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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기억의 터'로서의 라인 강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 #39;유럽 기억의 터& #39;로서의 라인 강 | 2012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고유경(원광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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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2012S1A5A8023644
선정년도 2012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14년 10월 26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14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트랜스내셔널 전환’ 이래 국민/민족이라는 개념은 집단 정체성의 주요 기준으로서 그 중요성을 상실해가고 있다. 따라서 피에르 노라와 그 동료들이 개척했던 ‘기억의 장소’ 기획 또한 초국가적 차원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 연구의 대상인 ‘유럽 기억의 장소’ 연구는 그 결과이다. 이 연구는 라인 강이 지난 2세기 간 가장 중요한 유럽 기억의 장소 중 하나로 부상한 과정을 분석하며, 19세기 대중관광의 발전을 그 첫 번째 중요한 계기로 간주한다.
    라인 강은 유럽에서 알프스 다음으로 낭만적 자연을 음미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목적지였다. 19세기 철도, 증기선, 여행안내서의 도래는 라인 관광의 발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공유된 ‘유럽 의식’의 발전은 프리드리히 슐레겔, 빅토르 위고, 로맹 롤랑 같은 라인 여행자들에 의해 표현되었다. 이리하여 ‘유럽 기억의 장소’는 유럽통합의 공식적인 진전 이전에 이미 ‘아래로부터’ 형성되었다.
    20세기로 접어들면서 유럽 기억의 장소는 정치화되었고 새로운 라인 신화가 탄생했다. 이 연구는 무분별한 경제개발과 결과적인 생태계 파괴를 그 계기로 간주한다. 환경문제는 유럽인들을 각성시켰고, 그 결과 1950년과 1975년에 각각 발족한 국제라인위원회와 상부라인회의, 그리고 ‘아래로부터’ 탄생한 시민단체들은 유럽의 맥락에서 사고하고 초국가적으로 행동했다. 상부 라인의 환경운동에서 나타난 정치적 상징들은 이 강의 유럽 정체성이 20세기 후반에 그 경쟁자인 민족 정체성을 압도했음을 시사한다.
  • 영문
  • After the ‘transnational turn’ the concept of the nation is receding as a dominant reference point for collective identity. The project of the lieux de mémoire, pioneered by Pierre Nora and his colleagues, is thereby to be raised to a transnational level. The study of the ‘european sites of memory’, the object of this project, is the consequence. This study analyzes the ways in which that the Rhine became one of the most important european ‘sites of memory’ since the last two centuries, and regards the development of the mass tourism during the 19th century as its first important factor.
    Next to the Alps, the Rhine was the most significant destination for romantic nature appreciation in Europe. The advent of the railroads, steamships and travel guides during the 19th century played a key role for the growth of the Rhine tourism. A shared ‘european consciousness’ was developed which was expressed by the Rhine travellers like Friedrich Schlegel, Victor Hugo and Romain Rolland. The ‘european sites of memory’ were therefore formed ‘from below’ before the official advance of the european integration.
    During the 20th century the european sites of memory became politicized and the new myth of the Rhine was born. This study regards the reckless economic development and the consequential ecological problems as the causes of this changes. Such environmental problems awakened the Europeans. All of the riparian states finally got around to creating International Commission for the Protection of the Rhine(ICPR) in 1950 and the High Rhine Conference in 1975, and also the citizens of the riparian states protests against the pollution of the river. They thought in the european context and acted transnationally. The political symbols of the environmental movement in the high Rhine region suggest that the european identity of the Rhine overwhelmed finally its rival, the national one, in the second half of the 20th century.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이 연구는 피에르 노라(Pierre Nora)가 제창한 ‘기억의 장소(Les lieux de mémoire)’를 트랜스내셔널 차원으로 확장하고자 하는 시도의 일환이다. 노라의 기억 연구는 유럽 각국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나, 집단기억의 주체를 국민/민족에 국한시켰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적받은 바 있다. 이 연구는 단순히 트랜스내셔널 기억 연구의 이론적 차원을 언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라인 강이라는 구체적 사례를 통해 민족 기억의 장소와 유럽 기억의 장소 사이의 상호관계를 제시하고 유럽 기억의 장소가 만들어지는 계기와 과정들을 묘사한다.
    방법론으로서 이 연구는 민족 기억의 장소와 유럽 기억의 장소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주목한다. 양자는 첫째로 그것이 성립된 시점(19세기), 둘째로 구성원들 사이의 공통의 ‘감성’에 의존한다는 사실, 셋째로 산업화의 결과인 ‘커뮤니케이션 혁명’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러나 민족 기억의 장소와는 달리 유럽 기억의 장소는 ‘공동의 타자’를 통해 만들어지기 어렵다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이 연구는 민족주의의 시대에도 국경을 초월하는 유럽 공동의 감성이 마련된 요인을 ‘자연’에 대한 감성을 자극했던 낭만주의의 도래로 간주하고, 이와 직접적으로 관련되면서 동시에 교통과 통신의 발전 등 커뮤니케이션 혁명의 결과로 탄생한 대중관광 시대의 도래를 ‘유럽 기억의 장소로서의 라인 강’이 만들어진 중요한 계기로 판단한다.
    1차년도 연구의 주요 내용은 19세기 라인 여행 형태의 변화, 그리고 라인 여행자들의 기록에 반영된 민족 정체성과 유럽 정체성의 갈등과 공존 양상이다. 라인 여행은 나폴레옹 전쟁 종전이라는 정치적 전제와 낭만주의 사조의 등장이라는 사상적 배경, 증기선과 철도의 도입이라는 물리적인 요인에 힘입어 19세기 초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특히 <<배데커>>로 대변되는 실용적 여행안내서와 영국의 쿡(Cook) 여행사가 개발한 단체관광상품의 등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러한 요인들은 라인 여행의 형태를 그랜드 투어에서 대중관광으로 바꾸었으며, 1차 세계대전 전야까지 연간 라인 여행자들의 숫자를 2백만 명 가깝게 끌어올렸다. 민족주의의 시대인 19세기에 이러한 초국가적 라인 여행자들의 존재는 이 강을 “독일의 강”이나 “프랑스의 자연경계”만이 아닌 ‘유럽의 강’으로 만든 전제이다.
    19세기의 라인 여행자들은 여행을 통해 민족 정체성과 유럽 이념을 동시에 표출했다. 그들에게 이 강의 아름다움은 떠나온 고향 혹은 조국에 대한 애정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유럽 공동의 유산으로서 자연을 찬미하고 당대의 민족주의적 분쟁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표출하는 동인이 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라인 강을 둘러싸고 대립했던 프랑스와 독일의 지식인들은 이 강을 ‘경계’가 아닌 ‘교량’으로 간주함으로써 라인 강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 공화국’을 꿈꾸었다. 이처럼 최초의 유럽 이념의 탄생에서, 라인 대중관광의 도래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2차년도 연구는 1차년도와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낭만주의적 라인 신화가 20세기의 사회적 변화로 인해 정치적 성격을 다분히 함축하는 ‘철의 라인(Der eiserne Rhein)’ 신화로 변모하였음을 강조한다. 이 새로운 라인 신화는 냉전과 에너지 수요의 급증으로 인한 라인 강 연안의 무분별한 개발과 그로 인한 환경파괴의 부산물이었다. 2차년도 연구에서는 이른바 “라인 강의 기적”이 비단 서독의 경제발전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부터 비롯된 연속적인 현상이었음을 밝힌다. 이로써 환경사 연구을 통해 통상적인 시대구분의 기준이 변화될 수 있음을 또한 암시한다.
    2차년도 연구는 라인 강을 둘러싼 유럽 정체성이 본격적으로 성장한 계기로서 1975년 뷜 반핵운동과 1986년 산도스 공장 화재사건을 강조함으로써 연구의 초점을 상부 라인(Oberrhein) 일대로 축소한다. 아울러 유럽 정체성이 형성된 '위로부터의' 경로로서 유럽에서 가장 역사가 오랜 국제단체 가운데 하나인 국제라인위원회이 활동과 특히 상부 라인 인근의 각국 지방정부들로 구성된 상부라인회의의 활동을 조명하고, '아래로부터의' 경로로서는 뷜 반핵운동과 산도스 사건을 계기로 발족한 민간 환경단체들의 라인 강 생태보호를 위한 노력에 초점을 맞춘다. 마지막으로 1970년대 이후 상부 라인의 환경운동 과정에서 등장한 다양한 상징들을 통해, 20세기 후반에 라인 강의 유럽 정체성이 민족 정체성을 압도하였고 이로써 라인 강이 '유럽 기억의 장소'로 자리를 굳혔음을 확인한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이 연구는 한국 역사학계에서 최근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기억의 장소’와 ‘트랜스내셔널 전환’을 ‘자연’ 내지는 ‘환경’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조명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이 연구는 첫째, 학문적 차원에서 종래 민족 또는 국민국가 단위로 검토되어 왔던 기억의 장소 연구를 트랜스내셔널 차원으로 확장함으로써 역사학 담론의 지형을 넓히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트랜스내셔널 역사학이 결국은 이에 대응하는 민족사의 재컨텍스트화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유럽 기억의 장소가 탄생하고 확립되는 과정에 대한 이 연구는 그 자체로서도 의미가 있지만 초국가 시대, 다문화 사회로 접어든 오늘날 한국 사회에 민족 정체성이 갖는 의미를 새로이 성찰하게 해 준다는 맥락에서도 의미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연구는 단순히 이론적인 차원에서만 유럽 정체성의 확립 과정을 논하지 않고 라인 강이라는 구체적인 장소를 중심으로 민족 정체성과 유럽 정체성이 역사적으로 교차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공간으로의 전환(spatial turn)’이라는 최근 인문·사회과학의 추세와도 접점을 가진다. 마지막으로 이 연구는 일견 상이해 보이는 ‘대중관광’과 ‘환경운동’을 산업사회의 등장 이후 진행된 급격한 정치적, 사회적 변화 과정에서 나타난 인간과 자연의 상호관계의 변화로 묶어냄으로써, 국내에서 아직 시작 단계에 있는 환경사 논의를 풍성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둘째로, 사회적 차원에서도 유럽이라는 초국가적 정체성의 성립 요건과 그 경로 및 상징들을 탐색하는 이 연구는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최근 한국 인문·사회과학계에서 단일민족 중심 서사에 대한 비판적 논의들이 전개되면서, 동아시아라는 초국가적 정체성의 수립 가능성을 타진하는 목소리들이 활발히 나오고 있다. 그런가 하면 동시에 동북공정이나 독도분쟁, 일본 역사교과서 파동 등 국민국가의 강고한 이해관계가 쉽사리 약화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현상들도 공존한다. ‘지구지역성(glocality)’이라는 개념으로 압축되는 초국가적 요소와 민족/국민적 요소의 공존, 갈등, 화해야말로 오늘날의 세계를 이해하는 핵심 요소라고 할 때, 라인 강을 둘러싼 민족 정체성과 유럽 정체성의 상호관계를 분석하는 이 연구는 경계지역의 역사가 학계를 넘어 대중적 관심사가 되고 있는 한국 사회가 관심을 기울일 만한 사례가 될 것이다.
    셋째, 교육적 차원에서도 이 연구는 학생들에게 역사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 연구의 결과가 대학의 서양사 전공강의에 반영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항은 이 연구의 방향이 최근 개정된 교육과정에서 강조하고 있는 목표들, 즉 기후환경변화 등으로 인한 이른바 ‘녹색성장교육’과 국가정체성 교육의 강화, 그리고 다문화 사회로의 변화에 대한 대응 같은 현실적 요구에 직·간접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은 교육내용 확충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유럽 기억의 장소로서의 라인 강’은 이처럼 학계, 사회, 교육계의 요구를 두루 충족시킬 수 있는 시의성 높은 주제라고 판단된다.
  • 색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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