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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내재율 개념의 수용과 정착 과정 연구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1920년대 내재율 개념의 수용과 정착 과정 연구 | 2012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권유성(경북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2012S1A5A2A01014399
선정년도 2012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13년 10월 23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13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이 연구는 오늘날 내재율 개념에 대한 혼란을 지적하면서 출발한다. 즉 오늘날 내재율의 개념은 적극적으로 규정될 수 있는 개념이라기보다는 외형률, 혹은 정형율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주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사용은 그것이 내용 개념인지 형식 개념인지를 모호하게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이 과연 규정될 수 있는 개념이기는 한가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 결과 내재율 개념은 시의 율격 논의에서도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기 어려울 뿐 아니라, 교육 과정에서도 애매하게 처리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따라서 이 글은 그러한 혼란이 발생하게 된 기원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1920년대를 중심으로 내재율 개념이 도입되고 정착되는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1920년 전후 내재율 개념이 최초로 도입되는 과정을 살피는 곳에서는 주로 두 가지 점을 중심으로 논의가 전개되었다. 내재율 개념은 자유시의 도입과 함께 이루어졌기 때문에 자유시의 문제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특히 자유시가 시인의 사상과 정서를 자유로운 형식으로 표현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던 당대의 맥락을 고려한다면, 내재율의 개념은 애초 형식적인 개념이면서도 형식을 부정하는 개념, 즉 ‘반(反)율격’개념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러한 점은 김억, 황석우, 양주동 등의 논의에서 공통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들은 자유시 율격으로서의 내재율을 주로 기존의 엄격한 형식, 즉 정형률에 반하는 개념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은 과거의 낡은 문화를 부정하고 신문화를 건설하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던 이들에게 매우 손쉽게 수용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내재율의 도입 과정에서 또 하나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은, 그것이 ‘반율격’의 개념이었을 뿐 아니라, 내용의 문제까지도 포괄하고 있는 개념이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황석우의 영율(靈律)·내용율(內容律) 등의 용어를 통해 살펴볼 수도 있고, 양주동의 율격논의를 통해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내재율의 이와 같은 개념을 비교적 상세하게 해명하고자 한 인물이 바로 양주동이다. 그 또한 ‘자유시의 운율’이 “內容的 韻律(혹은 內容律, 內在律)”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보면서, 그것이 시인 개인의 사상과 정서의 문제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즉 그는 과거의 ‘형식운율’과 대비시키면서 자유시의 “內容律은 곳 시인 그 사람의 呼吸이오, 生命”이라고 정리했던 것이다.
    1925년을 전후한 시기 내재율의 개념은 서로 다른 시적 실천을 통해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이 글에서는 크게 두 가지 방향의 전개를 살펴보았다. 그 하나는 김소월의 「詩魂」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김소월은 「시혼」을 통해 국민문학파가 제시하는 엄격한 정형율을 비판하고 내재율의 개념을 근대시의 가장 핵심적인 원리로 자리매김하고자 했다. 즉 그는 ‘영혼(靈魂)’이라는 개념을 통해 식민지 근대화의 과정에서 소외된 구체적인 삶을 인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시적으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가를 ‘음영(陰影)’이라는 개념을 통해 밝히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김억으로 대표되는 1925년을 전후한 시기 국민문학파 시인들은 내재율 개념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이들의 민족적 시형으로서의 ‘조선시형’에 대한 추구 과정이 자유시에 대한 비판 작업을 전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시기 국민문학파 시인들이 구상한 민족적 시형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가 율격의 문제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들의 자유시에 대한 비판은 실제로는 내재율 때문에 촉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들은 자유시가 형식적으로 ‘시적’이라는 것을 뚜렷이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즉 그 내재율 때문에 시보다는 산문에 가깝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비판의 근저에는 자유시가 민족적 시형으로서의 자질을 확보할 수 없다는 암묵적인 전제가 깔려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민족적 시형을 중심으로 한 자유시에 대한 비판은 자유시의 핵심 원리라고 할 수 있는 내재율 개념을 형식적인 개념으로 제한하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국민문학파의 이와 같은 오해는 오늘날까지도 내재율 개념을 선명하게 하는 데 바람직하지 못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 영문
  • This study is about inner rhythm of Korean modern poetry. It is remained one of the most complicate and ambiguous concept. This paper therefore intends to considering the process of the transplantation and settlement of it in 1920’s. That period was the original space of the Korean modern literature. This concept was transplanted form the western together free verse in 1920’s. At that time, it had two dimensions. One was the dimension of anti-rhythm that all traditional rhythm were denied. The other was the dimension of combination content with form. If the former was formal concept, the later was very expansive and constructive concept. But it was necessary to settle through poetic practices in Korean cultural context.
    It was the middle 1920’s that those practices had been acted. Here those practices could be divided two directions. One direction could be found in Kim So-weol's Poetic Soul(詩魂) that was very creative poetic theory. He focused on the possibilities of the presonality of poets in it. Meanwhile the other direction could be found in Kim-Eok who was the most important poet of the school of nationalistic literature. He concentrated his attention on the construction for Cho-seon poetic form which was filled with Cho-seon emotion. For him free verse has seemed to be very dangerous form which confused with prose. The reason why he denyed inner rhythm. In this process the possibility of inner rhythm couldn’ help reducing in formal dimension.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이 연구는 오늘날까지도 그 내포가 불분명한 내재율 개념을 둘러싼 혼란의 기원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1920년대를 중심으로 내재율 개념이 도입되고 정착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1920년대 내재율 개념은 서구적인 자유시의 도입과 함께 수용된 개념이었다. 1920년을 전후해 수용된 내재율 개념은 크게 두 가지 개념 층위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기존의 모든 관습적인 운율들을 거부하는 ‘반(反)운율’의 개념에 가까운 것이었다. 내재율의 이런 개념 층위는 논자에 따라 새로운 관습적 운율의 수립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이해될 가능성이 있었다. 다른 하나는 형식·내용을 포괄하는 개념 층위였다. 이 경우 내재율은 근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개성적인 사상과 감정이 형식화되는 원리로 이해될 수 있었다.
    1920년을 전후해 수용된 내재율 개념은 1920년대 중반 구체적인 시적 실천을 통해 문단에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글에서는 그 전개 과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하나의 방향은 김소월의 「詩魂」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의 「시혼」에는 표면적으로 ‘내재율’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그의 ‘영혼’과 ‘음영’의 개념은 시인 개인의 근대 사회에 대한 시적 비전이 어떻게 시에서 실현될 수 있는가를 가장 인상적으로 해명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내재율 개념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는데, 그것은 1920년대 중반 국민문학파의 대표적 이론가이자 시인이었던 김억을 통해 살펴볼 수 있었다. 그는 민족적 시형으로서의 ‘조선시형’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자유시를 비판하고 있는데 그 비판의 핵심에는 내재율의 문제가 놓여있었다. 그는 산문시가 내재율 때문에 시보다는 산문에 가깝다고 비판하면서, 음절수를 조절해 만든 정형시인 격조시를 새로운 조선 시형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내재율 개념은 정형률 혹은 외형률과 대비되는 형식적인 운율 개념으로 내포가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요컨대, 1920년대 내재율 개념은 한편으로 근대시로서의 자유시의 가장 핵심적인 원리로 전개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형률이나 외형률과 대비되는 형식적인 개념으로 전개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물론 근대시의 큰 흐름은 후자보다는 전자의 흐름으로 전개된 것이 문학사적 사실에 가깝지만 후자에 의해 이루어진 내재율 개념의 형식화는 오늘날까지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기대 효과
    1) 연구사적 측면
    이 연구는 한국 근대시의 핵심 개념이면서도 여전히 애매한 개념으로 남아있는 내재율 개념을 문학사적으로 정리함으로써 그 애매성을 상당 부분 줄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 결과 이 연구는 근대시 율격 연구에서 내재율 개념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연구는 한국시가의 율격 연구에도 어느 정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내재율의 개념이 선명해진다면 여타의 개념들 또한 상대적으로 더 선명해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 교육적 측면
    이 연구는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의 시 교육에도 어느 정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시가 율격과 관련해 근대시의 율격을 교육할 때, 내재율 개념의 애매함으로 발생할 수 있는 혼선과 혼란을 어느 정도 줄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왜냐하면 이 연구는 내재율 개념을 둘러싼 애매성의 근원을 사적으로 해명해주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점을 교수자가 활용한다면 내재율 개념에 대해 더 쉽고 분명하게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 연구성과

    본 과제의 연구 결과는 2013년 4월 30일 한국어문학 관련 유수 학회인 한국어문학회에 투고되어 엄정한 심사과정을 거쳤다. 투고 논문에 대한 심사자의 호평으로는 “이 논문은 오늘날까지도 그 내포가 분명하지 않은 내재율 개념이 1920년대에 어떻게 수용되고 정착되었는지를 문학적 맥락과 문화론적 맥락을 함께 고려해 살펴본 논문으로 논지 전개가 타당하고 논문의 내용이 충실해서 그 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판단된다. 특히 내재율 개념을 김소월의 시론인 「시혼」과 관련지어 살펴본 점과 김억의 자유시 비판을 내재율 개념과 관련지어 이해한 점은 이 논문의 탁월한 관점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라는 평가를 들 수 있다. 반면 심사자의 평가 중에는 “1920년대 내재율에 관한 기왕의 논의와의 차별점을 확보할 수 있는 지점”이 약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한 보강과 수정이 이루어진 후, 6월 11일 󰡔어문학󰡕 120집에 최종 게재가 결정되고 6월 30일 수록되어 발행되었다.
  • 색인어
  • 1920년대, 자유시, 내재율, 개성, 시적 비전, 정형률, 외형률, 민족주의, 국민문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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