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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이츠의 비잔티움 재현과 욕망의 전복: 새로운 시각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예이츠의 비잔티움 재현과 욕망의 전복: 새로운 시각 | 2012 년 | 김재봉(동아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2012S1A5B5A07036137
선정년도 2012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14년 02월 17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14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모든 논지를 욕망의 생성 혹은 욕망함과 욕망의 승화와 정화 그리고 이로 인한 내면적 갈등의 시화(詩化)에 두었다. 예이츠의 비잔티움은 상상으로 이동하는 영원하고 완전한 삶의 성스러운 도시이며 현실의 시간으로부터의 피난처(Tindall 31)가 된다. 시인은 이렇게 마음속에 그린 이상적인 영역에서 오욕의 인간 속성을 정화하고 신의 성화 속에서 불사조와 같은 영원한 지성의 예술품으로 탈바꿈해서 완전한 삶을 누리려 한다. 그러나 이 영적 완전성의 상징인 황금의 새는 모든 지상의 속성을 거부하는 인간 외적인 존재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가공의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단지 시인의 환상에서 현현할 뿐이다.이러한 영혼의 여정과 환생의 열망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의 현실세계에 대한 안타까운 욕망은 계속 전복되고 단절돼 나타난다. 영원히 존재하는 영적 완성의 조형물로 변신하려는 예이츠의 꿈이 영속적인 실상으로 구현되지 못하고 황홀한 환상의 재현으로 그치고 마는 것이다. 시적 화자가 꿈꾸는 세계가 시간을 벗어난 초월적 영역이므로 인간의 모습과 인간의 속성을 가지고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이 완전한 삶을 갈망하지만 실현시킬 수 없는 것은, 인간의 실제 삶은 그와 같은 갈등과 욕망이 제거된 진공 상태의 순수 상태에서는 불가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상반요소들(antinomies)의 복합체이고 그 인간의 삶이 실현되는 현실도 이와 마찬가지로 뒤얽힌 상반요소들이 맞물려 있다. 갈등과 대립은 상존하고 인간의 외면뿐만 아니라 내면에서도 이 현상은 늘 발생한다.시인은 시의 흐름상 이동하고 있지만 실제 움직일 수 없으며 사실상 자신이 부인하고 탄식하는 현실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이상적인 세계로의 지향은 동시에 이를 실현할 수 없다는 인식을 품고 있다. 결국 심리적 위안만 주는 허구의 상상을 통한 이동만 가능하므로 역설적인 욕망의 미충족이 계속 발생할 것이다. 그래서 예이츠의 비잔티움 재현은 환상을 통한 심미적 재현에 그친다. 일체 만물이 상반의 대립구조를 형성하는 현실의 시간에 묶인 인간은 정신 영역에만 설정되는 가공의 세상을 실제로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시공초월의 예술과 지성을 구현한 비잔티움은 예이츠가 육신의 세계를 떠나 영적 존재로 승화할 영역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는 다시 한 번 자신의 현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 영문
  • This paper focuses on the versification of desire arising, desiring, sublimation and purification of desire and following inner conflicts. The Byzantium of W. B. Yeats to which only imagination carries us is a holy city of the eternal and complete life and a safe haven from temporal reality. The poetic persona representing the poet wishes to live a complete life there by transforming himself into an artifice of eternity in a holy fire like a phoenix and by purifying himself of human impurities. The golden bird, a symbol of Yeats's spiritual eternity is an artificial creature that refuses all worldly attributes in reality. Therefore it only exists in the vision of the poet.
    As this aspiration of spiritual journey and reincarnation gets stronger, his wistful desire continues to appear subverted and disconnected. The dream of Yeats to metamorphose into a creature of spiritual perfection and eternal living only appears a splendid representation, not a real perpetual entity. The world imagined by the poetic persona is a transcendental sphere out of temporal limitation. Real human life is impossible to exist in the vacuum state deprived of desire and conflict. Human beings are complex creatures of antinomies and the reality where they live their worldly lives is also made up of antinomical factors. Conflicts and confrontations exist all the time both in the inner and outer sphere of humans.
    The poet moves along with the movement of the verse and cannot do that in the real world. Byzantium is only imagined and assumed as a Utopia for the poet to realize his desire. Thus, in actuality, the representation of Byzantium connotes a recognition of an impossible realization of the spiritual voyage to the place. Therefore, paradoxically, unrealized desires arise perpetually. In short, Yeats's subverted desire means only an aesthetic representation of Byzantium.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비잔티움을 주제로 한 두 편의 시에서 예이츠는 상반요소의 이항대립 구조를 치밀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규명한다. 그 다음 그 대립 구조에서 표면상 시적 화자가 지향하는 바와 배격하고 부인하는 대상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새로운 시각으로 시를 분석하였다.
    시인이 비잔티움을 시에 재현하면서 자신의 현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탕에 두고 있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그 현실에 대해 욕망함과 그 욕망의 실현이 좌절됨에 따른 반발로의 여정에 오른다.육신의 옷을 입고 만족과 충족의 즐거움이 있다면 그 옷을 벗어던지고 영혼의 자유로움과 신비의 변신을 꿈꾸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잔티움은 예술적 심미적 정서적 동경을 체화할 모든 요소를 지녔다고 생각하지만 단 하나 현실과 유리된 존재불가능한 세계로 새로이 창조되고 있다. 새로운 시각으로 시를 뒤집어 읽고 의미를 산종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고 또 이를 실행할 용기도 필요하다.
    두 편의 시에는 모든 것이 배치된다. 유한한 자연세계와 불멸의 이상세계, 생성 변화하는 인간 세계와 정화되고 조화로운 영원한 세계, 육식의 세계와 영혼의 세계, 관능적 향락을 추구와 지성과 심미적 아름다움의 지향, 젊음과 노년, 죽음과 사멸하지 않는 영원한 지성의 기념비. 이러한 대립 구조에서 시인의 표면적 의도는 모두 소멸이 아닌 불멸을 지향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가 멸시하는 시선을 던지는 유한성과 관능의 젊음이 좌절된 심리가 시에 숨어 있다. 즉, 시에서 노인은 극도로 미약하고 무능하며 무력한 존재로 묘사되고 눈에 보이는 모든 대상은 욕망과 번식에 사로잡혀 있다. 이 구도를 노인의 절망감과 젊음의 무지한 욕망의 분출로만 볼 수 없다. 오히려 욕망을 실현하지 못하는 시적 화자가 자신의 내면을 은닉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영혼의 자유로움에 대한 칭송은 생명에 대한 집착이 될 수 있다. 동경의 대상을 먼 역사상의 과거에 두고 이를 미화하여 욕망 실현을 허구화하고 있다. 이 점은 눈앞의 현실에 대한 도피이고 자신의 욕망 실현이 본능보다 이성과 정신성에 있다고 절규하는 것은 그 반대 방향으로 치닫고 싶은 시인 의식의 반증이다.
    염원과 현실, 예술 작품 속 인물과 현실 속의 노인, 욕망의 승화와 욕망에 억매임을 이항 대립으로 두고 대체로 전자에 논지를 집중한 기존의 시각을 다시 검토하고 이를 반론할 논리를 확립하여 새로운 시 읽기를 제시하고자 한다. 이러한 전략은 기성의 정전과 정전화된 텍스트에 대해 그 내부에 존재하는 불일치와 균열을 드러내는 해체의 전략으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데리다(Jacques Derrida)에서 기인하다. 예이츠의 시에서 가장 일반적인 해석이 많고 그 해석이 경직된 정답으로 수용되는 현실에서 해체(deconstruction)의 시각으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강력한 갈망 뒤에 숨은 실현되지 못한 욕망의 그림자를 읽는 것은 대단히 가치 있는 새로운 시각이 될 것이다. 반복되는 유사한 비평적 시각으로 인해 거의 정전화된 작품과 굳어진 해석은 역설적으로 시가 가진 풍부한 함의와 유추의 가능성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이런 바탕위에 모든 성역화되고 정전화된 중심적이었던 것들을 전복하고 권위를 가진 의미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허위와 억압의 근원을 드러내고자 하는 새로운 해체적 접근으로 예이츠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을 다시 읽고자 한다. 기성의 해석을 통해 형성된 의미들 사이에는 부재의 공간이 있게 마련이어서, 그 공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여지는 언제나 가능할 것이다.
    이런 시도는 기존의 연구와 그로 인해 구축된 모든 의미구조를 분해 말살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반대로 그 구조에서 새로운 힘을 발생시키게 될 것이다. 즉 구조는 해체를 통해서 살아나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시된 의미들은 절대적 현존에 이르지 못하고, 어떤 의미가 사라질 때 진정한 의미들이 생산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해체를 통해, 혹은 새로운 시도로 기존의 의미구조에 다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의미를 분산시킨다는 뜻의 ‘산종(散種, dissemination)’으로 나아가고, 이 과정을 통해 의미의 영역을 무한히 확대시키게 된다.
    어떤 텍스트라도 주체로 환원되지만 그 주체에 대한 이중의 해석(double reading)은 언제든지 가능하다. 그리고 이중의 중심이 생겨났다고 해서, 텍스트의 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해체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기존의 의미를 전적으로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다. 해체란 의미를 무너뜨리기보다는 보완하고 대체하면서 새로운 것을 산출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이론적 접근을 통해 예이츠의 비잔티움 시편에서 이항대립의 소외된 요소인 욕망에 초점을 두고 연구하였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시에 내재된 욕망을 이해하려면 시인의 전기적 요소를 반영한 일련의 시편들을 이해해야 한다. 예이츠는 특히 노령에 집착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현실적 노력과 문학적 상상을 병행했다. 본스타인(George Bornstein)이 지적한 것처럼 노화는 예이츠의 생애 내내 그의 시에서 하나의 주제 이상이었다(46). 이 집착은 주제나 기교면에서 한결같이 심화되고 강력해진다.
    『어쉰의 방랑』(The Wanderings of Oisin)의 어쉰은 노령에 대한 무자비한 부정적 시각을 제시한다.「그대가 늙었을 때」("When You Are Old")에서도 연인은 한때 사랑받았었다는 위로만 갖게 되는 때인 노령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변함이 없다.「연금 수령자의 탄식」(“The Lamentation of the Old Pensioner”)은 노령에 대한 한탄이다. 그레고리 부인의 장원에 바쳐진 「쿨호의 야생백조」("Wild Swans at Coole")는 노쇠를 반추하고「시립미술관을 다시 찾다」(“The Municipal Gallery Revisited”)는 벗들의 이미지 명상으로 연로한 자신을 위로한다. 능동적 상상력이 그에게 노령에 대한 항거와 창조의 활력을 제공한다. 노령으로 육신은 쇠약해지지만 정신과 상상력은 더 강해진다.
    예이츠는 자신의 성취에 대한 끊임없는 불만을 품었다. 애비극장의 설립, 노벨상 수상 및 상원의원 선출에도 만족하지 못했다. 성취에 대한 불만족과 그 의미의 불안정에 대해 예이츠가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답은 창작의 지속이었다. 예이츠는 자신의 마지막 시편 「검은 탑」(“The Black Tower”)을 세상을 뜨기 한 주일 전에 완성했다.「서커스 동물들의 탈주」(“The Circus Animals' Desertion”)는 더 이상 시를 쓰지 못함을 밝힌다. 이러한 문학적 궤도를 따라 비잔티움으로의 열망이 태어난다. 운터렉커(John Unterecker)는 정화 모티브를 『비전』과 연결시킨다. 그리고 블룸(Harold Bloom)은 자연계와 비잔티움의 완전한 이율배반적 관계를 강조한다. “비잔티움은 젊든 늙든 사람을 위한 나라가 아니므로, 그리고 비잔티움이 지닌 기념물은 어떤 유형이든지 인간적 주장을 뒷받침하지 않는 영혼의 장엄함의 양상들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결국 시인은 자신의 내적 욕망을 방해하는 노년에 대한 거친 반항을 보이고 욕망 실현을 열망한다.「비잔티움 항행」과 「비잔티움」에서 예이츠는 영원의 영역에서의 영혼의 항해와 정화에 대한 인식을 그리고 있다. 비잔티움 시편은 존재의 합일을 열망하고 언어를 통해 이를 창조하려는 영혼의 낱말이다.「비잔티움 항행」의 화자는 여러 삶의 조건에서 해방되길 욕망하고 영원의 영역으로 진입하길 갈망한다. 「비잔티움」에서 화자는 영원의 영역에 있고 영혼의 정화 과정을 이야기한다. 두 편의 비잔티움 시편으로 대표되는 그의 노령에 관한 일련의 작품들은 한 자연인으로서의 욕망 실현을 가로막는 노화에 대한 항거로 볼 수 있다.
    시인 예이츠에 대한 연구자의 관심은 여전히 지대하고 그의 주요 시편에 대해서도 여전히 활발하고 다채로운 접근이 소개되고 있다. 그의 대작 중 한편으로 간주되는 「비잔티움 항해」와 그 속편 「비잔티움」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비평이론의 적용은 전반적인 예이츠 연구와 기존의 해석에 활력을 불어넣는 유의미한 시도가 될 것이다. 먼저, 이 연구에서 예이츠에 대한 전기적 역사적 자료를 무시하지 않고 기초 전거로 다룸으로써 시인과 작품의 문학사적 위치와 의의를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예이츠의 시는 필연코 그의 산문 작품과 관련이 있으므로, 비잔티움 시 연구는 자연스럽게 그의 관련 작품을 탐색하는 계기가 되고 나아가 그의 문학세계 전체를 일별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또한 그가 이룬 문학적 성과를 영시 전반의 흐름에 비춰 다시 살펴보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그 다음, 예이츠의 작품 중 가장 많이 연구된 시를 재조명함으로써 현대시의 속성을 이해할 수 있고 시 연구의 본질에 대해 환기시킬 기회가 될 것이다. 시작(詩作)의 배경과 시의 내용이 제기한 여러 측면의 주제들, 즉 역사적 예술적 종교적 의미와 삶과 죽음, 젊음과 노쇠, 육체와 정신의 이항대립 구도 등에서 볼 수 있는 상반대립(antinomies)의 시적 적용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이해를 제공할 것이다. 그리고 시어 욕망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과 의미 생성으로 미시적 분석의 가능성에 대한 시각도 제공할 것이다. 시인 예이츠가 영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역할의 중대함만큼 국내 대학 강단에서도 논문에서 다룰 두 편의 시를 해석하고 강의하는 비중이 높다. 이러한 정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을 새로운 시각으로 뒤집어 읽고 간과했던 시행의 맥락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고 새로운 해석을 유도하는 것은 문학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길이다. 시를 통해 해체, 전복, 산종(desseminaiton)의 의미를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효과적 경로가 될 것이다.
  • 색인어
  • 비잔티움. 욕망, 이항대립, 영혼과 영원, 전복, 상반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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