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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회화와 문화적 호기심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신진연구자지원사업& #40;인문사회& #41;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08-332-G00018
선정년도 2008 년
연구기간 1 년 (2008년 07월 01일 ~ 2009년 06월 30일)
연구책임자 장진성
연구수행기관 서울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과제로 제출하는 <조선 후기 회화와 문화적 호기심>은 연구자가 그 동안 관심을 가져 온 조선 후기 회화(繪畵)의 문화적 복합성에 대한 탐구의 연장선에 있다. 조선후기 사회의 근대적 징표들로 인식되어 왔던 중세적 신분제의 붕괴와 해체, 상업자본주의의 발전, 상품화폐경제의 확대는 서울의 도시적 성장 및 광범위한 소비문화의 확산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서울의 도시화·상업화는 곧 소비사회로의 변화를 예시(豫示)하는 사회·경제적 징후였다. 종로, 남대문 일대에 번성(繁盛)하던 시장들과 수많은 재화의 소비, 기방(妓房)을 중심으로 한 유흥문화의 발전은 조선후기 사회가 근대적 소비사회로 점진적으로 변화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 후기 사회가 소비사회로 진전되면서 나타난 또 다른 중요한 현상 중 하나는 문화적 호기심(cultural curiosity)의 증가와 지식 정보(information)의 확대이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중국으로부터 막대한 서적들이 수입, 유통되면서 수많은 거대 장서가(藏書家)들이 출현한 것은 단순히 서적을 수집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확대된 지식과 견문(見聞)을 조직적으로 운용하는 지식경영학이 발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각종 전서(全書)류가 출판된 것은 백과사전적인 지식을 체계적으로 분류, 정리하고 조직화하는 경향이 문인 사회에 유행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아울러 단순히 유교 경전 및 역사서에 한정되지 않고 새로운 지식들, 특히 취미 생활과 관련된 서적들이 대량으로 유입되어 정리된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녹앵무경(綠鸚鵡經)』, 유득공(柳得恭, 1748-1807)의 『발합경(鵓鴿經)』, 이옥(李鈺, 1760-1815)의 『연경(煙經)』, 유박(柳璞, 1730-1787)의 『화암수록(花庵隨錄)』등은 앵무새‧비둘기 기르는 법, 담배의 종류와 담배 피우는 방법, 다양한 꽃에 관한 정보와 재배법을 수록하고 있는데 이러한 서적들이 출간되고 유통된 것은 사물과 세계에 대한 정보가 크게 확대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민, 2007). 이러한 조선 후기의 사회적, 문화적 변동이 많은 회화 작품에 반영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새로운 정보의 유입과 유통은 문화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가장 큰 원천이 되었다. 문화적 호기심은 단순히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감정적 반응에 국한되지 않는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끊임없는 관심과 탐색(inquiry)을 기초로 문화적 호기심은 타자(他者)에 대한 포용적인 배려를 수반한다. 조선후기 문화의 다양성, 복합성, 역동성은 바로 폐쇄적인 유교사회의 한계를 극복하고 중국과 일본을 위시한 외부세계의 문물에 대한 적극적인 지적 반응인 문화적 호기심을 원천으로 이루어진 문화적 개방성에 기초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조선 후기 사회의 변동과 문화적 영역의 확대를 중심으로 외부의 사물, 인간, 자연 환경, 동식물에 대한 지적인 호기심이 어떻게 회화의 새로운 주제로 부상하게 되었는가를 고찰하고자 한다. 그 동안 한국회화사 연구는 화풍(畵風)의 변천, 회화 양식의 변화, 개별 작가에 대한 연구, 산수화‧풍속화 등 회화 장르(genre)에 대한 고찰 등에 한정되어 왔다. 새로운 회화적 주제가 ‘왜’ ‘어떠한’ 맥락 속에서 발생하게 되었는가? 이러한 변화를 추동한 원인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인가? 등 거시적인 문화사적 맥락에서 그림을 이해하려는 연구 노력은 현재까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선 후기 회화와 문화적 호기심>은 조선 후기 그림의 사회‧문화적 맥락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문화적 호기심과 관련된 그림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조선 후기 문화가 지닌 포용성과 개방성을 확인하려는 것이 본 연구의 중요한 목표이다. 연구자는 미술 작품과 사회‧문화적 변동의 상호 연관성을 미시사(微視史)적으로 고찰하는 최근 서구 미술사학계의 주류적인 학문 경향인 ‘인류학적 미술사 anthropological art history’의 연구 성과(Mariet Westermann, ed., Anthropologies of Art (Yale University Press, 2005))를 참고하여 외국의 지리와 인간에 대한 관심, 서양에서 들어온 기이한 물건들에 대한 흥미, 희귀한 동식물에 대한 매혹 등 문화적 호기심이 어떻게 회화적 주제로 등장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현상의 문화사적 의의는 무엇이었는가를 탐구하고자 한다. <조선 후기 회화와 문화적 호기심>은 한국회화사 연구의 양식사적‧제도사적 한계를 극복하고 미술작품과 사회‧문화적 변동의 상호 유기적 관계를 규명하는데 일조하고자 기획되었다.
  • 기대효과
  • 문화적 호기심의 확대는 곧 외부세계 즉 타자(他者 the Other)를 내면화(內面化 outside in)하는 과정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즉 자신의 제한된 지식의 한계를 극복하고 다양하고 새로운 정보의 수용을 통해 나와 세계에 대한 인식의 확대를 의미한다. 조선 후기 사회에 대한 연구는 그 동안 지나치게 ‘조선적인 것(Koreanness)’의 문화적 성격을 규명하는데 치중하였다. ‘조선적인 것’의 검출과 강조는 역설적으로 ‘비조선적인 것’에 대한 외면과 무시를 전제(前提)로 한다. 이러한 ‘조선적인 것’에 대한 학문적 집착은 조선 시대 회화사 연구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정선(鄭敾, 1676-1759)을 필두로 한 진경산수화와 김홍도(金弘道, 1745-1816년 이후)의 풍속화에 보이는 ‘조선적 특질’에 대한 강조는 조선 후기 회화사에 있어 거의 주목받지 못했던 김부귀 필 <낙타도>와 같은 작품에 대한 학문적 무관심 또는 무시와 직결되어 있다. 연구 과제로 제출하는 <조선 후기 회화와 문화적 호기심>은 단순히 미술사적 연구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 연구를 통해 본 연구자는 오랫동안 한국학의 가장 중요한 화두로 기능해 왔던 ‘조선적인 것’에 대한 학문적 집착을 경계하고 보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조선 후기 문화의 개방적인 성격을 이해시키고자 노력할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 과제의 학술적 의의는 조선 후기 문화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커다란 학문적 질문을 조선 후기에 새롭게 등장한 흥미로운 회화적 주제들에 대한 고찰을 통해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는데 있다. 즉 본 연구는 외국의 지리와 인간에 대한 관심, 서양의 과학과 학문에 대한 흥미, 골동품에 대한 취미의 발전과 호고(好古)적인 것에 대한 지적인 매혹, 희귀한 동식물에 대한 흥미와 박물학적 지식의 증대 등 문화적 호기심과 관련된 그림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조선 후기 문화가 조선적인 것과 아울러 비조선적인 것을 포괄하는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문화였음을 증명하고자 한다. 이러한 연구 성과는 문헌사의 한계에 대한 인식과 아울러 시각자료(visual evidence)의 역사적 가치에 대한 한국학계의 새로운 관심을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며 국문학, 국사학등 인접 학문 분야에도 지적인 자극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 연구요약
  • 연구과제로 제출하는 <조선 후기 회화와 문화적 호기심>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항목으로 소주제를 나누어 조선 후기 그림에 드러난 문화적 호기심의 실체를 규명해 보고자 한다.

    1. 희귀한 동식물에 대한 관심
    2. 서학(西學)의 발전과 서양에서 들어온 이상한 물건들(西洋異物)에 대한 호기심
    3. 지리적 인식의 확대와 견문(見聞)의 역할 증대
    4.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과 민족학적 관심

    첫째 ‘희귀한 동식물에 대한 관심’의 증가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작품은 김부귀(金富貴, 18세기 중후반 활약) 필 <낙타도(駱駝圖)>(개인 소장)이다. 낙타의 경우 조선 후기 지식인들에게 큰 흥미의 대상이었는데 박지원의 경우 『열하일기(熱河日記)』에 중국 사행 길에 낙타를 실견하려고 했으나 직접 보지 못하게 되자 크게 낙담한 내용을 싣고 있다. 이인문(李寅文, 1745-1821) 필 <이인물도(二人物圖)>(간송미술관 소장)와 작자 미상의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에는 낙타를 타고 있는 사람들이 그려져 있어 조선 후기에 확산된 낙타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시각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작자 미상, <맹견도(猛犬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희영(李喜英, ?-1810)의 <견도(犬圖)> (숭실대박물관 소장)등은 외국산 개들을 그린 것으로 조선 후기에 외국산 개들에 대한 관심이 존재했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둘째 ‘서학(西學)의 발전과 서양에서 들어온 이상한 물건들(西洋異物)에 대한 호기심’과 관련하여 가장 주목되는 점은 조선 후기에 확산된 서학과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에 대한 호기심이다. 정약용(丁若鏞, 1762-1836)과 이기양(李基讓, 1744-1802)은 카메라 옵스큐라에 대한 매우 상세한 기록을 남기고 있으며 <이기양초상>(개인 소장), 이명기(李命基, 1756-?) 필 <채제공(蔡濟恭)초상 초본>(수원시청 소장)은 카메라 옵스큐라의 원리가 초상화 제작에 응용되었다는 것을 시사해 주는 매우 중요한 작품들이다(이태호, 2007). 아울러 김홍도(金弘道, 1745-1816년 이후)의 <사인초상(士人肖像)>(평양조선미술박물관 소장)에 보이는 자명종(自鳴鐘)은 카메라 옵스큐라와 함께 서양의 이상한 물건에 대한 증대된 관심을 보여준다.

    셋째 ‘지리적 인식의 확대와 견문(見聞)의 역할 증대’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은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의 <<중국기행첩(中國紀行帖)>>(1784년, 통도사 성보박물관 소장) 및 명지대 LG연암문고 소장 <<심양관도첩(瀋陽館圖帖>>(1761년)등 다양한 종류의 연행(燕行)관련 기행 화첩이다(정은주, 2007). 중국에 사신으로 가는 연행사원(燕行使員)들의 증가와 함께 연행 경로 및 행로(行路)에 위치한 중국의 다양한 인문지리적 정보의 유입은 조선 후기 지식인들에게 지리적 호기심과 함께 정확한 견문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게 되었다. <<심양관도첩>>과 <<중국기행첩>>은 조선후기에 성행한 인문지리적 지식에 관한 지적인 열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다섯째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과 민족학적(ethnographic) 관심’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그림들은 앞에서 언급한 이인문의 <이인물도>, 김윤겸(金允謙, 1711-1775)의 <담소도(談笑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전(傳) 김득신(金得臣, 1754-1822) <인물도> (선문대학교박물관 소장) 등에는 서역인, 만주족 병사, 중국인 가족들이 묘사되어 있다. 조선 시대를 통틀어 이와 같이 외국인들이 현실감 있게 묘사된 작품들은 거의 없다. 한편 19세기에 제작된 <<여지도첩(輿地圖帖)>>(국립중앙박물관)에는 몽고인, 러시아인, 태국인, 유럽인 등 다양한 외국 인물들을 그린 그림들이 포함되어 있다. 아울러 낙타, 코끼리 등 조선에서 보기 힘든 동물들도 도해(圖解)하여 소개하고 있다. 이와 같은 화첩의 존재는 중국과 일본에 대한 제한적 인식의 단계를 넘어 몽고, 러시아, 유럽, 태국 등 보다 넓은 세계에 대한 문화적 호기심을 통해 많은 나라의 주민 모습과 풍속을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조선 후기에 나타났음을 의미한다.
  • 한글키워드
  • 서학,문화적 호기심,인류학적 미술사,지리학적 지식,민족학적 관심,골동품 소비,낙타
  • 영문키워드
  • consumption of antiques,cultural curiosity,Western learning,camels,anthropological art history,geographical knowledge and information,ethnographical interest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연구 기간 중 연구수행의 중심은 소주제로 세분화한 5가지 주제인

    1. 희귀한 동식물에 대한 관심
    2. 서학(西學)의 발전과 서양에서 들어온 이상한 물건들(西洋異物)에 대한 호기심
    3. 지리적 인식의 확대와 견문(見聞)의 역할 증대
    4. 중국 골동품에 대한 광적인 애호(愛好) 풍조와 고증학적 열망
    5.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과 민족학적 관심

    중 2번 서학(西學)의 발전과 서양에서 들어온 이상한 물건들(西洋異物)에 대한 호기심과 4번 중국 골동품에 대한 광적인 애호(愛好) 풍조와 고증학적 열망에 집중되었다.

    2번 ‘서학(西學)의 발전과 서양에서 들어온 이상한 물건들(西洋異物)에 대한 호기심’과 관련해서 주 연구 대상이 된 것은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에 대한 호기심이다. 정약용(丁若鏞, 1762-1836)과 이기양(李基讓, 1744-1802)은 카메라 옵스큐라에 대한 매우 상세한 기록을 남기고 있으며 <이기양초상>(개인 소장), 이명기(1756- ) 필 <채제공초상 초본>(수원시청 소장)은 카메라 옵스큐라의 원리가 초상화 제작에 응용되었다는 것을 시사해 주는 매우 중요한 작품들로 여겨져 왔다. 연구책임자는 카메라 옵스큐라에 대한 지식이 조선 후기 사회에 어느 정도 유통되었으며 당시에 과연 카메라 옵스큐라를 실제로 제작하여 사용하였는가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어 그 동안 연구를 진행해 왔다. 연구 내용 중 일부 결과는 2009년 5월 20일-5월 22일에 대만국립고궁박물원(臺灣國立故宮博物院)에서 주최한 국제학술심포지엄인 <匯聚:交流中所形塑的亞洲 Confluence: Exchanges in the Making of Asia>에서 "The Camera Obscura and East Asian Painting"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발표되었다 (『匯聚:交流中所形塑的亞洲 Confluence: Exchanges in the Making of Asia>Proceedings 論文集 Proceedings』, pp. 20-28). 본 논문 발표에서 연구책임자는 정약용의 「칠실관화설(漆室觀畵說)」과 이기양의 묘지명에 보이는 조선 후기 사회에 전래된 카메라 옵스큐라에 대한 지식을 구체적으로 검토한 후 비록 카메라 옵스큐라에 대한 지식이 조선 후기 문인들에게 알려지기는 했지만 실제로 카메라 옵스큐라를 만들 수 있는 기술적 단계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고 주장하였다. 즉 이론적으로는 카메라 옵스큐라의 원리에 대하여 알고 있었으며 제작을 위한 일부 일시적인 실험을 감행하기는 했지만 근본적으로 카메라 옵스큐라 제작의 핵심인 렌즈(lens)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결론지었다. 당시 조선은 렌즈를 만들 수 없었으며 중국 역시 고광학 렌즈 제작 기술이 부족하여 올바르게 작동할 수 있는 카메라 옵스큐라 제작은 불가능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의 「안경설(眼鏡說)」에 잘 나타나 있다. 강세황은 이 글에서 당시 조선에서 안경을 만들 수 없었던 것을 개탄하고 있는데 당시 안경을 만들지 못하고 중국에서 수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안경 렌즈를 자체 제작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안경 렌즈를 자체 제작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고도의 정교성을 요구하는 광학 렌즈를 제작할 수 없었던 것은 너무도 명확하다. 즉 카메라 옵스큐라를 자체 제작할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기존에 카메라 옵스큐라의 원리를 이용하여 제작했다고 주장되어 온 <이기양초상>과 이명기(李命基)의 <유언호초상(兪彦縞肖像)>(1787년,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의 경우 실제로 초상화 제작 과정에서 카메라 옵스큐라가 사용되었을 가능성은 없다고 할 수 있다.

    한편 4번 중국 골동품에 대한 광적인 애호(愛好) 풍조와 고증학적 열망에 대한 연구 역시 연구 기간 중 연구수행의 중심이었다. 연구책임자는 조선 후기에 사회적인 이슈(issue)가 된 중국 골동품 수집 열기와 고동서화학(古董書畵學)의 발전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저술 중 하나인 서유구(徐有榘, 1764-1845)의『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들어 있는 미술 관련, 특히 골동품 및 서화(書畵) 관련 자료를 집중적으로 분석하였다. 연구 결과는 『진단학보(震檀學報)』108호(2009년 12월)에 "조선 후기 미술과『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조선 후기 고동서화(古董書畵) 수집 및 감상 현상과 관련하여"라는 제목의 연구 논문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 영문
  • During the grant period, my research was focused on whether the camera obscura, an object of cultural curiosity, was actually put into practice use in the making of portraits and how the pursuit of antqiues was inseparable from the birth of a consumer society in the late Choson period, based on a close examination of Sŏ Yu-gu’s Imwŏn kyŏngjeji (Treatises on Forestry and Economy). Many textual records of the camera obscura have survived. The records are filled with the authors’ amazement at the optical principle of the camera obscura. Knowledge of the camera obscura was introduced to Korea by envoys to China during the eighteenth century. They visited Jesuit churches in Beijing and came to know of the mechanism of the camera obscura. After they returned to Korea, some of the envoys attempted to construct dark rooms to experiment with the optical principle of the camera obscura. One notable example is found in Chŏng Yag-yong’s (1762-1836) record of Yi Ki-yang’s (1744-1802) experiment with the camera obscura. Sometime in the mid-1780s, Yi Ki-yang set up a box-type camera obscura at the courtyard of Chŏng’s brother and asked a portraitist to draw a sketch by tracing an inverted image of him projected on the screen. This record is of great interest in that the camera obscura was actively employed in the making of a portrait. Nonetheless, it is still difficult to determine whether the painter actually employed the camera obscura in the rendering of the sitter’s face. One of the reasons to argue against the painter’s possible use of the camera obscura is that good mirrors and lenses were not available in eighteenth-century Korea. The effective function of a camera obscura depends on the combination of a concave mirror and a convex lens that produced a clear image. Kang Se-hwang (1713-1791), a contemporary of Yi Myŏng-gi, wrote of the low quality of lenses for spectacles. He mentioned that good lenses are required for the making of telescopes and spectacles and that while the Chinese learned from Westerners how to make glasses and lenses, the Koreans did not know how to make them. According to Kang, none of the Koreans of his time knew the method of making glasses and lenses. Given that the effective function of a camera obscura relies heavily on the quality of a concave mirror and a convex lens, it is hard to imagine that the eighteenth-century Korean camera obscura was good enough to be used in the making of paintings. Both Yi Ki-yang and Yi Myŏng-gi knew much about the optical principle of the camera obscura and experimented with it in the genesis of paintings. Their use of the device was, however, partial and limited. They probably employed the instrument for making preparatory sketches, as most Western painters did. The fuzzy and dim images created by the camera obscura provided unfavorable conditions for them to depict faithfully the real features of an object.

    Sŏ Yu-gu’s Imwŏn kyŏngjeji (Treatises on Forestry and Economy) is an encyclopedic collection of treatises on such fields of knowledge as agriculture, horticulture, fishing, architecture, medicine, astronomy, art, and leisure. Imwŏn kyŏngjeji is one of the major works of the practical learning (sirhak) school, exploring the full spectrum of life from agriculture and daily activities to the yangban class’s intellectual, cultural, and recreational pursuits. It is a vast and comprehensive assemblage of data in the whole rSuch treatises as the Hwajŏn (Painting Basket) part of the Yuyeji (Seeking Delight in the Arts) chapter and Yewan kamsang (Appreciation of Artworks) section of the Iunji (Enjoyment and Clouds) chapter include numerous sources of information for members of the ruling yangban class to collect and appreciate antiques. Sŏ Yu-gu systematically compiled texts on how to collect and use antiques and added his critical comments on some sources of information.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조선 후기 회화와 문화적 호기심>은 연구책임자가 그 동안 관심을 가져 온 조선 후기 회화(繪畵)의 문화적 복합성에 대한 탐구의 연장선에 있다. 조선후기 사회의 근대적 징표들로 인식되어 왔던 중세적 신분제의 붕괴와 해체, 상업자본주의의 발전, 상품화폐경제의 확대는 서울의 도시적 성장 및 광범위한 소비문화의 확산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서울의 도시화․상업화는 곧 소비사회로의 변화를 예시(豫示)하는 사회․경제적 징후였다. 종로, 남대문 일대에 번성(繁盛)하던 시장들과 수많은 재화의 소비, 기방을 중심으로 한 유흥문화의 발전은 조선후기 사회가 근대적 소비사회로 점진적으로 변화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 후기 사회가 소비사회로 진전되면서 나타난 또 다른 중요한 현상 중 하나는 문화적 호기심의 증가와 지식 정보(information)의 확대이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중국으로부터 막대한 서적들이 수입, 유통되면서 수많은 거대 장서가(藏書家)들이 출현한 것은 단순히 서적을 수집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확대된 지식과 견문(見聞)을 조직적으로 운용하는 지식경영학이 발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각종 전서(全書)류가 출판된 것은 백과사전적인 지식을 체계적으로 분류, 정리하고 조직화하는 경향이 문인 사회에 유행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아울러 단순히 유교 경전 및 역사서에 한정되지 않고 새로운 지식들, 특히 취미 생활과 관련된 서적들이 대량으로 유입된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박지원(1737-1805)의 『녹앵무경』, 유득공(1748-1807)의 『발합경』, 이옥(1760-1815)의 『연경』, 유박(1730-1787)의 『화암수록』등은 앵무새, 비둘기 기르는 법, 담배의 종류와 담배 피우는 방법, 다양한 꽃에 관한 정보와 재배법을 수록하고 있는데 이러한 서적이 출간되고 유통된 것은 사물과 세계에 대한 정보가 크게 확대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조선 후기의 사회적, 문화적 변동이 많은 회화 작품에 반영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새로운 정보의 유입과 유통은 문화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가장 큰 원천이 되었다.

    2. 당초 연구 내용, 범위 및 방법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조선 후기 사회의 변동과 문화적 영역의 확대를 중심으로 외부의 사물, 인간, 자연 환경, 동식물에 대한 지적인 호기심이 어떻게 회화의 새로운 주제로 부상하게 되었는가를 고찰하고자 한다. 그 동안 한국회화사 연구는 화풍(畵風)의 변천, 회화 양식의 변화, 개별 작가에 대한 연구, 산수화, 풍속화 등 회화 장르(genre)에 대한 고찰 등에 한정되어 왔다. 새로운 회화적 주제가 ‘왜’ ‘어떠한’ 맥락 속에서 발생하게 되었는가? 이러한 변화를 추동한 원인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인가? 등 거시적인 문화사적 맥락에서 그림을 이해하려는 연구 노력은 현재까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선 후기 회화와 문화적 호기심>은 조선 후기 그림의 사회‧문화적 맥락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문화적 호기심과 관련된 그림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조선 후기 문화가 지닌 포용성과 개방성을 확인하려는 것이 본 연구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이다. 연구자는 미술 작품과 사회‧문화적 변동의 상호 연관성을 미시사(微視史)적으로 고찰하는 최근 서구 미술사학계의 주류적인 학문 경향인 ‘인류학적 미술사 anthropological art history’의 연구 성과(Mariet Westermann, ed., Anthropologies of Art (Yale University Press, 2005))를 참고하여 외국의 지리와 인간에 대한 관심, 서양에서 들어온 이상한 물건들에 대한 흥미, 중국의 골동품에 대한 광적인 수집 열기 및 학문적 관심, 희귀한 동식물에 대한 매혹 등 문화적 호기심이 어떻게 회화로 주제로 등장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현상의 문화사적 의의는 무엇이었는가를 탐구하고자 한다. <조선 후기 회화와 문화적 호기심>은 한국회화사 연구의 양식사적, 제도사적 한계를 극복하고 미술작품과 사회‧문화적 변동의 상호 유기적 관계를 규명하는데 일조하고자 기획되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조선 후기 회화와 문화적 호기심에 대한 연구는 한국학 또는 한국미술사학 관련 학술 잡지에 투고하여 곧 연구 논문으로 정리될 예정이다. 연구 기간 중 이룬 연구 성과는 다음과 같다. 조선 후기 회화와 문화적 호기심의 5가지 소주제 중 하나인 ‘서학(西學)의 발전과 서양에서 들어온 이상한 물건들(西洋異物)에 대한 호기심’과 관련해서 연구 기간 중 연구책임자는 카메라 옵스큐라에 대한 지식이 조선 후기 사회에 어느 정도 유통되었으며 카메라 옵스큐라를 실제로 제작하여 사용하였는가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어 연구를 진행해 왔다. 연구 내용 중 일부 결과는 2009년 5월 20일-5월 22일에 대만국립고궁박물원(臺灣國立故宮博物院)에서 주최한 국제학술심포지엄인 <匯聚:交流中所形塑的亞洲 Confluence: Exchanges in the Making of Asia>에서 "The Camera Obscura and East Asian Painting"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발표되었다 (『匯聚:交流中所形塑的亞洲 Confluence: Exchanges in the Making of Asia>Proceedings 論文集 Proceedings』, pp. 20-28). 한편 조선 후기 회화와 문화적 호기심과 관련된 5가지 소주제 중 또 다른 하나인 중국 골동품에 대한 광적인 애호(愛好) 풍조와 고증학적 열망에 대한 연구 역시 연구 기간 중 연구 수행의 중심이었다. 연구책임자는 조선 후기에 사회적인 이슈(issue)가 될 중국 골동품 수집 열기와 고동서화학(古董書畵學)의 발전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저술 중 하나인 서유구(徐有榘, 1764-1845)의『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들어 있는 미술 관련, 특히 골동품 및 서화(書畵) 관련 자료를 집중적으로 분석하였다. 연구 결과는 『진단학보(震壇檀學報)』108호 (2009년 12월)에 "조선 후기 미술과『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조선 후기 고동서화(古董書畵) 수집 및 감상 현상과 관련하여"라는 제목의 연구 논문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이상의 연구를 포함하여 연구 기간 중 진행된 연구 성과를 총합(總合)하여 "조선 후기 회화와 문화적 호기심"이라는 제목의 연구 논문을 곧 학술지에 투고하여 출간할 예정이다.

    문화적 호기심의 확대는 곧 외부세계 즉 타자(他者 the Other)를 내면화(內面化 outside in)하는 과정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즉 자신의 제한된 지식의 한계를 극복하고 다양하고 새로운 정보의 수용을 통해 나와 세계에 대한 인식의 확대를 의미한다. 조선 후기 사회에 대한 연구는 그 동안 지나치게 ‘조선적인 것(Koreanness)’의 문화적 성격을 규명하는데 치중하였다. ‘조선적인 것’의 검출과 강조는 역설적으로 ‘비조선적인 것’에 대한 외면과 무시의 다른 말이다. 이러한 ‘조선적인 것’에 대한 학문적 집착은 조선 시대 회화사 연구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정선(1676-1759)을 필두로 한 진경산수화와 김홍도(1745-1816년 이후)의 풍속화에 보이는 ‘조선적 특질’에 대한 강조는 조선 후기 회화사에 있어 거의 주목받지 못했던 김부귀 필 <낙타도>와 같은 작품에 대한 학문적 무관심 또는 무시와 직결되어 있다. 연구 과제로 제출하는 <조선 후기 회화와 문화적 호기심>은 단순히 미술사적 연구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 연구를 통해 연구책임자는 오랫동안 한국학의 가장 중요한 화두로 기능해 왔던 ‘조선적인 것’에 대한 학문적 집착을 경계하고 보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조선 후기 문화의 개방적인 성격을 이해시키고자 노력할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 과제의 학술적 의의는 조선 후기 문화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커다란 학문적 질문을 조선 후기에 새롭게 등장한 흥미로운 회화적 주제들에 대한 고찰을 통해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는데 있다. 즉 본 연구는 외국의 지리와 인간에 대한 관심, 서양의 과학과 학문에 대한 흥미, 골동품에 대한 취미의 발전과 호고(好古)적인 것에 대한 지적인 매혹, 희귀한 동식물에 대한 흥미와 박물학적 지식의 증대 등 문화적 호기심과 관련된 그림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조선 후기 문화가 조선적인 것과 아울러 비조선적인 것을 포괄하는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문화였음을 증명하고자 한다. 이러한 연구 성과는 문헌사의 한계에 대한 인식과 아울러 시각자료의 역사적 가치에 대한 한국학계의 새로운 관심을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며 국문학, 국사학등 인접 학문 분야에도 지적인 자극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 색인어
  • 문화적 호기심, 미시사, 서학, 서양, 고동서화학, 민족학, 카메라 옵스큐라, 소비사회, 여가문화
  • 연구성과물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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