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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rm.or.kr/krmts/link.html?dbGubun=SD&m201_id=10064688&local_id=10085722
일본 내 종족적 소수자들의 상호인식과 일본관 : 전후 재일조선인과 오키나와인의 교류사를 중심으로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일본 내 종족적 소수자들의 상호인식과 일본관 : 전후 재일조선인과 오키나와인의 교류사를 중심으로 | 2015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임경화(연세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2015S1A5B5A07043515
선정년도 2015 년
과제진행현황 중단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17년 08월 02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17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오키나와와 조선은, 대일본제국에 병합된 후, 그 위계질서 속에서 주변도를 달리 하며 차별과 억압을 이양하는 연쇄구조에 놓였다. 패전 후에는 오키나와 사람들과 재일조선인들은 ‘비일본인’으로 분류되었고, 이윽고 국민국가의 경계 밖으로 내몰렸다. 이후 양자는 각각 한반도와 일본을 조국으로 바라보며 ‘비국민’으로서의 차별에서 벗어나 국민으로 해방되는 길을 열고자 했다. 하지만, 이 전략은 전후에도 계속되었던 식민지주의나 차별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허무는 것은 아니었다. 그 한계를 넘기 위해 재일조선인과 오키나와 사람들은 각각의 정체성을 정치적 상황에 따라 주체적으로 선택하며 외국군 철수를 통해 민족 해방을 이루고 사회변혁에 참가하는 제3세계 아시아 ‘인민’이 되고자 했다. 하지만, 외국군의 주둔은 계속되었고 사회변혁도 이루지 못한 채 운동은 실패했고 이들은 국민국가의 ‘국민’으로 편재되어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운동 속에서 양자가 횡적으로 이어져 조국이라는 국민국가를 상대화하고자 한 시도는 주목할 만하다.
  • 영문
  • The Japanese Empire was dissolved after their defeat, but Okinawans and Zainichi Koreans were under continuous discrimination by being excluded from the “nation” of Japan. The pre-war colonialism was not resolved, but continued on to the post-war period under the binary framework of nationals and non-nationals. Under these circumstances, Okinawans and Zainichi Koreans both sought emancipation from discrimination through their aspiration towards the “nation.” This ideal was supported by the Third World Movement in its universal prime advancing anti-imperialism and national independence. Okinawans’ and Zainichi Koreans’ mutual gaze in the context of the “motherland-oriented” movements have provoked their awareness of the limitations in ultimately dismantling the colonialism towards Koreans and Okinawans.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오키나와와 조선은, 대일본제국에 병합된 후, 그 위계질서 속에서 주변도를 달리 하며 차별과 억압을 이양하는 연쇄구조에 놓였다. 패전 후에는 오키나와 사람들과 재일조선인들은 ‘비일본인’으로 분류되었고, 이윽고 국민국가의 경계 밖으로 내몰렸다. 이후 양자는 각각 한반도와 일본을 조국으로 바라보며 ‘비국민’으로서의 차별에서 벗어나 국민으로 해방되는 길을 열고자 했다. 하지만, 이 전략은 전후에도 계속되었던 식민지주의나 차별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허무는 것은 아니었다. 그 한계를 넘기 위해 재일조선인과 오키나와 사람들은 각각의 정체성을 정치적 상황에 따라 주체적으로 선택하며 외국군 철수를 통해 민족 해방을 이루고 사회변혁에 참가하는 제3세계 아시아 ‘인민’이 되고자 했다. 하지만, 외국군의 주둔은 계속되었고 사회변혁도 이루지 못한 채 운동은 실패했고 이들은 국민국가의 ‘국민’으로 편재되어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운동 속에서 양자가 횡적으로 이어져 조국이라는 국민국가를 상대화하고자 한 시도는 주목할 만하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일본 마이너리티 상호 이해를 돕는 교육, 실천 운동을 지원하고, 마이너리티 상호 관계사를 체계적으로 서술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 색인어
  • 오키나와, 재일조선인, 상호 응시, 제3세계, 조국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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