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독일의 시대상황은 다음 다섯 가지 정도로 규정될 수 있다. 첫째, 슈펭글러는 서양에서 끊임없이 강화되어 온 계산적 이성(ratio)으로서의 정신 때문에 서구인들의 삶이 몰락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성은 서양의 기술과 경제 그리고 세계교통과 인간개조 등의 ...
20세기 초 독일의 시대상황은 다음 다섯 가지 정도로 규정될 수 있다. 첫째, 슈펭글러는 서양에서 끊임없이 강화되어 온 계산적 이성(ratio)으로서의 정신 때문에 서구인들의 삶이 몰락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성은 서양의 기술과 경제 그리고 세계교통과 인간개조 등의 부분에서 수많은 성과를 올려왔지만 동시에 영혼의 삶을 차단하여 끝내 서구의 정신적 문화를 쇠퇴와 몰락에로 강요한다. 둘째, 니체로부터 발원하여 루드비히 클라게스의 『영혼의 적대자로서의 정신』(Der Geist als Widersacher der Seele, 1929년에 출간됨)에서 주제화된 ‘삶에 대한 충동’의 강조를 꼽을 수 있다. 셋째, 니체의 "디오니소스 대 아폴론"의 대립을 꼽을 수 있다. 삶의 긍정은 "십자가에 달린 자"로서의 아폴론을 부정하는 것이자, 갈기갈기 찢겨나간 디오니소스를 오히려 "삶에 대한 하나의 약속" 즉 "영원히 다시 태어나고, 파멸에서부터 고향에로 오게 되는 약속"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니체의 사상은 "서양정신 대 영혼(삶의 본능)"을 대립의 구도에서 파악하는 모든 사유의 근원이 된다. 넷째, 프로이트의 『전쟁과 죽음의 시대에 대한 생각들』(Thoughts for the times on War and Death, 1915년에 발표)이다. 여기서 프로이트는 문명화된 국가와 개인들이 저지를 수 있을 만한 잔인함과 야만성을 폭로하기 시작했다. 다섯째, 하이데거는 철학의 종말과 학문화 경향이 곧 존재망각과 기술 형이상학의 부활로 치달을 것임을 경고했다.
이러한 시대 상황이 곧바로 근본기분으로서의 권태가 낳아지는 의미상실과 목적상실 그리고 자아상실과 무기력 등이 복합되는 상황이다. 존재자에로의 호기심 어린 탐닉은 결국 권태를 부르고, 시대 전체에 끈질기게 달라붙는 권태로부터의 해방과 탈출의 시도는 끝내 서양문명을 야만과 신화의 상태로 되돌리고 말았고,(『계몽의 변증법』,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사람들을 두 번의 세계 대전이라는 권태의 희생양으로 내몰았으며, 기술문명의 발전에로 치달았던 권태치유책은 거꾸로 더욱 조직화된 일상과 제도를 출현시킴으로써 사람들의 자율성과 삶의 흥분을 앗아가 버렸다. 그로써 사람들은 삶의 의미로부터 급격히 멀어지게 된다. 이로써 우리는 권태라는 기분을 20세기 초 서양의 ‘근본기분’으로 제시할 수 있다.
이상(李箱)의 작품세계는 1930년대 한국인들의 하루가 어떠했는지, 즉 그들에게는 내일에 대한 아무런 보장도 없는 삶만이 날마다 되풀이됐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당시 현실은 이상에게 ‘숨통 막힘’의 답답함과 절망감을 안겨 주었고, 결국 그의 삶을 권태에 가두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은 이만규의 『조선 교육사 II』(1949년판 복간)와 정진석의 『한국 언론사』에 따를 때 지식의 사회화가 급격히 진행되던 때였고, 고미숙의 「애국 계몽기 시운동과 그 근대적 성격」에 따르자면 1890년부터 1910년까지의 상황은 "불과 몇 년을 단위로 호흡이 달라지는 격동기"였다. 이 시기의 특기할 만한 점은 문학이 "선험적으로 규정된 율격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 "감성을 억누르는 규범"이 타파되며, "노래와 시의 분화"가 일어났고, 무엇보다 "계몽주의적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한일 합방’ 전후 애국 계몽 운동의 핵심적 지도층은 대부분 일제의 폭력을 피해 해외로 망명했다. 일제의 무단통치 아래서 제국주의적 자본주의가 일방적으로 이식되었고, 조선인들은 ‘식민적 근대화’의 폭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유린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민족적 모순, 계급의 분열과 갈등, 게다가 이념적 대립으로까지 번져간 시대적 난맥상은 개인의 생활뿐 아니라 내면 세계를 송두리째 혼돈과 방황의 질곡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렇기에 이상은 갈래갈래 ‘찢어진 자아’를 시와 소설 속에 드러냄으로써 당대 한국인들의 삶의 어둠과 슬픔 그리고 아픔을 이야기했던 것이다. 자신의 아내를 창녀로 내몰아야만 살 수 있었던 시대,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무기력한 패배자의 모습이 너무도 비참해 자살충동에까지 시달려야 했던 시대! 그러므로 살아남은 자가 할 일이란 고작 "끊임없는 자아의 부재화"를 반복하는 것뿐인 시대, 따라서 마침내 자기 자신의 살아있음 자체에 대해서도 더 이상 아무런 흥미를 느낄 수 없게 된 시인 이상의 권태는 엄밀히 말하자면 "무엇을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 당시의 시대 자체"를 풍자적으로 비웃은 시대의 외침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이상의 권태는 20세기 초 조선이 처했던 시대적 상황을 근본적으로 조율하는 근본기분으로서 제시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