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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利시설의 과거와 미래 –역사와 공학의 융복합연구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水利시설의 과거와 미래 –역사와 공학의 융복합연구 | 2012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성정용(충북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2012S1A5A2A03034549
선정년도 2012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15년 02월 25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15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수리(水利)란 무엇인가? 인간생활에 이로움을 주기 위한 수리시설은 농경이 시작된 이래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었으며, 관개체계의 발달은 곧 농경발달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한 농경은 한 사회 내에서 인구증가를 해결할 수 있는 불가피한 수단이자 경제적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원천가운데 하나로서, 풍요로운 생산을 뒷받침할 수 있는 효율적 수단이 바로 수리 관개시설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수리시설은 청동기시대부터 발달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수도작의 실시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 이는 크게 洑와 같이 하천의 물을 막거나 물길을 돌려 관개하는 引水灌漑類型, 제방[堤]을 축조하여 물을 저수하고 충적지 전체를 경작지로 바꾸어 관개하는 築堤貯水灌漑類型, 방파제 등과 같이 물의 유입을 차단하여 경작지를 확대하거나 보호하도록 만드는 築堤保田類型으로 대별할 수 있다. 이들은 단순한 관개방식의 차이가 아닌 시기에 따른 발달과정도 담보하고 있다.
    우리나라 관개시설의 발달과정은 크게 4단계로 구분할 수 있을 듯하다. Ⅰ단계는 수도작농경이 본격화되는 청동기시대의 관개시설로서, 소규모의 引水灌漑 시설들이 작은 하천들마다 설치되고 이를 지역집단들이 소규모로 관리․운영하는 체계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인수관개유형은 이후 시기에도 규모를 달리하며 계속 만들어진다. Ⅱ단계는 원삼국시대 후기∼삼국시대 초기로서 고고학적 증거는 아직 명확하지 않으나, 문헌기록을 볼 때 하천과 하천을 연결하여 물의 공습과 배수를 하는 인공적인 수로의 존재가 예상되는 등 저습지 개발의 서막이 오는 시기로 생각된다. Ⅲ단계는 山間 계곡에 대규모 제방의 건설을 통해 하천 하류 충적지 전체를 개발하는 築堤貯水開田類型이 성립하는 단계이다. 이를 포함하여 늦어도 A.D.5세기 무렵에는 이전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관개체계가 성립되어 삼국시대 국가간 경쟁의 경제적 토대가 되었다고 보인다. Ⅳ단계는 고려시대 후기의 기록을 통해 저습지를 개발하는 더욱 발달된 관개체계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아직 고고학적 증거가 없어 검토의 여지가 있다.
  • 영문
  • What is irrigation? The irrigation facility which is to give benefits to human life has been an essential thing since the dawn of agriculture, and it is not much to say that development in the irrigation system is the very history of development in agriculture. Also, agriculture is an inevitable means to resolve the problem of increase in the population within a society and is, at the same time, one of the sources from which economic wealth can be accumulated, and the efficient means to ensure abundant production is the very irrigation facility. The irrigation facility in Korea began to develop from the Bronze Age, and was inseparably related to rice farming using water. The irrigation facilities in Korea can be largely classified into the Water-guiding Type Irrigation where the farmland is irrigated by blocking or rerouting the water in a river with a weir, the Farmland-forming Embankment Type Irrigation where a bank is built to store water and the entire alluvion is changed to a farmland and irrigated, and the Farmland-protecting Embankment Type Irrigation where the farmland is expanded or protected by blocking inflow of water with a breakwater. These show not only the simple difference in the irrigation methods but also the development processes changed over time.

    It seems that the development process of irrigation facilities in Korea can be largely divided into 4 stages. The first stage was the irrigation facility of the Bronze Age when rice farming started in earnest. A small Water-guiding Type Irrigation facility was thought to be installed on every small river, which was managed and operated by a local group in a small scale. These Water-guiding Type Irrigation facilities continued being made even after this period in different scales. The second stage was between the latter part of the Proto-three Kingdoms Period to the early part of the Three Kingdoms Period and, though the archaeological evidence is not clear yet, it is thought to be the period when the development of low marsh started, as the existence of artificial watercourses used to supply and drain water by connecting two rivers is expected from the literature record. The third stage was the stage when Water-storaging Embankment Type Irrigation appeared where the entire alluvion on the lower part of a river was developed by constructing a large scale embankment in a valley. Including this, it is presumed that, around the 5th century A.D. at latest, irrigation systems of different levels from that of the past were formed and became the economic basis for competition between the states during the Three Kingdoms Period. As to the fourth stage, it is found through the record in the latter part of the Goryeo Period that a more advanced irrigation system of developing low marsh might have been possibly achieved; as there is yet to be any archaeological evidence, it needs further reviews.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이 연구는 선사 시대 이래 우리나라 수리시설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립하고 그 발전단계를 파악하여 보는데 일차적 목적이 있으며, 둘째로 고고학적 정보를 토대로 이러한 시설들이 과연 당시 사회의 생산력에 어느 정도의 기여를 했는지 수문학적인 관점에서 지리정보시스템 등을 이용한 체계적인 분석을 시도하였으며, 셋째로 과거의 토목기술들을 체계적으로 복원하여 어떠한 방법들이 적용되었는지 파악하고자 하였으며, 넷째로 해외지역의 수리체계를대상으로 우리나라 수리문화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이해하는 자료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우리나라 고대저수지가 가지는 역사성과 의미는, 첫째 대규모 저수지 축조는 대규모의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는 중앙집권체제가 갖추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둘째로 저수지의 축조는 물을 안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고 개간을 가능하게 하여 생산력을 높여준 결과 국가 재정이 튼실해지고 농민 경제도 안정될 수 있었고, 셋째로 저수지 제방은 커다란 수압을 견딜 수 있어야 하였기 때문에 저수지 축조는 고도의 토목․건축 기술의 발전을 가져왔으며, 넷째로 『堤堰節目』과 『堤堰事目』등에 의하면 저수지 축조는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진휼의 성격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어, 제역과 진정의 병행은 사회안정망 설치의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편 우리나라 관개시설의 발달과정은 크게 4단계로 구분가능하다. Ⅰ단계는 수도작농경이 본격화되는 청동기시대의 관개시설로서, 소규모의 引水灌漑 시설들이 작은 하천들마다 설치되고 이를 지역집단들이 소규모로 관리․운영하는 체계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Ⅱ단계는 원삼국시대 후기∼삼국시대 초기로서 고고학적 증거는 아직 명확하지 않으나, 문헌기록을 볼 때 하천과 하천을 연결하여 물의 공습과 배수를 하는 인공적인 수로의 존재가 예상되는 등 저습지 개발의 서막이 오는 시기로 생각된다. Ⅲ단계는 山間 계곡에 대규모 제방의 건설을 통해 하천 하류 충적지 전체를 개발하는 築堤開田 유형이 성립하는 단계이다. 이를 포함하여 늦어도 A.D.5세기 무렵에는 이전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관개체계가 성립되어 삼국시대 국가간 경쟁의 경제적 토대가 되었다고 보인다. Ⅳ단계는 고려시대 후기의 기록을 통해 저습지를 개발하는 더욱 발달된 관개체계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아직 고고학적 증거가 없어 검토의 여지가 있다.
    수문학적 분석을 통해 영천 청제 등의 관개량과 농업 생산력을 추정해볼 수 있었는데, 청제는 상류에서 발원한 두 개의 풍부한 물줄기의 연간 유입수량 585,200㎥를 바탕으로 45ha 이내의 관개면적에 10년 빈도 한발에 견딜 수 있을 정도의 안정적인 용수 공급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의림지는 총 저수량(500,000㎥)에 대한 과거의 저수율을 분석한 결과 최하 저수율이 20% (103,020㎥)에서 55% (281,979㎥)로 나타났으며 현재의 관개용수 공급량을 과거 의림지 하류 관개지역에 공급하였을 경우 최근의 저수율과 근사한 범위 내에서 일치하는 양상을 나타낸 점은 축조 당시 의림지의 관개효율을 보여주는 것이다. 벽골제는 제외 지역 100㎢(약 1만여결) 면적에 관개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관개 제언으로서, 5만 여명의 인구를 먹여 살릴만한 방대한 농업생산력을 자랑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 전라북도 지역 생산량의 큰 부분을 차지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축조기술에 대한 분석결과 현대 저수지구조와 달리 고대 수리시설의 제방은 중심코어가 없고 실트와 점토 성분이 불규칙적으로 축조되어 있다. 따라서 고대 수리시설 제방의 차수성이 현대보다 좋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공학 수치해석 프로그램을 이용한 안정성 및 침투해석 분석 과, 함안 가야리와 울산 약사동 제방 모두 침윤선이 제내지측 사면의 경사면에 도달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는 제내지측 사면의 세굴, 침식, 파이핑 등의 현상으로 인해 제방 안정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을 보여주며, 원래의 제내지측 사면이 현재 추정한 것보다 상당히 완만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수리시설 가운데 베트남의 수로와 운하는 메콩강하류를 무대로 교통와 운송, 물의 급수와 배수 등 다용도로 사용되었는데 고대 부남의 수리시설이 집중되어 있는 옥 에오유적이 대표적이다. 캄보디아의 경우는 고대 크메르왕국의 수도였던 시엠립 지역에 많은 수의 저수시설이 축조되었다. 그 용도는 우기에 과다하게 내리는 강우를 저장하였다가 건기에 논에 대기 위함이다. 앙코르 톰, 앙코르 왓트 등 사원은 거대한 해자로 둘러싸여 있는데 해자의 기능은 방어, 지하수위의 변동으로 인한 내부 건축물의 붕괴 방지, 미적 효과, 힌두교적 세계관의 반영 등 다목적이지만 농업용수를 저장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이번 연구를 통해 다방면에서 적지 않은 파급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까지 서술한 바와 같이 우리는 수리시설에 대해 그 축조 시기나 주체 및 역사적 배경 등을 주로 다루면서, 고대에 거대한 제언을 축조할 수 있었던 기술적 토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 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연구동향은 역사학과 고고학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선사~중근세에 이르기까지 장구한 시간동안 수리시설의 변천과 발달양상이 담고 있는 함의를 총합적으로 해석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였다. 이러한 한계를 돌파하기 위하여 고고학과 역사학만이 아니라 토목공학·수문학 등이 결합된 융합연구를 통해 공학적·수문학적 관점에서 유적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할 수 있었다.
    이번 연구는 김제 벽골제와 영천 청제를 비롯한 고대 저수지들이 현대사회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역사적 자료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고대 유적을 찾아오는 탐방객들에게 이러한 저수지들이 가지는 정치적 의미, 경제적 의미, 사회적 의미, 토목기술적 의미를 알려주는 자료가 될 수 있다. 또 금번 공동연구를 통해 벽골제와 청제의 관개 면적을 추출해 내었기 때문에 이를 안내판에 표시하거나 시뮬레이션 작업을 통해 관개 면적의 넓이를 보여줄 수 있다. 목통은 저수지에 가두어둔 물을 논으로 빼는 역할을 하는 시설이다. 물속에 들어가서 목통의 마개를 빼고 막는 일이 얼마나 힘든가를 체험할 수 있다. 저수지 제방 축조에 사용된 부엽공법, 판축공법, 토낭 또는 草囊공법, 패각 이용법, 요철상 심 조성법 등을 체험하게 하여 토목 기술의 발전상을 알도록 할 수 있다. 특히 영천 청제와 제천 의림지는 지금도 사용하고 있으므로 모내기철에 통수식을 해서 농경의 중요성과 물 관리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면서 관광상품으로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금번 연구에서는 잔존한 유적 지층의 축조시기 순서에 집중하는 기존의 고고학적 연구방법과 달리 저수지 제방의 사면안정성과 차수능력 등의 공학적 성능을 평가하는 등, 고고학적으로 추정한 단면을 대상으로 공학적으로 과연 가능한 것인지 검증해보고자 하였다. 본 연구에서 개발되고 활용된 공학적 모델링 기법은 향후 다양한 고고 유적의 원형복원 과정에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기존의 일반적인 고고학 연구와 달리 고고학과 공학이 융합된 형태로 유적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도 제시할 수 있었으며, 향후 관련 연구에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나아가 현대의 저수지 및 토목구조물에 사용되는 기술은 근․현대의 학문적, 기술적 성과이기도 하지만 그 原流는 과거의 전통기술에 기반하고 있으므로, 전통 기술을 현대에 접목하여 자연친화적이면서 새로운 토목기술의 발전도 기대해볼 수 있다.
    또 CAT을 이용하여 제천 의림지와 영천 청제, 김제 벽골제 등에 대한 수문학적 분석을 실시하였던 바, 축조 당시의 관개량과 농업생산력을 보다 구체적으로 추정해볼 수 있었다. 이를 기록과 대비하여 봄으로써, 고대 수리시설들이 갖고 있는 관개 능력을 보다 구체적으로 검증해볼 수 있었으며, 우리 고대 수리시설이 갖고 잇는 특징과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색인어
  • 수리시설, 수도작, 관개체계, 발달과정, 引水灌漑, 築堤貯水灌漑, 築堤保田, 충적지 개발, 水文學, 지반공학, 농업 생산력, 제언, 고고학, 고대사, 융합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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