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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세기 프랑스 수도원의 재원과 운영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11-13세기 프랑스 수도원의 재원과 운영 | 2013 년 | 이정민(경상국립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2013S1A5B5A07047313
선정년도 2013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15년 02월 21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15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성 베네딕투스 계율에 고무된 수도원들은 게으름은 영혼의 적이며 수도승들은 어느 정도의 노동을 통해 이를 경계해야 한다는 그 이상적인 가치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하는 수도원의 재원은 거의 전적으로 종교적 열정과 영혼의 구원을 목적으로 희사된 토지에 의존하고 있다. 수도원이 위치한 주변의 토지로부터 들어오는 지대와 각종 시설이용료를 포함한 관습부과조, 십일조와 봉헌물 등 순수 교회 수입이 수도원 경제의 주요한 원천이 되었던 것이다. 적극적으로 수도원에게 물질적 후원을 제공하는 봉건 세속 영주들의 동기는 단순한 종교적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수도원과의 지속적이고 밀접한 네트워크를 통하여 때로는 경쟁자를 물리치거나 견제하기 위한, 때로는 우월한 위치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봉건 세속 영주들의 정치적‧전략적 동기와 의도를 간과할 수 없다. 가장 전형적인 농촌 사회이며 봉건적 색채가 강한 루아르강 주변 수도원은 불수불입권의 보호아래 토지를 소유한 영주이며 다양한 관습부과조와 부역을 요구하는 공권 영주임과 동시에 십일조를 비롯한 각종 봉헌물과 교회세를 거둬들이는 교회 영주의 성격을 선명히 드러낸다. 동시에 수도원의 재원 운영 역시 현실적으로 봉건적 특권과 관습에 따를 수밖에 없는 한계점을 내포하고 있다.
    그에 비해 철 생산이 풍부한 노르망디를 비롯한 프랑스 동북부 수도원의 경우 손을 이용한 육체노동에 긍정적인 시토 수도회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시토 수도회의 성 베르나르(St. Bernard)는 노동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방법이고 개인과 가족에게 주어진 의무이며 사회와 신에 대한 의무라고 설명한다. 농부, 양치기, 석공, 방앗간 주인, 마전장이, 직조공 및 기타 이와 유사한 일을 담당하는 평수사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시토 수도회는 육체노동에 긍정적인 노동관과 기술영역에서의 적극적인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풍부한 광물과 철 생산에 관련된 노르망디와 프랑스 동북부 수도원들의 재원에 숲과 광산지대에서 채취할 수 있는 산물과 십일조는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제철기술과 제철산업에 있어 기술적인 변화를 제공하는 시토회 수도승들조차도 적극적으로 제철산업을 주도하기보다는 수도원 재원의 확충과 유지를 위한 봉건적 질서와 관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는 자유특권을 가진 수도원조차도 손을 뻗칠 수 없는 철과 광물을 생산하는 공동체의 결집력과 영향력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베네딕트 수도회의 관심은 광산이나 숲 그리고 대장간으로부터의 십일조를 포함한 수입에 머물렀으며 광산이나 대장간에서의 노동은 수도승이 아닌 세속 노동자의 몫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물론 수도승들이 철 생산에 필요한 강도 있는 노동과 기술 연마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까닭도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철 생산과정과 기술이 지닌 전문성과 그 영향력을 지켜나가려는 철 생산 공동체의 노력의 결과로 짐작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12세기 프랑스 동북부에서는 강도 있는 육체노동의 경험을 가진 평수사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시토회 수도승들이 광산 경영에 직접 참여하거나 수압해머 등 고유의 제철기술을 발전시키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 역시 철을 대량으로 생산하여 판매를 통한 이윤추구의 목적이 아닌 수도원의 필요에 맞춰 생산하는 자급자족적 운영에 머물러 있다. 즉 시토회 수도승들에게도 철과 광물은 봉건적 질서 속에 창출되는 또 다른 수입원의 의미에 지나지 않았다. 11‧12세기 봉건 세속 영주의 팽창과 경제적 발전은 수도승들의 노동관과 수도원 재원의 창출과 운영에 새로운 변화를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11‧12세기 가장 전형적인 봉건 사회의 특징을 그대로 반영하는 루아르강 주변 수도원의 경우나 제철 산업이라는 새로운 재원 창출과 그 변화가 두드러지는 노르망디와 프랑스 동북부 수도원의 경우에도 수도원의 재원은 봉건적 경제 질서에 바탕을 둔 자급자족적 운영과 그 한계에 머무르고 있다.
  • 영문
  • In this article, we purpose to reflect on the finance and management of french monasteries in the 11th and 12th centuries. Under the principle of prayer, asceticism and self-sufficiency, since the beginning of monastery, its finance is based on the religious donations and material supports by secular seigneurs for the sake of saving their ancestor's soul and keeping theirs will being. To accomplish this research, we make a study of finance and management catching the monasteries around Loire, what we called, which are most typical in this period. It needs to analyse the resources of these monasteries greatly composed by the land including various real estates, costumes and corvee as well as the religious resources, such as the tithe and the donations celebrating the christian feasts. Despite increasement of resources, being faced with the secular expansion, the monks can't help seeking the ways and means for becoming independent and obtaining autonomy against the feudal seigneurs.
    In addition, we can examine the role and activities of monks not only in manufacturing the steel products but also in exploiting the mines in Normandy and north-east in France. Especially, it is very interested to meet the cistercian monks who work steel with hydraulic hammer. Also, we can have the chance to understand the remarkable feature of monasteries in this region. In comparison with character and distinction of monasteries between around Loire and in Normandy including north-east France, this study enables us to apprehend the precious informations about the finance and management of french monasteries in 11th and 12th centuries.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성 베네딕투스 계율에 고무된 수도원들은 게으름은 영혼의 적이며 수도승들은 어느 정도의 노동을 통해 이를 경계해야 한다는 그 이상적인 가치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가장 전형적인 농촌 사회이며 봉건적 색채가 강한 루아르강 주변 수도원은 불수불입권의 보호아래 토지를 소유한 영주이며 다양한 관습부과조와 부역을 요구하는 공권 영주임과 동시에 십일조를 비롯한 각종 봉헌물과 교회세를 거둬들이는 교회 영주의 성격을 선명히 드러낸다. 즉, 11‧12세기 루아르강 주변 수도원의 재원은 기증과 봉헌으로 이루어진 토지를 포함한 각종 부동산 및 관습부과조와 부역이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전형적인 봉건 농촌 경제 구조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동시에 수도원의 재원 운영 역시 현실적으로 봉건적 특권과 관습에 따를 수밖에 없는 한계점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11‧12세기 강력한 봉건 세속 영주들의 활동이 두드러지는 루아르강 주변 수도원들에게는 봉건 세속 영주들과의 끊임없는 갈등과 마찰을 풀어나감과 동시에 수도원들의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운영을 모색하는 발 빠른 대응은 현실적인 과제였다.
    그에 비해 철 생산이 풍부한 노르망디를 비롯한 프랑스 동북부 수도원의 경우 손을 이용한 육체노동에 긍정적인 시토 수도회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12세기 프랑스 동북부에서는 강도 있는 육체노동의 경험을 가진 평수사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시토회 수도승들이 광산 경영에 직접 참여하거나 수압해머 등 고유의 제철기술을 발전시키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 역시 철을 대량으로 생산하여 판매를 통한 이윤추구의 목적이 아닌 수도원의 필요에 맞춰 생산하는 자급자족적 운영에 머물러 있다. 즉 시토회 수도승들에게도 철과 광물은 봉건적 질서 속에 창출되는 또 다른 수입원의 의미에 지나지 않았다. 11‧12세기 봉건 세속 영주의 팽창과 경제적 발전은 수도승들의 노동관과 수도원 재원의 창출과 운영에 새로운 변화를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11‧12세기 가장 전형적인 봉건 사회의 특징을 그대로 반영하는 루아르강 주변 수도원의 경우나 제철 산업이라는 새로운 재원 창출과 그 변화가 두드러지는 노르망디와 프랑스 동북부 수도원의 경우에도 수도원의 재원은 봉건적 경제 질서에 바탕을 둔 자급자족적 운영과 그 한계에 머무르고 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지방분권적 공권력과 관습이라는 배경 속에 새롭게 단장한 수도원이 현실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재원과 운영을 어떻게 이끌어 가고 있는가에 관한 연구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강력한 성문법 체계에 입각한 강력한 공권력의 부재를 극복하기 위한 기도하는 사람들과 봉건 세속 권력의 긴밀한 네트워크의 성격과 특징의 분석은 봉건 사회의 실체와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의 현실적 운영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한다. 본 연구의 예상 결과 및 연구에 채용된 자료와 방법론 등을 통하여 생산해낸 기대 효과와 연구 결과의 활용 방안은 다음과 같다.
    ① 11세기에서 13세기까지 프랑스 수도원에서 작성된 문서집과 각종 토지 문서집을 분석하여 구체적이고 다양한 재원의 내용과 그 성격을 파악한다. 서양 중세 봉건 사회의 틀이 각 영주령이 위치한 지리적 특징과 조건을 포함하여 개별적인 공동체의 역사적 경험과 관습을 바탕으로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어 나갔음을 전제로 한다면 이를 바탕으로 하는 수도원의 재원이 지니는 의미 또한 상당히 설득력을 가진다. 전형적인 봉건 경제 구조와 이에 따른 특권을 둘러 싼 논쟁을 통해 11세기에서 13세기 서양 중세 사회의 운영에 관한 접근이 허용될 수 있다. 봉건 세속 영주와 수도원을 비롯한 교회 기관의 협조와 갈등의 내용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당시대인들의 갈등과 문제 해결 방법과 의미를 파악한다.
    ② 서양 중세 사회의 지방분권적이고 그리스도교적인 특징에 대한 이해와 이를 바탕으로 봉건 세속 귀족 가문과 수도원의 네트워크의 출현을 주목한다.서양 중세 교회 역시 초기 교회의 역사부터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온 세속인들의 봉헌과 기증이라는 물질적 후원과 군사적 보호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또한 다른 의미의 확대 가족의 일부분으로 수도원의 모습은 바뀌어 갔으며 봉건 세속 영주 가문이 후원하는 수도원은 마치 그의 새로운 확대 가족 혹은 강력한 네트워크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결국 봉건 세속인들과 수도원의 관계는 11세기 이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11세기부터 13세기 프랑스 수도원의 재원과 운영은 봉건 세속 귀족 가문과 수도원의 네트워크의 성격과 역할을 재조명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이다.
    ③ 서양 중세 그리스도교 사회의 교육과 가치관의 계승은 수도원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서로마제국을 이어 등장한 프랑크 왕국은 고전고대의 단절이라는 한계에 부딪혔다. 이를 해결하고자 학문부흥과 연구를 중심으로 하는 프랑크 왕국에 적합한 새로운 사회를 이끌어갈 수 있는 사회개혁운동이, 이른바‘카롤링거의 르네상스(Carolingian Renaissance)’가 전개되었다. 수도원의 스콜라에서 고전고대의 가치와 지식이 전수되었으며 자연스럽게 수도원이 지식과 정보의 전달은 물론이거니와 그리스도교적 윤리관과 가치 그리고 전통을 후세대에게 이어주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수도승들을 포함하여 세속의 지배계층을 교육하며 당시대인들의 절박한 요구와 시대적 요청을 수행하는 인적 자원을 양성하고 배출하는 역할은 수도원이 담당하였다. 그러므로 수도원의 교육과 그 내용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바로 이 수도원을 현실적으로 후원하고 수도원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혹은 수도승이 되고자 하는 대부분의 인적 자원은 바로 봉건 귀족가문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④ 11세기에서 13세기의 지방분권적이었던 당시대의 교육은 중앙권력으로부터 벗어나 있었다. 이상적인 인간형을 생산해나고자 하는 교육은 수도원이 담당하고 있었으며 지방분권적 삶의 생태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중앙집권적 통치에 익숙하지 않은 서양 중세인들의 삶은 기본적으로 지방분권적이며 그리스도교적이다. 수도원과 이를 인적 혹은 물적으로 후원하는 봉건 세속인들의 가치와 기득권을 유지하고 전수하기 위한 교육은 수도원이 담당한다. 가장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엘리트를 양성하기 위한 수도원 교육은 결국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써 계획되거나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지닌다. 그러나 지방분권적인 삶의 조건은 수도원 교육의 다양성을 허락할 수 있다. 12세기 시대적 전통과 관습을 바탕으로 새로운 그리스도교적 가치관과 노동관을 융합한 시토 수도회가 표방하는 창조적 인간형과 이를 현실적으로 실현시켜낼 수 있는 창의적인 교육관과 그 프로그램의 계발을 유추할 수 있다. 본 연구의 가장 주목할 기대효과 활용방안은 지방분권적 사회 운영과 수도원이 주도하는 지식의 전달과 수도회의 영성에 바탕을 둔 교육이라는 결과물을 전제로 현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 연계이다. 지역 교육의 특성과 창의 인성 교육과의 접목은 본 연구의 필요성을 부각시킨다.






  • 색인어
  • 수도원, 십일조, 관습부과조, 불수불입권, 시토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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