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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동원체제와 일상생활의 변화 : 박정희 시대를 중심으로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국가동원체제와 일상생활의 변화 : 박정희 시대를 중심으로 | 2004 Year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공제욱(상지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BS2005
Year(selected) 2004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7년 02월 28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7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박정희 시기 일상생활에 대한 각 연구들의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고원 박사는 "박정희 정권 시기 농촌 새마을운동과 ‘근대적 국민 만들기’"라는 논문에서 농촌 새마을운동을 국가가 농민의 일상 속에 특정한 생활 규범을 침투시키고자 한 ‘농민생활의 근대적 규율화 운동’이자 이를 통해 농민을 ‘국민’으로 호명하고자 한 헤게모니 권력전략으로 규정하고, 이는 바로 ‘근대적 국민’ 만들기의 일환이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다음으로 홍성태 교수는 국가동원체제의 기초가 된 제도인 주민등록제도의 도입과 변천과정을 "주민등록제도와 총체적 감시사회, 박정희 독재의 구조적 유산"이라는 논문에서 다루고 있고, 주민등록제도의 도입이 일상생활에서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지에 대해서는 "주민등록제도와 일상적 감시사회"라는 논문에서 분석하고 있다.
    다음으로 신병식 교수는 박정희 체제의 중요한 기반인 군대 제도와 관련한 분석에서 병역기피자 단속과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는 담론을 통해 징병제를 확립해 나갔음을 분석하고, 이것이 제도적으로는 국가동원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임을 밝히고 있다.
    다음으로 일상생활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의식주 생활 및 의례와 관련한 논문이 3편이다.
    공제욱 교수는 박정희 시대의 혼분식장려운동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국가 차원의 경제적 필요 때문에 국가가 어떻게 시민들의 식생활에 개입하고 식생활의 습관을 바꾸려고 시도했는지를 분석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 식생활의 서구화가 촉진되었다.
    다음으로 이승훈 박사는 "1970년대 농촌주택개량사업, 주생활의 변화와 농민들의 대응"이라는 논문에서 오늘날의 농촌 주택의 표준이 된 1970년대 농촌주택개량사업의 추진 배경과 추진 과정을 분석하고 있다. 또한 새로운 농촌 주택이 일상생활에 미친 영향과 농민들의 반응을 분석하고 농촌에 도시형 문화주택이 들어서게 된 것은 ‘도시다운 삶의 과시적 효과’와 관련이 있음을 분석하고 있다.
    다음으로 고원 박사는 가정의례준칙의 도입 배경을 다룬 논문에서 이 준칙이 전통의례문화에 대한 국가의 통제라는 전통과 근대의 충돌이라는 측면만이 아니라 근대 내부에서의 충돌, 즉 당시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배태되고 있었던 의례의 상업화와 과시소비적 의례문화의 확산을 제어하는 목적이 있었음을 강조한다. 가정의례준칙의 전개과정은 대중의 내핍과 근면을 바탕으로 급속한 성장을 한 박정희 체제에서 그 성장의 수혜계층에 의해 그 체제가 내세운 근검, 절약이라는 가치가 부정당하는 측면이 있음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김명숙 교수는 "박정희 동원체제와 ‘가족계획’의 일상화"라는 논문에서 성생활에 대한 국가의 동원 및 통제만이 아니라 일상인들의 반응을 분석하고, 가족계획으로 불리는 출산 조절이 통제가 사라져도 지속된 것은 구성원 속에 체화되어 동원에서 자발로 변형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다음으로 박정희 시대의 국가는 국가주의를 고양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의 시도들을 하였는데 그와 관련된 논문이 2편이다.
    장영민 교수는 1970년대 국사교육의 강화의 배경과 경과를 분석한 논문에서 ‘민족주체성 확립’을 목표로 국사 교육의 강화가 이루어졌지만, 그 결과는 정권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이었다고 평가한다. 당시의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가 대체로 정권의 강압에 순응하기는 하였지만 학문적 저항과 국사 교육 자체의 부실로 기대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 것은 아니었다는 분석이다.
    다음으로 정호기 박사는 박정희 시대의 ‘애국선열조상건립’ 운동에 대한 분석을 통해 동상들에 투사된 담론은 애국주의임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동상 건립 프로젝트는 기대했던 것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유선영 박사는 1970년대 호스티스 영화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영화를 정치적 동원의 수단으로 인식한 국가의 정서와 당시 영화를 즐기던 대중들의 정서 및 정체성 사이의 균열과 충돌을 분석하고 있다.
  • English
  • Chapter 1. This article examines Saemaeul Movement in the era of Park Chung-Hee regime from the viewpoint of hegemonic power strategy. It's central analytic point is the modern mass politics' mechanism that creates the phenomena of conflicts and penetration, acculturation and exclusive possession, consent and cleavage in the interaction between the desire of the peasants, who want to escape from the poverty, and the enforcement of the regime, which wants to mobilize the peasants' economic resources and strengthen the power base.
    Chapter 2. The resident registration system is an important axis of the Bak Junghee system which is an social system made by Bak Junghee through his long dictatorship. Korean democratization has an feature of fragile democratization because we did not reform the resident registration system.
    Chapter 3. After coup of 1961, military junta pushed forward strengthening the conscription system. The nationwide inspections, searches, and loud campaigns of publicity to every individual, every workshop and village were gradually effectuated as the system of the resident registration was being established.
    Chapter 4. It took no more than 20 years that our principal grain was changed from <rice + barley> to <rice + wheat>. In the process, there were intentional interventions of the state and other social groups which had tried to bring such ㅁ change. The "Honpunshik Changny-U Undong"(HCU - Movement for eating boiled barley and wheat flour food), drived by government from 1960s to 1970s, can be said the most obvious one among them.
    Chapter 5. The Rural Housing Improvement Project is hard to be concluded as successful. However, despite the underachievement of its policy goals and the discomfort in everyday life it caused, the majority of peasants who participated in the project approved that the project was successful. The reason is that the peasants, who had been alienated in the modernization process, tried to compensate their frustration and enviousness towards city dwellers by possessing the urban style "cultural houses".
    Chapter 6. The Simplified Family Ritual Standards demonstrates the distinctiveness of governance mechanism in Park Chung Hee regime, which intended to control and discipline people's everyday lives strictly. But it had been acculturated by the conflicts, which had been triggered not only in the vortex of controlling people's everyday lives but also through the new emergence of vying modern mentality within the same era of modernity.
    Chapter 7. This thesis aims to analyze how 'the Family Plan' was performed by public agencies and penetrated into daily lives among common people, particularly expecting pregnant young couples under the national mobilization system. The government constructed the multiple and hierarchial system but not used compulsory methods. 'The Family Plan' became internalized into belief system among people.
    Chapter 8. The government of Park Jeong Hui enhanced Korean history education for the perpetuation of the Park's regime. The curriculum was amended two times, and the aim of history education was set at the establishment of 'Juche' ideology, national independence and pride.
    Chapter 9. The object of paper is statue that built in the middle period of the Park chung-hee regime and consumed till now. This writing purports to shed light on political and social background and means, subject of built and resource's mobilization, characteristics on person and built period, and discourse and effect.
    Chpter 10. A so-called 'Hostess Film' had enjoyed its heyday since the mid-1970s through 1979. Hostess films has been characterized by its straightforward sexual depictions which was not allowed and censored under Park's totalitarian regime. I argue that, this kind of contradiction, the advent of Hostess Film under militarist regime, reflects the regime's hegemonic instability and its failure of hyper-nationalization project.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오늘날의 우리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근대 100여 년간의 한국사회의 변화를 올바로 이해하여야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 사회의 근대성 형성 시기라 할 수 있는 일제 강점기와 박정희 시대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프로젝트는 박정희 시대의 일상생활 모습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근대성에 대한 이해를 목표로 하고 있다.
    박정희가 시작했던 국가재건범국민운동은 준비 부족으로 곧 실패하게 되지만, 이것은 1970년대에 가서 새마을운동으로 부활하게 된다. 새마을운동은 그 조직 자체가 국가동원체계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었는데, 이러한 새마을운동이 다른 무엇보다도 생활태도 개선, 즉 의식 개혁에 초점을 두었던 것도 국가가 필요로 하는 ‘국민’을 만들기 위한 ‘규율’의 형성과 관련된 것이었다.
    박정희 시대는 일제시기부터 현실화되기 시작된 근대화의 흐름을 계승하여 사회 전체로 그 흐름을 확산시킨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산업화의 측면에서도 1920 - 30년대에 시작되었던 산업화는 1960 - 70년대에 와서야 본격적으로 사회 전반을 변화시킬 정도의 강력한 힘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산업화의 측면이 매우 중요하긴 하지만 근대화는 경제적인 영역의 문제인 것만은 아니며,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인 것이다. 여기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근대적 주체 형성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근대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주체의 형성 없이는 근대화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근대적 주체 형성의 과정은 유인과 강제, 격려와 억압의 과정을 거치면서 이루어졌고, 학교와 군대, 공장과 감옥이라는 제도를 통하여 공고화되었다는 것은 주지하는 바이다. 근대적 학교와 군대, 그리고 공장과 감옥을 통한 근대 주체의 형성과정은 개화기에 발아하여 일제시기에 본격화하였고, 박정희 시대에 와서 사회 전체가 근대적 규율의 틀로 공고하게 장악될 정도로 완성되었다.
    본 연구가 박정희 시대의 일상생활에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 하에서이다. 박정희 체제는 ‘조국 근대화’를 목표로 추구하였고, 일정 정도 근대화에 성공하였다. 이 근대화라는 것에는 박정희 체제가 추구한 급속한 산업화가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기존의 박정희 시대에 대한 연구가 주로 경제적인 측면에서 급속한 산업화의 원인과 그 경과를 해명하는데 중점이 두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도 논의했듯이 근대화는 산업화를 포함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생활양식 전반의 변화와 관련되어 있다. 근대 주체의 형성과 관련된 규율의 형성이 이루어지는 것도 바로 일상의 장이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일상의 장에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박정희 시대는 개화기와 일제시기를 거치면서 진행되어 온 근대적 규율의 형성과 일상생활의 근대화가 기층 민중의 차원에까지 깊숙하게 파고들어간 시기이기도 하다.
    박정희 체제는 국가동원체제를 가동하고, 그 속에서 의식주에 관련한 생활양식의 변화를 꾀하면서 전통적 설날의 폐지 등 역(曆)의 재편에도 관여하고, 가족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성생활도 통제하고, 가정의례준칙이라는 이름으로 혼상례 등에도 개입하는 등 습속의 변화를 꾀하려고 하였다. 그 결과 어느 정도의 변화를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국가의 개입에 대한 일반 민중의 반응, 즉 순응 혹은 저항의 양상은 장(場, field)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장에 따라 다른 반응이 나타난 원인에 대해서는 그 장에 대한 미시역사적 분석과 장의 배열 및 구조에 대한 분석이 필요한 것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어느 영역에서나 국가의 개입에 대한 일반 민중의 반응은 선택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박정희 시대의 일상생활에 대한 국가의 개입에 대해 일상인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하는 측면을 주요한 분석의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연구사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첫째, 일상생활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박정희 체제를 조망함으로써 비교연구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박정희 국가동원체제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측면에서의 거시 분석은 많이 있었지만, 그 체제가 일상생활에 미친 영향에 대한 연구의 거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연속과 단절이라는 측면에서의 비교 연구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박정희 체제의 일상생활에 대한 연구는 멀리는 조선시대와 일제 강점기, 그리고 가깝게는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유산과 흔적을 밝혀내고자하는 한국의 인문사회과학계 전반의 과제들 중의 한 부분을 충분히 담당할 것이다.
    둘째, 첫 번째의 연구의의와 관련된 것으로 오늘날을 사는 한국인들의 심성과 삶의 유형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오늘날 한국 사회의 모습에 대한 많은 비판들이 있다. 이러한 현실에 영향을 끼친 요인들로는 유교 전통과 같은 문화적 요인들, 그리고 식민지와 독재의 역사적 경험을 거론되곤 한다. 하지만, 거대한 정치, 문화적 접근방식에 치우친 기존의 연구들은, 구체적인 지점에서 그 시대의 역사적 경험이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까지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가를 분명히 밝혀내지 못했었다. 그런 측면에서 본 연구의 결과는 박정희 시대라는 국가동원체제의 역사적 경험이 오늘날 한국인들의 심성과 삶의 유형에 어떤 방식으로 어느정도 영향을 미쳤는가를 밝혀줄 보기 드문 연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셋재, 박정희 체제를 탈신비화시키고 박정희를 역사적 인물로서 올바로 평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소위 ‘박정희 신드롬’ 등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박정희 체제에 대한 지금까지의 논의는 많은 부분 ‘역사적 박정희’에 대한 논쟁이었다기 보다는 주로 박정희 신격화 담론의 자료로 취사선택되었던 ‘가공된 박정희’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것이다. 따라서 박정희를 둘러싼 논쟁은 경험적 자료를 근거로 한 냉정한 학문적 분석보다는 그 이름이 가지는 상징으로 인해 이데올로기 논쟁으로서의 성격이 더 강했다. 하지만 박정희 체제에 대한 구체적인 경험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함으로써 ‘역사적 박정희 체제’의 구체적인 모습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박정희 체제의 세밀한 연구작업은, 구한말 이후의 한국의 근대화 시기들 간의 연관성이나 독특한 특징들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 박정희 체제의 정책적 지향의 기원과 새로운 시도라는 측면에서, 식민지 시대와 이승만 체제의 국가 동원체제와의 관계성을 살펴볼 수 있으며, 그리고 1980년대 이후의 군사독재체제의 정책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아울러 확인할 수 있는 비교분석틀을 마련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넷째, 일반론적인 제도 차원의 분석, 또는 지도자의 중심의 분석에서 벗어난 일상생활의 분석이라는 점에서 행위이론적인 의미를 추가적으로 지닌다. 인간은 구조나 제도의 영향을 받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인간의 행위는 구조나 제도의 산물이지만 동시에 그러한 구조와 제도를 만들고 유지시키는 것 또한 인간의 행위이다. 이런 의미에서 일상생활의 분석은 거시적인 분석과 미시적인 분석이 충돌하고 부딪히는 살아있는 연구의 장이 될 것이다. 국가주의적 동원체제의 확산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순응적 혹은 저항적 반응은 미시적인 수준에서 그들의 자기정당화 과정을 수반하게 된다. 억압적 기제에 대한 순응과정에 국가주의에 기반한 희생정신이 받아들이는 것부터, 강압적 통제수단에 대한 논리적 반박까지, 행위자들은 자신들의 행동과정에 적극적이던 소극적이던 어떤 정당성을 부여하게 되는데, 이 과정이야말로 제도와 구조의 영향과 행위자들의 반작용이 충돌하는 구체적인 지점인 셈이다. 이러한 정당화과정의 미시론적 추적은 바로 사회구성원들의 일반적인 차원에서의 반발과 수용을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 Index terms
  • 박정희, 국가동원체제, 일상생활, 국민 만들기, 규율, 새마을운동, 주민등록제도, 감시사회, 징병제, 혼분식 장려운동, 농촌주택개량사업, 가정의례준칙, 가족계획, 국가주의, 국사교육, 민족주체성, 애국선열조상건립 운동, 호스티스 영화, 근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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