후 문화적 구성물로서의 ‘민족주의’를 강변하는 입장이나, 한국 ‘민족주의’의 특수성과 종족적, 문화적 동일성과 역사성을 강조하는 입장 모두가 제국 일본 안에서 이루어진 주체 구성의 역동적인 관계성에 대한 실체를 간과하고 있다. ‘민족’과 ‘민족주의’를 고정되고 확고불변한 연속적인 이념으로 상상하는 내셔널리즘의 입장이나, ‘역사적 민족’들 간의 관계성 속에서 해명되어야 할 동아시아 근대 경험의 특수성을 경시한 채 민족주의 담론의 이데올로기성만을 지적하는 포스트 이론은 재고되어야 한다.
    동아시아 근대의 제국과 식민지는 상대적으로 인종적, 문화적 동질성에 바탕을 둔 ‘역사적 민족’ 사이의 관계라는 점에서, 서구의 그것과는 다른 경로를 밟았다. 식민지 조선의 ‘주체성’은 서구와는 토대가 다른 ‘제국-식민지-전통’의 복합적인 관계망 속에서 ‘지금-여기’의 ‘주체’로 형성되었다. 이 특수한 경험을 이론화하고 구조화함으로써 본 연구는 스스로를 완결된 ‘주체’로 인식하는 이념적 민족주의와 서구의 경험에 바탕한 민족주의 해체론을 지양하며 전통 창조와 주체 구성에 관련된 동아시아적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 기대효과
  • 본 연구팀이 개발한 연구주제들은 인문학 분야에서 전통이 갖는 위상과 그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 중의 하나는 식민지 시기의 올바른 이해를 통해 식민성을 극복하는 것이다. 그것은 과거의 전통과 문화가 식민지 시기에 어떠한 방식으로 새롭게 구성되었으며 그 속에서 어떠한 문화의 혼종성과 중층성을 지니고 있는가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는 주제이다. 그것이 올바른 방향으로 수행된다면, 현재의 한국인의 모습을 바르게 파악하도록 만들어 줄 것이며, 그리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한국 사회의 진정한 탈식민성을 구축하는데 분명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본 연구팀의 연구는 일차적으로 식민지 시기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나 그것은 해방 이후의 시기에서 더 많은 후속 연구를 파생시킬 수 있는 주제이다. 본 연구의 주제를 심화하고 그 문제의식을 세련화한다면 해방 이후 시기의 신라 표상에 대해서 다양한 후속연구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은 다양한 학문적 담론의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이다.
    본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는 특히 ‘신라’와 관련된 다양한 표상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작업이 포함되어 있다. 그 속에는 '신라' 문화유산의 사진 자료에서부터 식민지 시기 경주의 지적도, ‘신라’ 관련 관광지의 사진 자료 및 엽서, ‘신라’ 소재의 신문 연재소설 속의 삽화, 그리고 당대의 일본인들과 식민지의 조선인들이 상상했던 신라인들의 복식과 장신구 등에 이르기까지, '신라'를 표상하는 다양한 시각 자료들이 포함된다. 따라서 본 연구의 자료 수집과 연구의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시각 자료들을 따로 모아 유형화한다면 연구의 중요한 성과물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자료들은 ‘신라’ 표상의 중층적이고 혼종적인 성격을 뚜렷하게 드러내 보이는 증거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특히 사회적인 요구가 급속도로 증대하고 있는 문화콘텐츠 사업과 관련하여 활용될 수 있는 여지가 무한하다. 본 연구 중에 획득되는 자료는 문화산업의 자원으로 전통과 표상의 콘텐츠로 직접 활용할 수 있으며, 특히 연구 기관이 지향하는 문화콘텐츠 정립을 통해 사회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료로 재생산될 것이다.
    본 연구팀은 ‘신라’ 표상 연구와 관련한 학제간의 보다 폭넓은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서 독회를 진행해 왔으며, 이를 확대하고 심화하여 세미나, 콜로키움, 학술대회 등을 지속적으로 개최해 나갈 예정이다. 이러한 학술적인 연구 모임들은 본 연구팀이 개발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각 분과의 연구자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도록 해 줄 것이다. 본 연구팀이 발굴한 연구 주제에 대해 공유하고 논쟁하는 학문적인 과정을 통하여 분과를 넘어서는 진정한 학제간의 연구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본 연구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분과 학문의 좁은 틀을 넘어서는 진정한 학제간 연구를 가능하게 만드는 주제라는 점이다. 이 연구는 일본학, 문학, 미술사학, 역사학, 지역학 등 인문학 내의 제반 학문들의 학제간 연구를 통해서 그 성과를 산출하는 기획을 담고 있거니와, 그 성과를 바탕으로 하여 학문분과의 폐쇄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기존 교육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교과과정과 과목들을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본 연구는 문학, 역사학, 미술사학, 일본학 등 관련 연구 분과의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데도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이 연구의 전임인력들은 본 연구를 통해 자신의 전공 영역의 논의를 더욱 심화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서로 간의 학제간 연구의 과정을 바탕으로 관련된 주제를 더욱 확대시키는 경험을 얻게 될 것이다. 본 연구팀이 진행하고 있는 독회와 앞으로 본격적으로 진행될 연구회, 콜로키움에 참여하는 젊은 연구자들과 대학원생들은 본 연구팀의 문제제기를 이어받아 더욱 생산적인 연구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본 연구에서 파생된 ‘만들어진 전통’과 ‘표상’에 대한 연구들은 기존의 다양한 학문 분과에서 하나의 과목으로 활용될 수 있다. 새로운 시대의 요구들을 언제나 교육이 담보해야 하는 것이라면, ‘표상’ 연구에서 계발된 새로운 관점들은 점증하는 문화연구의 새로운 지향으로서 각 학문 분과에서 새로운 교과목들로 적용될 수 있다.
  • 연구요약
  • 근대 일본의 식민주의는 근대학문의 영역에서 조선을 다루며, ‘상상의 타자’로서 조선을 구축해 갔다. 그 안에서 '신라'는 ‘상상의 타자’ 혹은 타자화된 ‘과거’이면서도 '상상'에 기초한 동일시의 대상으로 표상되었다. 일본의 ‘국사(일본사)’의 ‘눈’=시선을 통해서 조선사는 ‘기원’=고대의 ‘친연성’을 지닌 타자로 발견되었다. 그와 동시에 ‘지금-여기’의 조선을 서구 오리엔탈리즘을 원용하여 비문명의 타자로 규정하였다. 그 양자의 인식을 통해 근대 일본은 자기와 ‘친연성’을 지닌 비문명의 타자=조선에 대해 문명화의 사명감을 스스로 부여하였다. 일본 제국은 식민지적 지리나 시간의 개념으로서의 ‘신라’뿐만 아니라, ‘상실한’ 정신 혹은 미적 대상의 낭만적 표상으로서 '신라'를 주조해 낸다. 더욱이 ‘신라’를 자신들의 문화적 기원과 비교함으로서, 혹은 ‘과거-저편’의 차원에서 창조하고 대상화함으로서, 식민지 규율권력과 상상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트랜스내셔널한 ‘신라’ 표상이 만들어진다.
    근대 문학에서의 ‘신라’는 ‘상실감’과 ‘그리움’의 정서적 원천으로 표상되었다. 망국의 상처가 ‘신라’라는 영화로웠던 시절에 대한 회상과 동경을 통해 표현된 것이 ‘원형’으로서의 '신라' 표상이다. 더불어 경이로운 '신라' 예술을 식민지의 상흔을 보상하는 조선미의 기원이자 동양미를 대표하는 것으로 표상한다. 식민지 시기 ‘문학’에 나타난 ‘신라’ 표상은 제국적 정체성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혼종성을 구조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제국’과 ‘민족’의 경계가 겹쳐지며, ‘신라’ 표상을 통해 식민지 제국을 배경으로 하는 혼종성이 드러난다. 식민지 지식인의 복잡한 내면과 정체성의 문제는 ‘신라’라는 표상을 통해 다양하게 표출되었다. 근대문학의 텍스트들은 ‘신라’라는 동일한 표상에 각인된 제국과 민족, 내셔널과 트랜스내셔널한 맥락들이 교호하며 형상화된 작품들이다.
    신라의 미적 표상을 대표하는 석굴암은 일본인들에게 발견되어 그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다. 일본인들이 '신라'에서 “동양문화의 가장 중요한 기념비”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박물관’으로서의 ‘신라’에 동양의 고대를 대표하는 미술이 보존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식민지 조선이 지닌 의미 있는 과거 중에서 ‘신라’를 소환하여 그것을 동양의 주체로 구성해가는 기획을 하게 되며, 그 속에서 제국-식민지-전통의 역동적인 관계망이 구조화된다.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에게 자신의 민족과 문화가 세계성을 구현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은 그것을 통해 세계 속에서 하나의 민족 국가로 자리잡을 수 있음을 증명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이 기획할 수 있었던 상상적인 국가이야기의 시작이다. 그것은 독자적인 ‘문화’를 담보함으로써만 주체적인 ‘국가’의 탄생이 가능하다는 근대의 이념에 대한 답변이다. 그것은 근대가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중층적인 식민성의 양상을 미술사의 장에서 ‘발견’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신라사 연구는 일본 제국주의가 발견하고 고안해 낸 학문영역이다. 근대 일본의 조선사학자들의 신라사 연구는, 한결같이 신라가 독립된 국가가 아니라, 일본을 비롯한 주변국가의 식민지에 불과했으며, 신라인은 자주성을 결여한 미성숙하고 피동적이었음을 입증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었다 신라사 연구의 미시사 가운데 주목해야 할 것이 ‘화랑’의 담론이다. 일본의 화랑연구는 문화사 연구를 통해서 일본 오리엔탈리즘의 정형을 ‘화랑’에 투영해서, 신라 문화의 표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그것은 조선인이 스스로의 민족성과 문화를 표상하는 가운데 ‘화랑’의 가치에 대해 자각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신채호는 동양사학이 규정하는 조선사의 타율성과 정체성론을 뛰어 넘어, 조선사의 자기 확장의 논리로까지 나아갔다. 최남선은 조선 문화의 핵심이 바로 통일신라에 있음을 역설했다. 문일평은 도덕적 자질의 함양과 예술적 자질의 함양이 바로 화랑이라는 집단의 목표였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다른 어떤 것보다도 신라인의 미의식을 부각시켰다. 일본의 사학자들은 일본정신의 표상으로 고안되었던 ‘부시도(武士道)’에 비추어 신라의 화랑을 이해하고 화랑의 원류가 사무라이에 있다고 보았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화랑과 화랑도를 조선문화, 조선사상의 자기정체성을 증명하는 표상으로 고안하는 연구에 경주하였다. 자민족 정체성의 표상을 둘러싼 제국의 지식인과 식민지 지식인의 쟁탈전이 바로 화랑을 둘러싸고 이루어졌던 셈이다.
  • 한글키워드
  • 신라의 발견,동양주의,상상의 공동체,제국주의,탈식민주의,전통,만들어진 전통,창조된 고전,학제간 연구,식민지 시기,주체 정립,지방성,제국적 정체성,표상 시스템,표상,향토,화랑,경주,신라,조선,동양,기념비,미적 표상,미적 주체,신라미,시선(응시),혼종성,상상의 타자,정체성,식민주의,문화적 민족주의
  • 영문키워드
  • Imperialism,Post-colonialism,Colonialism,Identity,Cultual Nationalism,Imagined Communities,Orientalism,An Aesthetic Representation,An Aesthetic Subject,Beauty of Silla,Gaze,Representation System,Representation,Traditions,The Invention of Silla,Interdisciplinary Studies,Colonial Period,Subject Formation,Locality,Imperial Identity,Imagined Object,Hybirdity,the Country,Hwarang,Kyoungju,Silla,Chosun,Orient,Memorial,Inventing the Classics,The Invention of Traditions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는 한국이라는 공동체의 유지, 발전을 위한 전통 만들기를 대표하는 작업으로 ‘신라’의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의 과정에 주목하였다. 일제 식민지시기에 이루어진 ‘신라’ 라는 이미지의 새로운 발견은 당시 한국인의 지적이고 상상적인 노력에 의한 작업이었다. 민족의 자랑스런 역사를 대표하는 신라는 민족적 정체성의 새로운 세우기 위해 다시 만들어져야 할 가치있는 대상으로 자리잡았다. 신라를 포함한 조선의 고대에 대한 역사적 연구에서 일본의 동양사학이 중대한 전환을 가져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시라토리 구라키치, 나카 미치요, 하야시 다이스케 등 동양사학자들의 연구는 고대 조선에 대한 새로운 관념을 시사했다. 신라가 조선반도의 영토 지배라는 점에서 최초의 통일 국가라는 위상을 보유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일본인 동양사가들의 연구에서였다.
    연구책임자 황종연은 한국근대소설에 나타난 신라 표상에 주목하였다. 한국 근대의 중요한 역사소설인 이광수의 󰡔원효대사󰡕와 현진건의 󰡔무영탑󰡕은 특히 조선 민족이 자신들의 민족적, 계급적 이해에 들어맞는 방식으로 신라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자 한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 󰡔무영탑󰡕에서 신라인의 정체성의 핵심으로 파악된 화랑도는 신라인의 정서적인 삶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그것의 특질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소설에서 화랑도는 신라인의 삶에 다른 나라의 문화와 구분되는 특징을 부여하고 신라문화의 발전을 가져온 원리로 상상되고 있다.
    이광수는 현대 조선인에 대한 정의와 상상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신라라는 역사상의 세계를 소설 속에 불러낸다. 그의 원효 이야기는 일본인들이 주장한 내선일체가 조선인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받아들인 그의 제국주의적 사고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신라는 전체주의적 유토피아에 대한 그의 환상이 빚어낸 가공의 세계이다. 일제하의 조선인에게 새로운 자기인식의 원천으로 등장한 신라는 󰡔원효대사󰡕에 이르러 조선인들에게 황국신민과의 동일화를 부추기는 감상(感傷)과 환각의 장소가 되었다.
    본 과제의 공동연구자인 윤선태는 현재의 ‘통일신라’에 대한 민족사적 의의와 그 문화를 높이 평가하는 ‘통일신라론’의 의미를 연구하였다. 하야시 다이스케의 신라통일론은 과거의 사건을 오늘날의 맥락 속에서 다시 해석하여 만든 것이다. 이러한 역사기술 방식은 기존의 전통적인 텍스트를 해체하고, 사건의 인과관계를 새롭게 설정하여 전혀 다른 시대관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한말 지식인들의 역사기술 방식의 변화에 새로운 계기로 작용하였다.
    일본 역사학에 기초해 발명된 ‘통일신라론’은 조선의 지식인들과 조우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되었다. 또한, 제국 일본의 ‘조선합병’은 일본에 저항하는 조선의 민족주의를 발생하게 만들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제국 일본이 주도하는 ‘조선사’ 성립을 가능하게 하였다. 일본이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조선에 대한 지배자로서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연구전임인력으로 일본학에서 발견되는 신라의 상상적 이미지에 주목한 이병진은 고바야시 히데오와 야나기 무네요시의 작업을 분석의 주요한 대상으로 삼았다. 고바야시와 야나기는 신라의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유산을 동양문화의 중요한 기념비로 발견하였다. 그것은 박물관으로서의 신라에 동양의 고대를 대표하는 미술이 보존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한 결과였다. 그들은 식민지 조선이 지니고 있는 의미 있는 과거 속에서 신라를 호출하여 동양의 주체로 만들려는 시도를 하였다.
    연구전임인력으로 미술사학에 나타난 신라의 표상을 연구한 김현숙은 특히 신라를 대표하는 유물인 석굴암에 주목하였다. 석굴암은 희랍에서 시작하여 극동에서 꽃을 핀 고전주의의 정점으로 논의되어 정신미, 단순미, 균제미가 부각되었다. 석굴암 본존불의 고전주의적 미감을 계승한 조각가 김복진은 이집트에서 희랍을 거쳐 석굴암 불상에서 완성된 고전양식을 식민지 민중 표현으로 새롭게 만들었다. ‘동양 최고의 보고’ ‘극동의 고전주의’ 등의 수사로 칭송되었던 석굴암은 식민지 조선의 지역성과 한계를 탈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 영문
  • Silla is a historical past that has often been evoked, imagined and narrated with the intention of creating patriotic Koreans. The ancient kingdom provided one of the major sources of national pride for Koreans, with its political success as allegedly the first to unify the states in existence on the Korean peninsular and its artistic creativity exemplifiedby such works of Buddhist art as Sokguram Grotto and Pulguksa Temple, and became a historical imaginary in which they could understand, imagine, fantasize about themselves as a politically sovereign and culturally autonomous nation. A number of historians, writers and artists of the colonial and postcolonial period tried to forge a link with Silla, which was central to the cultural nationalism of twentieth-century Korea.

    The purpose of this research project is to understand the way in which Silla was discovered, narrated, and interpreted, from the perspectives of different fields of study---literature, history, archaeology, and art history. This project focuses on Japanese discovery of the ancient kingdom in the colonial period and also on the effort on the part of Koreans to appropriate it for their national purpose.

    Hwang Jongyon examines some examples of Japanese historical and archaeological work on Silla that began with Japanese colonization of Korea and identifies their tendency to rationalize Japanese colonial rule and their configuration of Silla as a lost home of Japanese people. He also reads two major fictional narratives by Korean writers of Siila with regard to their reaction to Japanese scholarship and interpretation.

    Yun Sontae deals with the issue of ‘unified Silla’, a notion that came into existence in modern Korean historiography as a result of Japanese exploration of ancient Korean history. He emphasizes the ambiguity of the historical invention, arguing that it fostered the historical reconstruction of Silla in service of Korean nationalism on the one hand, and let Japanese chosenshi take the lead in understanding Korean history even after Korea’s liberation from Japanese rule.

    Kim Hyonsuk discusses how Sokguram Grotto, generally regarded as representative of the artistic achievements by Silla people, was discovered and understood by Japanese, who were attracted by the remains of Silla in its capital city Kyongju and recognized their values in terms of classical eastern art. Her article contains a critical reading of two instances of the creative transformation by Korean artists of the Grotto figure.

    Yi Pyongjin offers a historical critical account of Japanese aesthetic conceptions of Silla with a focus on Yanagi Muneyoshi’s and Kobayashi Hideo’s appreciation of the remains from the ancient dynasty. He argues that they discovered the values of Silla art, but also found a way to integrate it into East Asian culture.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는 한국이라는 공동체의 유지, 발전을 위한 전통 만들기를 대표하는 작업으로 ‘신라’ 표상의 창출에 주목하였다. 식민지시기를 통틀어 다방면에 걸쳐 이루어진 ‘신라’ 표상 창출은 당시 한국인의 지적, 상상적 능력이 전면적으로 동원된 작업이었다. ‘고대적인 고대’를 대표하는 신라는 민족적 정체성의 새로운 구축을 위해 재생되어야 할 가치의 보고로 배치되었다. 신라를 포함한 조선의 고대에 대한 역사적 연구에서 일본의 동양사학이 중대한 전환을 가져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본 제국의 정치적 이해와 결합하여 형성된 동양사학은 1890년대부터 청일전쟁에서의 승리 이후 일본의 팽창주의를 뒷받침하는 역사학적 지식 생산의 일환으로 고대 조선에 대한 고증과 해석을 내놓기 시작했다. 시라토리 구라키치, 나카 미치요, 하야시 다이스케 등 동양사학자들의 연구는 고대 조선에 대한 새로운 관념을 시사했다. 신라가 조선반도의 영토 지배라는 점에서 최초의 통일 국가라는 위상을 보유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일본인 동양사가들의 연구에서였다.
    연구책임자 황종연은 한국근대소설에 나타난 신라 표상에 주목하였다. 한국 근대의 중요한 역사소설인 이광수의 󰡔원효대사󰡕와 현진건의 󰡔무영탑󰡕은 특히 조선 민족이 자신들의 민족적, 계급적 이해에 들어맞는 방식으로 신라를 표상하고자 한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 󰡔무영탑󰡕에서 신라인의 정체성의 핵심으로 파악된 화랑도는 신라인의 정서적인 삶의 심층에 자리잡고 그것의 변별적인 특질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소설에서 화랑도는 신라인의 삶에 변별적 특징을 부여하고 신라문화의 융성을 가져온 원리로 상상되고 있다.
    이광수에게 신라는 현대 조선인에 대한 정의와 상상의 욕구가 불러낸 역사상의 세계였다. 그의 원효 이야기는 내선일체를 조선인을 위한 거룩한 복음으로 받아들인 그의 제국주의적 사고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신라는 전체주의적 유토피아에 대한 그의 환상이 빚어낸 가공의 세계이다. 일제하의 조선인에게 새로운 자기인식의 원천으로 등장한 신라는 󰡔원효대사󰡕에 이르러 조선인들에게 황국신민과의 동일화를 부추기는 감상(感傷)과 환각의 장소가 되었다.
    본 과제의 공동연구자인 윤선태는 현재의 ‘통일신라’에 대한 민족사적 의의와 그 문화를 높이 평가하는 ‘통일신라론’에서 발견의 맥락을 읽어냈다. 이를 대표하는 하야시 다이스케의 신라통일론은 과거의 사건을 오늘날의 컨텍스트 속에 재결합하고 재해석하여 만든 것이다. 이러한 역사기술 방식은 기존의 전통적인 텍스트를 해체하고, 사건의 인과관계를 새롭게 설정하여 전혀 다른 시대관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한말 지식인들의 역사기술 방식에 새로운 계기로 작용하였다. 또한 제국 일본의 ‘조선합병’은 제국 일본이 주도하는 ‘조선사’ 성립을 더욱 강력하게 부채질하였다. 일본이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조선의 시공간에 대한 전일적인 지배자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연구전임인력으로 일본학에서 발견되는 신라의 상상적 표상에 주목한 이병진은 고바야시 히데오와 야나기 무네요시의 작업을 분석의 주요한 대상으로 삼았다. 고바야시와 야나기는 신라의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유산을 동양문화의 중요한 기념비로 발견하였다. 그것은 박물관으로서의 신라에 동양의 고대를 대표하는 미술이 보존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한 결과였다. 그들은 식민지 조선이 지니고 있는 의미 있는 과거 속에서 신라를 호출하여 동양의 주체로서 구성하려는 기획을 하였다.
    연구전임인력으로 미술사학에 나타난 신라의 표상을 연구한 김현숙은 특히 신라를 대표하는 미적 표상인 석굴암에 주목하였다. 석굴암 본존불의 고전주의적 미감을 계승한 조각가 김복진은 이집트에서 희랍을 거쳐 석굴암 불상에서 완성된 고전양식을 식민지 민중 표현으로 창신시켰다. ‘동양 최고의 보고’ ‘극동의 고전주의’ 등의 수사로 칭송되었던 석굴암은 식민지 조선의 지역성과 한계를 탈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동양문화의 기념비이자 서양미술의 원천인 그리스 미술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고 평가된 석굴암은 피식민지인으로 하여금 세계인으로서 호흡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일본의 식민주의 역사가와 지식인들에게 신라는 일본인의 국민적 정체성을 나르시시즘적인 방식으로 확인하게 해주는 역사상의 상상계를 제공했다. 일본인이 발견한 신라로부터 당대 조선을 위한 의미와 상징의 저장소를 만들어내는 것, 일본인이 구축한 신라라는 상상계를 조선민족의 문화적 자원으로 전유하는 것은 식민지 시기 조선인의 지적, 예술적 작업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게 된다. 식민지 지식인의 복잡한 내면과 정체성의 문제는 신라라는 표상을 통해 다양하게 표출되었다.
    근대문학의 텍스트들은 신라라는 동일한 표상에 각인된 제국과 민족, 내셔널과 트랜스내셔널한 맥락들이 교호하며 형상화된 작품들이다. 현진건과 이광수가 신라 소재의 소설을 발표한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 전반 조선의 문학과 예술은 동시대 일본 문단에서 성행하고 있었던 낭만적 역사주의와 흡사한 풍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신라의 미적 표상을 대표하는 석굴암은 일본인들에게 발견되어 그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다. 석굴암의 우아한 선조미는 최승희의 보살춤으로 재현되었다. ‘조선의 무희’로서 세계 무대에서 역량을 인정받은 최승희는 석굴암 보살상에서 선취된 바 있는 선조미를 균제미, 종교적 엄숙미와 조화시킴으로써 ‘이조 도자기’의 선을 축으로 담론화되었던 비애미를 초극하였다.
    신라사 연구는 일본 제국주의가 발견하고 고안해 낸 학문 주제이다. 1902년 이래 세키노 다다시(關野貞)를 위시한 일본인 미술가와 고고학자들의 경주지역 발국은 제국 일본은 물론 조선 전체를 흥분으로 몰아넣은 ‘전통의 발명’으로 이어지게 된다. 세키노 다다시는 통일신라에서 조선 고유의 문화를 찾아내고 찬양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고려 이후의 미술이나 조선 문화의 쇠퇴 현상을 통해 제국과 식민 구조를 정당화하였으며, 신라문화를 일본 고대문화의 아류로 치부했다. 결국, 일본사의 담론 구조 안에 조선사를 포섭시켜, 동아시아에서 일본이 가지는 특수성과 유럽과의 친근성을 끌어내기 위한 담론을 생산했던 것이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선은 제국 일본의 한 지방으로서 통합되고, 조선문화는 제국문화의 일부로서 인식되었다. 이 시기에 신라의 표상도 일본이라는 타자와 구별된 조선의 자기구성에 필요한 전통이 아니라, 일본과 조선의 동질적 근원을 나타내는 사례로서 맥락화되었다. 일본의 무사도정신을 설명하면서 신라의 화랑도가 환기되고, 고대 일본과 신라의 관계가 재구성되었으며, 신라는 일본제국의 확장된 동일자로서 자리잡았다. 식민지 조선인에게 신라는 분명히 자기인식에 불가결한 재료였고 신라 표상은 자기주장의 유력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식민지 문화에 형성된 신라와의 새로운 연계는 일본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조선을 열망하게 하기보다 일본 제국의 민족적 성분 중에서 특수한 조선을 몽상하게 했다.
    본 연구는 식민지 시기의 한국의 문학과 문화 속에 나타나는 전통의 발견과 창출에 대한 연구의 기반을 닦았으며, 공간과 장소의 표상에 대한 인식과 발견의 역사를 대상으로 하는 보다 확장된 영역의 연구로 전개될 수 있는 기초를 쌓았다고 기꺼이 자부할 수 있다. 일본 지식인들에 의한 조선 지리지, 조선을 여행한 여행기, 시와 소설과 수필 등 다양한 문학 장르에 나타난 한국의 공간에 대한 인식 등을 연구하여 한국인들 자신이 국가의 정체성을 어떻게 형성해나갔는가를 파악하는 연구는 이제부터 시작될 우리 인문학계의 중요한 화두 중의 하나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분명 본 연구의 성과를 바탕으로 하게 될 것이다.
    본 연구팀의 연구는 일차적으로 식민지 시기를 대상으로 하여 일본의 식민사학과의 관련 속에서 상상된 신라의 표상을 밝혀내었다. 그러나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짐작하였던 것처럼, 이 과제는 해방 이후의 시기에서 더 많은 후속 연구를 파생시킬 수 있는 주제이다. 신라 표상의 창출은 후대 한국의 정치 실험과 문화 건설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업이었다. 본 연구의 주제를 심화하고 그 문제의식을 세련화한다면 해방 이후 시기 한국의 공간과 장소 표상에 대해서 다양한 후속연구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은 다양한 학문적 담론의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이다.
  • 색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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