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공동연구는 20세기의 전쟁기념을 동서양의 다양한 지역에서 행해진 각종 역사적, 정치적 담론과 문화적 재현매체들의 사례를 통해 비교, 검토해보았다. 1914년 발발한 1차 세계대전은 처음으로 ‘총력전(total war)’이라는 전혀 새로운 성격의 전쟁을 등장시켰다. 총력 ...
본 공동연구는 20세기의 전쟁기념을 동서양의 다양한 지역에서 행해진 각종 역사적, 정치적 담론과 문화적 재현매체들의 사례를 통해 비교, 검토해보았다. 1914년 발발한 1차 세계대전은 처음으로 ‘총력전(total war)’이라는 전혀 새로운 성격의 전쟁을 등장시켰다. 총력전이란 국가에 의한 전일적인 대량 동원과 대량살상, 기술적 잠재력의 극대화로 특징지어지는 전쟁 양상으로서 20세기 세계의 정치, 사회, 문화구조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본 연구는 ‘역사적 지형도와 담론의 헤게모니’라는 문제의식 하에 20세기 총력전에 대한 각종의 기억 방식들을 역사적 기억과 망각, 정치적 선전과 예술적 초극, 중심부와 주변부라는 중층적인 안목으로 살펴봄으로써 20세기 지구사를 관통하고 있는 역사적 상흔과 그것을 극복하여 미래를 창조하려는 지난한 노력들을 탐구하였다.
본 연구는 몇 가지 측면에서 독창성을 추구하였다. 먼저 국내에서 선구적으로 본격적인 ‘기념(commemoration)’ 연구를 수행하였다. ‘기념’이란 한 사회 또는 특정한 사회집단이 자신의 과거를 관리하는 공적인 형식으로서, 이러한 접근 방식은 과거에 대한 기억을 행하는 주체와 그 주체가 과거를 재현하기위해 사용하는 매체, 그리고 그 재현 결과를 수용하는 자를 종합적으로 규명함으로써 기억의 권력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사회갈등적, 문화변동적 위상을 다각도로 검토할 수 있게 한다. ‘기념’ 연구를 통해 기억의 문제는 비로소 사회‧문화과학적인 차원으로 읽힐 수 있게 된다. 본 연구의 또 다른 독창성은 대상지역과 매체의 다변화를 꾀했다는 점이다. 연구의 대상지역으로는 한국, 일본,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이 포괄되었다. 이 지역들은 식민지 해방투쟁, 제국주의 전쟁, 세계대전, 냉전(분단) 중의 하나 또는 여럿을 심각하게 경험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매체로는 역사교과서, 신문, 방송, 박물관, 기념관, 기념비, 도시공간, 회화, 영화, 소설 등이 두루 포함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지역과 다양한 수준 및 매체영역을 포괄하는 비교문화사 연구는 각 년차마다 초점을 달리하여 진행되었다.
1차년도는 ‘전쟁기념담론의 구성과 성격: 공적 담론에서 제도교육까지’라는 주제 하에 전문적인 역사학 저술과 좀더 포괄적인 의미의 역사적 정치담론이 행해지는 언론매체, 그리고 역사교과서 등을 소재로 삼아, 공적인 전쟁담론에 대한 포괄적이고도 세분화된 분석을 행했다. 각국은 20세기 특유의 총력전이 낳은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이를 새로운 정체성형성의 전기(轉機)로 삼기위해 전쟁 기념을 적극 활용하였다는 점에서 일치하나, 유럽에서는 주로 전쟁기념이 트라우마를 보듬는 차원을 보여준데 반해, 아시아와 미국에서는 대체로 전쟁기념을 정치적, 이데올로기적으로 도구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2차년도 공동연구는 ‘기념비적 공간의 비교문화사: 박물관에서 매스미디어까지’라는 주제 하에 문화적 매체에 의한 기념 양상을 집중 탐구하였다. 20세기 총력전의 경험이 낳은 극대화된 트라우마는 관례화된 매체들을 넘어 새로운 매체들을 대거 양산했으며 이를 통해 도저히 합리적 설명이 불가능해 보이는 체험의 의미를 다시 찾으려는 노력들이 두드러졌다. 특히 유럽권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기념비와 박물관, 예술작품들은 역사적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제시해주었다. 2년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3차년도의 공동연구는 전쟁기념의 새로운 지형들이 내포하는 가능성과 한계를 탐구하였다. ‘기념되는 전쟁과 잊혀진 전쟁: 대안적 기념문화의 모색’이라는 주제 하에 특정한 희생자에 대한 추모와 여타의 희생자에 대한 배제, 혹은 희생을 미화하는 일방적인 기념문화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었다.
이상의 3차년 간의 공동연구를 통해 얻은 궁극적 결론은 20세기의 전쟁 기념이 20세기 세계 각국의 독특한 정치 ‧ 문화적 구조를 형성하는데 크게 영향을 끼쳤으며 자민족중심주의나 엘리트주의의 관점을 넘어, 보다 지구적 관점, 또한 비주류 및 주변부의 관점에 입각하는 새로운 시민의식의 가능성을 제공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