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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한중일 영화의 신여성 비교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1930년대 한중일 영화의 신여성 비교 | 2012 년 | 정민아(동국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2012S1A5B5A07035918
선정년도 2012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14년 02월 28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14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신여성 담론은 1920년대에 전 세계적으로 모더니티의 유입과 함께 일어났다. 조선에서 근대의 출발선은 식민지 아래였다. 식민지 상황에서 과거와의 급격한 단절은 근대를 향한 열망을 증폭시켰고, ‘새로움’은 지상과제가 되어 사회 전면에 부각되었다. 식민권력은 피식민자의 대대적인 저항 이후 지배의 효과적인 수단으로 문화적 계몽을 앞세우는 한편, 피식민지식인들 또한 당시의 비참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으로 근대문화의 수용을 요구했다. 이는 식민성과 모더니티에 대한 양가감정과 양가적 체험으로 나타났고, 이러한 양상은 1930년대 대중문화의 확산 과정에서 보편적으로 드러났다.
    본 연구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시기인 1930년대를 중심으로 한국, 중국, 일본 영화에서 재현된 신여성 양상을 비교 분석한다. 영화에서 재현된 신여성은 이 시기 각 나라의 모더니티, 국가, 젠더, 영화관객성의 접합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1930년대는 한중일 모두 비슷한 영화적 발전단계를 거쳐 갔다. 1930년대 초기 서양문물인 영화를 모방함으로서 자국 무성영화의 토착화를 꾀하고, 1930년대 중반기에는 발성영화로의 전환을 맞이하며 일대 변화를 보인다. 또한 사회주의 리얼리즘 영화, 일명 경향 영화가 활발하게 제작되고, 한중일 문화예술인들의 교류가 눈에 띈다. 그러다가 1937년 이후 중일전쟁 발발을 계기로 동북아 국가들은 전시체제에 돌입하고, 영화는 강력한 국가의 통제에 들어가는 변화를 공유한다.
    본 연구는 한국영화 <미몽>(1936)과 <군용열차>(1937), 중국영화 <신여성>(1934)과 <교차로>(1937), 일본영화 <비상선의 여자>(1933)과 <숙녀는 무엇을 잊었는가>(1937)에서 나타난 여성 이미지 재현의 변화 양상을 비교 분석하였다.
  • 영문
  • The discourse on ‘New Woman’ arose globally with the influx of modernity in 1920s. In case of Korea, the coming of modernity happened under the colonial rule. Drastic severance from the past amplified the longing for modernity and the pursuit of ‘newness’ emerged as the supreme task in Korean society at large. After experiencing the wholesale resistant movement, the colonial authority put up a banner of cultural enlightenment while the colonized intellectuals demanded adoption of modern culture as a means of overcoming the miserable reality at the time. It resulted in ambivalent experience and feelings regarding colonialism and modernity, which became common phenomena in the course of the spread of popular culture in 1930s.
    In this research I have analyzed and compared how the ‘New Woman’ was represented in Korean, Chinese and Japanese films of 1930s: Korean films such as <Sweet Dream>(1936), <Military Train>(1937), Chinese films such as <New Woman>(1934) <Crossroads>(1937), and Japanese films such as <Dragnet Girl>(1933), <What Did the Lady Forget?>(1937). The New Woman represented in the films is meaningful as the articulation of modernity, nation, gender and spectatorship of each country at the time.
    The film industries in Korea, China and Japan have experienced similar process of development in 1930s. In the beginning of 1930s each country tried to nativize the silent film by emulating the western culture, and in the middle of 1930s the films of each country experienced a drastic change with the introduction of the talking film. The 1930s also witnessed active production of the socialist-realist films or the tendency films and the cultural exchange among the artists of the three countries. With the outbreak of the Sino-Japanese War in 1937, the Northeast Asia was put on a war footing and the films of the time were tightly regulated by th state authority.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신여성 담론은 1920년대에 전 세계적으로 모더니티의 유입과 함께 일어났다. 조선에도 신인류가 출연한다. 한일병합 조약으로 시작하여, 조선 전체가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3.1만세운동으로 마무리된 1910년대가 가고, 식민지 현실이 본격화되는 1920년대가 되자 신인류인 신여성이 출연한다. 근대에 대한 매혹, 테크놀로지와 도시의 발달, 근대적 시각문화가 당도한 그 시기에 조선인들은 새로운 감각으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 시기는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띄었다. 그들은 ‘신(新)’의 타이틀을 달고 이전의 과거와는 다른 순간을 맞이했다. 갑자기 등장한 낯선 인간들, 그들은 양장을 하고, 보브단발을 하였으며, 뾰족구두를 신고 거리를 활보했다. 1920년대에 등장한 이들을 사람들은 ‘모던껄’라고 불렀다. “원숭이 궁둥짝 같은 홍안, 핏빛 같은 구홍, 제비꼬리같은 눈썹, 송곳 같은 구두 뒤축의 모-던 껄”로 묘사되듯이, 이들은 조선인들에게는 진기한 낯선 구경거리였다.
    근대의 출발선은 식민지 아래였다. 식민지 상황에서 과거와의 급격한 단절은 근대를 향한 열망을 증폭시켰고, ‘새로움’은 지상과제가 되어 사회 전면에 부각되었다. 식민권력은 피식민자의 대대적인 저항 이후 지배의 효과적인 수단으로 문화적 계몽을 앞세우는 한편, 피식민지식인들 또한 당시의 비참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으로 근대문화의 수용을 요구했다. 이는 식민성과 모더니티에 대한 양가감정과 양가적 체험으로 나타났고, 이러한 양상은 1930년대 대중문화의 확산 과정에서 보편적으로 드러났다.
    식민지에 대한 민족적 저항을 적극적으로 표출하기 어려운 식민지 상황에서 근대적 가치에 대한 동경은 식민지 상황의 열등감과 우울을 해소할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지식인을 중심으로 서양문화의 가치에 대한 적극적 수용의 움직임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신세대 범위는 전체 계층으로 확산되어갔다. 이제 신여성, 모던걸과 모던보이, 신세대는 사회의 젊은 층 전체에게 호소하는 개념이 되었다. 신여성 담론은 일제의 변화된 통치 방식과 함께 형성된 식민지 조선의 담론장 속에서 형성되었다.
    본 연구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시기인 1930년대를 중심으로 한국, 중국, 일본 영화에서 재현된 신여성 양상을 비교 분석한다. 영화에서 재현된 신여성은 이 시기 각 나라의 모더니티, 국가, 젠더, 영화관객성의 접합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전시체제라는 위기적 상황에서 이 시기 십여 년간 영화가 국가적으로 어떻게 변화한 모습으로 생산되고 수용되었는지를 면밀한 안목으로 살펴본다.
    홍콩 출신으로 미국학계에서 활동하며 저명한 페미니스트 영문학자이자 중국문화 전문가인 레이 초우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영화 스크린은 창, 프레임, 거울 이상의 것이다. 영화 스크린은 여성의 신체를 증거이자 증인으로 삼은 범죄 장면이며, 새로운 유형의 민족지적인 회화이며, 국제적인 문화시장에서 일종의 ‘전선’이고 아케이드인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여성의 몸이 영화 이미지로 시각적으로 구조화될 때, 이는 사회의 억압과 폭력이 의식적으로 진열되는 하나의 민속지적 진열장이 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1930년대 동북아 국가의 중요 담론이었던 신여성 담론이 영화에 반영되는 방식을 살펴보는 것은 당대 사회의 의식이 담겨있는 역사적인 증거물에 마주대함에 다름없다.
    1930년대는 한중일 모두 비슷한 영화적 발전단계를 거쳐 갔다. 1930년대 초기 서양문물인 영화를 모방함으로서 자국 무성영화의 토착화를 꾀하고, 1930년대 중반기에는 발성영화로의 전환을 맞이하며 일대 변화를 보인다. 또한 사회주의 리얼리즘 영화, 일명 경향 영화가 활발하게 제작되고, 한중일 문화예술인들의 교류가 눈에 띈다. 그러다가 1937년 이후 중일전쟁 발발을 계기로 동북아 국가들은 전시체제에 돌입하고, 영화는 강력한 국가의 통제에 들어가는 변화를 공유한다. 또한 이 시기에 대중문화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영화가 수행하면서 영화 스타가 대중을 사로잡는 중요한 아이콘으로 기능한다. 한국의 문예봉, 중국의 롼링위, 일본의 다나카 기누요, 리 코우란의 스타 기호가 이 시기를 거치면서 변화된 의미를 보인다. 이와 더불어, 영화의 역할은 오락에서 프로파간다로 변모된 양상을 보이는데, 이는 당시의 급변하는 사회상과 영화 정책, 국가 통제 및 대중 무의식과 깊은 상관관계를 맺는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연구결과>
    1937년 중일전쟁을 기점으로 하여 한중일 멜로드라마에 나타나는 여성 이미지는 변모된 양상을 보인다. 본 연구는 1930년대 한중일의 영화를 살펴보고 영화들에 재현된 여성 이미지를 분석했다.
    첫째, 1930년대 조선영화에서 재현된 신여성의 의미의 변화양상.
    1930년대 중반 영화 속 신여성의 이미지는 타락의 이미지로 표현된다. <미몽>의 바람난 여자가 스스로에게 응징을 내리는 결말은 당대의 분위기를 투명하게 투영한다. 1937년 이후의 영화는 현모양처 이미지로 변모하면서 영화에 국가의 개입이 드러나는 징표로 작용한다. 중일전쟁 이후, 본격적인 국책영화 시작을 알린 <군용열차>에서 두 명의 대표적인 여성 캐릭터는 총후부인으로서 남성을 지지하는 현모양처형의 구여성적 이미지를 강화한다. 그러나 단순하게 이분화하기에는 복잡한 식민주체의 모순점이 틈을 메운다. 조선영화인이 제작하고 출연하고 조선인이 관객 대부분을 차지하던 이 영화들에서 결이 균질하지 않고 분열을 일으키는 측면이 보였다. 세밀한 영화적 분석을 통해 당시의 복잡한 역학관계를 유추하고 새로운 영화역사 그리기가 가능해진다.
    둘째, 1930년대 중국영화에서 재현된 신여성의 의미의 변화 양상.
    1935년 <신여성>에서 주인공을 연기한 롼링위는 작품을 둘러싼 갈등으로 고민하다 자살했는데, 이 스타의 자살은 중국영화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였다. 영화 <신여성>은 여성 글쓰기와 여성에 관한 글쓰기라는 이중 구조를 가진 영화인데, 신여성에게 드리워진 운명의 비극적인 결말에 대한 사회적 알레고리를 묘사했다. 이는 신여성과 부권/남권 문화의 비극적인 충돌로 볼 수 있다. 같은 해에 만들어진 <신녀>에서 표현된 신성한 어머니는 좌익영화가 하층민/노동계급의 삶 속에서 숭고함을 찾는 방식을 보여준다. 굴욕 당하는 불행한 여성을 통해 사회의 고난과 병리를 지칭하고, 그녀의 숭고함과 불행을 사회동원의 힘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시도였다.
    <교차로>에서 하층민 여성은 동일한 계급의 남성과의 사랑을 성취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행위하고, 스스로 생존을 책임지며, 결국 사회의 곤궁함에도 불구하고 공동체 정신을 발휘하며 희망을 행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좌익영화, 사회주의 리얼리즘에서 추구하는 씩씩한 여성상이다. 본 연구는 중국영화의 여성 재현이 자유로운 신여성, 파멸하는 신여성에서 숭고한 노동자 어머니상을 거쳐 전사의 이미지로 변모하는 과정의 역사적 흐름을 탐색해보았다.
    셋째, 1930년대 일본영화에서 재현된 신여성의 의미는 변화 양상.
    1930년대에는 오즈 야스지로와 나루세 미키오, 미조구치 겐지가 각각 자신만의 스타일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멜로드라마를 지속적으로 제작했다. 1930년대 후반 일본은 본격적으로 군국주의 국가체제로 돌입하면서 정치적인 일대 변화를 맞이하고, 이러한 변화는 영화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곧이어 영화산업은 국가통제 하에 들어가고 군국주의가 요구하는 전쟁을 정당화하는 영화를 제작하게 된다. 미조구치 겐지 같은 감독은 끝까지 저항해보지만, 결국은 국가시책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고, 이후 멜로드라마는 불필요한 형식으로 간주된다.
    <비상선의 여자>의 두 여성 캐릭터는 1930년대 신여성을 바라보는 남성적 시선을 체현한다. 이중적 근대화라는 기치 하에 서양의 것을 ‘일본적인 것’이 주도권을 잡고 받아들이는 일본 특유의 근대화라는 정책적 목표에 적절하게 영화의 여성 인물들이 그려진다. 근대화에 대한 자신감을 획득한 일본은, 전통여성과 모던걸을 대립구도로 놓고, 일본적인 전통성을 회복하는 것의 가치를 중요하게 표방한다. 중일전쟁 시기에 만들어진 소시민 코미디 <숙녀는 무엇을 잊었는가>는 가부장의 권위를 회복하고 현모양처의 본모습을 찾아가는 여성들의 자기반성을 그린다.
    1930년대의 영화에 대한 담론은 아시아적 근대성에 관련된 관념들이 서로 교섭하는 장이며, 신여성은 근대 대중문화의 가능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표상한다. 영화와 여성스타들은 도시적 사회구성체의 핵심에 놓였고, 동북아 영화에서 신여성의 등장은 젠더와 여성성의 규준, 그리고 모더니티에 관한 광범위한 논의를 촉발시켰다. 영화의 모더니티는 여성스타들의 육체에 구현되었다. 의상이라는 도상을 통해, 특히 서양식 의복과 전통 의상 사이에 고도로 드러나는 긴장 관계, 그리고 새로운 근대 건축술과 실내 디자인의 대중성을 통해 신여성들은 모더니티의 경험 내에서 획득할 수 있는 새로운 정체성의 대표적 자아가 되었다.

    <연구 활용방안>
    1) 1930년대 한중일 영화 비교연구 방법론의 지평을 확대한다.
    2) 초기 한중일 영화 미학과 사회문화적 의미에 대한 연구를 심화한다.
    3) 동아시아 영화학의 소통 및 연구자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 색인어
  • 신여성, 모더니티, 1930년대 한국영화, 1930년대 중국영화, 1930년대 일본영화, 멜로드라마, 국책영화, 여성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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