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이전의 일본이 서민의 가요에 부여한 가치는, 한국과 중국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서민의 풍속을 파악하여 민정자료로 활용한다는, 소위 고대중국의 정교주의적 시관에 입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 발 앞서 서양의 근대국민국가와 그들에 의한 국민문학운동을 접한 ...
근대이전의 일본이 서민의 가요에 부여한 가치는, 한국과 중국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서민의 풍속을 파악하여 민정자료로 활용한다는, 소위 고대중국의 정교주의적 시관에 입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 발 앞서 서양의 근대국민국가와 그들에 의한 국민문학운동을 접한 일본의 지식인들(上田 敏을 포함한 帝國文學 관계자들이 그 중심임)은 서민의 가요에, 마땅히 도래해야 할 국민 전체의 시가, 음악을 대성시키기 위한 기초자료라는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고, 이윽고 「민요」라는 개념을 “창출”해 낸다. 그것은 국민의 전일성(national identity)을 문화적인 측면에서 지원하는 기능을 「민요」에 기대한 것이었고, 그러한 민요관을 확립한 그들은 민요수집운동과 민요시 내지 국시(國詩)의 창작운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그것은 식민지 조선에까지 확산되었는데, 구체적으로는 1920년대이후 조선총독부를 중심으로 방대한 민간의 가요가 수집되었다(신문지상의 모집, 보통학교 교원의 동원등). 그러나 한국의 민요사가(문학사가)들은 근대일본에서 일어난 민요에 관한 논의나 그들에 의한 민요수집운동에 대해 도외시 내지 과소평가해 왔다. 이와같은 사실에 대한 정밀한 확인없이 그들이 식민지에서 행한 문학운동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본 연구의 목표는 그 의도가 다름아닌 식민지 지배장치(裝置)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밝히고, 나아가 그러한 관 주도의 운동이 식민지 한국에 뿌리를 내리어 현재에 까지 미치고 있는 영향과 현상에 대해 논리적으로 해명하는 데 있다.
기대효과
식민지 시대를 상대화시키는 시점을 갖지 않고서는 21세기를 완수할 수 없다. 본 연구가 유일하게 추구하는 방법론인 논리보다 증거는 그 시대에 남겨진 방대한 자료의 처리가 그 생명이어서, 협의의 문학연구의 틀을 벗어나, 사회현상의 해명이라는 성격을 띄지 않을 수 ...
식민지 시대를 상대화시키는 시점을 갖지 않고서는 21세기를 완수할 수 없다. 본 연구가 유일하게 추구하는 방법론인 논리보다 증거는 그 시대에 남겨진 방대한 자료의 처리가 그 생명이어서, 협의의 문학연구의 틀을 벗어나, 사회현상의 해명이라는 성격을 띄지 않을 수 없다. 본 연구자의 테마는 그 현상을 문학에 국한시켜 파악한다는 위치가 되겠지만, 그것은 개별연구라는 한계의 소치일 뿐, 교육, 언어, 사회정책등등 일제에 의해 시행된 제 문화장치(文化裝置), 그리고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오늘날의 문화장치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기대된다.
연구요약
많은 한국의 국문학사가들이 민요를 근대이전의 시가에까지 소급시켜 논하는 태도는 다분히 근대의 시점을 과거에 투영한 것이지, 과거를 객관적으로 포착하려는 자세는 아니다. 따라서 먼저 「민요」란 말이 근대일본의 지식인들에 의해 서양어(Volkslied 내지는 folk s ...
많은 한국의 국문학사가들이 민요를 근대이전의 시가에까지 소급시켜 논하는 태도는 다분히 근대의 시점을 과거에 투영한 것이지, 과거를 객관적으로 포착하려는 자세는 아니다. 따라서 먼저 「민요」란 말이 근대일본의 지식인들에 의해 서양어(Volkslied 내지는 folk song)의 번역어로 “탄생”했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한다. 또한, 그러한 탄생배경을 가진 「민요」는 그 실체에 대한 논의를 결여한 채, 당시 일본의 지식인들에 의해 미래의 「국민문화」쇄신, 발달을 재촉하는 것으로 미화, 이념화되어, 수집운동과 민요시 창작운동등으로 전개되어 갔다. 그리고 이러한 지식인 주도의 운동은 식민지 조선에까지 확산되어 갔고, 식민지 정책을 소위 문치로 전환한 1920년대에는 관(총동부 및 경성제대)주도로 행해졌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을 해명하기 위해, 운동당시 일본 및 조선의 지식인들에 의해 학술지 및 신문지상에 피력된 언설과 운동의 성과물 등을 분석하는 것이 요구된다. 하지만, 그 의도는 내지(內地)의 그것과 극히 달라, 오히려 시로써 민정을 파악하는 것을 핵심에 두는 중국의 정교주의적인 시관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그러한 시관이 갖는 지배의 역학(통제와 왜곡)을 분석하지 않은 채, 당시에 성립한 민요관 내지 문학관의 많은 부분을 계승하는 한국의 문학사는 자기진단을 요구당한다. 일제가 행한 문화장치는 식민지 일본의 문제였을지언정 독립후의 한국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세기가 넘도록 그러한 문학사가 존속된다는 것은 일제하에 이식된 문학관(작게는 민요관)이 지금의 한국의 상황에서도 그 유효성을 갖는데 있을 것이다. 그것을 분석해 가는 것이 본 연구의 관건이 될 것이고, 민요에 한정해 본다면, 국민의 노래라는 의미와 민족의 노래라는 의미를 양의적으로 사용해 온 민요라는 말자체의 역사를 해명하는 것이 그 열쇠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