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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말 파리 노동자의 이미지 형성 2: 인상주의 미술과 풍자화가 그린 "위험한 계급"의 이미지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19세기말 파리 노동자의 이미지 형성 2: 인상주의 미술과 풍자화가 그린 "위험한 계급"의 이미지 | 2004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서이자(연세대학교& #40;미래캠퍼스& #41;)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A00073
선정년도 2004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6년 05월 21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6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는 19세기 중반 나폴레옹 3세 치하인 프랑스 제2제국 시기에 대대적으로 단행되었던 오스만의 파리시 재개발 사업에도 불구하고, 19세기말에 여전히 살아남았던 파리 북동부의 노동자 거주지역과 이곳의 독자적 문화에 대한 동시대인의 인식을 대상으로 한다. 노동계급의 이미지는 한편으로는 노동자 집단 ‘안의 시선’에 의해서 형성되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을 보는 사회의 시선, 그 중에서도 이들을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보고 이미지를 형상화시킨 몽마르트르 예술가들이라는 ‘밖의 시선’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 ‘이중의 형성과정’을 거쳤다.
    파리시의 북동부는 전형적인 노동자 거주지역으로 노동자 카페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지역임과 동시에, 흥미롭게도 몽마르트르 언덕을 중심으로 점점 늘어가던 화려한 카바레가 즐비한 환락가이기도 했다. 이들 카바레는 르누아르와 반 고흐, 그리고 툴루즈-로트렉이 그곳의 모습을 화폭에 담기 시작하면서 그 존재와 실상이 외부세계에 친숙하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화가들은 부르주아 문화와 노동자 문화 양쪽 모두를 접했고, 서로 다른 두 계급의 대상(object)을 그리는 과정에서 두 문화의 차이를 포착하고 그 느낌을 화폭에 부각시켰다. 화가들은 직업 특성상 직관력이 있으며, 예민하게 인간과 사물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특수집단으로서 한 시대의 문화적 차이와 특성을 인지하고 재현하는 기록자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던 것이다.
    카이보트의「대패공들」(1875), 무니에의「제철공들」(1893)과 달루의「대장장이」등은 산업화에도 여전히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수에 있어서 팽창하고 있던 숙련노동자 집단과 이들의 일터인 소규모 작업장의 노동을 기록하고 있다. 반 고흐의 북부의 광산 노동자에 대한 다수의 작품들도 당시 사회가 노동계급의 이미지를 구체화시켜가는 과정에 영향을 미쳤다. 툴루즈-로트렉은 노동자 신문에 실리는 풍자만화 혹은 포스터를 그리기 시작했다. 풍자만화와 포스터 제작의 필요에서 그는 시사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했고, 그 덕분에 노동자 거리의 노동자들에게 전보다 더 가까이 다가가야 했다. 당시 풍자만화나 포스터의 유행은 마네와 도미에도 예외가 아니었으며, 이들 화가와 풍자 만화가를 통해 노동계급의 문제는 파리 전체의 시사문제로 다시 한번 주목을 받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 영문
  • Abstract

    This article studies the working-class district and its independent culture in the northeastern Paris in the mid-19th century France from the record of impressionist artists and cartoonists of the time. The image of workers has been forming not only by insiders but also by outsiders, especially Montmartre artists who noticed and painted these workers with insightful eyes.
    The northeastern Paris was a typical working-class district with workers' cafes, and interestingly enough a new entertainment district with bourgeois cabarets at the same time. Renoir, Van Gogh, and Toulouse-Lautrec informed the different lives and cultures of two classes in this special district with their paintings and cartoons in newspapers.
    Caillebotte's The planners (1875), Meunier's Iron workers (1893), and Dalou's Tin smith recorded the skilled workers and their small size workshops that had survived and even expanded in numbers in the process of industrialization. Van Gogh's numerous sketches of miners in Nord played an important role to form the image of workers in the society. Toulouse-Lautrec sketched cartoons and posters with deep interest about workers' social problems from his close relationship with them. Manet or Daumier were not exception. With their active roles, the problems of workers became the arguable issues for many Parisians, regardless of their social background.

    Key words: Parisian workers, impressionism, image of workers, 19th century France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19세기말 파리 노동자의 이미지 형성 2:
    인상주의 미술과 풍자화가 그린 "위험한 계급"의 이미지

    본 연구는 19세기 중반 나폴레옹 3세 치하인 프랑스 제2제국 시기에 대대적으로 단행되었던 오스만의 파리시 재개발 사업에도 불구하고, 19세기말에 여전히 살아남았던 파리 북동부의 노동자 거주지역과 이곳의 독자적 문화에 대한 동시대인의 인식을 대상으로 한다. 노동계급의 이미지는 한편으로는 노동자 집단 ‘안의 시선’에 의해서 형성되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을 보는 사회의 시선, 그 중에서도 이들을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보고 이미지를 형상화시킨 몽마르트르 예술가들이라는 ‘밖의 시선’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 ‘이중의 형성과정’을 거쳤다.
    파리시의 북동부는 전형적인 노동자 거주지역으로 노동자 카페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지역임과 동시에, 흥미롭게도 몽마르트르 언덕을 중심으로 점점 늘어가던 화려한 카바레가 즐비한 환락가이기도 했다. 이들 카바레는 르누아르와 반 고흐, 그리고 툴루즈-로트렉이 그곳의 모습을 화폭에 담기 시작하면서 그 존재와 실상이 외부세계에 친숙하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화가들은 부르주아 문화와 노동자 문화 양쪽 모두를 접했고, 서로 다른 두 계급의 대상(object)을 그리는 과정에서 두 문화의 차이를 포착하고 그 느낌을 화폭에 부각시켰다. 화가들은 직업 특성상 직관력이 있으며, 예민하게 인간과 사물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특수집단으로서 한 시대의 문화적 차이와 특성을 인지하고 재현하는 기록자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던 것이다.
    카이보트의「대패공들」(1875), 무니에의「제철공들」(1893)과 달루의「대장장이」등은 산업화에도 여전히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수에 있어서 팽창하고 있던 숙련노동자 집단과 이들의 일터인 소규모 작업장의 노동을 기록하고 있다. 반 고흐의 북부의 광산 노동자에 대한 다수의 작품들도 당시 사회가 노동계급의 이미지를 구체화시켜가는 과정에 영향을 미쳤다. 툴루즈-로트렉은 노동자 신문에 실리는 풍자만화 혹은 포스터를 그리기 시작했다. 풍자만화와 포스터 제작의 필요에서 그는 시사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했고, 그 덕분에 노동자 거리의 노동자들에게 전보다 더 가까이 다가가야 했다. 당시 풍자만화나 포스터의 유행은 마네와 도미에도 예외가 아니었으며, 이들 화가와 풍자 만화가를 통해 노동계급의 문제는 파리 전체의 시사문제로 다시 한번 주목을 받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는 첫째, 19세기말 사노당의 근거지였던 파리 북동부 노동자 거주지역의 반(反)부르주아 문화에 대한 분석을 시도함으로써, 정치사와 사회경제사에 그 연구가 집중되어온 사노당과 나아가 19세기 말 프랑스 숙련노동운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문화사적 시각으로 확장하는데 미미하게나마 기여하고자 한다.
    본 연구자의 선행연구는 숙련 노동자들이 19세기 노동운동을 주도함에 있어서 최초로 노동자 정당을 결성하고 의회정치에 참여한다는 전략을 실험한 점, 1887년부터 심각해진 불랑제 장군 사건으로 공화정 체제를 수호해야 한다는 과제에 직면하여, 노동자 정당으로서의 배타성과 정체성을 일시적으로 유보하고 공화주의 급진파와 제휴함으로써, 시의원과 하원의원 배출이라는 선거상의 약진에도 불구하고 당내 대립구도의 싹을 키워나갔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또한 1890년 당 분열 이후 의회 사회주의로 나간 브루스파와 달리, 알르만파는 의회정치를 이탈하여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해주는 파업을 주 전략으로 택함으로써 생디칼리슴으로의 길을 여는 과정을 고찰해왔다.
    따라서 본 연구 과제가 진행된다면, 1880년대와 1890년대 사노당 노동자들의 정치·경제 투쟁이 근거지였던 파리 북동부에서 이러한 투쟁과정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발전했던 노동자 문화에 대한 이해를 덧붙임으로써 이 지역 노동자 집단의 역사에 대한 연구의 한 측면을 보완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더불어 이들 문화에 대한 노동계급 외부의 시선은 이들의 존재가 파리와 프랑스 사회 전체에 어떠한 이미지로 인식되었는가를 이해하는데 작은 도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둘째, 본 연구는 장기적인 안목으로는 19세기 파리의 부르주아 문화에 집중해온 연구 성과물에 더해 노동자 문화에 대한 하나의 작은 성과를 제시함으로써 "상위 대 하위문화," 혹은 "주류 대 비주류 문화"나, "중심 대 주변 문화"사이의 충돌 및 교류, 양자를 모두 접하고 경험했던 몽마르트르 예술가들이라는 두 문화 사이의 접점으로서의 특수한 위치를 차지했던 집단을 이해하는데 일조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동시에 이 시기 사회 전체 구성원들이 공유한 공통의 문화, 혹은 각기 독립적으로 발전시킨 개별 문화를 보는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는데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셋째로, 본 연구 과제는 현재 각 대학에서 개설되는 서양 근대사 분야의 개설과목에서도 중요하게 선택되는 주제인 부르주아 중심의 문화사 강의에 소외된 주변부 집단인 노동자 문제를 환기해주는데 작게나마 일조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노동자에서 여성, 소수민족 등으로 이어지는 사회 비주류 집단은 주류사회에 대한 저항과 스스로의 정체성 찾기, 결속력 강화와 집단행동으로 주류사회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왔다. 현대 사회가 포스트모던 사회이고 다중심 사회라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강력한 중심 사회는 새롭게 형성되어 강한 흡입력을 행사하게 되며, 이에 문제를 제기하는 역할은 항상 주변에서 발생한다는 점은 많은 역사가들이 공감하는 바일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19세기 사회 하층민이자 도전 세력이었던 노동자 문제를 강의에서 다루는 것, 그리고 이에 활용될 수 있는 연구과제인 파리 노동자들의 문화적 도전과정은 의미 있는 작업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과제는 넓게는 본 연구자의 선행 연구의 하나, 즉 20세기 노동자 구역의 뒷골목에서 탄생하여 1960년대 히피문화와 1968년 세계사적인 혁명에서 절정에 달했던 현대 저항문화의 역할, 이후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과 경기침체, 이를 이용한 정치적 보수주의로 억압되는 과정에서 명맥을 유지하였던 글램록(glam rock)과 펑크록(punk rock)의 저항문화에 관한 두 편의 졸고인 "록 음악의 저항문화: 부르주아 성 이데올로기와 문화가치에 대한 도전"『역사와 문화』3호 (2001. 07): 128-159.
    과 "포스트모던 음악의 등장과 민중문화 전통의 재건: 1970년대 글램록과 펑크록에 대한 신문화사적 해석"『미국사연구』16집 (2002. 11): 251-278.과의 교량역할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현대사회 저항문화의 힘의 원천이 전근대 카니발로 대표되는 민중문화였다면, 역사발전상 그 중간국면에 놓이는 19세기 노동자 문화는 양자를 이어주는 교량역할을 하였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톰슨(E. P. Thomson)에 의해서도 간략하지만 통찰력 있게 언급되었던 노동자 문화와 전근대 민중전통에 관한 밀접한 연관은 본 연구를 통해서 미미하나마 하나의 구체적이고 보완적인 사례로 더해질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 색인어
  • 파리 노동자, 인상주의, 노동자 이미지, 19세기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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