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조선의 마지막 50년을 남기고 출발한 동학의 종교적 울림과 파장이 100년을 거치면서 빚어낸 파란의 종교사를 조명하고자 하였다. 전통과 근대가 교차하던 동학 백년사는 영성과 근대성이라는 두 축에 의해 호흡이 바뀌어 나갔다. 이러한 이질적인 호흡의 변화를 ...
우리는 조선의 마지막 50년을 남기고 출발한 동학의 종교적 울림과 파장이 100년을 거치면서 빚어낸 파란의 종교사를 조명하고자 하였다. 전통과 근대가 교차하던 동학 백년사는 영성과 근대성이라는 두 축에 의해 호흡이 바뀌어 나갔다. 이러한 이질적인 호흡의 변화를 계기로 우리는 ‘초기동학’(early Eastern Learning)과 ‘후기동학’(late Eastern Learning)을 구분하고, 이 두 호흡이 어우러진 동학 100년의 종교적 세계를 그려보고자 하였다.
먼저, 초기동학과 후기동학의 100년을 이해하기 위해, 동학이 놓인 종교사의 전체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학은 한국에 전래된 두 기독교의 충격으로부터 새로운 호흡을 시작했다. 서학의 유신론적 경험의 충격으로부터 초기동학의 새로운 영성이 분출하였고, 개신교가 몰고 온 근대의 충격으로부터 후기동학의 새로운 적응실험이 모색되었다. 동학은 19세기말 전통문화의 활력이 점차 쇠진되어 가던 전근대의 말로를 목도하면서 새로운 영성운동을 분출시켰고, 20세기초에 이르러서는 근대적 틀을 놓고 쇄신과 분화를 거듭하게 되었다. 초기동학은 산간으로 쫓겨다니면서도 자신의 영성을 통해 한국종교문화의 판을 새롭게 구성하려 하였고, 후기동학은 산간에서 빠져나와 새로이 바뀐 근대의 환경에 맞춰 자신을 변용시키려고 하였다. 결국, 동학은 서학과 개신교라는 서양종교의 두 거물 사이에 위치하면서(‘서학-동학-개신교’) 역동적인 한국종교사의 후반부를 장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한국종교문화의 얼굴인 셈이다.
두 번째로, 초기동학과 후기동학의 100년을 이해하기 위해, 기존의 동학연구의 한계와 차후의 목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초기-중심주의’(arche-centrism), ‘주류-중심주의’(mainstream-centrism), ‘교의-중심주의’(dogma-centrism) 등의 병폐는 진정한 동학 100년을 이해하는 데에 장애가 되고 있다. 동학 100년에 대한 이해는 원형에만 집중하는 초기-중심주의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으며, 19세기의 초기동학과 20세기의 후기동학을 포괄하는 긴 호흡과 안목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간혹, 후기동학에 대한 관심이 있더라도 주류교단의 논리에 치우친 주류-중심주의로는 새로운 구원론을 제시하며 시대에 부합하려던 후기동학의 다양한 실험들을 담아낼 수 없으므로, 주류교단과 비주류교단을 아우르는 균형 감각이 다시 요청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초기동학과 후기동학을 포괄하고, 주류교단과 비주류교단을 아우른다 해도 교리와 사상에 치중한 교의-중심주의로는 신과 신성에 반응한 인간의 몸짓이 신학적 사유에 묻힌 기형적인 이해에 머무를 수밖에 없으므로, 신학과 의례학의 수렴을 가능하게 하는 테오프락시(theopraxy)의 장치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
세 번째로, 동학 100년 연구의 절반이라 할 수 있는 19세기 동학을 이해하기 위해, 초기동학의 신학과 의례학을 구성해 보았다. 초기동학은 교조 수운(水雲)의 독특한 종교경험을 통해 새로운 신성(deus industrius)을 대면하면서 비롯되었고, 이를 계기로 시천주(侍天主)의 신학과 의례학이 형성되었다. 초기동학의 흐름 속에서 시천주의 신학은 신중심적 신학(theocentric theolgoy)에서 인간중심적 신학(anthropocentric theology)으로 전환되었고, 그 과정에서 신에 대한 영적인 통찰력은 인간 존엄에 대한 자각으로 확장되었다. 시천주의 의례학은 제사(天祭, 입도의례)와 수도(守心正氣)의 형식으로 구체화되었는데, 신학적인 흐름과 유사하게, 초월적인 신에 대한 신중심적 의례(theocentric ritual)가 점차 내재적인 신성을 의식하는 인간중심적 의례(anthropocentric ritual)로 변모해갔다.
마지막으로, 초기동학에 이어 후기동학의 테오프락시를 구성함으로써 동학 100년의 흐름을 마무리 하였다. 새롭게 조성된 20세기의 종교 환경에서 다양한 종교적 실험을 지속하며 적응해온 다양한 후기동학의 전형을 이해하는 차원에서 천도교, 상제교, 동학교, 수운교 등의 교단을 선택적으로 기술하였다. 이들 네 교단은 초기동학의 전통과 정통성을 재해석하면서, 독특한 시천주의 신학과 의례학을 구성해 나갔다. 초기동학의 후신을 표방하는 후기동학의 교단들이 여러 이름으로 불리며 생성되고 변모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20세기 전반기에도 여전히 동학의 치열한 실험과 모색이 지속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