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로 제출하는 <조선 후기 회화와 문화적 호기심>은 연구자가 그 동안 관심을 가져 온 조선 후기 회화(繪畵)의 문화적 복합성에 대한 탐구의 연장선에 있다. 조선후기 사회의 근대적 징표들로 인식되어 왔던 중세적 신분제의 붕괴와 해체, 상업자본주의의 발전, 상품화폐 ...
과제로 제출하는 <조선 후기 회화와 문화적 호기심>은 연구자가 그 동안 관심을 가져 온 조선 후기 회화(繪畵)의 문화적 복합성에 대한 탐구의 연장선에 있다. 조선후기 사회의 근대적 징표들로 인식되어 왔던 중세적 신분제의 붕괴와 해체, 상업자본주의의 발전, 상품화폐경제의 확대는 서울의 도시적 성장 및 광범위한 소비문화의 확산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서울의 도시화·상업화는 곧 소비사회로의 변화를 예시(豫示)하는 사회·경제적 징후였다. 종로, 남대문 일대에 번성(繁盛)하던 시장들과 수많은 재화의 소비, 기방(妓房)을 중심으로 한 유흥문화의 발전은 조선후기 사회가 근대적 소비사회로 점진적으로 변화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 후기 사회가 소비사회로 진전되면서 나타난 또 다른 중요한 현상 중 하나는 문화적 호기심(cultural curiosity)의 증가와 지식 정보(information)의 확대이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중국으로부터 막대한 서적들이 수입, 유통되면서 수많은 거대 장서가(藏書家)들이 출현한 것은 단순히 서적을 수집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확대된 지식과 견문(見聞)을 조직적으로 운용하는 지식경영학이 발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각종 전서(全書)류가 출판된 것은 백과사전적인 지식을 체계적으로 분류, 정리하고 조직화하는 경향이 문인 사회에 유행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아울러 단순히 유교 경전 및 역사서에 한정되지 않고 새로운 지식들, 특히 취미 생활과 관련된 서적들이 대량으로 유입되어 정리된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녹앵무경(綠鸚鵡經)』, 유득공(柳得恭, 1748-1807)의 『발합경(鵓鴿經)』, 이옥(李鈺, 1760-1815)의 『연경(煙經)』, 유박(柳璞, 1730-1787)의 『화암수록(花庵隨錄)』등은 앵무새‧비둘기 기르는 법, 담배의 종류와 담배 피우는 방법, 다양한 꽃에 관한 정보와 재배법을 수록하고 있는데 이러한 서적들이 출간되고 유통된 것은 사물과 세계에 대한 정보가 크게 확대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민, 2007). 이러한 조선 후기의 사회적, 문화적 변동이 많은 회화 작품에 반영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새로운 정보의 유입과 유통은 문화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가장 큰 원천이 되었다. 문화적 호기심은 단순히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감정적 반응에 국한되지 않는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끊임없는 관심과 탐색(inquiry)을 기초로 문화적 호기심은 타자(他者)에 대한 포용적인 배려를 수반한다. 조선후기 문화의 다양성, 복합성, 역동성은 바로 폐쇄적인 유교사회의 한계를 극복하고 중국과 일본을 위시한 외부세계의 문물에 대한 적극적인 지적 반응인 문화적 호기심을 원천으로 이루어진 문화적 개방성에 기초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조선 후기 사회의 변동과 문화적 영역의 확대를 중심으로 외부의 사물, 인간, 자연 환경, 동식물에 대한 지적인 호기심이 어떻게 회화의 새로운 주제로 부상하게 되었는가를 고찰하고자 한다. 그 동안 한국회화사 연구는 화풍(畵風)의 변천, 회화 양식의 변화, 개별 작가에 대한 연구, 산수화‧풍속화 등 회화 장르(genre)에 대한 고찰 등에 한정되어 왔다. 새로운 회화적 주제가 ‘왜’ ‘어떠한’ 맥락 속에서 발생하게 되었는가? 이러한 변화를 추동한 원인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인가? 등 거시적인 문화사적 맥락에서 그림을 이해하려는 연구 노력은 현재까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선 후기 회화와 문화적 호기심>은 조선 후기 그림의 사회‧문화적 맥락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문화적 호기심과 관련된 그림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조선 후기 문화가 지닌 포용성과 개방성을 확인하려는 것이 본 연구의 중요한 목표이다. 연구자는 미술 작품과 사회‧문화적 변동의 상호 연관성을 미시사(微視史)적으로 고찰하는 최근 서구 미술사학계의 주류적인 학문 경향인 ‘인류학적 미술사 anthropological art history’의 연구 성과(Mariet Westermann, ed., Anthropologies of Art (Yale University Press, 2005))를 참고하여 외국의 지리와 인간에 대한 관심, 서양에서 들어온 기이한 물건들에 대한 흥미, 희귀한 동식물에 대한 매혹 등 문화적 호기심이 어떻게 회화적 주제로 등장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현상의 문화사적 의의는 무엇이었는가를 탐구하고자 한다. <조선 후기 회화와 문화적 호기심>은 한국회화사 연구의 양식사적‧제도사적 한계를 극복하고 미술작품과 사회‧문화적 변동의 상호 유기적 관계를 규명하는데 일조하고자 기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