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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근대와 젠더: 1920,30년대 한·중·일의 사회주의·민족주의·여성주의 여성 비교 분석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동아시아의 근대와 젠더: 1920,30년대 한·중·일의 사회주의·민족주의·여성주의 여성 비교 분석 | 2014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이선이(경희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2014S1A5A2A01011234
선정년도 2014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17년 10월 26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17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국가주의’와 역사의 착종성 : 다카무레 이쓰에(高群逸枝)를 중심으로
    본 연구는 다카무레 이쓰에(高群逸枝 1894-1964)를 통해서 여성사 연구가 안고 있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하는 시론적인 글이다. 따라서 다카무레라는 개인에 대한 역사학적 고찰이라고 하기 보다는 다카무레라는 여성사가의 행위 그 자체가 함의하고 있는 것을 통해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역사학의 근원적 주제에 대해 성찰 해보고자 하였다.
    다카무레 이쓰에는 1894(明治27)년 1월 18일 쿠마모토(熊本)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소학교 교장이었으며 자연이 풍성한 시골에서 아버지로부터 한문교육을 받았다. 훗날 아버지로부터 받은 한문교육과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고전과 역사를 좋아했던 것이 역사연구의 토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본 연구에서 주목한 시기는 1931년부터 두문불출하면서 여성사 연구에 전념하였던 1930-40년대이다. 이 시기는 일본이 중일전쟁을 본격화하는 시기와도 일치하고 있어서 당시의 시대상황과 이념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도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아나키스트로 출발했던 다카무레는 1931년을 전후로‘혼인화협(婚姻和協)’의 논리 아래 ‘대동아전쟁’을 ‘성전’으로 정당화하여 광신적 전쟁찬미 글을 다수 발표한다. 그전까지 다카무레는 도시화와 산업화의 영향으로 궁박해진 농촌과 도시하층 민중의 옹호자였으며, 누구보다도 첨예한 근대비판자로 ‘반가정’, ‘반시민’을 제창하였다. 이글에서 주목하고자 한 것은 바로 ‘반가정’, ‘반시민’이라는 근대에 대한 냉철한 문제의식을 지녔던 그녀가 왜 막 생성된 근대국가・민족에 대한 거리두기는 불가능했던 것일까? 또한 반근대주의자이며 무정부주의자가 익찬(翊贊)으로 전환할 때‘역사’를 선택한다는 것은 과연 어떠한 역사적, 사회적 의미를 갖는 것일까? 하는 두 가지 의문에 대한 실마리를 찾고자 하였다.
    다카무레는 ‘반가정’, ‘반시민’으로 표상되는 ‘반근대주의’에 대한 대안을 일본의 고대국가에서 찾았는데, 일본 고대국가의 통합은 무력정복이 아니라 혼인화협 또는 계보상의 결성으로 이루어졌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고대로부터 모계씨족이 오랜 세월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외국문명은 씨족협화의 의식적 기초 위에 서있는 일본문명과 비교하면 그 열등성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고 까지 단언한다. 이처럼 그녀의 ‘반근대주의’의 자장은 ‘일본국가’와 ‘민족’안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 전하는 역사가 역사라고 생각하지 않고 ‘여성에게 살아가는 용기를 주는 역사’야 말로 진정한 역사라고 생각”했다는 다카무레에 대한 평가는 역사의 시대였던 근대에 역사가 지니는 의미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다카무레의 연구가 ‘학설을 창작’하는 수준의 연구였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어쩌면 역사가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이”아니라 “역사는 ‘과거’에 대한 ‘현재’의 문제제기”로 역사가의 사상과 그 사상에 바탕을 둔 방법론의 한계를 지닌 과거에 대한 여타 서술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일 수 있다.

    본 논문은 중일전쟁시기 일본군이 자행한 중국여성에 대한 성폭력에 대하여 張雙兵의 『“慰安婦” 調査實錄』( 南京: 江蘇人民出版社. 2014.) 등의 구술 자료집을 통해서 살펴보았다. 나아가 일본군의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던 당시 중국의 여성주의자 딩링(丁玲, 1904-1986)은 이를 어떻게 문제화했는지에 대해서 그의 작품「새로운 신념(新的信念)」,「재회(重逢)」,「내가 노을마을에 있었을 때(我在霞村的時候)」를 통해서 논하였다. 딩링은 산시성(陝西省)에 있던 공산당 근거지 옌안(延安)에서 전쟁터가 된 화북의 각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일본군의 성폭력을 목격하거나 전해들은 이야기들을 토대로 작품을 썼다.
    구술자료들이 다루고 있는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들의 피해의 중층성에 주목하다보면 1941년 옌안에서 딩링이 「내가 노을 마을에 있었을 때」에서 형상화시킨 주인공 전전(貞貞)의 삶과 훗날 딩링과 그녀의 작품이 받았던 비판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전쟁 시기 공산당 근거지 옌안(延安)에서 일본군이 자행한 여성에 대한 성폭력에 대해 딩링은 몇 가지 방식으로 문제제기를 하였다. 그런데 어떤 특정한 방식의 문제제기는 권장되었지만,「내가 노을 마을에 있었을 때」의 주인공 전전의 입장에서의 문제제기는 노골적으로 억압되었다. 그리고 중국 공산당이 장악한 중화인민공화국은 기억과 망각을 통해 국가의 역사인식을 구성하였다. 그 실마리를 본고는 1956년에 행해진 전범재판의 기록을 통해서 살펴보았다. 항일전쟁 승리, 내전 승리 등 중국공산당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잊혀야 했던 역사가 전쟁이 종료되고 반세기의 세월이 지난 시점에 떠올랐다. 일본군 성폭력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작동된 선별과 권력 작용은 오늘날 피해자가 입을 열고 그것을 기록하는 이들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 영문
  • ‘Nationalism’ and the Entanglement of History: Focusing on Takamure Itsue

    This study is an essay intended to consider a few issues relating to women’s history by examining Takamure Itsue (1894-1964). Therefore, it aims to reflect on the fundamental topics of history, such as the implications for history of Takamure’s actions as a feminist and female historian, rather than historically studying Takamure as an individual.
    Takamure Itsue was born in Kumamoto Prefecture on January 18, 1894. Her father was a primary school principal and he taught Chinese classics to his daughter in a countryside blessed by nature. Takamure’s preference for classics and history originates from her father’s Chinese education and her mother’s influence from childhood, which later formed the foundation for her historical research. This study focuses in particular on the 1930s and 1940s, during which period she devoted herself to studying women’s history by immersing herself in it from 1931 onwards. This period coincides with the time when Japan became increasingly involved in the Sino-Japanese War, which makes her indispensable when studying the situations and ideologies of the time.
    Starting out as an anarchist, Takamure published a number of fanatical texts around 1931 that praised the war, justifying the ‘Pacific War’ as a ‘holy war’ under the logic of ‘
    marriage harmony(婚姻和協).’ Before then, she had been a defender of the urban lower classes and farm villagers who had fallen into financial difficulties due to the influences of urbanization and industrialization. She advocated for ‘
    anti-home’ and ‘anti-citizen’ as a critic of modernization more intense than any other. What this study aims to focus on is to examine why she, who had been so cool-headed and had such a critical mind regarding modernity (as shown by ‘anti-home’ and ‘anti-citizen’), could not keep her distance from the modern state and people that had recently come into power. Furthermore, what are the historical and social implications for the course of ‘history’ when an anti-modernist and anarchist converts to being
    a
    supporter? These are the two questions this study aims to answer.
    Takamurefound an alternative form of ‘anti-modernism’ (represented by ‘anti-home’ and ‘anti-citizen’) in the ancient kingdom of Japan, stating that the integration of the ancient Japanese kingdom was achieved, not by armed conquest, but by marriage harmony or genealogical ties, which was possible thanks to the existence of the maternal clan since ancient times. Moreover, she declared, “there is no question but that foreign civilizations are inferior to the Japanese civilization that is built on the conscious foundation of the harmony of clans.” As such, her

    ‘inspiration’ for ‘anti-modernism’ was in the ‘Japanese state’ and ‘people’.
    Furthermore, Takamurea’s assessment that she “thought the true meaning of history is ‘history that gives courage for women to live’ and not history that conveys what happened as it is” shows what she considered the meaning of history to be at a time that was seen as a critical period for Japan.
    However, there are criticisms of the fact that Takamure’s studies involved ‘creating theories.’ This, perhaps, shows an example of how history is “not something that conveys what happened as it is” but “something that poses ‘current’ problems about ‘the past,’” as merely one of the possible narrations of the past, limited by the ideology of the historian as well as by the methodologies based on that ideology.

    Re-enactment of 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 during the Sino-Japanese War by Ding Ling (丁玲) and the Meaning of Victims’ Testimonies and 1956 War criems trials

    This study looks into the sexual slavery of Chinese women by the Japanese military during the Sino-Japanese War through oral materials, including 張雙兵’s 『“慰安婦” 調査實錄』 (南京 : 江蘇人民出版社, 2014). In addition, it discusses how a Chinese feminist of the time, Ding Ling (丁玲, 1904-1986), problematized the sexual enslavement issue with her works, including 「New Belief (新的信念)」, 「Reunion (重逢)」, and 「When I was in Sunset Town (我在霞村的時候)」. She wrote about the stories of those who had seen or heard of the Japanese military’s sexual slavery at a base of the Communist Party, Yan'an (延安) in Shanxi Sheng (陝西省), travelling to each region in North China.
    Focusing on the duplicity of victims in the oral materials, I reflect on the life of Zhen Zhen (貞貞), the hero of 「When I was in Sunset Town (我在霞村的時候)」, to whom Ding Ling gave life Yan'an (延安) in 1941, and the criticism that Ding Ling and her works later received.
    She problematized the sexual enslavement by Japanese soldiers at a base of the Communist Party, Yan'an, during the war in various ways. A certain way of problematizing was recommended, while creating issues from the viewpoint of Zhen Zhen was plainly oppressed.
    Moreover,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dominated by the Chinese Communist Party, developed a national perception of history through memory and forgetting. History that should have been forgotten to commemorate the victory of the Communist Party, including the victory of the anti-Japan war and civil wars was magnified a half century after the end of the war. Selection and power acted on the issue of 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 has taken on a new aspect by the victims’ testimonies and those who record the evidence.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19세기말 20세기 초는 한·중·일 삼국의 정치구조와 사회구조에 중요한 변동을 불러일으켰다. 이 시기 변동 이후를 우리는 긍부정적 의미를 포함하여 근대라고 부른다. 동아시아는 이 지역 고유의 역사전통의 영향과 그 관계 속에서 ‘동아시아적 근대성’이라는 하나의 유형을 설정할 수 있다. 연구자는 근대 동아시아 삼국(한·중·일)의 ‘여성주의’, ‘사회주의’, ‘민족주의’를 각각 대표하는 여성이론가들의 삶의 궤적을 고찰하여 ‘동아시아의 근대’ 나아가 ‘보편적’ 근대에 대한 성찰적 사고를 하고자 하였다.
    이에 「‘국가주의’와 역사의 착종성: 다카무레 이쓰에를 중심으로」(『제57회 전국역사학대회 국가권력과 역사서술』2014년 10월 31~11월 1일 발표문) 2014년 역사학대회에서 발표하였다. 그 후 「‘국가주의’와 역사의 착종성: 다카무레 이쓰에를 중심으로」를『이화사학연구 제49집』2014년 12월에 발표하였다.
    다음으로 「중일전쟁시기, 딩링(丁玲)의 일본군 성폭력 재현 그리고 피해자 증언이 의미하는 것」(『비교의 시각에서 본 전쟁과 여성인권』숙명여자대학교 아시아 여성연구소 학술대회 학술자료집, 2015)을 발표하였다. 발표당시 이 글은 국가가 일본군의 성폭력 범죄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서술이 미흡하여 1956년 진행된 전쟁범죄 재판자료의 분석을 보충하고자 하여 이를 보강하여 「중일전쟁시기, 딩링(丁玲)의 일본군 성폭력 재현과 1956년 전범재판 그리고 피해자 증언의의미」『중국학보』제80집, 2017,5.에 투고하였다.
    이 논문은 우선 일본군의 중국여성에 대한 성폭력에 대해서 피해자의 구술을 통해서 몇 가지 구체적 사례를 살펴보았다. 나아가 일본군의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던 당시 중국의 여성주의자 딩링(丁玲, 1904-1986)은 이를 어떻게 문제화했는지에 대해서 그의 작품「새로운 신념(新的信念)」,「재회(重逢)」,「내가 노을마을에 있었을 때(我在霞村的時候)」를 통해서 논하였다. 딩링은 산시성(陝西省)에 있던 공산당 근거지 옌안(延安)에서 전쟁터가 된 화북의 각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일본군의 성폭력을 목격하거나 전해들은 이야기들을 토대로 작품을 썼다. 자료들이 다루고 있는 피해자들의 피해의 중층성에 주목하다보면 1941년 옌안에서 딩링이 「내가 노을 마을에 있었을 때」에서 형상화시킨 주인공 전전(貞貞)의 삶과 훗날 딩링과 그녀의 작품이 받았던 비판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중일전쟁시기 일본군이 중국 여성에게 자행한 성폭력은 중국사회 안에서 문제로 부각되는 것이 억제되어 있었다. 이점에 대해서는 1956년 중화인민공화국 최고인민법원은 특별군사법정을 조직하여 1956년 6월과 7월, 요녕성 심양시와 산서성 태원시에서 일본의 중국침략전쟁범죄자 45명에 대해서 진행한 공개심판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심판에 대해서는 관련 자료를 王戰平이 편집하여 『正義的審判-最高人民法院特別軍事法庭 審判日本戰犯紀實』으로 人民法院出版社에서 1990년에 나왔다. 이 자료집 분석을 통해서 중국정부가 법정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정의’가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이 세가지 사안들은 별개로 존재하는 사안들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근대 중국 사회가 여성의 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국가적 (젠더)전략을 구성했는가를 보여준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째, 본 연구는 ‘근대국가와 젠더’에 천착하여 궁극적으로 동아시아의 근대에 대한 이해를 확충시키게 될 것이다.
    둘째, 학문의 기초가 되는 역사적 자료들의 적극적 활용과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통해 인문, 사회과학적 후속 연구들을 파생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예를 들면 구술자료 분석도표, 법정자료의 정리, 모성관련 작품의 번역 등
    셋째, 동아시아사회 연구의 학문적 기반 형성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비교연구 및 상호교차연구의 토대를 창출할 수 있다.
    넷째, 동아시아에서의 문화적 정체성(여성, 모성) 형성 경로에 대한 역사적 특성을 규명함으로써, 동아시아 사회의 현재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하고 미래의 발전방향을 예측가능하게 한다.
  • 색인어
  • 근대, 동아시아, 젠더, 국가, 딩링, 다카무레 이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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