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연극은 영상, 무용, 미술 등 타 예술 장르의 이질적 요소들을 포괄하며 점차 탈(脫)영토화, 탈경계화, 혼종화, 그리고 복합문맥화 등의 추세를 보이고 있다. 1960년대 이후 서구에서 다양한 형태로 실험되고 있는 탈 텍스트중심의 '포스트드라마 연극'의 중앙에는 몸 ...
현대 연극은 영상, 무용, 미술 등 타 예술 장르의 이질적 요소들을 포괄하며 점차 탈(脫)영토화, 탈경계화, 혼종화, 그리고 복합문맥화 등의 추세를 보이고 있다. 1960년대 이후 서구에서 다양한 형태로 실험되고 있는 탈 텍스트중심의 '포스트드라마 연극'의 중앙에는 몸과,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기반한 멀티미디어가 위치하고 있다. 그 결과 텍스트가 연극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화되고, 새로운 관찰과 지각의 방식이 무대에 도입되면서 인간존재와 사회의 문제도 종래의 허구적인 배역과 플롯의 형상화와는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제시되었다. 그 새로운 방식은 크게 다음의 세 범주로 분류될 수 있다. 그 중의 하나는 비언어적 시청각기호와 탈의미화된 신체에 의존하는 연출가연극, 다른 하나는 몸 중심의 크로스오버 연극으로서의 춤연극, 그리고 마지막으로 디지털 매체기술의 영향에 의한 매체연극이 그것이다.
연출가연극에서는 원작에 충실한 텍스트의 재현보다 연출가의 미학적 관점과 세계관이 더 중요하고 우선시된다. 그 만큼 연출가연극에서는 문학성 대신에 연극성이, 지시적 성격 대신에 수행적 성격이, 전통의 답습 대신에 혁신적인 창의성이 더 큰 가치와 비중을 차지한다. 연극적 표현수단과 관련해서도 연출가연극은 주로 배우의 말과 행동을 통해 보여주는 화술연극에서 탈피하여, 비언어적 수단과 무대장치를 사용하여 텍스트와 문학으로부터 독립된 연기의 자율성과 연극성을 추구한다. 이에 따라 연출가연극은 몽타주와 생소화, 그리고 정서에 의해 유도된 신체 행동 등의 연극수단들에 힘입은 비(非)환영주의적 묘사형식으로 실제 세계에 대한 비판적 수용과 묘사를 목표로 한다.
춤연극은 19세기 말부터 연극에서 일기 시작한 신체 언어의 중요성과 극적 표현수단 및 극장주의 정신을 도입하면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인습적인 동작, 즉 발레나 현대무용의 정립된 동작들이나 무용개념을 넘어서서 언어, 무대장치, 음악, 연극, 영상 등을 콜라주함으로써 총체예술의 공연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무용수들은 정서적인 내용이나 인간관계를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자연스러운 동작과 몸짓으로 정서적인 면을 창조해내어 무용수의 역할을 확대함은 물론 관객층도 새로이 확충하였다. 여기에는 설화적 플롯 대신에 상황과 공포, 인간의 갈등들이 제시된다. 관객은 이미지와 사고의 사슬을 따라가면서 심사숙고하도록 자극을 받게 된다. 미국의 실험무용이 외형적 형식미의 추구와 음악, 미술 등의 표현 매체와의 화합을 노리고 있다면, 독일의 탄츠테아터는 라반과 비그만의 표현무용과 요스의 연극적 춤, 그리고 브레히트의 반(反)환상주의 극장예술 및 1960년대 이후의 해프닝으로부터 모두 영향을 받고 있는 복합적 형태의 무용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춤연극과 희곡적 연극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무용은 연극으로부터 이미지의 미학과 열린 구조, 그리고 스토리가 있는 드라마투르기로부터의 해방을 새로 터득하였다면, 연극은 춤연극에서 신체 및 정서상으로 표출되는 비억압적이고 비위계질서적 연극언어를 배우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시대에 가장 충격적이고 의미심장한 혁명의 박차는 다름 아닌 전자(매체)테크놀로지로부터 유래한다. 디지털 매체기술의 발달로 인해 점점 더 다양하고 복합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매체적 퍼포먼스와의 공동작용에서는 실연성(liveness)이 연극과 매체들이 하나의 담론으로 합쳐지는 교차점으로 나타난다. 그 대표적인 연출가 가운데 하나인 르빠주는 멀티미디어와 테크놀로지의 결합을 시도하면서 상호매체적 성격을 잘 드러낸다. 특히 그의 <달의 저 편>은 비디오 아트, 영상, 사진, 인형, 영화의 몽타주기법 등과 같은 다양한 매체들이 상호 작용하여 연극성을 산출하고 있다.
연극이든 영화이든 무용이든 각 매체는 자신의 고유한 특성과 법칙을 가장 잘 활용함으로써 미학적으로 가치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 특히 다매체 시대를 맞아 윌슨과 카스텔루치, 바우쉬와 르빠주 등과 같은 연출가들이 추구한 네오아방가르드적 형식실험은 결국 연극예술 자체 내의 변화된 생산과 수용의 방식에 대한 매체적 자기반성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들의 시도는 급변하는 세계 환경에 대한 새로운 지각과 인식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전달하기 위해 모든 규범적인 것을 원칙적으로 의문시하고, 매체의 특수성에 대한 이론으로 새로운 매체 미학적 규범을 세우고자 한 것에 다름 아니다. 이들의 연출가연극, 춤연극, 매체연극은 이렇게 종래의 좁은 '연극'의 개념을 확장하고 "탈영토화"하는 점에서 탈(脫)정전, 탈중심, 탈구조, 탈장르, 대중화로 특징지어지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정신과도 일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