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여성 담론은 1920년대에 전 세계적으로 모더니티의 유입과 함께 일어났다. 조선에도 신인류가 출연한다. 한일병합 조약으로 시작하여, 조선 전체가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3.1만세운동으로 마무리된 1910년대가 가고, 식민지 현실이 본격화되는 1920년대가 되자 신인류인 ...
신여성 담론은 1920년대에 전 세계적으로 모더니티의 유입과 함께 일어났다. 조선에도 신인류가 출연한다. 한일병합 조약으로 시작하여, 조선 전체가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3.1만세운동으로 마무리된 1910년대가 가고, 식민지 현실이 본격화되는 1920년대가 되자 신인류인 신여성이 출연한다. 근대에 대한 매혹, 테크놀로지와 도시의 발달, 근대적 시각문화가 당도한 그 시기에 조선인들은 새로운 감각으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 시기는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띄었다. 그들은 ‘신(新)’의 타이틀을 달고 이전의 과거와는 다른 순간을 맞이했다. 갑자기 등장한 낯선 인간들, 그들은 양장을 하고, 보브단발을 하였으며, 뾰족구두를 신고 거리를 활보했다. 1920년대에 등장한 이들을 사람들은 ‘모던껄’라고 불렀다. “원숭이 궁둥짝 같은 홍안, 핏빛 같은 구홍, 제비꼬리같은 눈썹, 송곳 같은 구두 뒤축의 모-던 껄”로 묘사되듯이, 이들은 조선인들에게는 진기한 낯선 구경거리였다.
근대의 출발선은 식민지 아래였다. 식민지 상황에서 과거와의 급격한 단절은 근대를 향한 열망을 증폭시켰고, ‘새로움’은 지상과제가 되어 사회 전면에 부각되었다. 식민권력은 피식민자의 대대적인 저항 이후 지배의 효과적인 수단으로 문화적 계몽을 앞세우는 한편, 피식민지식인들 또한 당시의 비참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으로 근대문화의 수용을 요구했다. 이는 식민성과 모더니티에 대한 양가감정과 양가적 체험으로 나타났고, 이러한 양상은 1930년대 대중문화의 확산 과정에서 보편적으로 드러났다.
식민지에 대한 민족적 저항을 적극적으로 표출하기 어려운 식민지 상황에서 근대적 가치에 대한 동경은 식민지 상황의 열등감과 우울을 해소할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지식인을 중심으로 서양문화의 가치에 대한 적극적 수용의 움직임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신세대 범위는 전체 계층으로 확산되어갔다. 이제 신여성, 모던걸과 모던보이, 신세대는 사회의 젊은 층 전체에게 호소하는 개념이 되었다. 신여성 담론은 일제의 변화된 통치 방식과 함께 형성된 식민지 조선의 담론장 속에서 형성되었다.
본 연구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시기인 1930년대를 중심으로 한국, 중국, 일본 영화에서 재현된 신여성 양상을 비교 분석한다. 영화에서 재현된 신여성은 이 시기 각 나라의 모더니티, 국가, 젠더, 영화관객성의 접합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전시체제라는 위기적 상황에서 이 시기 십여 년간 영화가 국가적으로 어떻게 변화한 모습으로 생산되고 수용되었는지를 면밀한 안목으로 살펴본다.
홍콩 출신으로 미국학계에서 활동하며 저명한 페미니스트 영문학자이자 중국문화 전문가인 레이 초우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영화 스크린은 창, 프레임, 거울 이상의 것이다. 영화 스크린은 여성의 신체를 증거이자 증인으로 삼은 범죄 장면이며, 새로운 유형의 민족지적인 회화이며, 국제적인 문화시장에서 일종의 ‘전선’이고 아케이드인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여성의 몸이 영화 이미지로 시각적으로 구조화될 때, 이는 사회의 억압과 폭력이 의식적으로 진열되는 하나의 민속지적 진열장이 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1930년대 동북아 국가의 중요 담론이었던 신여성 담론이 영화에 반영되는 방식을 살펴보는 것은 당대 사회의 의식이 담겨있는 역사적인 증거물에 마주대함에 다름없다.
1930년대는 한중일 모두 비슷한 영화적 발전단계를 거쳐 갔다. 1930년대 초기 서양문물인 영화를 모방함으로서 자국 무성영화의 토착화를 꾀하고, 1930년대 중반기에는 발성영화로의 전환을 맞이하며 일대 변화를 보인다. 또한 사회주의 리얼리즘 영화, 일명 경향 영화가 활발하게 제작되고, 한중일 문화예술인들의 교류가 눈에 띈다. 그러다가 1937년 이후 중일전쟁 발발을 계기로 동북아 국가들은 전시체제에 돌입하고, 영화는 강력한 국가의 통제에 들어가는 변화를 공유한다. 또한 이 시기에 대중문화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영화가 수행하면서 영화 스타가 대중을 사로잡는 중요한 아이콘으로 기능한다. 한국의 문예봉, 중국의 롼링위, 일본의 다나카 기누요, 리 코우란의 스타 기호가 이 시기를 거치면서 변화된 의미를 보인다. 이와 더불어, 영화의 역할은 오락에서 프로파간다로 변모된 양상을 보이는데, 이는 당시의 급변하는 사회상과 영화 정책, 국가 통제 및 대중 무의식과 깊은 상관관계를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