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스트로서 줄리안 반즈(Julian Barnes, 1946~ )는 『내 말 좀 들어봐』(Talking It Over, 1991)에서 포스트모던 시대의 주요 흐름 중 하나인 진리의 상대성 문제를 “사람들은 눈으로 봤다는 듯이 거짓말 한다”(He lies like an eye-witness)라는 러시아 속담을 ...
포스트모더니스트로서 줄리안 반즈(Julian Barnes, 1946~ )는 『내 말 좀 들어봐』(Talking It Over, 1991)에서 포스트모던 시대의 주요 흐름 중 하나인 진리의 상대성 문제를 “사람들은 눈으로 봤다는 듯이 거짓말 한다”(He lies like an eye-witness)라는 러시아 속담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풀어 나간다.
『내 말 좀 들어봐』의 서사는 세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단순한 사랑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서로 같은 과거(기억)를 되새기는데, 문제는 이들의 기억이 서로 다르다는데 있다. 분명 이들의 기억은 같은 사건이었음에도 "재현”(representation)되면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드러난다. 그렇다면 누구의 기억을 객관적 사실로 봐야할 것인가. 정답은 없다. 단지 독자들이 이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사건의 전후맥락을 유추할 뿐이다.
반즈는 이들 세 사람의 과거에 대한 각기 다른 재현을 통하여 우리가 본다는 것의 객관성에 대하여 의문을 제시한다. 실제 우리가 본다는 것은 우리 안에 이미 주관이 내재된 관계로 객관적인 사실을 드러내는 데 한계가 있다. 즉 반즈가 이 작품의 주제로서 언급한 “사람은 눈으로 봤다는 듯이 거짓말 한다”의 의미는, 객관적 사실에는 일정 부분 한계가 있음을 작가로서 드러낸 것이다. 본 연구 역시 독자들이 ‘본다’는 것, ‘재현한다’는 것의 주관적 한계를 제시하려 한다.
포스트모던 시대 문학의 흐름 중 대표적 경향의 하나는 역사, 리얼리티, 객관성 등에 대한 다양한 인식이다. 『내 말 좀 들어봐』역시 포스트모던 시대의 한 흐름인 ‘관점’의 문제와 소위 ‘진리(reality)’에 대한 포스트모던적 태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본 연구결과를 통해 기대되는 가장 중요한 활용방안은 현대 영국 소설의 주류작가라 할 수 있는 반즈의 작품 접근에 대한 새로운 장을 여는데 있다. 우선, 반즈에 대한 기존의 연구가 미미하다보니 학부 수업에서 그의 작품을 다루는 데는 어려운 점이 있었다. 따라서 이번 연구를 통하여 그에 대한 접근을 좀 더 수월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두 번 째로, 반즈는 그의 작품에서 문학뿐만 아니라 기독교, 역사, 유럽 특히 프랑스와 관련하여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 대한 연구가 적극적으로 이뤄진다면, ‘지금’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학생들이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의식의 확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세 번 째로, 반즈는 영국 평단의 “카멜레온”(Stout, 29) 이라는 호칭을 들을 만큼 다양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작가로 등단하기 전에 그는 사전편집자, 텔레비전 평론가, 등등 다양한 이력을 소유하였다. 이러한 그의 경험은 그의 작품에 스며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의 작품을 강의 소재로 활용한다면 아주 독특하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만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 말 좀 들어봐』의 세 주인공의 비극적 결말은, 서로 간의 대화부재에 있었다. 이들의 대화부재 혹은 소통의 상실은, 자신과 다른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포용이 아닌 배타성을 낳는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현대인들의 자기 방어는, 의미 있는 관계 더 나아가 성숙한 관계를 이루는데 걸림돌을 만듦으로서 ‘이혼’이라는 결과를 낳고 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을 강의 교재로 선정하여, 학생들과 ‘대화,’ ‘소통,’ 그리고 ‘다름에 대한 이해’ 등에 관한 문제를 환기한다면, 좀 더 의미있는 관계 설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 본 연구 텍스트의 제목인 Talking It Over의 원래 의미는「의논」, 「설득」, 「상담」등 이지만, 번역어의 의미는 텍스트의 내용을 살려서 선정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