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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체제의 대중통치: 새마을운동의 구조-행위자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박정희 체제의 대중통치: 새마을운동의 구조-행위자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 2004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하재훈(경북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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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B00005
선정년도 2004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7년 10월 23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7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논문은 ‘강압적 지배 속에서 박정희 체제에 대하여 왜 많은 대중이 호응하였는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하였다. 기존의 박정희 시대 연구들은 공통적으로 박정희 시대의 동원에 드러나는 대중적 호응과 참여를 지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규범적 평가에 따른 이분법적 연구경향과 구체적이며 경험적인 분석의 결여로 인해 이 물음에 대한 충분한 해답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본 논문은 ‘박정희 체제가 무엇을 통하여 어떻게 대중을 통치하였는가’라는 문제의식을 통하여 이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였다.
    이러한 연구목적을 위해서 본 논문은 ‘대중통치’의 개념을 제시하였다. 대중통치는 국가통치의 기본적 틀을 공유하면서, 동원을 통하여 대중으로부터 통치의 정당성을 획득하려는 대중지향적 통치를 의미한다. 이러한 점에서 대중통치는 대중의 사회적․경제적․문화적 조건을 고려하여 끊임없이 변화하는 통치메커니즘을 내포하며, 이를 구현하고자 통치의 유인성에 주목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논문은 ‘새마을운동’을 구체적인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본 논문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박정희는 새마을운동담론을 구성하고 실천에 옮기는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새마을운동을 통해서 자신의 정치사상을 구현하고자 하였다. 둘째, 박정희 체제는 새마을운동의 조직화와 확산과정에서 마을규약을 통한 공동체규범과 계․두레 등의 협업적 전통을 적극적으로 수용․활용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새마을운동은 국가주도의 통치행위와 자기규율적 관습에 기초한 농촌 마을의 집합적 참여행위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확장되었다. 셋째, 새마을운동은 1970년대의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조건과 박정희 체제의 지배전략적 실천, 그리고 대중의 사회경제적 요구가 상호작용한 장이었다. 새마을운동의 경제적 유인은 이러한 상호작용의 핵심적인 작동기제였다. 넷째, 새마을운동은 박정희 체제가 내세웠던 경제개발과 근대화, 그리고 유신이념의 실천적 장이었다. 새마을교육을 통해서 통치이데올로기의 확산을 꾀하였으며, 대규모 집회와 같은 새마을상징을 통해 대중의 동질화를 제고시키고, 나아가 일상 속에서 ‘새마을’ 명칭을 ‘근대화’의 의미로 격상시키고자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박정희 체제는 새마을운동을 통하여 대중동의를 생산하기 위한 대중지향적 통치전략을 실천하였다. 새마을운동과 같은 대중지향적 통치방식은 어느 특정한 정권 또는 체제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국가권력을 획득한 모든 지배집단은 궁극적으로 대중적 참여와 호응을 견인하고자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권력이 제시하는 ‘사회적 공공선’과 대중이 견지하는 ‘개인의 자율성’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상호작용하는가에 있다.
    강압적 지배에도 불구하고 대중동원을 통해 대중의 집합적 참여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또한 ‘박정희 현상’의 이름으로 현재까지 대중 속에서 이러한 ‘기억’이 전승되는 것은 바로 박정희 체제가 대중동원을 통하여 ‘사회적 공공선’과 ‘개인의 자율성’의 조화를 위한 ‘조건’을 창출하는데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박정희 체제의 대중통치는 그 파국에서 불구하고 통치전략의 실천에서 일정한 ‘성공’을 거둔 것이라 평가할 수 있겠다.
    그러나 새마을운동에 나타나는 대중의 집합적 호응과 참여가 박정희 체제에 대한 대중 동의로 전화되는 것은 아니었다. 새마을운동을 통해서 권위주의적 리더십은 민주적 가치실현을 ‘국가’와 ‘민족’의 이름 앞에 부차화시켰으며, 눈부신 성장의 원동력으로 평가되는 경제적 유인은 대중의 경제적 부담을 오히려 가중시켰으며, 나아가 ‘국가주의’의 통치이데올로기에 동참한 ‘국민’은 동시에 강압적 지배에 저항한 ‘민중’의 이름을 가진 대중이었다는 점이 간과될 수 없기 때문이다.
  • 영문
  • Despite of the oppressive government, why did so many people make response to and participate the Park Chung-hee regime Until now, Most of researches on the Park Chung-hee regime recognized mobilization of the regime and participation of the people. However, these researches do not explain an interrelation between mobilization and participation, whether these researches is negative or not the Park Chung-hee regime. This thesis suggests a new question: how does Park Chung-hee regime govern the people To answer this question, this thesis attempts to analyze the Saemaul movement in 1970's.
    For the purpose of this study, I suggests the Popular Governing as a pattern of government. The Popular Governing is induced governance that the government-group practices for gaining consent from the people and enforcing regime-maintenance. Secondly, I argues that the researches on Park Chung-hee regime pay no attention to an interaction between structure and agent. In this thesis, I analyses an interaction between structure and agent in the Saemaul movement as apply ‘A theory of Structure' that William H. Sewell, Jr. proposed.
    In summary, the result of the thesis is that: first, Park Chung-hee as the highest ruler in the Saemaul movement is a primary factor. Park Chung-hee who made and practiced ‘the discussion of the Samaeul movement' tried to mobilize the people since 1961 but his endeavor failed because of indifference of the people.
    Secondly, despite of the separate conditions such as rural areas, factories and city areas, the Park Chung-hee regime constructed a systemic connection between state and society. This connection was possible through restraint of community consciousness and social norm.
    Thirdly, the Park Chung-hee regime in the Saemaul movement practices a economical inducement as offering discriminative reward to a rural community. So many problems such as gap between city and rural, labor issue and economic desire of the people arose from industrialization and economic development in 1960's. The Park Chung-hee regime in 1970's through the Saemaul movement offered economical inducement to the people for resolving these problems.
    Lastly, The Park Chung-hee regime in the Saemaul movement spread a ruling ideology through the Saemaul education and the Saemaul symbols. The Park Chung-hee regime especially emphasized ‘the modernization of the country' and the regime argued that to practice ‘the Saemaul Spirits' includes this slogan. Through this education and symbols, the people was encouraged by the results that they made and was aware themselves of a important social-being. The Participation of the people through education and spread of the Saemaul symbols is a good example that shows a integration between the ruling ideology and the people.
    In conclusion, The Saemaul movement is a result of interaction between social economic structure and political agents such as the Park Chung-hee regime and the people. In the viewpoint of government that the Park Chung-hee regime practiced, The Saemaul movement is a result of interaction between the leading-popular ruling and the people. However, The strategic purposes of the Park Chung-hee regime such as ‘the modernization of the country' and ‘the total mobilization' failed because the disequilibrium between growth and distribution through modernization do not resolve the relative deprivation, the alienation and the coercive social order through ‘the total mobilization' bring about the resistance of the people against the authoritarianism.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논문은 ‘강압적 지배 속에서 박정희 체제에 대하여 왜 많은 대중이 호응하였는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하였다. 기존의 박정희 시대 연구들은 공통적으로 박정희 시대의 동원에 드러나는 대중적 호응과 참여를 지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규범적 평가에 따른 이분법적 연구경향과 구체적이며 경험적인 분석의 결여로 인해 이 물음에 대한 충분한 해답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본 논문은 ‘박정희 체제가 무엇을 통하여 어떻게 대중을 통치하였는가’라는 문제의식을 통하여 이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였다.
    이러한 연구목적을 위해서 본 논문은 ‘대중통치’의 개념을 제시하였다. 대중통치는 국가통치의 기본적 틀을 공유하면서, 동원을 통하여 대중으로부터 통치의 정당성을 획득하려는 대중지향적 통치를 의미한다. 이러한 점에서 대중통치는 대중의 사회적․경제적․문화적 조건을 고려하여 끊임없이 변화하는 통치메커니즘을 내포하며, 이를 구현하고자 통치의 유인성에 주목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논문은 ‘새마을운동’을 구체적인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본 논문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박정희는 새마을운동담론을 구성하고 실천에 옮기는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새마을운동을 통해서 자신의 정치사상을 구현하고자 하였다. 둘째, 박정희 체제는 새마을운동의 조직화와 확산과정에서 마을규약을 통한 공동체규범과 계․두레 등의 협업적 전통을 적극적으로 수용․활용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새마을운동은 국가주도의 통치행위와 자기규율적 관습에 기초한 농촌 마을의 집합적 참여행위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확장되었다. 셋째, 새마을운동은 1970년대의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조건과 박정희 체제의 지배전략적 실천, 그리고 대중의 사회경제적 요구가 상호작용한 장이었다. 새마을운동의 경제적 유인은 이러한 상호작용의 핵심적인 작동기제였다. 넷째, 새마을운동은 박정희 체제가 내세웠던 경제개발과 근대화, 그리고 유신이념의 실천적 장이었다. 새마을교육을 통해서 통치이데올로기의 확산을 꾀하였으며, 대규모 집회와 같은 새마을상징을 통해 대중의 동질화를 제고시키고, 나아가 일상 속에서 ‘새마을’ 명칭을 ‘근대화’의 의미로 격상시키고자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박정희 체제는 새마을운동을 통하여 대중동의를 생산하기 위한 대중지향적 통치전략을 실천하였다. 새마을운동과 같은 대중지향적 통치방식은 어느 특정한 정권 또는 체제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국가권력을 획득한 모든 지배집단은 궁극적으로 대중적 참여와 호응을 견인하고자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권력이 제시하는 ‘사회적 공공선’과 대중이 견지하는 ‘개인의 자율성’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상호작용하는가에 있다.
    강압적 지배에도 불구하고 대중동원을 통해 대중의 집합적 참여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또한 ‘박정희 현상’의 이름으로 현재까지 대중 속에서 이러한 ‘기억’이 전승되는 것은 바로 박정희 체제가 대중동원을 통하여 ‘사회적 공공선’과 ‘개인의 자율성’의 조화를 위한 ‘조건’을 창출하는데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박정희 체제의 대중통치는 그 파국에서 불구하고 통치전략의 실천에서 일정한 ‘성공’을 거둔 것이라 평가할 수 있겠다.
    그러나 새마을운동에 나타나는 대중의 집합적 호응과 참여가 박정희 체제에 대한 대중 동의로 전화되는 것은 아니었다. 새마을운동을 통해서 권위주의적 리더십은 민주적 가치실현을 ‘국가’와 ‘민족’의 이름 앞에 부차화시켰으며, 눈부신 성장의 원동력으로 평가되는 경제적 유인은 대중의 경제적 부담을 오히려 가중시켰으며, 나아가 ‘국가주의’의 통치이데올로기에 동참한 ‘국민’은 동시에 강압적 지배에 저항한 ‘민중’의 이름을 가진 대중이었다는 점이 간과될 수 없기 때문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는 박정희 시대의 새마을운동을 통하여 권위주의적 지배체제가 대중의, '아래로부터의 요구'를 수렴함으로써 지배전략적 차원에서의 성공적인 실천을 수행한 메커니즘을 밝히는데 주력하였다. 즉, 1970년대 한국사회의 사회경제적 구조는 박정희 체제로 하여금 대중동원을 통한 지배전략적 실천으로 이어졌으며, 동시에 대중의 사회경제적 욕구를 분출시켰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박정희 체제의 실천과 대중의 집합적 의지의 분출은 다시금 '산업화'와 '근대화'의 파급과 확산으로 이어짐으로써 1970년대 사회경제적 구조에 영향을 행사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한국사회, 특히 농촌사회에 계승되어왔던 공동체 규범을 통한 공동체의 자기규율과 협업적 전통과 관습의 사회문화적 요인에 의해서 보다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즉, 농촌사회의 공동체 의식과 전통과 관습은 마을구성원의 집합적 의지결집과 실천을 구조적으로 강제하였으며, 농촌에서의 이러한 성공적 결과는 공장새마을운동과 도시새마을운동에서 그대로 적용되었다.
    하지만 공장새마을운동과 도시새마을운동에서의 인위적인 '공동체주의' 확립은 성공적이 못한 결과를 도출하였다. 이러한 원인은 '잘살아보세'라는 새마을운동의 구호가 농촌지역의 사회문화적 요인과 조응하면서 개인의 자율성을 국가주의적 목표로 유인하는데 유효성을 가졌던 것과는 달리, 공장과 도시지역의 사회문화적 요인과는 부조응의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새마을운동을 통한 박정희 체제의 지배전략적 실천은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한 대중의 집합적 의지결집과 실천적 참여라는 일정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전면적인 지지와 동의로 전화시키는데는 실패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권위주의적 지배체제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사회경제적 욕구를 지배전략적 실천으로 장으로 끌어내고 이를 적극적으로 주도하였다는 점에서 박정희 체제의 대중지향적 통치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이러한 본 연구의 결과는 향후 박정희 시대에 있어서 대중의 집합적 참여를 새롭게 조명하는데 있어서 일정정도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서 박정희 시대의 대중동원의 전개과정, 동학, 그리고 의미의 재해석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본 연구는 새마을운동과 박정희 개인의 정치사상이 맺는 상호연관의 문제, 새마을운동의 태동이 갖는 정치학적 함의 등을 충분히 다루지 못한 한계가 있다. 따라서 향후 이러한 부분에 대한 지속적인 심화연구를 수행하고 이러한 연구의 결과를 한국정치학회보를 비롯한 각종의 학회지에 발표 하고 단행본을 출판하도록 할 것이다.
  • 색인어
  • 박정희 체제, 박정희 시대, 유신체제, 대중, 통치, 대중통치, 국가통치, 동원, 대중동원, 대중지향, 지배전략, 유인, 보상, 새마을운동, 새마을, 새마을운동담론, 새마을의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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