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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2세기 중세 비잔티움 귀족 엘리트 여성의 정체성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7-12세기 중세 비잔티움 귀족 엘리트 여성의 정체성 | 2012 년 | 황원호(명지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2012S1A5B5A07035627
선정년도 2012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14년 02월 19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14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1-2차 세계대전 이래로 현대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인 능력은 급속하게 향상되어왔다. 그 결과 정치, 경제, 학문과 예술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 리더들이 지속적으로 배출되고 있으며 국가를 통치하고 사회를 통합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세 서양의 여성들은 어떠했을까 ? 중세 유럽인들의 여성관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에 비해 정신과 육체가 나약한 존재로 인식되었으며 남성의 보호자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이들의 역할은 가사 일과 자녀를 교육하는 일에 한정되었으며 정부기관 및 군대에서 공직을 수행하고 교회에서 성례를 집행하는 일은 주로 남성의 몫이었다.
    그러나 한편 중세 서양 세계의 모든 여성들이 이러한 이분법적 역할 구조에 종속된 것은 아니었다. 동시대 문헌 사료에 따르면 남성 중심적 가부장 질서와 사회 구조에서도 일부 여성들은 남성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비잔티움 귀족 여성들은 집안의 가장이 부재할 경우 남편을 대신해 세습 영지를 상속할 수 있었고 가장을 대신해 가문을 이끌어 갈 수 있었다. 그렇다면 중세 비잔티움 여성들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었을 까 ? 그것은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이들이 가문의 세습 재산을 남자 형제와 균등하게 상속받을 수 있었고 결혼 후에도 이들의 지참금이 남편의 재산과 혼용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비잔티움 여성들은 고대에 비해 우월한 경제적 권리에 따른 사회적인 지위를 가질 수 있었으며 결혼 후에도 남편의 성(姓)을 따르지 않고 부계나 모계의 성(姓)을 계승할 수 있었다. 또한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역할을 통해 가문을 부흥시키고 국가를 통합하는데 기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러한 범주의 여성들을 중세의 권력 엘리트 여성으로 간주하게 된다.
    본 연구의 목적은 7세기-12세기 인장에 찍힌 이름과 칭호, 이미지를 중심으로 비잔티움 권력 엘리트 여성의 역할과 정체성을 조명하는 것이다. 중세 비잔티움 국가와 사회에서 권력을 행사한 엘리트 여성들은 어떠한 지위에 있었던 사람들이었을까 ? 또한 이들은 자신의 사회적인 지위와 역할을 어떻게 표현했을 까 ? 이제까지 중세 비잔티움 여성사 연구는 주로 문헌 사료를 토대로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으며 남성 중심 역사에 가려져 있었던 여성들의 지위와 다양한 역할을 드러내는 데 기여해 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와 함께 최근에는 인장에 관한 연구 역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즉 인장은 동시대인들이 서신이나 각종 증서 및 유언장의 진위를 보증하기 위해 발행한 도구였다. 따라서 인장과 같은 시각자료들은 중세인들의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거울과 같은 기능을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문헌 사료들이 말해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동시에 확인시켜 주기 때문이다. 즉 각 시대에 인장을 발행한 인물 개개인의 신분과 지위 그리고 역할에 관한 매우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까지 발견된 수많은 인장들은 각 시대별로 고르게 나타나고 있으며 각 인장에는 인장 소지자의 이름(개인명과 가문명)과 칭호 그리고 친족 관계와 초상화들이 규칙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문헌 사료의 저자들의 관심 밖에 있었던 인물들에 대한 신원 정보들을 체계적으로 제공 해 준다. 이에 본 연구는 여성들이 발행한 인장들을 수집하고 여기에 담긴 여성의 이름과 칭호 그리고 다양한 이미지들을 통해 동시대 엘리트 여성의 지위와 역할을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여성들의 역할과 지위 그리고 집단적 정체성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되었는지 조명해 보았다. 본 연구의 방법과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비잔티움 여성들의 인장에 찍힌 다양한 칭호들을 분석했다. 궁정 귀족 여성들이 수행한 역할과 이에 따른 지위 체계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궁정 여성들의 역할과 지위 체계는 중세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들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나 권력 행사는 원칙적으로 제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황제(남성)과의 다양한 사회적인 관계(부부, 모자, 남매, 부녀 관계 등)를 통해서 상당한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특히 인장에 찍힌 황후의 초상이나 여성들이 개인적으로 숭배하는 성인의 초상화들은 동시대 엘리트 여성들이 공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자기 정체성(self-identity) 혹은 자기 이미지(self-image)를 잘 드러내는 것이며, 남성과의 협력을 통해 혹은 단독으로 정치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존재라는 것을 각인시켜준다.
    둘째, 비잔티움 여성들의 인장에 찍한 다양한 가문명(patronyme)을 분석했다. 이는 비잔티움 귀족 여성들의 출신 가문에 대한 집단적 소속감 혹은 연대 의식을 잘 보여준다. 주로 상류 귀족 가문에서 배출된 엘리트 여성들의 인장은 7세기에서 10세기 동안에는 드물게 나타나는 반면 11세기 비잔티움 귀족 가문들이 발전되면서 급격하게 증가한다. 이때부터 여성들은 그들의 가문명(patronyme)을 인장에 새겼는데, 특히 남편의 가문명 보다 주로 출신 집안의 부계 또는 모계의 이름을 따랐다. 그것은 동시대 비잔티움 귀족들 간에 정략결혼을 통한 동맹관계가 점차 중요해 짐에 따라 동시대 귀족 여성의 출신 집안에 대한 유대 관계를 잘 확인시켜준다. 이는 특히 가문의 딸들이 집안의 상속녀로서 지닌 특권을 드러내는 것이었고 가계의 혈통성을 보전하는 존재로서 스스로를 중요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셋째, 비잔티움 인장에 찍한 다양한 친족 관계들을 살펴보았다. 12세기 콤네노스 황실 가문의 등장과 함께 황실 여성들을 다양한 자신의 황족과의 다양한 친족 관계를 인장에 새겨지기 시작한다. 그것은 귀족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 그리고 특권들이 공식적으로 인정됨으로써 이들의 집단적 정체성이 확립되었음을 증거 해 준다. 특히 어머니 안나 달라세네의 막강한 역할과 정치적 능력을 통해 권력을 잡은 알렉시오스 1세 콤네노스는 어머니의 섭정과 콤네노스 일족들의 지지를 중심으로 새로운 국가 체제를 세우는데 성공했다. 이때부터 12세기 황실 여성들은 국내 뿐 아니라 외국 왕실의 가문과의 동맹을 위한 정략결혼에 보다 활발하게 참여했고 황녀들 역시 자신의 합법적인 혈통성(porphyrogenneta)을 인장에 공식적으로 새겼다. 그 결과 귀족 가문의 남성들 역시 그러한 황실 여성들과 맺은 다양한 친족 관계를 자신의 인장에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12세기에 이르러 적어도 비잔티움 상류 여성들은 더 이상 남성의 지위에 따르는 부차적인 존재가 아니라 가문의 번영과 국가적 통합을 위한 독립적인 존재로 인식되었음을 각인시켜준다.
  • 영문
  • In today’s world, we find many female outstanding leaders in various domains; politics, economy and culture in national and international scale. Their influence and ability have considerably increased. Moreover it is said that the power elite women will appear more and they become decision makers in the international affairs keeping pace with the fast globalization in the course of the 21th century.
    On the other hand, how was it like to be women in the medieval Byzantium? According to the Byzantine ideology, women were thought to be weak in body and fragile in soul compared to men. So they had to be devoted to education for children and to management of household while men occupied major positions in the public domains, for example, in the imperial Army or civil Administration as well as in the Church. However, the byzantine literary sources show a class of women not always subject to traditional role divisions, and taking male positions in public domains.
    The Byzantine power elite women came usually from noble families enjoying the economic privilege, political influence and social connections. Thus these women could inherit the family properties equally with male heirs and even managed the patrimony in the absence of family’s male head. Moreover, their dowry was not subjected to their husband’s properties. For this reason the aristocratic heiresses took usually the paternal or maternal family names instead of their husband’s family name and also even after marriage, they could wield a considerable influence on making their families’ promotion.
    Many studies of Byzantine women have contributed to illustrating the women’s lives and careers as well as their roles. However, how much had the roles of these women changed in the course of the 7th and 12th centuries ? It seems that the answer to this question is not clear in the recent studies only based on the literary sources. By the way, we have the other historical sources very useful to identify the Byzantine women’s roles and its changes during the same period. The Byzantine dated seals, which were used to authenticate legal documents and letters, are nowadays considered to be very important research material because they provide us with much information on the identities of Byzantine people. A group of female signers’ names (family and given names), titles, kinship ties and symbolic images are well attested on a number of dated seals. Thus in the light to the seals elements stamped on the seals, this paper will highlight the Byzantine power elite women’s roles and identities changing in the medieval Byzantine history.
    Now we can sum up some general points from what we have analysed; Firstly, the presence of a different rank of titles on the seals demonstrates some sort of power and influence that the Byzantine elite women had wielded not only for their family’s promotion but also for the Empire’s political integration. Literary and sigillographic sources describe that these female leaders’ influences were very significant in the historical events. The official titles attributed to empresses and aristocratic women show clearly the elite women’s roles and identities in Byzantium because it used to be attributed to the imperial wives and mothers or later even to daughters. Moreover the effigy of empresses or images of Mother of God stamped on their seals reveals also the elite women’s most public self-images or self-identities. Because, if an emperor-husband died leaving a young heir, then it was expected that the child’s mother could act as regent and if an emperor-husband was unable to carry out his duties then his wife stepped in the public life.
    Secondly, the different type of names and titles on the seals reflects the change of the elite women’s roles and identities in the course of 7th and 12th centuries. Between the 7th and the 10th centuries, the remaining seals for empresses and aristocratic women are much less. It might be because the Empire was the most concerned with its military survival against the Arabs. One of the dominant images of empresses from this period was as wife and mother. Nonetheless two empresses were responsible for the restoration of icons during the period of Iconoclasm. Of two women, Eirene played a role of the sole ruling empress. The other iconophile empress Theodora is portrayed in written and sigillographic sources as anxious for the salvation of her iconoclast husband and regent for her son. It is significant that the seals of noble women come to the fore at the same period.
    Thirdly, the addition of the family name to given name on the seals illustrates the elite women’s roles and identities changing from the 11th century. We can understand that from the empress Zoe through to the women of the Komnenian dynasty, aristocratic ladies did on occasion wield imperial power for themselves and certainly provided a force to be reckoned with. Especially Anna Dalassene’s dramatic life and long career confirms that from the 11th century the daughter s of noble families played more significant role in favor of their families as bearers of lineage and property while the aristocracy extended its power with in the Byzantium.
    Finally, the different kinship ties on the seals confirm that byzantin women had access to political power through the relationship with their family male members. This might be as mother (the empress Eirene and Theodora), wife (the empress Theodora and Anna Dalassene and daughter (the empresses Zoe and Theodora). Thus, in the course of the 12th century, the increasing numbers of the kinship ties on the seals demonstrate that the byzantine women’s roles and identities were the most formulated in public domains with their social position culminating.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의 목적은 비잔티움 제국 황실과 귀족 여성들의 인장에 찍힌 신원 정보를 분석함으로써 권력 엘리트 여성들의 역할과 지위를 살펴보고 이들의 집단적 정체성 형성 과정을 조명하는데 있다. 이를 위해 본고는 7세기에서 12세기 비잔티움 인장에 찍힌 황후와 귀부인들의 성과 이름, 칭호와 이미지들을 문헌 사료에 나타나는 증거와 함께 분석하고 이들의 지위와 역할이 변화됨에 따라 동시대 여성의 정체성은 어떻게 발전되었는지 살펴보았다.
    첫째, 인장에 찍힌 다양한 칭호들은 궁정 귀족 여성들이 수행한 역할과 이에 따른 지위 체계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궁정 여성들의 지위 체계는 중세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들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나 권력 행사는 제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과의 다양한 인적인 관계 (부부, 모자, 남매, 부녀 관계)를 통해서 상당한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음을 증거한다. 특히 인장에 찍힌 황후의 초상이나 여성들이 개인적으로 숭배하는 성인의 초상들은 동시대 엘리트 여성들이 공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자기 정체성(self-identity) 혹은 자기 이미지(self-image)를 잘 드러내는 것이며, 남성과 협력을 통해 공적인 분야에 참여할 수 있었던 존재라는 것을 각인시켜준다.
    둘째, 인장에 찍한 다양한 성(family name)은 비잔티움 귀족 여성들의 출신 가문에 대한 집단적 소속감 혹은 연대 의식을 잘 보여준다. 주로 상류 귀족 가문에서 배출된 엘리트 여성들의 인장은 7세기에서 10세기 동안에는 드물게 나타나는 반면 11세기 비잔티움 귀족 가문들이 발전되면서 급격하게 증가한다. 이때부터 여성들은 그들의 성(patronyme)을 인장에 새겼는데, 특히 남편의 성 보다는 주로 출신 집안 부계 또는 모계의 성을 따랐다. 그것은 동시대 비잔티움 귀족들 간에 정략결혼을 통한 동맹 관계가 점차 중요해 짐에 따라 동시대 귀족 여성들은 출신 집안과의 관계 즉 상속녀로서 갖는 지위와 특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려고 했음을 잘 보여준다.
    셋째, 인장에 찍한 다양한 친족 관계(kinship ties)들은 12세기 콤네노스 황실 가문의 등장과 함께 귀족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 그리고 특권들이 공식적으로 인정됨으로써 이들의 집단적 정체성이 확립되었음을 증거해 준다. 특히 어머니 안나 달라세노스의 막강한 역할과 수완을 통해 권력을 잡은 알렉시오스 1세 콤네노스는 그녀의 섭정과 콤네노스 일족들의 지지를 중심으로 새로운 국가 체제를 세우는데 성공했다. 이때부터 12세기 황실 공주들은 국내 뿐 아니라 외국 왕실의 가문과의 동맹을 위한 정략결혼에 보다 활발하게 참여했고 황녀들은 자신의 합법적인 혈통성(porphyrogenneta)을 인장에 공식적으로 새겼다. 그 결과 귀족 가문의 남성들 역시 그러한 황실 여성들과 맺은 다양한 친족 관계를 자신의 인장에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12세기에 이르러 적어도 비잔티움 상류 여성들은 더 이상 남성의 지위에 따르는 부차적인 존재가 아니라 가문의 번영과 국가적 통합을 위한 독립적인 존재로 인식되었음을 각인시켜준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학문적-사회적 기여도

    ▶ 여성들의 역사적 가치관 확립에 기여 ;
    본 연구는 서양 중세의 여성 특히 비잔티움 제국 엘리트 여성들의 신분과 지위 그리고 역할들을 이해함으로써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인재가 되기 위한 다양한 조건들을 인식하고 이에 따른 역사적인 가치관과 올바른 여성관을 정립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 중세 비잔티움 역사와 문화 연구에 기여 ;
    오늘날 역사학계에서 여성사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세 비잔티움 여성에 관한 연구는 서유럽 여성사 연구에 비해 매우 미흡한 실정이다. 본 연구는 향후 비잔티움 여성사 뿐 아니라 비잔티움 역사와 문화 연구를 촉진시키는데 기여할 것이다.

    2) 인력 양성 방안

    ▶ 오늘날 여성의 인구는 매년 증가하고 여성의 교육수준 또한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 공공 기관과 회사 그리고 학교와 시민 복지 기관 등에서 여성 인재들의 활발한 참여와 능력이 더욱 필요해 지고 있다.

    ▶ 특히 국가와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여성 리더들과 전문 연구직 여성들에게 본 연구는 이들이 갖추어야할 자질과 덕목을 함양하고 높은 인문학적 지식을 제공함으로써 세계적인 인재를 양성하는데 적극 기여할 것이다.

    3) 교육과의 연계활용 방안

    ▶ 다양한 교재로서 활용 방안
    본 연구는 학술 논문에 머물지 않고 향후 중학교와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과 대학원 강의와 연구 그리고 여성 문화 센터 및 사회복지기관에서 연계학습이 가능한 교재로 활용할 수 있다.

    ▶ 역사 다큐 제작을 위한 소재로 활용 방안
    본 연구는 역사적인 내용을 인장을 통해서 설명하였다. 따라서 인장에 찍힌 다양한 이미지를 다큐 제작에 활용함으로서 중세 여성의 지위와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이해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 색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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