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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성립과 붕괴에 미친 한반도 남동부 지형 특성과 Holocene 후기 환경 변화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신라의 성립과 붕괴에 미친 한반도 남동부 지형 특성과 Holocene 후기 환경 변화 | 2009 년 | 황상일(경북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B00857
선정년도 2009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12년 04월 30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12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국가들의 정치, 경제, 문화적 중심지였던 수도의 입지는 다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여러 국가가 병존하였던 고대에는 한반도에 국제적인 관계가 성립되고 신라가 통일하였으나, 각 국가의 중심지의 입지 특성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대 1,000년 동안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는 현재 인구 20만명 정도인 소도시이다. 그리고 고대에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특별히 유리한 요소가 있었으므로 중심지가 되었다. 사료에는 이와 같은 요소들에 대한 기술이 거의 없으나, 경주가 가지는 자연지리적인 특성을 통해 이 도시의 입지 특성을 살펴 보았다.
    한편 한반도에서 성립된 국가들 가운데 대부분은 외부의 물리적인 힘에 의해 멸망되었다. 그러나 고대 국가 신라는 유일하게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고 붕괴된 경우에 해당한다. 한 국가의 붕괴나 멸망에는 정치, 사회, 경제적인 요인 외에도 자연환경의 변화와 같은 다른 원인이 내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논의는 환경 결정론적 접근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환경과의 상호작용이라는 지리학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본 연구의 목적은 첫째, 신라의 국가 형성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한반도 남동부의 선상지 분포와 지형 발달을 검토하고, 이 지역의 단층선, 범람원을 비롯한 하천지형, 산지 지형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신라의 수도로서 경주의 입지 결정에 미친 자연환경의 영향을 파악하는 것이다. 둘째, 한반도 남동부 Holocene 후기 자연환경의 특성과 인간의 영향으로 변화된 자연환경이 신라의 붕괴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이와 같은 환경변화의 원인에 대해 다양한 자연과학적 분석을 통해 새로운 자료를 생산하고 문헌 및 고고학 자료에 나타난 근거들과 관계지워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경주의 국가 성립에는 한반도 남부의 태백산맥의 위치가 크게 영향을 미친다. 즉, 태백산맥이라는 거대한 산지가 한반도 남동지역을 다른 지역으로부터 고립시켰다. 이것은 경주를 군사적으로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어 주었다. 경주가 태백산맥 동쪽에서 영남의 동해안과 내륙을 연결하는 결절점에 위치하였다. 이 지역의 지질 및 지형적 특성은 선상지형성에 대단히 유리하여 대규모 합류선상지가 연속적으로 분포하여, 넓은 경작지를 제공하였으며, 이것이 경주지역의 농업 경제 기반이었다. 경주지역은 해안지역을 통제하여 소금을 독점할 수 있었으며, 울산지역의 철광석 산지를 통제하였으며, 제철 기술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다.
    한편 고대 동안 경주분지는 한 국가의 수도로서 정치적, 군사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였으므로, 일찍부터 도시가 형성되었으며, 인구는 시간이 경과하면서 증가하여 19세기 중반 경에 왕경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 약 80 만 명이 거주하였다. 당시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대단히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는 체계였으므로 경주를 중심으로 대규모 벌채가 이루어져 식생이 거의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에 따라 경주, 건천, 울산, 언양, 안강, 신광 지역의 선상지는 황폐화되었으며, 이것은 신라 후기 인간생활에 결정적인 충격을 준 8세기 후반부터 9세기 초에 걸쳐 발생한 가뭄의 강도를 강화시키는데 기여하였을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 영문
  • The position of capital as the center for politics, economics and culture is determined by various factors. At the ancient times when many countries coexist, although the international relationships were established and the Silla Dynasty united, the positional characteristics of capitals of each country have been little discussed. During the ancient 1,000 years, Gyeongju, the capital of Silla Dynasty during the ancient 1,000 years is one of the small cities in Korea. Moreover, because Gyeongju had advantages in the various aspects, it functioned as the capital. The historical records do not contain the descriptions on these factors and this study tries to estimate the positional characteristics by physiological characteristics.
    On the other hands, the most capitals once constructed in the Korean Peninsula were destroyed by external forces. However, only the Silla Dynasty was collapsed without these destructions. Besides the political, social and economic factors, there are many cases that the other factors such as the changes of natural environments are included in the destructions and collapses of countries. These discussions are not by environmentalism, but by geographical aspects as the interactions of human and environment.
    In these respects, this study aims to estimate the distributions of alluvial fan and geomorphic developments having close relationships with the establishment of the Silla Dynasty and influences of natural environments on the positional determination of Gyeongju as the capital of the Silla Dynasty by analyzing the fluvial and mountain geomorphology as well as the fault and floodplain systems. This study also tries to estimate the processes and influences of the characteristics of natural environment during the late Holocene in the southeastern Korean Peninsula and its change by human impacts on the collapse of the Silla Dynasty, and the causes of environmental changes by the production of new data through scientific analysis and connection with the evidences in the literatures and archeological data.
    The position of the Taebaek Mountain Range in the southern Korean Peninsula had greatly influenced on the establishment of Gyeongju. In other words, the great mountain areas named the Taebaek Mountain Range isolated the southeastern part from the other areas in the Korean Peninsula. These made Gyeongju safe space militarily. Gyeongju locates in the node connecting the East Coast and interior areas in the eastern part of the range. The geomorphological and geological characteristics have the benefits in the development of alluvial fan and the confluent alluvial fans continuously distribute. These provide extensive lands for farming and these lands were the basements of agricultural economics. Gyeongju can monopolize salts by controlling the coastal areas and because Gyeongju also controlled iron ores in the Ullsan area and had the technique for iron manufacture, these allowed the accumulations of a great deal of wealth.
    On the other hands, because the Gyeongju basin had functioned as the political, military, cultural and social center as the capital of the dynasty, the city can be developed earlier and approximately 800 thousand people lived in the capital areas in middle 19th century. The vegetation around the Gyeongju was destroyed by the great deforestation, because the lifestyle at that time needed much energy. The alluvial fans in Gyeongju, Geoncheon, Ullsan, Eonyang, Angang and Singwang were devastated and it has great possibilities that these may intensify the drought strength during the late 8th and early 9th centuries impacting on the human life in the late Silla Dynasty.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고대를 통해 거의 천 년 동안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는 현재 인구 20만 명 정도이다. 경주는 인접한 포항, 울산, 대구, 부산에 비해 고대에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특별히 유리한 요소가 있었으므로 중심지가 되었다. 사료에는 이와 같은 요소들에 대한 기술이 거의 없다. 고대 국가에 있어서 수도는 모든 측면에서 중심지이므로 국가 성립도 이 중심지의 성립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러나 고대 한반도에 성립된 국가들의 수도의 자연지리적 입지 특성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대의 자연환경과 경주가 가지는 자연지리적인 특성을 통해 경주에 국가가 성립될 수 있었던 요인을 살펴보았다.
    한편 한반도에서 성립된 국가들 가운데 대부분은 전쟁이나 내부적인 갈등 등 물리적인 힘에 의해 멸망되었다. 그러나 고대 국가 신라는 유일하게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며, 멸망되었다기보다 붕괴된 경우에 해당한다. 역사학, 정치학에서는 국가의 붕괴나 멸망을 주로 정치, 사회, 경제적인 요인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 원인을 자연환경의 변화와 같은 다른 요인으로 검토하는 연구들이 보고되고 있다. 이와 같은 논의 주로 지리학자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는데, 이것은 환경 결정론적 접근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환경과의 상호작용이라는 지리학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본 연구는 한반도 남동부에 치우쳐 있는 경주가 고대 국가 신라의 수도가 되고 발전할 수 있었던 자연환경적 배경과 천 년이 지난 10세기 중반 외부의 압력이나 전쟁과 같은 요인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를 고려에 넘겨주는 원인을 자연환경에 미친 인간의 영향을 토대로 검토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의 목적은 첫째, 신라의 국가 형성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한반도 남동부의 선상지 분포와 지형 발달을 검토하고, 이 지역의 단층선, 범람원을 비롯한 하천지형, 산지 지형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신라의 수도로서 경주의 입지 결정에 미친 자연환경의 영향을 파악하는 것이다. 둘째, 한반도 남동부 Holocene 후기 자연환경의 특성과 인간의 영향으로 변화된 자연환경이 신라의 붕괴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이와 같은 환경변화의 원인에 대해 다양한 자연과학적 분석을 통해 새로운 자료를 생산하고 문헌 및 고고학 자료에 나타난 근거들과 관계지워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경주의 국가 성립에는 한반도 남부의 태백산맥의 위치가 크게 영향을 미친다. 즉, 태백산맥이라는 거대한 산지가 한반도 남동지역을 다른 지역으로부터 고립시켰다. 이것은 경주를 군사적으로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어 주었다. 경주가 태백산맥 동쪽에서 영남의 동해안과 내륙을 연결하는 결절점에 위치하였다. 이 지역의 지질 및 지형적 특성은 선상지형성에 대단히 유리하여 대규모 합류선상지가 연속적으로 분포하여, 넓은 경작지를 제공하였으며, 이것이 경주지역의 농업 경제 기반이었다. 경주지역은 해안지역을 통제하여 소금을 독점할 수 있었으며, 울산지역의 철광석 산지를 통제하였으며, 제철 기술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다.
    한편 고대 동안 경주분지는 한 국가의 수도로서 정치적, 군사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였으므로, 일찍부터 도시가 형성되었으며, 인구는 시간이 경과하면서 증가하여 19세기 중반 경에 왕경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 약 80만 명이 거주하였다. 당시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대단히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는 체계였으므로 경주를 중심으로 대규모 벌채가 이루어져 식생이 거의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에 따라 경주, 건천, 울산, 언양, 안강, 신광 지역의 선상지는 황폐화되었으며, 이것은 신라 후기 인간생활에 결정적인 충격을 준 8세기 후반부터 9세기 초에 걸쳐 발생한 가뭄의 강도를 강화시키는데 기여하였을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연구 결과
    (1) 경주는 동해안에 치우쳐 있고, 태백산지에 의해 내륙과 격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낙동강 동쪽 나아가 소백산 동쪽을 ‘신라’로 통합한 것은 신라인의 空間觀에 크게 기인한다.
    (2) 경주분지에서 양산단층선과 불국사단층선이 교차하므로 태백산맥 동쪽에서 남-북 방향으로 언양, 김해, 울산, 안강, 신광, 청하, 포항과의 좋은 교통로가 확보된다.
    (3) 이 지역의 지질 및 지형적 특성은 선상지형성에 대단히 유리하여 폭넓은 대규모 합류선상지가 연속적으로 분포한다. 전반적으로 밭농사가 중심인 선사․고대에 대단히 넓은 경작지를 제공하여 든든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4) 양산단층선과 울산단층선을 따라 경주를 중심으로 경주와 울산 사이의 불국사산지 서사면과 신광, 안강, 언양 등지에 넓은 선상지가 형성되어 있다.
    (5) 경주를 제외하면 영남지방은 대부분 내륙의 주요 거점까지 거리가 멀고 고개가 대단히 높아 안강, 경주를 제외하면 남북으로 긴 해안지역을 통합할 구심점이 빈약하여, 동-서 간의 왕성한 교류는 거의 불가능했던 것 같다.
    (6) 경주지역은 소금을 독점하고, 영남지역의 철과 구리의 생산지가 있어 내륙지역에 비해 경제적인 부를 축적하였으므로 매우 유리한 자연환경의 혜택을 받았다.
    (7) 고대 경주분지는 국가의 수도로서 정치적, 군사적 문화적, 사회적 중심지였다. 아울러 교통로의 결절점이며 동해안과 영남 내륙지방 생산품의 교역 장소로서 일찍부터 도시가 형성되었다. 19세기 중반 경에 왕경을 중심으로 80만 명이 살았다고 추산된다.
    (8) 고대 경주 사람들의 일상생활 용기는 토기였으며, 기와집을 짓고 숯으로 밥을 지었다. 철광석을 제련하여 철을, 해안에서는 소금을 생산하였다. 이와 같은 생활방식에는 대단히 많은 에너지를 요구되며, 대규모 벌채로 통일신라 말기에는 식생이 거의 파괴되었다.
    (9) 경주, 건천, 울산, 언양, 안강, 신광 지역의 선상지 하천은 형산강과 울산만으로 유입하는 동천과 태화강의 지류이다. 하상경사가 급하고 짧은 거리를 이동하므로, 대부분 유로가 짧고 유역분지가 좁다. 따라서 8세기 후반부터 9세기 초에 걸쳐 거의 5년에 한 번 모두 9회에 걸친 가뭄은 신라 후기 식생파괴로 인간생활에 결정적인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2) 활용 방안
    (1) 지형학 및 제4기학 연구 성과는 고대사적 문헌 이외 다양한 연구 방법을 제공한다. 기존의 고대사 연구만으로 고대사회의 인간활동을 복원하는데 한계가 있으므로 논의의 폭을 넓히는데 기여한다. 특히 구체적인 공간에서 자연환경과 인간과의 상호작용의 논의하는 지형학적 접근은 일반인에게 흥미로운 정보를 제공하여 고대사와 경주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는데 이바지 할 수 있다.
    (2) 고대 국가 신라의 중심지로 1,000년 동안 유지된 경주의 자연환경 분석은 한반도 고대 국가의 입지 특색을 논의하고, 나아가 남부의 가야, 백제와 일본과의 국제관계를 파악하는 자료가 된다.
    (3) 신라붕괴의 원인을 정치, 사회, 경제 그리고 자연환경 등을 검토하여 경주 연구의 폭을 넓힌다. 더욱이 1,000년 수도를 유지한 로마와 함께 국제적인 연구사례가 되므로 국제학회 발표와 국제학술지에 투고 활성화 등 연구가치를 높여 국제적 도시로 조성한다.
    (5) 한국 동남부 지역에서 고고지형학이란 새로운 학문 영역을 확보하여 고대 국가의 성립과 흥망성쇠를 자연과학적 관점에서 재조명한다.
    (6) 경주의 지정학적 의미를 밝히고, 기후환경변화와 인간생활에 대한 정보를 보완하여 경주에 대한 연구 수준을 높이고 국제적 도시로서 위상을 높일 수 있다.
    (7) 박물관에서 경주를 중심으로 신라의 성립, 발전, 붕괴와 관계되는 한반도 남동부의 자연환경 모형을 제작하는데 활용할 수 있다.
  • 색인어
  • 고대, 신라, 국가성립, 붕괴, 자연환경, 선상지, 식생 파괴, 인간의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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