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성과물검색
유형별/분류별 연구성과물 검색
HOME ICON HOME > 연구성과물 유형별 검색 > 보고서 상세정보

보고서 상세정보

https://www.krm.or.kr/krmts/link.html?dbGubun=SD&m201_id=10058802&local_id=10080714
이집트 제1왕조의 개창과 메소포타미아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이집트 제1왕조의 개창과 메소포타미아 | 2014 년 | 오흥식(서강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2014S1A5B5A07041069
선정년도 2014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16년 02월 11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16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이집트 제1왕조의 개창과 메소포타미아>

    이 연구는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이 페르시아 만을 출항하여 아라비아 반도를 돌아 홍해에 들어서 홍해 서안의 쿠세이르(Quseir)에서 함마마트 와디―우기에 강이 되는 계곡―를 타고 상이집트의 나일 강변으로 이주하여 제1왕조를 개창한 주도세력이었을 가능성을 선학들의 도상 연구와 문헌 연구를 엮어 제시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제1왕조가 개창되기 이전 시기인 선왕조 시기에 상이집트 유물의 도상에 미친 외부의 영향이 학자들에 따라 수사(엘람)에서, 또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온 것으로 주장되었다. 가늠하기가 힘든데, 논자가 보기에는 두 종류의 도상이 모두 유물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 도상들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두 문헌기록인 구약성경의 「창세기」 10장과 [수메르 왕명록]이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런데 일단 두 문헌의 기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다다른 결론을 도상적 연구결과와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구약성경 「창세기」 10:6에 “함의 아들은 구스, 이집트, 리비아, 가나안”이라는 기록이 있다. 함의 네 아들의 이름은 지명이기도 한데, 그들의 이름은 그들이 흩어져나가 그 곳들에 정착하여 각각 그 지역의 시조가 되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들은 어디로부터 흩어져나간 것일까? 함의 아들 이집트가 어느 곳으로부터 출발하였는지 그리고 그 경로를 말해주는 문헌기록은 없다. 그러나 이집트의 형제 구스에 관해 말해주는 것으로 보이는 다른 문헌기록이 있는데, 이를 통해 구스의 형제 이집트의 출발지를 미루어 알 수 있을 것이다.
    수메르의 여러 도시의 왕들의 목록인 [수메르 왕명록]을 보자. 대홍수 이후 수메르의 도시 우루크의 두 번째 왕의 이름은 󰡔수메르 왕명록󰡕에 따르면 엔메루-카르(Enmeru-kar)인데, 엔메루-카르와 「창세기」의 인물 구스의 아들 니므롯(Nimrod)을 동일 인물로서 볼 수 있는 근거가 여러 개 있다. 그 하나로서, 니므롯이 지배한 도시 에렉(Erech)은 수메르어로는 우루크(Uruk)가 된다고 하니, 두 사람은 동일한 도시를 다스린 셈이다. 니므롯의 아버지는 구스(Cush)이고, 엔메루-카르의 아버지는 ‘메스키안그-카시’다(Meshkiang-kasher, 수메르 단어에서 끝의 –er은 묵음). ‘메스키안그-’는 일종의 별명이니 진짜 이름은 ‘카시(Kash)’이니 두 사람의 이름도 비슷하다. 구스와 메스키안그-카시가 동일인이라면 구스는 메소포타미아 우루크의 지배자이니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이집트 남쪽 쿠시에 이르렀을 것이다.
    메스키안그-카시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 쿠시에 이른 것일까? [수메르 왕명록]에는 메스키안그-카시에 관해 짤막한 설명이 붙어있다. “메스키안그-카시는 바다로 들어갔다가 산으로 나왔다.” 너무나도 짧은 문장이라 분석하기가 힘들지만, 그는 육로를 택하여 북쪽을 향해 출발한 것이 아니라, 해로를 택하여 페르시아 만으로부터 출항하여 아라비아 반도를 돌아 ‘아프리카의 뿔’에 상륙하여 이집트의 남쪽, 쿠시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렇다면 구스의 형제 이집트도 마찬가지로 메소포타미아에서 출항하여 아라비아 반도를 돌아 홍해로 들어서고 구스보다는 더 북상하여 홍해의 서안 쿠세이르에서 함마마트 와디―그 양안에는 소위 ‘뱃사람족의 암각화’가 매우 많이 새겨져 있다―로 접어들어 코프토스(Koptos)에 이르러 나일강으로 들어서 상이집트에 이르렀을 것이다.
    상이집트에 있는 수사(엘람)의 도상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피에르 아미에(Pierre Amiet)는 “수사 지층II의 시기(3800-3100 BC)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수사는 남메소포타미아의 세계에 통합되었고... 우루크가 표준 유적지(type-site)”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메소포타미아의 우루크 문화(Uruk Culture, 4000-3100 BC)에는 엘람적인 요소도 자연히 섞여 있었고 메소포타미아인들의 자신들의 도상만이 아니라 수사의 도상도 상이집트에 들여왔을 것이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이 들여온 도상들이 제1왕조가 개창된 이래 왕가의 도상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메소포타미아인들이 처음에는 교역을 목적으로 상이집트와 접촉하였다 하더라도 나중에는 정복자로서 상이집트에 정착하였을 것이다. 이들이 나중에는 상·하 이집트를 통합하여 제1왕조를 개창한 주도 세력이었다.
  • 영문
  • "The Foundation of the First Dynasty in Egypt and Mesopotamia"

    This paper aims to suggest by studying both literary and iconographical evidences that southern Mesopotamians set sailed from the Persian Gulf and entered the Red Sea and reached the Upper Egypt by the way of the Wadi Hammamat and settled there and founded the First Dynasty of Egypt.
    The geographical location of Naqada I sites all lies within Upper Egypt. The Naqada II culture diffuses northwards as far as the eastern edge of the Delta, and also southwards, where it comes into direct contact with the Nubian A-Group. By the end of the Naqada II phase (c.3200 BC) or early Naqada III, the indigenous material culture of Lower Egypt had disappeared and was replaced by artifacts (especially pottery wares) deriving from Upper Egypt and the Naqada culture. Judging from this archaeological evidence, the Upper Egypt, rather than the Lower Egypt, founded the first Dynasty.
    Some of scholars insisted the Elamaic influence on the iconography in the Predynastic Upper Egypt, some did the Mesopotamian. It is difficult to have idea, because both kinds of iconographies seem to appear on the objects. From where did the foreign iconographies come? According to Genesis 10:6, “And the sons of Ham; Cush, and Mizraim (Egypt), and Phut (Lybia), and Canaan (Phoenicia).” Their names also are place names. It can be interpreted that the sons of Ham were respectively spread to the places whose names are the same as their names. From where were they scattered? There is no literary source which tells us where Egypt, one of the sons of Ham, started and by which route he reached Egypt.
    However, if Cush (Egypt’s brother) set sail from the Persian Gulf and continued the voyage along the Arabian coast and found themselves at the straits of Bab-el Mandeb of the Red Sea and landed in the region of the Horn of Africa and reached the land of Cush (we can come to such an conclusion on the basis of Genesis 10 and Sumerian King List), Egypt (Cush’s brother) also set sail from the Persian Gulf and sailed on up the western coast of the Red Sea northward to Quseir, and then entered the Wadi Hammamat, where there are many rock-carved boats some of which look like Mesopotamian boats, and reached Upper Egypt.
    How can the Elamaic iconography in Upper Egypt be elucidated? Pierre Amiet says, “Everything changed with period II of the Susa stratigraphy (3800-3100 BC) when there was complete integration with the world of south Mesopotamia,.. at a time for which the city of Uruk is the type-site.” Then the Uruk Culture (4000-3100 BC) in Mesopotamia naturally included the Elamaic factor.
    Taking the fact into the consideration that the iconographies which Mesopotamians brought into Upper Egypt were used as dynastic iconographies since the foundation of the First Dynasty, Mesopotamians may at first (Naqada I) arrived as peaceful traders, as time went by (Naqada II, III) they settled there as conquerors. They finally incorporated Lower Egypt and founded the First Dynasty.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이 연구는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이 페르시아 만을 출항하여 아라비아 반도를 돌아 홍해에 들어서 홍해 서안의 쿠세이르(Quseir)에서 함마마트 와디를 타고 상이집트로 이주하여 제1왕조를 개창한 주도세력이었을 가능성을 선학들의 도상 연구와 문헌 연구를 엮어 제시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선왕조 시기에 상이집트 유물의 도상에 미친 외부의 영향이 학자들에 따라 수사(엘람)에서, 또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온 것으로 주장되었다. 가늠하기가 힘든데, 논자가 보기에는 두 종류의 도상이 모두 유물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 도상들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구약성경의 「창세기」 10장과 [수메르 왕명록]이 있다. 두 문헌기록을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런데 일단 두 문헌의 기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다다른 결론을 도상적 연구결과와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구약성경 「창세기」 10:6에 “함의 아들은 구스, 이집트, 리비아, 가나안”이라는 기록이 있다. 함의 네 아들의 이름은 지명이기도 한데, 그들의 이름은 그들이 흩어져나가 그 곳들에 정착하여 각각 그 지역의 시조가 되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들은 어디로부터 흩어져나간 것일까? 함의 아들 이집트가 어느 곳으로부터 출발하였는지 그리고 그 경로를 말해주는 문헌기록은 없다. 그러나 이집트의 형제 구스에 관해 말해주는 것으로 보이는 다른 문헌기록이 있는데, 이를 통해 구스의 형제 이집트의 출발지를 미루어 알 수 있을 것이다.
    [수메르 왕명록]을 보자. 대홍수 이후 수메르의 도시 우루크의 두 번째 왕의 이름은 [수메르 왕명록]에 따르면 엔메루-카르(Enmeru-kar)인데, 엔메루-카르와 「창세기」의 이집트의 아들 니므롯(Nimrod)을 동일 인물로서 볼 수 있는 근거가 여러 개 있다. 그 하나로서, 니므롯이 지배한 도시 에렉(Erech)은 수메르어로는 우루크(Uruk)가 된다고 하니, 두 사람은 동일한 도시를 다스린 셈이다. 니므롯의 아버지는 구스이고, 엔메루-카르의 아버지는 ‘메스키안그-카시’다. ‘메스키안그-’는 일종의 별명이니 진짜 이름은 ‘카시’이니 두 사람의 이름도 비슷하다. 구스와 메스키안그-카시가 동일인이라면 구스는 메소포타미아 우루크의 지배자이니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이집트 남쪽 쿠시에 이르렀을 것이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 이른 것일까? [수메르 왕명록]에는 메스키안그카시에 관해 짤막한 설명이 붙어있다. “메스키안그-카시는 바다로 들어갔다가 산으로 나왔다.” 너무나도 짧은 문장이라 분석하기가 힘들지만, 그는 육로를 택하여 북쪽을 향해 출발할 것이 아니라, 해로를 택하여 페르시아 만으로부터 출항하여 아라비아 반도를 돌아 ‘아프리카의 뿔’에 상륙하여 이집트의 남쪽, 쿠시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렇다면 구스의 형제 이집트도 마찬가지로 메소포타미아에서 출항하여 아라비아 반도를 돌아 홍해로 들어서 구스보다는 더 북상하여 홍해의 서안 쿠세이르에서 함마마트 와디―그 양안에는 소위 ‘뱃사람족의 암각화’가 매우 많이 새겨져 있다―로 접어들어 코프토스(Koptos)에 이르러 나일강으로 들어서 상이집트에 이르렀을 것이다.
    상이집트에 있는 수사(엘람)의 도상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피에르 아미에(Pierre Amiet)는 “수사 지층II의 시기(3800-3100 BC)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수사는 남메소포타미아의 세계에 통합되었고... 우루크가 표준 유적지(type-site)”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메소포타미아의 우루크 문화(Uruk Culture, 4000-3100 BC)에는 엘람적인 요소도 자연히 섞여 있었을 것이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이 들여온 도상들이 제1왕조가 개창된 이래 왕가의 도상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메소포타미아인들이 처음에는 교역을 목적으로 상이집트와 접촉하였다 하더라도 나중에는 정복자로서 상이집트에 정착하였을 것이다. 이들이 나중에는 상·하 이집트를 통합하여 제1왕조를 개창한 주도 세력이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이 연구는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이 페르시아 만을 출항하여 아라비아 반도를 돌아 홍해에 들어서 홍해 서안의 쿠세이르(Quseir)에서 함마마트 와디를 타고 상이집트로 이주하여 제1왕조를 개창한 주도세력이었을 가능성을 선학들의 도상 연구와 문헌 연구를 엮어 제시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었다.
    제1왕조가 개창되기 이전의 선왕조 시기에 상이집트에서 발굴된 유물에 그려진 도상에는 수사(엘람)와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이 컸고, 그러한 도상들이 제1왕조의 개창 이래 왕가의 도상이 되었다. 이 도상이 어디로부터, 어떤 경로로 상이집트 도착한 것인지를 알고자, 「창세기」 10장, 󰡔수메르 왕명록󰡕, 그리스의 역사가들인 헤로도토스와 스트라본의 기록, 선왕조 시기의 도기 분포, 함마마트 와디의 계곡에 새겨진 배들의 암각화 따위를 분석한 결과, 메소포타미아인들이 배를 타고 페르시아 만을 출발하여 아라비아 반도를 돌아 홍해로 들어서 해의 서안 쿠세이르에서 함마마트 와디로 접어들어 코프토스(Koptos)에 이르러 나일강으로 들어서 상이집트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집트의 선왕조 시기와 동일한 시기에 남메소포타미아가 수사 지역도 통합하였다는 다른 학자의 새로운 연구결과를 통해, 메소포타미아에 수사(엘람)적인 문화요소를 자연히 섞여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이 들여온 도상들이 제1왕조가 개창된 이래 왕가의 도상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메소포타미아인들이 처음에는 교역을 목적으로 상이집트와 접촉하였다 하더라도 나중에는 정복자로서 상이집트에 정착하였을 것이다. 이들이 나중에는 상·하 이집트를 통합하여 제1왕조를 개창한 주도 세력이었다.
    이제는 한 문명만의 연구가 거의 포화상태에 달하였고, 한 문명이 다른 문명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되었는가를 살펴보아야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 「이집트 제1왕조의 개창과 메소포타미아」는 학부에서 <고대 오리엔트 문명>을 가르치고 있는 본 연구자의 강의의 질을 더 높여 학부 수강생들에게 강의의 질을 높일 뿐만 아니라 더 커진 학문적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 색인어
  • 이집트 제1왕조, 메소포타미아, 도상증거, 창세기, 구시
  • 이 보고서에 대한 디지털 콘텐츠 목록
데이터를 로딩중 입니다.
  • 본 자료는 원작자를 표시해야 하며 영리목적의 저작물 이용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 또한 저작물의 변경 또는 2차 저작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데이터 이용 만족도
자료이용후 의견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