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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시전상업의 변화- 綿紬廛을 중심으로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개항기 시전상업의 변화- 綿紬廛을 중심으로 | 2005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고동환(한국과학기술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A00035
선정년도 2005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7년 05월 28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7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개항이전까지 서울의 시장은 시전중심의 상업질서가 주류를 이루는 시장이었다. 18세기 후반에 비해 중국, 일본산은 물론 서양의 물산들도 서울의 시장에서 어렵지 않게 구입할 수 있었다. 1789년 신해통공으로 육의전을 제외한 다른 시전의 금난전권이 부정되어 자유로운 상업행위가 용인되었어도, 여전히 권력과 상업자본과의 결탁에 의한 독점적 상업이윤 축적시스템을 그대로 유지되었다. 특히 정치권력의 독점을 생리로 하는 세도정권하에서 상업이윤의 독점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매우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세도정권이 60년간 유지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은 독점적 상업이윤이 세도정권을 지탱했던 권세가문에 대부분 흡수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개항이후 서울의 시장은 인천개항장과의 연계가 강화되면서 성장하였다. 특히 섬유제품을 중심으로 한 외국상품의 서울시장 유입은 종전 국내산 섬유류를 독점적으로 판매했던 면포전, 면주전등에 심대한 타격을 가한 것이었다. 국내산 면포생산과 비단 생산이 위축되었다. 개항이전 시전상인중에서 3번째로 이익규모가 컸던 면주전은 개항이후 외국산 섬유제품의 유입으로 민간판매가 크게 위축되었다. 면주전을 지탱시킨 것은 민간판매보다는 정부나 왕실에 필요한 비단을 진배하는 것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개항이후 한말 시기 왕실재정과 정부재정의 악화로 인해 진배가를 제대로 받을 수 없게 되자, 면주전은 부채가 수만냥에 달하고 영업인이 1명에 불과할 정도의 매우 영세한 시전으로 전락하였던 것이다.
  • 영문
  • This study is concerning the change of Myunju-Licensed Shop in the second half of 19th century. After the 18th century, commercial changes were so qualitative that it reflected the changes of all factors from the market area and traffic network to the commodity circulation system. After Open Port, foreign merchants, especially Chinese and Janpanese merchant be stationed at Seoul and foreign fabric commodities were imported from Inchun. It cames came as a terrible blow to Seoul Market. So Myunju-Licensed Shop was declined.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개항이전까지 서울의 시장은 시전중심의 상업질서가 주류를 이루는 시장이었다. 18세기 후반에 비해 중국, 일본산은 물론 서양의 물산들도 서울의 시장에서 어렵지 않게 구입할 수 있었다. 1789년 신해통공으로 육의전을 제외한 다른 시전의 금난전권이 부정되어 자유로운 상업행위가 용인되었어도, 여전히 권력과 상업자본과의 결탁에 의한 독점적 상업이윤 축적시스템을 그대로 유지되었다. 특히 정치권력의 독점을 생리로 하는 세도정권하에서 상업이윤의 독점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매우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세도정권이 60년간 유지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은 독점적 상업이윤이 세도정권을 지탱했던 권세가문에 대부분 흡수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개항이후 서울의 시장은 인천개항장과의 연계가 강화되면서 성장하였다. 특히 섬유제품을 중심으로 한 외국상품의 서울시장 유입은 종전 국내산 섬유류를 독점적으로 판매했던 면포전, 면주전등에 심대한 타격을 가한 것이었다. 국내산 면포생산과 비단 생산이 위축되었다. 개항이전 시전상인중에서 3번째로 이익규모가 컸던 면주전은 개항이후 외국산 섬유제품의 유입으로 민간판매가 크게 위축되었다. 면주전을 지탱시킨 것은 민간판매보다는 정부나 왕실에 필요한 비단을 진배하는 것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개항이후 한말 시기 왕실재정과 정부재정의 악화로 인해 진배가를 제대로 받을 수 없게 되자, 면주전은 부채가 수만냥에 달하고 영업인이 1명에 불과할 정도의 매우 영세한 시전으로 전락하였던 것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기왕에 축적된 다양한 조선후기 상업사연구가 대부분 사상난전의 성장과 이에 기초하여 18세기 후반 시전상업체제의 해체를 전망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에 의하면 19세기 이후의 시전상업의 변동과 개항이후 제국주의 상업자본의 침투에 대항한 시전상업의 동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본 연구를 통해 개항을 전후한 시기 시전상업체제에 대해 이해를 가지게 된다면, 개항전후기 상업자본의 동향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물론, 신해통공이후 시전상업체제에 대해서도 재평가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될 것이다. 또한 이 연구를 통해 개항을 계기로 역사상의 단절을 극복하고 개항 전후기를 통일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사례를 하나 첨가할 수 있을 것이다.
  • 색인어
  • 市廛, 綿紬廛, 六矣廛, 開港, 都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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