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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전후 지역 권력 변화에 대한 연구: 경북 영천지역의 사례를 중심으로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한국전쟁 전후 지역 권력 변화에 대한 연구: 경북 영천지역의 사례를 중심으로 | 2011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김상숙(고려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B00218
선정년도 2011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13년 02월 28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13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이 연구는 경북 영천을 사례로, 한국전쟁 전후 시기(1945~1953년) 지방권력의 변화과정을 미시적 수준에서 조사하고 분석하여, 국가와 정치사회가 지방주민들 사이에 내재적 권력으로 자리잡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한국은 해방 이후 냉전체제 하에서 외세에 의해 초기 국가기구가 만들어지고 정부가 수립되면서, 서구처럼 ‘시민사회→정치사회→국가’의 경로가 아니라 ‘국가→정치사회→시민사회’의 경로를 밟으면서 근대국가가 형성되었다. 이때 식민지시기부터 각 지방에 존재해온 지방권력은 중앙국가기구와 말단 지방주민들 사이에서 중간매개자 또는 대리통치자 역할을 하면서 중앙권력의 기반을 창출하기도 하고, 비판세력이나 저항세력 역할을 하기도 했다. 조사대상지역인 영천은 해방 직후부터 지역 안에서 건국운동이 활발했고 1946년 10월항쟁이 격렬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1946년 10월항쟁에는 다양한 층의 인사들이 항쟁에 참여했는데, 당시 영천항쟁 참여층으로는 첫째, 항일운동을 했던 지식인, 지역 명망가, 지주계층 등 군 단위 지도자급 인사, 둘째, 계몽적 지식인, 한학자, 지역유지, 면장ㆍ구장 등 면 단위 또는 마을 단위의 지도자나 여론 주도층, 셋째, 상인과 학생, 소작농민이나 하층민 가운데 행동세력으로서 선봉대 역할을 한 청장년층이 있었다. 그리고 계급적 동질성에 의해 결합한 하층민 조직, 일가주의적 동질성에 의해 결합한 친족공동체, 마을 자치조직의 전통 등이 사회경제적 원인이나 이념적 요소의 기저에서 여론 형성과 조직화의 기반이 되었다. 1946년 10월항쟁 직후부터 충남경찰부대와 서북청년단 등 군경의 진압이 있었으며 우익 청년조직들도 강화되었다. 이 무렵부터 야산대가 조직되어 활동했고, 1948년 2.7사건 이후 영천에는 남로당 활동이 활발하여 경북에서 가장 먼저 야산대가 빨치산유격대로 조직되었다. 빨치산은 1948년 말~1949년 초 대구6연대반란사건 이후 더욱 강화되었다. 그 후 군경 측의 토벌도 강화되면서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군경과 빨치산이 계속 대치하면서 ‘작은전쟁’이라 불리는 지역내전의 양상이 나타났으며 이 와중에 주변 마을에 거주하던 민간인들이 다수 학살되었다. 군경의 토벌작전에 살아남은 민간인 상당수는 국민보도연맹에 가입되었다. 1950년 2월경에 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국민보도연맹 영천지부에는 약 1,000명이 가입하였는데 영천 국민보도연맹 가입자들은 ① 1946년 10월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이 군경의 진압을 피해 입산하여 저항하다가 1949년 말~1950년 초 자수한 경우, ② 이들에게 연루되었던 일가친척이나 산간지역 주민, ③ 정부에서 지시한 가맹 할당량 때문에 행정조직에 의해 강제로 가입한 사람들이 다수를 이루었다. 영천은 한국전쟁 발발 후에는 영천전투와 신녕전투가 있었던 격전지였는데, 국민보도연맹 가입자들은 상당수가 한국전쟁 발발 후 1950년 7월에서 9월 사이에 영천경찰서 소속 경찰과 당시 영천에 주둔 국군에게 학살되었다. 이처럼 1945년부터 1953년 사이 영천에서 집단학살사건으로 희생된 민간인은 약 1,200명으로 추산되며, 이 중 국가기관에 의해 희생 진상이 규명된 사람만 해도 500명이 넘는다. 그리고 이 중에는 해방 직후 건국운동을 벌였던 인물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한국전쟁 전후의 기간 동안 영천의 지방권력은 중앙국가기구와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좌우로 나뉜 세력들이 대립하며 마을 주민들을 통치하는 이중권력의 양상을 보였다. 그리고 이러한 이중권력이 유지되고 재생산되는 과정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영향을 미쳤다. 일례로 1946년 10월항쟁이 격렬하게 일어났던 화북면 자천동의 경우에는 신분/계급 갈등 요인이 큰 영향을 미쳤다. ‘작은전쟁’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국민보도연맹사건으로 마을 주민들이 몰살당한 화북면 구전동의 경우에는 ‘일가주의’-친족관계 요인이 큰 영향을 미쳤다. 마을 주민들은 낮에는 군경, 밤에는 빨치산이 지배하는 이중권력 하에서 양쪽에 동원되면서,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되기도 하는 모순된 위치에서 생활하였다. 이 와중에 그들은 강제성과 자발성이 혼합된 정체성을 지닌 채 생존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 중앙국가기구는 지방권력과 마을 주민들을 자신의 기준에 따라 배제ㆍ말살하거나 선택ㆍ포섭하면서 신생국가의 통치주도권을 획득하고 체제를 공고히 해나갔다.
  • 영문
  • The aim of this study is to microscopically research and analyze the process of change in the power of local authorities before and during the Korean War, and look into how a state and the political society root themselves as internal powers among local residents. A case study here involves Yeongcheon in North Gyeongsang Province, Korea. In Korea, an initial national body was formed and its government came into being by the external force under the Cold War scheme after its liberation from the Japanese colonial rule. As such, a modern state was formed through a route contrary from the Western world where the norm would be from civic society changing into political society to become a national state. Local powers that used to exist in local regions since the colonial period served as intermediaries or proxy rulers between the central government and local residents at the grassroots level. So, they laid the foundation for the central power, while sometimes criticizing or resisting it. Yeongcheon, the case in point, had the national foundation movement flourishing in the region immediately after the liberation and the overwhelming 1946 October uprising. From then on until the Korean War, a continued confrontation between the military police force and guerillas was underway. The civil war was so called ‘a small war’ as a civil war. In addition, Yeongcheon was a battlefield for Yeongcheon Battle and Sinnyeong Battle during the Korean War. During the research period, the power of the local authority in Yeongcheon witnessed a confrontation between rightest and leftist powers ruling local residents in terms of forging a relationship with the central government. It was a bifurcated power structure. A plethora of factors influenced the process where the bifurcated power was maintained and reproduced. For instance, a social class-driven conflict was a significant factor in Jacheon-dong in Hwabuk-myeon where the 1946 October uprising ferociously occurred. Meanwhile, in Gujeon-dong in Hwabuk-myeon where residents were massacred during the Kukmin-bodoyeonmaeng(the federation for protecting and guiding the public) incidence upon the eruption of the Korean War before which the federation exerted its dominant influence, kinship & strong lineage ideology was a major influence. Local residents had to seek for survival, having a combined identity of forcefulness and volunteerism under the bifurcated power scheme where military police force ruled during the day and guerilla ruled at night. The residents were mobilized by the two forces, becoming attackers and victims at the same time. They were also victims of mass killings including Kunkyung-tobeol(search and destroy operations by the police and army) incidence and Kukmin-bodoyeonmaeng incidence. Mass killings that took place from 1945 to 1953 claimed approximately 1,200 civilians, among which over 500 were identified to have been killed by government agencies. Throughout the process, the central government along with local authorities either neglected or massacred local residents, or selected or mobilized them according to its need, acquiring the ruling dominance and solidifying its system as a new state.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이 연구는 경북 영천을 사례로, 한국전쟁 전후 시기(1945~1953년) 지방권력의 변화과정을 미시적 수준에서 조사하고 분석하여, 국가와 정치사회가 지방주민들 사이에 내재적 권력으로 자리잡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한국은 해방 이후 냉전체제 하에서 외세에 의해 초기 국가기구가 만들어지고 정부가 수립되면서, 서구처럼 ‘시민사회→정치사회→국가’의 경로가 아니라 ‘국가→정치사회→시민사회’의 경로를 밟으면서 근대국가가 형성되었다. 이때 식민지시기부터 각 지방에 존재해온 지방권력은 중앙국가기구와 말단 지방주민들 사이에서 중간매개자 또는 대리통치자 역할을 하면서 중앙권력의 기반을 창출하기도 하고, 비판세력이나 저항세력 역할을 하기도 했다. 조사대상지역인 영천은 해방 직후부터 지역 안에서 건국운동이 활발했고 1946년 10월항쟁이 격렬하게 일어났으며 그 후부터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군경과 빨치산이 계속 대치하면서 ‘작은전쟁’이라 불리는 내전을 벌였던 곳이다. 한국전쟁 발발 후에는 영천전투와 신녕전투가 있었던 격전지였다. 조사대상기간 동안 영천의 지방권력은 중앙국가기구와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좌우로 나뉜 세력들이 대립하며 마을 주민들을 통치하는 이중권력의 양상을 보였다. 그리고 이러한 이중권력이 유지되고 재생산되는 과정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영향을 미쳤다. 일례로 1946년 10월항쟁이 격렬하게 일어났던 화북면 자천동의 경우에는 신분/계급 갈등 요인이 큰 영향을 미쳤다. ‘작은전쟁’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국민보도연맹사건으로 마을 주민들이 몰살당한 화북면 구전동의 경우에는 ‘일가주의’-친족관계 요인이 큰 영향을 미쳤다. 마을 주민들은 낮에는 군경, 밤에는 빨치산이 지배하는 이중권력 하에서 양쪽에 동원되면서,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되기도 하는 모순된 위치에서 생활하였다. 이 과정에 그들은 강제성과 자발성이 혼합된 정체성을 지닌 채 생존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군경토벌사건, 국민보도연맹사건 등 집단학살사건의 희생자가 되기도 하였는데, 1945년부터 1953년 사이 영천에서 집단학살사건으로 희생된 민간인은 약 1,200명으로 추산되며, 이 중 국가기관에 의해 희생 진상이 규명된 사람만 해도 500명이 넘는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 중앙국가기구는 지방권력과 마을 주민들을 자신의 기준에 맞춰 배제ㆍ말살하거나 선택ㆍ포섭하면서 신생국가의 통치주도권을 획득하고 체제를 공고히 해나갔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이 연구의 결과는 한국연구재단에서 인정하는 국내 학술지에 게재하고, 필요한 경우 단행본으로 발간할 예정이다. 구술 조사한 자료는 증언자들이 원할 경우 증언집을 발간하여 후속 연구자료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지역주민의 목소리를 담은 교육자료를 발간하여 관심을 가진 국민들과 후속세대에게 교육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다. 특히 주요 증언자의 증언을 담은 동영상을 제작, 배포하여 관련 수업자료로 활용하고 관련 시민사회단체에서 시민교육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이 연구의 결과물은 다음과 같은 기여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1) 연구대상과 주제 면에서: 한국전쟁기 경북지역 농촌사회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연구는 선행연구에서는 다루지 않은 새로운 사회학적 과제를 수행하여 전쟁기 지역연구의 공백을 채우는 한편, 중장기적으로 사회사, 지방사, 가족사, 정치사회학, 역사사회학, 농촌사회학 등 관련 분야의 발전에 도움을 줄 것이다. (2) 연구방법 면에서: 전쟁을 경험한 이들이 고령인 지금 이 연구를 통해 구술증언을 채록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중요한 작업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수집된 자료는 문헌자료나 공식적 기록으로 표현되지 않은 당시의 실정에 대해 심층적으로 접근하고, 이를 통해 외적으로 표현된 사건과 행위의 이면에 존재하는 관계와 맥락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연구의 결과물에 포함될 1차 자료들은 전공 연구자뿐 아니라 관련된 인접 학문 연구자들에게 요긴한 연구 기초자료가 될 것이다. (3) 지역의 마을공동체를 연구대상으로 포함하고 있으므로 이를 통해 공식적으로 기록되지 못한 지역주민들의 목소리를 공식화하고, 지난 날 외세와 국가권력으로 인해 휘둘리고 갈등했던 지역사회 공동체가 용서와 화해를 통해 스스로를 복원하는 길을 찾는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4) 이 연구에 담긴 다양한 자료들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진 국민들과 후속세대에게 교육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특히, 지방자치시대에 공간적으로 약자인 지역주민의 목소리를 연구 결과물에 담아냄으로써, 국민들에게 지방정치에 대한 관심을 높여 지방자치와 민주주의 실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 색인어
  • 한국전쟁, 영천, 경북, 지역권력, 지방우익, 지방좌익, 마을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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