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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세기 한국 지식인들의 ‘靈魂’ 인식과 재전유의 궤적: 정약용, 박은식, 변영만을 중심으로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19-20세기 한국 지식인들의 ‘靈魂’ 인식과 재전유의 궤적: 정약용, 박은식, 변영만을 중심으로 | 2008 년 | 이철호(동국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A00437
선정년도 2008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10년 04월 29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10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심성(心性)’ 혹은 ‘영혼(靈魂)’의 문제는 한국 유학사상사의 중심 쟁점 중 하나였다. 그런데 조선의 유학자들이 영혼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탐구하게 된 데에는 우선 천주학의 유입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마테오 리치(Matteo Ricci)는 『천주실의(天主實義)』(1595)에서 라틴어 아니마(anima)의 한역어로서 영혼을 처음 소개했고, 그 책에서 이 개념어를 상당한 분량에 걸쳐 심도 있게 논의했다. 그리고 17세기 이후 천주교가 조선사회에도 전파되면서, 이 영혼 개념은 선진적인 지식인들 사이에서 널리 회자되었다. 그들은 대개 성리학적 세계관에 기반하여 천주학의 허구성을 비판했으나, 전혀 이질적인 사유체계와의 만남은 정통 성리학의 의미체계를 상당 부분 변모시켜 버렸다. 한때 천주교 신자였으나 곧 배교한 정약용(丁若鏞)만 하더라도, 그의 독자적인 학문적 성취가 다름아닌 천주학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예컨대, 그가 추구한 ‘도덕적 인간’이란 기존 성리학과 달리 상제(上帝) 곧 천주(天主)의 존재를 전제로 할 때 비로소 가능한 삶의 이상(理想)이었다. 하지만, 심성을 ‘영체(靈體)’로 번안하고 천주의 존재를 도덕적 인간의 기초로 삼았던 정약용도 ‘불멸하는’ 영혼 관념은 끝내 수용하지 않았다. 그에 비해, ‘국혼(國魂)’의 주창자였던 박은식(朴殷植)은 양명학의 핵심어인 ‘양지(良知)’를 활용하여 영혼에 민족주의적 불멸성을 불어넣었다. 박은식은 전통유학의 심성론 외에도 양지와 영혼, 양명학과 기독교 사이의 근친성을 충분히 의식하고 특유의 동도서기론을 제기했으며, 흥미롭게도 그러한 사정은 일본 낭만주의 문학의 선구인 기타무라 도코쿠(北村透谷)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요컨대, 1900년대까지만 해도 상이한 담론적 계보를 지닌 심성, 양지, 영혼 등이 근대적 자아의 형성을 가능케 하는 어떤 내적 원천을 지칭하는 말로 두루 활용되었으나, 1910년대 후반 이후 일본 유학을 통해 서구문화를 흡수한 청년지식인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낭만주의적 함의가 농후한 ‘영혼’이 가장 심중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예컨대, 그것은 멀게는 히라타 아츠타네(平田篤胤)가 『靈の眞柱』 등에서 사후 영혼의 행방을 논구하는 가운데 ‘귀신론(鬼神論)’으로부터 국가주의(천황제)를 정당화하는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거나, 가깝게는 1910년을 전후로 하여 핫토리 요시카(服部嘉香)가 개인의 내적 호흡과 그 새로운 리듬의 구현을 자유시의 핵심으로 거론했던 일련의 근대적 사건들과 긴밀한 연관 속에 있다. 근대적 개인 혹은 민족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영혼이라는 개념어가 보여준 유례없는 파급력은, 상기한 일본에서의 변화에 조응하여, 당대 조선의 문학담론에서 이루어진 획기적인 변화들에서 뚜렷한 예증을 얻는다. 황석우(黃錫禹)는 ‘영률(靈律)’이라는 신조어를 통해 한국적인 자유시의 가능성을 모색했고, 그에 비해 이광수는 ‘영(靈)’에 내장된 낭만주의적 함의를 계발하여 이른바 민족문학을 확립하고자 했다. 그런데, 다시 1920년대 초반에 이르면 ‘영혼’에 내재된 낭만주의적 통일성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현실 인식에서 다른 문학적 표현이 가능해졌다. 이 시기 식민지 조선의 청년예술가들이 보여준 ‘영혼’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그 자체로 한국사회가 직면해야 했던 식민지적 근대성의 모순과 역설을 환기시켜 준다.
  • 영문
  • The matter of ‘Simseong' or ‘spirit' is one of primary issues of Korean history in Confucian thoughts. Then, the introduction of Catholicism first became a decisive opportunity that Confucian scholars in Joseon researched the mater of spirit in earnest. Matteo Ricci introduced spirit as a translation from Korean, anima in Latin at first in De Deo Verax Disputatio(1595) and discussed the in-depth idea in considerable amount of the book. As Catholicism has been propagated in Joseon Dynasty since 17th century, the spirit idea has been widely well-known among advanced intellectuals. They criticized the unrealistic aspect of Catholicism, generally based on Neo-Confucian world view, but the connection with the heterogenous reasoning system made the meaning structure of authentic Neo-Confucianism transform considerably. Though Jeong, Yak-yong was a Catholic once but immediately became a renegate, his original academic achievements were closely connected with nothing less than Confucianism. For example, ‘moral human' that he pursued, was the ideal of life only if the existence of divine emperor or the Lord of heaven was based upon the premise, unlike previous Neo-Confucianism. However, Jeong, Yak-yong would not eventually accept the idea of ‘immortal' soul, though he translated Simseong with ‘Yeongche' and thought that the existence of Lord of heaven was based on the moral human. On the other hand, Park, Eun-sik, a protagonist for ‘Gukhon’, inspired the soul into nationalistic immortality, utilizing ‘Yangji', a keyword of the doctrines of Wang Yangming. Park, Eun-sik sufficiently recognized the close relationship between Yangji and soul or between the doctrines of Wang Yangming and Christianity except the argument for Simseong in traditional Confucianism and raised his own unique Dongdoseogiron(. So the case of Kitamura Tokoku, a pioneer of Japanese romantic literature, interestingly did in the situation. In short, Simseong, Yangji and soul etc. having different discoursive genealogy in 1900s, were widely exercised as the words indicating certain inner sources that could make a modern ego form, but ‘soul' imbued with the romantic implication ruled the root as the young intellectual accepting the western culture through studying in Japan, were highly appeared since the late 1910s.
    For instance, in a broad sense, the fact that Hirata Achtane arranged a theoretical ground in justifying the nationalism from the ‘discourse of ghost’ discussing thoroughly the whereabouts of a soul after death, in a limited sense, a series of modern affairs that Hattori Yosika mentioned the core of free verse as the inner breath of individuals and realization of its new rhythm, all were closely associated. At the process of organizing a modern individual or people, a unparalleled ripple effect of the idea of soul acquires an apparent illustration from epoch-making changes formed in literary discourses at the time of Joseon, corresponding the stated changes in Japan. Hwang, Seok-woo sought the potential of Korean free verses through a new word, ‘Yeongryul’ whereas Lee, Gwang-su developed the romantic implication included in ‘soul’ and established so-called national literature. However, another literary expressions were possible for the realistic recognition that the romantic unity inherent in ‘soul’ was no more available in the early of 1920's. Severe criticisms for ‘soul’ per se that young artists in Joseon in the colonial era showed, aroused the contradiction and paradox of colonial modernism that Korean society should face.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영혼에 관한 한 그 최초의 동아시아적 용례는 마테오 리치(Matteo Ricci)의 󰡔天主實義󰡕에서 발견된다. 그 중 천당지옥설에 근거한 이른바 ‘불멸의 영혼’ 관념은 조선의 경우 남인계 지식인들과 그 주변에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물론 신서파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각별하게 회자되었다 해도, 이러한 ‘영혼’ 개념이 당시 조선의 성리학자들에게 상당한 반감과 저항을 가져왔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아니마’의 한역어인 영혼이 조선사회의 지식 담론에 안착하는 데는 결국 실패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서학은 성리학의 형이상학적 체계에 일종의 균열을 가져왔다. 즉, 마테오 리치는 인간에게 고유한 ‘영혼’이 ‘氣’가 아니라 ‘理’라고 주장했으며, 그에 따라 만물을 주재하는 관념적 실체로서의 ‘리’가 실은 감각적, 경험적 구체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유의미하게 부각되기에 이르렀다. 요컨대 ‘리’는 행위도 의지도 없는 무형의 실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덕적 주체가 자신의 인격을 자율적으로 실현하는 장소를 마음[心性]으로 규정하고 그러한 마음의 발동을 고정되지 않은 변화무쌍한 것으로 이해했던 정약용의 심성론은 매우 주목된다. 한때 천주교 신자였으나 곧 배교한 정약용의 경우, 그의 학문적인 위업이 무엇보다 서학에 빚지고 있음은 익히 알려져 있다. 정약용의 심성론은 상제(천주)의 존재를 우선적으로 승인하고, 주체의 내면을 인심과 도심이 갈등하고 투쟁하는 역동적인 장소로 이해하고, 도덕적 인격이 인간의 자유의지와 결단에 의해 실천적으로 성취해 나가야 할 성질의 것임을 강조했다는 점 등에서 ‘리’를 만물의 선험적인 존재론적 근거로 파악하는 성리학의 관행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그것은 물론 ‘아니마’의 한역어인 ‘영혼’ 개념을 수용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진 변화였다.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사유가 왜 근대성(modernity)의 형성을 가능하게 하는 주요한 담론적 전제 중 하나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자학적 세계관이 해체됨으로써 조선의 지식인 전체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 시기에 대한 고찰이 긴요하다.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용어들이 좀더 광범위하고 의미심장하게 사용된 시기는 근대계몽기이다. 19세기말 동아시아 지식인들 사이에서 서구문명을 선택적으로 수용하자는 입장이 확산됨에 따라 ‘心’, ‘魂’, ‘精神’ 등의 심리용어들이 주요 학술매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동도서기론의 학통을 계승한 대표적인 양명학자 박은식(朴殷植)은 국가를 이루는 가장 본질적인 요소들을 가리키기 위해 ‘국혼’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여기서 박은식이 구사하는 국혼의 ‘영혼’은 개인주체의 경계를 넘어 민족공동체의 역사로 확장되는 순간, 불가피하게 불멸성(immortality)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러한 용법은 물론 한학 고유의 어법은 아니며, 당연히 천주학의 전래를 통해 시작되고 소수의 신서파 지식인들과 천주교인들에 의해 계승된 영혼론의 괄목할 만한 흔적이다. 흥미롭게도 박은식은 양지와 영혼, 양명학과 기독교 사이의 근친성을 충분히 의식하고 특유의 동도서기론을 제기했다. 요컨대, ‘영혼’은 천주학은 물론 양명학을 매개로 하지 않고서는 근대계몽기 주류 지식담론에 재등장할 수 없었으며, 적어도 박은식에게 있어 양명학은 유교와 천주교, 의리학과 실학, 개화와 보수를 매개할 수 있는 유력한 철학사상으로 여겨졌다. 다시 말해, 박은식의 양명학적 心說은 전대의 영혼론이 근대계몽기 문화담론 속에서 굴절되거나 변용되는 과정에 대한 흥미로운 예증일 수 있다. 정약용에게 양지나 영혼에 상응하는 개념어는 天의 밝은 命으로 부여받은 靈明한 마음의 실체, 곧 영체였다. 이 새로운 용법을 통해 영혼론은 전근대적인 규범, 관습, 이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1910년대 이후 서구 문화를 배우고 익힌 청년지식인들에 의해 유럽 낭만주의나 민족주의 담론에 융합될 가능성을 얻게 되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첫째, 최근 십여 년간 근대문학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문학’을 더 이상 자명한 실체가 아니라 역사적 구성물로 바라보려는 입장이 현저해졌다. 이들 연구 성과는 대개 근대적 제도에 대한 푸코(M. Foucault)식 계보학을 시도하는 만큼, 그 제도를 성하는 어휘, 개념, 범주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를 중시했다. 개념어 연구가 근대문학의 현재적 편견들을 교정하는 데 기여한 바가 적지 않았다는 것은 신뢰할 만한 사실이지만, 그러한 담론연구가 언어를 매개로 역사적 현실의 구체성에까지 접근했는지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예컨대, ‘개인’이나 ‘사회’ ‘민족’ ‘문명’ ‘문화’ 등과 같은 개념어들은 물론 그 자체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한국사회의 변동을 개관하는 데 유효한 인식틀이었으나, 그 각각을 구성하는 세부개념들에 대한 좀더 정밀한 후속작업이 요구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영혼’이라는 역어를 중심으로 저 ‘개인’ 혹은 ‘민족’ 구성의 프로세스를 면밀히 이해하고, 이에 기반하여 개별 문학텍스트를 새롭게 재인식함으로써, 근대 개념어 연구의 최근 성과를 한 단계 진척시키게 될 것이다.
    둘째, 본 연구는 한국 근대문학의 성립에 대한 과도한 일반화(generalization)을 경계하는 대신에, 전통과 현대가 복잡하게 역동하는 ‘모더니티의 변증법’을 논의의 중요한 전제로 삼았다. 즉, 전근대의 문화적 자양이 개항과 식민지화 이후의 한국사회에 대해서도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한국적 근대성을 형성해 나갔다는 입장을 견지하고자 했다. ‘근대적인 것’은 어떤 식으로든 ‘전근대적인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 연구는 ‘영혼’이라는 역어가 실은 조선후기 한국사상사에서 이미 첨예한 논쟁을 촉발했다는 사실에 기반하여 전근대/근대의 문제영역을 포괄하는 통시적 연구를 수행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고전문학과 현대문학 간의 이분법적 단절을 지양하고 새로운 분과통합적 연구주제를 계발하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
  • 색인어
  • 심성, 양지, 영혼, 귀신, 영체, 국혼, 마테오 리치, 정약용, 박은식, 성리학, 양명학, 기독교, 근대적 자아, 히라타 아츠타네, 기타무라 도코쿠, 핫토리 요시카, 황석우, 김억,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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