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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고지도의 아라비아-아프리카 이해 소고 -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1402년)를 중심으로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조선시대 고지도의 아라비아-아프리카 이해 소고 -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40;1402년& #41;를 중심으로 | 2010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최창모(건국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A00004
선정년도 2010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11년 08월 24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11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고지도는, 기본적으로는 과거가 이해하고 있던 실재 세계를 보여주는 ‘재현된 시각예술의 한 형태’(이미지)로서, 본질적으로는 특정한 사실과 이야기를 공간적/지리적 상황에서 보여주는 ‘재현된 담화의 한 형태(언어)로서, 역사이해의 ‘거울’이자 ‘텍스트’이다. 고지도에는 당시의 역사-지리적 지식-정보뿐만 아니라 과학기술 및 예술성 등이 도상학적 기호와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투영되어 있으며, 더 나아가 그 속에는 한 개인과 사회의 지배적인 사상과 이념, 권력과 신앙 등의 ‘가치’가 담겨져 있다. 특히 세계지도 ― 고지도의 여러 유형들 가운데서 ― 는 지역 간 공간정보의 교류와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세계인식 혹은 세계이해의 공적소통구조를 엿볼 수 있는 ‘해독이 필요한 시각언어’이다.
    1402년(태종2년) 조선에서 제작된《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공간적으로 당시까지 알려진 대륙을 모두 포괄한 현존하는 동아시아 최초의 세계지도로서, 15세기말~16세기 초 포르투갈의 중국선교사 마테오리치(Matteo Ricci, 1552~1610년)의 서구식 세계지도인《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가 17세기 조선에 들어오기 전까지 사실상 가장 넓은 세계의 지평을 그려 넣은 지도로서, 중앙에 중국을 가장 크게 배치하고, 동쪽에는 조선을, 남쪽에는 일본과 동남아시아를,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 ‘축국(竺國)’-인도, 아프리카대륙, 아라비아반도, 이베리아반도, 유럽대륙 및 지중해를 각각 포함하고 있다. 시간적으로 이 지도가 제작된 15세기 초는 서양사적으로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의한 ‘발견의 시대’ ― 이 지도는 1492년 신대륙 발견보다 무려 90년이나 앞서 만들어 졌다. ― 가 아직 막을 열기 이전이었으며, 동양사적으로는 명나라 정화(鄭和, 1371~1433년)의 대선단(大船團)이 인도양을 거쳐 페르시아와 아라비아-아프리카로 대항해(1405~1433년) ― 1405년에 시작된 정화의 항해는 명 ․ 청대 중국인들에게 ‘서양’이라는 말을 각인시킨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 를 떠나기 직전이었으며, 지도학사적으로는 유럽에 아직 고대의 탁월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학이 이슬람을 통해 소개되기 이전이었다. 아울러 조선의 지도제작 및 발달사에서 볼 때에도, 천하(天下)를 ‘이상적’이고 ‘추상적’으로 이해하던 이전의 ‘그림지도’ ― 예컨대《천하도》― 와는 현저하게 구분되는 것으로써 ‘과학지도’로 이행하는 과정의 단면을 최초로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와 가치가 큰 지도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조선 전기(前期)의 지리학적 지식 ․ 정보를 종합하여(정보력), 뛰어난 과학 ․ 기술 위에 창의력을 덧입혀 편집 ․ 제작하고(창의성과 기술력), 비단에 잉크로 채색(彩色)하여 벽걸이 형태(예술성)로 제작한 세계학계에서도 주목받는 세계지도이다.
    본 논문에서는, 먼저 지금까지 논의 되어 온 지도 제작과정에 관한 선행 연구들에 필자의 입장과 논거를 덧입히고,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논의된 바 없는《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나타난 아라비아-아프리카지역의 지리적 ․ 지형적 특성과 지도에 표시된 약 71개(아라비아 24개, 아프리카 47개)의 지명(地名)들과 조선시대가 보여주고자 했던 아라비아-아프리카지역, 즉 ‘외부세계’에 대한 인식을 일반적인 역사적 배경 ― 지도제작의 목적, 과정, 지리적 정보의 유래, 지도제작자 등 ― 에서 살펴보되, 지도에 담긴 담론과 지도콘텐츠 ― 그런 의미에서 지도의 역사는 담화와 이미지의 한 형태로서 해석될 수 있으며, 지도학은 문학비평, 미술사, 지식사회학 등과 이론적으로 관련된다. ― 를 정치권력의 맥락에서 왜 그렇게 표현/묘사했는가 ― 지도는 결코 가치중립적 이미지가 아니며, 지도지식은 하나의 사회적 생산물이다. 따라서 표현/묘사의 정치-사회적 의미를 간과한 어떤 지도제작사 연구도 그 자체로 ‘역사와 관계없는’(ahistorical) 역사로 분류될 뿐이다.― 에 주목하여 탐구함으로써《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열고자 한다.
  • 영문
  • The Honil kangni yŏktae kukto chido or the Unified Map of Territories and Capitals of the States, which was produced in 1402 in the second year of King T’aejong’s reign in the Chosŏn dynasty, was the earliest known map of the world from the East Asia cartographic tradition. Before the Portuguese Jesuit missionary Matteo Ricci’s western style world map Kunyu Wanguo Quantu or Map of the Ten Thousand Countries of the Earth was introduced to Korea in the seventeenth century, the Honil kangni yŏktae kukto chido was the oldest surviving map in East Asia, which covered the largest areas in the world. According to this map, China is placed in the middle; Japan and South East Asia in the South; the Central Asia in the West; India, the African Continent, the Arabian peninsula, the Iberian peninsula, the European continent and the Mediterranean Sea in the Far West.
    The Honil kangni yŏktae kukto chido was produced even before Spain and Portugal initiated maritime expansion or the so-called the ‘Age of Great Discoveries’ was emerged in the early fifteenth century. And also it was about ninety years earlier than the discovery of New Continent by Christopher Columbus in 1492. In the history of East Asia, the Chinese junks of the Zheng He expedition in Ming dynasty sailed through the Indian Ocean and Persia, and even all the way to Arabian Peninsula, and Africa. The Zheng He’s expedition left indelibly imprinted the idea of the West on the mid of Chinese in the Ming and Qing period. It was even before ancient remarkable technology of Ptolemy’s cartology was introduced to European countries viaIslam. From the perspective of a history of map-making and its development in the Chosŏn dynasty, the Honil kangni yŏktae kukto chido or the Unified Map of Territories and Capitals of the States has brought about significance and value of the development of cartology at the face of transition to "scientific map" though the world or all under heaven (Korean: ch’ŏnha; Chinese: Tianxia) was perceived only as a ideologized and abstracted idea with the Sinocentricbias, which was represented in the ch’ŏnhadoor the Map of all under heaven. In fact, the Honil kangni yŏktae kukto chido was painted on silk fabric with colour inks in a form of artistic wall-hanging on the basis of inherited from the earlier period of edited and produced cartographical knowledge and information adding science, and technology coloured with creativity because the uniqueness of it draws attention from world scholarship.
    In this paper, I aim to explore possibilities of a new interpretation in the Honil kangni yŏktae kukto chido (hereafter referred to as the Kangnido) by focusing on discourses of map and map contents. For this I will provide a general historical background knowledge of maps, such as intentions of map-making, the process of map-making, geographical information reflected on map, and map-makers etc, in the context of how political power has shaped those elements of map-makings. And also I attempt to grasp the perception of the ‘external world’, which is in particular Arabia–Africa region by focusing on Arabia-Africa geographical and topographical characters and place-names, identified with about seventy-one names consisted of twenty-four names of places in Arabia and forty-seven names of places in Africa. A history of map can be interpreted as a historical discourse or a form of representation. Cartography is theoretically related to literary criticism, history of art, the sociology of knowledge. Map is never value-free, rather value-laden. Map knowledge is a social product. Any history of cartography which demeans the politico-social significance of its expression and description in the map would be an ‘ahistorical’ history.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고지도는, 기본적으로는 과거가 이해하고 있던 실재 세계를 보여주는 ‘재현된 시각예술의 한 형태’(이미지)로서, 본질적으로는 특정한 사실과 이야기를 공간적/지리적 상황에서 보여주는 ‘재현된 담화의 한 형태(언어)로서, 역사이해의 ‘거울’이자 ‘텍스트’이다. 고지도에는 당시의 역사-지리적 지식-정보뿐만 아니라 과학기술 및 예술성 등이 도상학적 기호와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투영되어 있으며, 더 나아가 그 속에는 한 개인과 사회의 지배적인 사상과 이념, 권력과 신앙 등의 ‘가치’가 담겨져 있다. 특히 세계지도 ― 고지도의 여러 유형들 가운데서 ― 는 지역 간 공간정보의 교류와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세계인식 혹은 세계이해의 공적소통구조를 엿볼 수 있는 ‘해독이 필요한 시각언어’이다.
    1402년(태종2년) 조선에서 제작된《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공간적으로 당시까지 알려진 대륙을 모두 포괄한 현존하는 동아시아 최초의 세계지도로서, 15세기말~16세기 초 포르투갈의 중국선교사 마테오리치(Matteo Ricci, 1552~1610년)의 서구식 세계지도인《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가 17세기 조선에 들어오기 전까지 사실상 가장 넓은 세계의 지평을 그려 넣은 지도로서, 중앙에 중국을 가장 크게 배치하고, 동쪽에는 조선을, 남쪽에는 일본과 동남아시아를,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 ‘축국(竺國)’-인도, 아프리카대륙, 아라비아반도, 이베리아반도, 유럽대륙 및 지중해를 각각 포함하고 있다. 시간적으로 이 지도가 제작된 15세기 초는 서양사적으로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의한 ‘발견의 시대’ ― 이 지도는 1492년 신대륙 발견보다 무려 90년이나 앞서 만들어 졌다. ― 가 아직 막을 열기 이전이었으며, 동양사적으로는 명나라 정화(鄭和, 1371~1433년)의 대선단(大船團)이 인도양을 거쳐 페르시아와 아라비아-아프리카로 대항해(1405~1433년) ― 1405년에 시작된 정화의 항해는 명 ․ 청대 중국인들에게 ‘서양’이라는 말을 각인시킨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 를 떠나기 직전이었으며, 지도학사적으로는 유럽에 아직 고대의 탁월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학이 이슬람을 통해 소개되기 이전이었다. 아울러 조선의 지도제작 및 발달사에서 볼 때에도, 천하(天下)를 ‘이상적’이고 ‘추상적’으로 이해하던 이전의 ‘그림지도’ ― 예컨대《천하도》― 와는 현저하게 구분되는 것으로써 ‘과학지도’로 이행하는 과정의 단면을 최초로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와 가치가 큰 지도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조선 전기(前期)의 지리학적 지식 ․ 정보를 종합하여(정보력), 뛰어난 과학 ․ 기술 위에 창의력을 덧입혀 편집 ․ 제작하고(창의성과 기술력), 비단에 잉크로 채색(彩色)하여 벽걸이 형태(예술성)로 제작한 세계학계에서도 주목받는 세계지도이다.
    본 논문에서는, 먼저 지금까지 논의 되어 온 지도 제작과정에 관한 선행 연구들에 필자의 입장과 논거를 덧입히고,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논의된 바 없는《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나타난 아라비아-아프리카지역의 지리적 ․ 지형적 특성과 지도에 표시된 약 71개(아라비아 24개, 아프리카 47개)의 지명(地名)들과 조선시대가 보여주고자 했던 아라비아-아프리카지역, 즉 ‘외부세계’에 대한 인식을 일반적인 역사적 배경 ― 지도제작의 목적, 과정, 지리적 정보의 유래, 지도제작자 등 ― 에서 살펴보되, 지도에 담긴 담론과 지도콘텐츠 ― 그런 의미에서 지도의 역사는 담화와 이미지의 한 형태로서 해석될 수 있으며, 지도학은 문학비평, 미술사, 지식사회학 등과 이론적으로 관련된다. ― 를 정치권력의 맥락에서 왜 그렇게 표현/묘사했는가 ― 지도는 결코 가치중립적 이미지가 아니며, 지도지식은 하나의 사회적 생산물이다. 따라서 표현/묘사의 정치-사회적 의미를 간과한 어떤 지도제작사 연구도 그 자체로 ‘역사와 관계없는’(ahistorical) 역사로 분류될 뿐이다.― 에 주목하여 탐구함으로써《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열고자 한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가져다준 지도학사적 의미는 매우 크다.: 현존하는 ‘동양 최고(最古)의 세계지도’라는 점에서, 17세기 마테오리치의《곤여만국전도》가 처음 소개될 때까지 세계에 대한 정보와 인식은 적어도 동북아 삼국에서는 ‘가장 넓은 지리적 시야와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 조선인의 중국을 넘어 선 세계이해와 ‘외부세계’에 대한 수용적인 태도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히 아라비아-아프리카지역에 대한 묘사는 ― 적어도 유럽에서는 아프리카에 대한 독립적인 생각이 르네상스시대 이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 동서양을 막론하고 매우 독특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금까지 국내외의 여러 연구자들은 이 지도의 제작 배경과 그 과정에 관한 역사적 연원(淵源)과 유래(由來)를 밝히는 데 많은 노력을 경주한 나머지 이 지도제작이 갖는 정치-사회적 맥락을 간과해 온 것이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것이 아무리 객관적 사실에 바탕을 둔 과학적인 지도라 하더라도 ‘상징으로서의 지도’와 ‘지도에 담긴 담론’은 필연적으로 정치-사회적 맥락 ― 그런 의미에서 지도란 결코 가치중립적인 생산물이 아니라 하나의 정치-사회적 생산물이며, 드러내든지 숨기든지 간에 지도에 담긴 수많은 상징과 이야기들 역시 정치-사회적 의도와 의미를 가진다. ― 을 갖게 마련이다. 그래서 지도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세 가지 요소, 즉 지도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제작자[publisher]=수집가[observer/surveyor]+편집자[designer/editor/printer]), 어떻게 사용되었는가(사용자[librarian/user])하는 물음과 마찬가지로 지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해석자[interpreter]) ― 해석은 일차적으로 지도제작과정에서 이미 반영된다. 따라서 지도해석은 일종의 메타과학(meta-science)이 된다. ― 에 관한 통합적(interdisciplinary) 논의는 매우 중요하다. 지도해석은 그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 색인어
  •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조선시대 고지도, 중동-아프리카, 이슬람 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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