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성과물검색
유형별/분류별 연구성과물 검색
HOME ICON HOME > 연구성과물 유형별 검색 > 보고서 상세정보

보고서 상세정보

https://www.krm.or.kr/krmts/link.html?dbGubun=SD&m201_id=10015335&local_id=10014088
천황제의 위기와 문화적 상상력 -13세기 일본의 정치 변동과 『헤이케모노가타리(平家物語)』-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천황제의 위기와 문화적 상상력 -13세기 일본의 정치 변동과 『헤이케모노가타리& #40;平家物語& #41;』- | 2007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박은희(고려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A00133
선정년도 2007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9년 02월 06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9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수의 테마는 천황제의 위기와 문화적 상상력이다. 이와 같이 연수 테마를 정한 이유는 천황제의 위기라는 정치적 사건이 단순히 정치적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사회, 문화적으로 많은 파장을 낳았기 때문이다. 특히 조큐의 난에서 비롯된 위기의식은 『헤이케모노가타리』를 비롯한 군담류 소설의 생성과정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본 연수는 조큐의 난 이후 쏟아져 나오는 천황제에 대한 다양한 담론들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본 연수의 특징은 정치적 사건의 사회, 문화적 파장, 특히 문학화를 통한 재구축의 과정을 면밀히 검토함으로써 13세기 일본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것에 있다. 또한 13세기 천황제의 위기를 전체적으로 조망한 위에, 동일한 사건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떻게 재조명되는지, 후대의 역사서와 문학 작품을 분석함으로써 공시적인 고찰을 시도하였다.
    본 연수에서는 조큐의 난이 지니고 있는 정치, 사회, 문화적 의미를 밝히기 위해 우선 실패한 거사의 책임 소재를 중심으로 전쟁책임론에 관한 당시의 담론들을 비교, 분석하였다. 조큐의 난 이후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고토바인 책임론 고찰을 통해 이들 주장의 저변에는 유교적 덕치주의, 제덕 사상이 깔려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토바인 책임론은 천황의 신성성을 위협하는 사상이었다. 즉, 조큐의 난을 계기로 아마테라스오카미의 자손으로 신성한 존재인 천황이 일본을 지배한다는 신국사상에 균열이 생기고 천황에게도 통치자로서의 자질과 덕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고토바인에 대한 이와 같은 비판적인 시각은 어디까지나 고토바인 개인에 대한 비판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그것이 천황제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 막부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정치체제 용인을 의미하지 않는다. 역설적이 표현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고토바인 개인을 비난하고 사장시킴으로써 천황제의 틀을 유지하고 천황가의 패배라는 현실을 합리화하고 있다.
    조큐의 난 직후 지식인들은 이 전대미문의 사건에 대한 자신의 다양한 견해를 일기와 각종 사료에 남겼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앞서 언급한 고토바인에 대한 혹평이었다. 그러나 조큐의 난과 고토바인에 대한 혹평은 새로이 전개되는 역사적 상황속에서 새로이 재평가되고 재조명되게 된다. 그 첫 번째 기폭제가 된 사건이 시조천황의 죽음으로 인한 고토바인 자손의 황통으로의 복귀라 할 수 있다. 또한 막부 토벌을 꿈꾸는 고토바인과 비슷한 경향을 지닌 고다이고 천황의 등극은 이와 같은 평가의 전환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새로 쓰인 역사서 속의 고토바인은 선정을 베푸는 군주의 전형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13세기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막부를 견제하고자 했던 고토바인은 덕이 없는 군주에서 성군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본 연수에서 주요 텍스트로 삼았던 『헤이케모노가타리』는 13세기 급변하는 정치상황 속에서 생성, 유동한 문학 작품이다. 『헤이케모노가타리』는 다양한 출생의 비밀을 가진 다양한 판본이 있어 어떤 판본을 토대로 고찰하는냐에 따라 연구 성과에 있어 많은 차이을 보일 수 있는 작품이다. 본 연수에서는 조큐의 난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유일한 판본인 엔교본을 중심으로 조큐의 난의 문화적 충격을 어떻게 담아내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비교 대상으로는 『조큐키』의 여러 판본을 사용하였다.
    『헤이케모노가타리』 종결부에는 조큐의 난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 몬가쿠 원령담이 있다. 그리고 몬가쿠 원령담에는 『로쿠다이쇼시키』와 동일한 본문, 즉 고토바인의 덕이 없음을 비난하는 문장이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고토바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몬가쿠 원령담을 전체적으로 지배하고 있지는 않는다, 몬가쿠 원령담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원령담이라는 구조 그 자체이다. 즉 원령담이라는 틀을 통해 서술함으로써 『로쿠다이쇼시키』나 『조큐키』와는 질적으로 다른 조큐의 난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몬가쿠 원령담에서 조큐의 난은 고토바인의 주체적인 의지가 아니라 몬가쿠 원령의 의지로 일어난 사건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즉, 몬가쿠와 고토바인과의 개인적인 원한이 몬가쿠 원령을 낳고, 그 원령의 활동에 의해 조큐의 난이 일어났다는 해석이다. 바꿔 말하면 고토바인이 몬가쿠를 오키에 유배 보내고, 몬가쿠 원령이 다시 고토바인을 오키에 불러들이는 구조이다. 고토바인과 몬가쿠의 개인적인 감정을 강조하는 한편, 고토바인의 막부토벌의지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더욱이 이와 같은 몬가쿠 원령의 행위는 신성한 왕권을 지키기 위한 행위로 서술되고 있다. 『헤이케모노가타리』의 조큐의 난 이해의 특이성은 천황에 걸맞지 않는 고토바인을 보위에서 끌어내리기 위한 몬가쿠의 집념이 원령이 되어 조큐의 난을 일으켰다는 데에 있다.
  • 영문
  • The theme of this research is risk of the Emperor system and cultural imagination. The reason that I have chosen such theme of research is that a political event of the risk of the Emperor system not simply ended up falling down to a political even, but it brought out great sensation throughout the society and culture as well. In particular, the consciousness of risk resulted from the Uprising of Jokyu had deep influence on creation of warfare stories such as 『Heikemonogatari』. As seen from above, I have made various discourses about the Emperor system poured after the Uprising of Jokyu a starting point of my research. This research is featured in cubic illumination of Japan in the 13th century by closely reviewing social and cultural sensation triggered by a political event, in particular, the courses of restructuring through literary systemization. In addition, while taking a whole consideration of the risk of the Emperor system of the 13th century, I have tried to look into how the same event started to be illuminated as the time went by and make a diachronic review of it by analyzing successive historic books and literary works.
    In this research, I have taken into consideration of crack in the Divinity Country philosophy based upon the responsibility for losing the war. The Divinity Country philosophy that the emperor, an offspring of Amaterasuokami rule the Japanese Islands counts on the Divinity of the emperor. The failure of the Uprising of Jokyu of the 13th century, however, gave them a moment to criticize whether the emperor, who had been regarded the Divine, had the virtue or not as a ruler. This kind of negative view about Gotobain was only extended to Gotobain himself, not meaning whole negativism about the Emperor system. This was deemed a desperate countermeasure to explain failure of the Emperor system while maintaining the framework of the Emperor system. Such criticism about Gotobain, on the other hand, happened to change because of death of the Emperor Shijo in a way. An offspring of Gotobain became an emperor again, bad criticism about Gotobain disappeared and changed into an image of a sage emperor giving a just rule.
    『Heikemonogatari』, which was created and mobilized in the center of rapidly changing politics in the 13th century, have recreated assessment of Gotobain and the Uprising of Jokyu in his own unique structure. 『Heikemonogatari』 also criticized Gotobain for lack of virtue as a ruler. Bad reputation about Gotobain, however, didn't dominate the whole story, and it described the Uprising of Jokyu in the structure of revengeful spirit discourse and deemed the Uprising of Jokyu as a will of a revengeful spirit of Mongaku, not a subjective will of Gotobain. In short, individual vindictive spirit of Mongaku and Gotobain gave birth to that of Mongaku, giving rising to the Uprising of Jokyu due to activity of its spirit. He emphasized personal revenge between Gotobain and Mongaku, on the other hand, he didn't mention anything about Gotobain's will to crack down on shogunate. Further, this kind of act by the spirit of Mongaku can be described as act to keep the divine throne. The peculiarity how 『Heikemonogatari』understands the Uprising of Jokyu lies in the fact of the interpretation that the spirit Mongaku triggered the Uprising of Jokyu to bring Gotobain down out of the throne who was deemed not natured to the throne of the Emperor.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조큐(承久)의 난은 1221년 당시 상황(上皇)이었던 고토바인(後鳥河院)이 막부 토벌을 위해 궐기할 것을 촉구하면서 발발한 난이다. 세 명의 상황과 천황의 유배를 초래한 이 사건은 천황제의 위기로 인식되었다. 패전 직후 천황의 전쟁 책임을 둘러싸고 다양한 담론의 스펙트럼이 존재했듯이, 조큐의 난 이후 지식인들은 기존의 가치체계와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 사이의 간극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설명했다. 즉 13세기 중엽 전후는 고토바인이 일으킨 실패한 전쟁을 둘러싸고 실추된 왕권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진 시기이다. 이 시기는 또한 『헤이케모노가타리(平家物語)』를 비롯한 군키 모노가타리(軍記物語) 즉, 군담류 소설이 생성, 유동(流動)된 시기이기도 하다.
    본 연수에서는 중세를 대표하는 군담류, 『헤이케모노가타리』를 주요 텍스트로 설정하여, 조큐의 난 이후 권력 이동과 관련되어 형성된 다양한 담론들이 어떻게 문학 작품에 투영, 수렴되는지, 특히 『헤이케모노가타리』의 성립과 어떻게 연동되는지를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즉, 조큐의 난 이후 천황제를 둘러싼 사상사적, 문화사적 고찰을 통해 『헤이케모노가타리』 탄생의 비밀을 푸는 것이 본 연수의 주요 목적이다. 또한 천황이 주도한 실패한 전쟁의 경우 어떠한 문화적 현상을 초래하는지를 살펴봄으로써 태평양전쟁 이후 지금까지도 심심찮게 매스컴을 장식하는 천황을 둘러싼 우익적 사고의 근원을 밝히고자 했다.
    본 연수의 주된 텍스트인 『헤이케모노가타리』는 일반적으로 「멸망의 미학」「무상관」으로 상징되는 성자필멸(盛者必滅)의 불교적 세계관을 담고 있는 작품, 또는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의 「태양 빛과 인간과 말의 땀이 느껴진다」는 평으로 상징되듯이 새 시대의 주인공 무사들의 약동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작품으로 소개된다. 본 연수에서는 이와 같은 선행연구의 고정적인 틀에서 한 발짝 벗어나, 『헤이케모노가타리』가 태동한 13세기 초의 사상사적, 문화사적 상황에 착목하여 『헤이케모노가타리』의 천황제와 관련된 이데올로기적 측면을 천착하였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조큐의 난이 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헤이케모노가타리』의 원형이 만들어졌다. 이 시기는 고토바인의 죽음과 원령화에 관한 풍문이 끊임없이 들리던 시기이다. 천황의 권위가 바닥에 떨어진 사건인 조큐의 난을 『헤이케모노가타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천황가의 실추된 권위는 어떻게 작품 속에 반영되고 있는지 집중 검토하였다.
    특히 가장 오래된 판본으로 각광받고 있는 엔교본(延慶本)의 경우, 고토바인과 관련된 몬가쿠(文覺) 설화가 작품 마지막 부분에 위치하고 있어, 조큐의 난은 『헤이케모노가타리』의 구상, 주제와도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다. 고토바인과 조큐의 난을 중심 테마로 『헤이케모노가타리』를 연구하는 것은 엔교본을 비롯한 요미혼(読み本) 계통 판본의 구상을 밝히는 데에도, 그리고 궁극적으로 『헤이케모노가타리』 성립과정을 이해하는 데에도 의미 있는 연구라 할 수 있다.
    13세기 일본의 정치변동과 그 안에서 태동된 『헤이케모노가타리』의 문학적, 문화사적 의미를 고찰하기 위해 다음 세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첫째, 유교적 덕치주의와 제덕 사상의 형성을 중심으로 고토바인의 전쟁책임론에 대한 역사적 언설을 살펴보았다. 조큐의 난을 계기로 신의 자손이 일본을 지배한다는 신국사상에 균열이 생기고 천황에게도 천황으로서의 자질과 덕을 요구하는 풍조가 생겨났다. 왕권의 실추와 신국사상의 균열 등을 『헤이케모노가타리』가 어떻게 담아내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둘째, 『헤이케모노가타리』에 실려 있는 몬가쿠 원령 설화를 중심으로 조큐의 난이 『헤이케모노가타리』안에 어떻게 문학화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몬가쿠 원령설화는 『헤이케모노가타리』의 대미를 장식하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고토바인의 군주로서의 자질문제를 비롯하여, 몬가쿠 원령의 덴구적 성격 등 작품론차원에서도 그리고 문화사적인 차원에서도 고찰해야 할 다양한 요소가 들어있다.
    셋째, 고토바인 원령화에 대한 고찰이다. 고토바인의 죽음과 원령의 활동을 둘러싼 담론은 1230년대를 대표하는 사회 문화적 사건이었으며, 이 무렵 원형이 만들어진 『헤이케모노가타리』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을 개연성이 크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고토바인 원령담이 『헤이케모노가타리』에 어떠한 형태로 변주되고 있는지 그 양상을 고토바인의 죽음 전과 후 두 시기로 나누어 고찰하고자 하였다. 고토바인이 원령에서 덴구로 바뀌는 변화과정을 고찰하고, 조큐의 난에 대해 독자적인 평가를 부여하고 있는 『마스카가미』를 중심으로 무가와 천황가의 충돌의 의미에 대해 분석하였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수의 연구 결과를 정리함에 있어 세 개로 설정했던 연구 목표에 대한 연구 결과를 중심으로 정리하여 서술하고자 한다. 첫 번째 목표는 조큐의 난 이후 실패한 전쟁에 대한 책임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동시대의 다양한 언설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이를 살펴봄에 있어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천황과 전쟁과의 관련성을 부인하는 언설이었다. 즉 고토바인이 의도하여 획책한 싸움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 경우 간신의 무리들이 거론되면 전쟁은 이들의 잘못된 판단에 의해 일어난 것으로 축소, 은폐되었다. 자신의 휘하에 있던 간신이 저지른 사건이라고 서술하고 있는 고토바인 서신(『아즈마카가미(吾妻鏡)』실려 있음)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신하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자신과 이 사건과의 관련성을 전면 부인함으로서 조큐의 난의 부정적인 결과는 고토바인 왕권의 결함이 되지 않았다.
    반면 이와 달리 전면적으로 고토바인에게 전쟁 책임을 적극적으로 묻는 입장도 등장했다. 『로쿠다이쇼시키(六代勝事記)』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즉, 군주로서의 덕(「帝德」)이 모자라기 때문에 고토바인이 전쟁에서 패하고 유폐되었다는 입장이다. 이와 같은 입장의 사상적 배경은 유교적 덕치주의이다. 이들은 제덕(帝德), 즉 임금으로서의 자질을 거론하며 전쟁의 책임을 고토바인에게 물었다. 무리하게 막부 토벌을 추진한 것은 고토바인의 실책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다. 이와 같은 관점은 『조큐키』이 대부분의 판본에 이어지고 있다.
    본 연수 두 번째 연구 목표는 『헤이케모노가타리』와 조큐의 난과의 관련성을 작품 내적인 분석을 통해 고찰하는 것이었다. 즉 몬가쿠 원령담 분석을 통해 『헤이케모노가타리』가 조큐의 난을 어떠한 각도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는지 고찰하는 것이었다. 몬가쿠 원령담을 고찰하는 데 있어 비교 대상으로 『로쿠다이쇼시키』『조큐키』를 같이 고찰하였다. 이들 텍스트는 몬가쿠 원령담과 비슷한 본문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생성, 유통에 있어 서로 깊은 영향을 준 텍스트 군이다. 같은 서술 내용을 담고 있는 나머지 텍스트와 달리 『헤이케모노가타리』는 서술 형식에 있어 독자성을 지니고 있었다. 즉, 같은 서술내용을 원령담이라는 틀 속에서 재구축하여 서술하고 있다. 고토바인과 몬가쿠 대립의 강조 속에서 가마쿠라 막부와 고토바인 왕권의 대립은 희석되었다. 원령담이라는 형식이야말로 『헤이케모노가타리』 특유의 조큐의 난을 이해하는 또는 표현하는 방식임을 고찰할 수 있었다.
    본 연수 세 번째 연구 목표는 고토바인 원령과 관련된 언설이 어떻게 당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으며, 문화적 사상적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고토바인 복권과 어떻게 연계되는지 살펴보는 것이었다. 막부에서 임명한 천황 고호리카와인(後堀河院)의 갑작스러운 죽음, 막부 인사들의 연이은 횡사와 같은 정치적 불안 속에서 고토바인 원령에 대한 언설이 양산되었다. 주요 정계인사의 죽음과 잇따른 천재지변은 고토바인 원령에 대한 담론을 생성하는 자양분이 되었다. 시조 천황(四條)의 어이없는 죽음은 그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다. 즉,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시조 천황이 죽음으로써 황통은 다시 고토바인의 자손에게 돌아오게 된 것이다. 고토바인과 조큐의 난에 대한 일방적인 폄하, 부정적인 서술만으로는 고토바인 황통의 복권을 설명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오대 제왕 이야기(五代帝王物語)』와 『마스카가미』는 이전까지 악정(惡政)이라 폄하되던 고토바인의 정치를 선정(善政)으로 칭송하는 대표적인 텍스트이다. 조큐의 난이 새로이 평가되고 있음을 이틀 텍스트를 통해 살필 수 있었다.
    이상 연수 결과에 대한 정리를 마치고, 다음으로 연수 결과의 활용 방안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우선, 조큐의 난 전후 일본의 정치적 사상적 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킨 본 연구는 고대와는 다른 중세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특히 고대 천황제와는 다른 중세 천황제의 특징을 이해하고, 천황의 위기와 극복 논리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천황제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심화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본 연수에서 고찰한 몬가쿠 설화 분석은 『헤이케모노가타리』 종결부의 의미와 『헤이케모노가타리』 성립 사정에 대한 연구에 큰 시사점을 줄 것이라 여겨진다. 아울러 몬가쿠 원령담과 고토바인 원령담의 유사성을 통해 원령 혹은 덴구(天狗)의 문화사적 의미를 밝히는 데에도 큰 의미가 있었다. 정치적 사건이 사회 문화적인 파장을 낳고, 문학화를 통해 재생산되는 과정을 살핀 본 연수는 정치와 문학과의 연관 관계를 고찰하는 데 큰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 색인어
  • 중세, 역사, 문화, 문학, 정치, 역사, 상상력, 역사관, 비판, 왜곡, 전쟁 책임, 헤이케모노가타리, 군키모노가타리, 엔교본, 몬가쿠, 로쿠다이쇼지키, 마스카가미, 귀족 일기, 이데올로기, 불교, 유교, 신앙, 사상, 무가, 막부, 천황, 천황제, 신국, 호조, 권위, 천황가의 패배, 원령, 덴구, 위기, 정치변동, 고토바인, 전쟁, 조큐의 난, 덕치주의, 왕권, 권력이동, 정치, 지식인, 신, 귀신, 내셔널리즘, 역사기술, 역사적 사건, 모노가타리, 소설화, 수용, 담론, 13세기, 성군, 실책, 은폐, 군주의 덕, 합리화, 문과 무, 요미혼, 요리토모, 오키, 막부 토벌, 공시적, 통시적, 마연, 고다이고 천황, 신국사상, 충돌, 역성혁명, 신성성, 제덕사상, 악령, 불교, 성자필멸, 겐페이 교체사관, 고대적 질서, 욕망, 권력, 충돌,구칸쇼, 메이게쓰키, 깃키, 조큐키, 데이한, 조칸가쿠시키
  • 이 보고서에 대한 디지털 콘텐츠 목록
데이터를 로딩중 입니다.
  • 본 자료는 원작자를 표시해야 하며 영리목적의 저작물 이용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 또한 저작물의 변경 또는 2차 저작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데이터 이용 만족도
자료이용후 의견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