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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왕산성과 건주좌위 -역사학, 고고학, 구비문학의 多面的 시각에서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한왕산성과 건주좌위 -역사학, 고고학, 구비문학의 多面的 시각에서 | 2015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박정민(전북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2015S1A5B5A07041551
선정년도 2015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16년 12월 20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16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이 연구는 중국 吉林省 龍井市 汗王山城 일대에 남은 누르하치(Nurhaci)와 관련된 설화를 통해 이 지역에 왜 누르하치와 관련된 설화가 남아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설화와 역사적 사실이 어떠한 상관관계를 가졌는지 검토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조선의 6진 개척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의 6진 개척에 압박을 느끼고 소자하 유역으로 이주한 동창 등은 후일 후금을 세운 누르하치의 조상이다. 이처럼 한왕산성에 대한 설화는 실상 동맹가첩목아의 패주와 그 후손의 소자하 이동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변이된 것으로 보인다. 즉, 청대 회령 일대의 조선인들이 전승되던 건주좌위의 이주 내용을 누르하치에게 형상화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한왕산성은 누르하치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건주좌위의 이주 내용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을 증명하기 위하여 설화와 고고학 등을 이용하여 한왕산성 설화의 의미를 검토하고, 이것이 역사적 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증명하였겠다. 이것은 대여진 관계사의 시론적인 연구 방법이지만, 이와 같은 방식을 이용한다면 더욱 풍부하게 당대를 재구성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 영문
  • This study examines Nurhaci folklore found in Hanwang mountain fortress (汗王山城) in Long jing shi (龍井市), Jilinsheng (吉林省) of China, investigates why such folklore has remained in the region, and what kind of interrelationship can be found between the folklore and historical facts. Presumably, the folklore is closely related to the development of six jin(6鎭) of the Joseon dynasty.

    Pressed by Joseon's development of six jin, Dongshan(童倉)—ancestor of Nurhaci who established late Jin dynasty—and his followers moved to Suzihe(蘇子河) area. The folklore of Hanwang mountain fortress seems to be a variation of the historical fact that describes Mongke Temur(童猛哥帖木兒)‘s defeat and his descendents' subsequent move to Suzihe. That is, the tale of Jianzhouzuowei that had been passed among Joseon people living near Hoeryoung area during Qing(淸) Dynasty was probably modified for Nurhaci. Thus the folklore of Hanwang mountain fortress can be seen as a tale of Jianzhouzuowei rather than that of Nurhaci.

    To verify this, we reviewed the meaning of the Hanwang mountain fortress folklore based on archaeology, and identified its close relationship with historical facts. This is merely an exploratory study on the history of relationship with on Jurchens, but it is expected to enrich historical understanding and reconstruction of the period.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이 연구는 중국 吉林省(Jilinsheng) 龍井市(Long jing shi) 汗王山城(Hanwang-mountain fortress??) 일대에 남은 누르하치(Nurhaci)와 관련된 설화를 통해 이 지역에 왜 누르하치와 관련된 설화가 남아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설화와 역사적 사실이 어떠한 상관관계를 가졌는지 검토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조선(Joseon)의 6진(Six Jin) 개척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의 6진 개척에 압박을 느끼고 소자하(suzihe) 유역으로 이주한 동창(Dongshan) 등은 후일 후금을 세운 누르하치의 조상이다. 이처럼 한왕산성에 대한 설화는 실상 동맹가첩목아의 패주와 그 후손의 소자하 이동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변이된 것으로 보인다. 즉, 청대(Qing Dynasty) 회령 일대의 조선인들이 전승되던 건주좌위(Jianzhouzuowei)의 이주 내용을 누르하치에게 형상화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한왕산성은 누르하치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건주좌위의 이주 내용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을 증명하기 위하여 설화와 고고학 등을 이용하여 한왕산성 설화의 의미를 검토하고, 이것이 역사적 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증명하였겠다. 이것은 대여진 관계사의 시론적인 연구 방법이지만, 이와 같은 방식을 이용한다면 더욱 풍부하게 당대를 재구성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조선시대 공간에 대한 연구의 외연 확대
    건주좌위를 비롯한 여진인의 활동지역은 우리 역사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이곳이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주 무대이고, 일제시대 독립운동의 거점 지역이었음을 상기하면 우리 역사와의 친연성은 더욱 긴밀하다. 지금까지의 조선시대 연구에서는 두만강과 압록강을 조선의 국경선으로 인식하여 그 이북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비록 이곳이 조선의 영토도 아니고, 조선인이 거주하지 않았지만, 우리 역사와의 관련성을 고려하면 이 지역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따라서 두만강 맞은편에 있는 한왕산성과 그 일대를 살펴보는 것은 조선시대 및 한국사의 공간에 대한 연구로 외연을 확대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2) 조선시대 대외관계 연구 방법론에 대한 새로운 시도
    기존의 조선시대 연구는 󰡔조선왕조실록󰡕 등의 관찬 사료, 혹은 개인 문집이나 고문서 등을 이용하였다. 그러나 여진처럼 조선의 지배층이 비교적 관심을 두지 않은 방면에 관련 사료가 부족하다. 이러한 간극을 메꾸기 위해 󰡔명실록󰡕 등 중국 측 사료들도 이용하였지만, 당대의 역사상을 복원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본 연구에서는 함경도 회령 일대에 남아 있는 설화의 내용과 이곳에 남아있는 고고학 자료에 착목하여 이것이 역사적 사실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밝혀냈다. 이러한 연구방법은 기존에 조선시대 대외관계를 연구하는 데 거의 사용되지 않았지만, 본 연구에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본 연구 방법은 조선시대 대외관계 연구에 새로운 시도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3) 중국의 ‘장백산문화론’에 대한 반박논리 제공
    최근 중국은 동북공정 이후, ‘장백산문화론’을 주장하고 있다. 즉, 한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을 자신들의 이름인 장백산으로 표기하고, 청 왕조의 발상지라고 강조한 것이다. 중국은 고조선-고구려-발해-금-청으로 이어지는 역사 인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돈화를 의도적으로 청 왕조의 발상지로 선택하였다. 이는 발해 이후 이 지역에 거주한 여진인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숙신-읍루-말갈 등을 중국사로 편입하기에 가장 적당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청 왕조의 건국신화가 있다. 이 신화의 주인공은 여러 학자가 지적했듯이 건주좌위의 추장인 동맹가첩목아이다. 본 연구에서 살펴본 것처럼 동맹가첩목아는 돈화와 관련이 없고, 오히려 그가 거주했던 함경도 회령이 발상지라고 볼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점은 중국의 ‘장백산문화론’에 대한 대응 논리가 될 수 있다고 기대한다.
  • 색인어
  • 한왕산성, 동맹가첩목아, 누르하치, 여진, 회령, 조선, 6진, 건주좌위, 고고학,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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