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종속변수에 해당하는 것은 재계의 정치적 영향력과 그 영향력의 영역별 편차이다. 예컨대, 한일 양국의 재계 중 어느 쪽의 정치력이 일반적으로 더 강한가를 논할 수도 있겠지만, 보다 세부적으로는 어느 영역에서 어느 정도의 영향력 차이가 나는가를 비교할 ...
본 연구의 종속변수에 해당하는 것은 재계의 정치적 영향력과 그 영향력의 영역별 편차이다. 예컨대, 한일 양국의 재계 중 어느 쪽의 정치력이 일반적으로 더 강한가를 논할 수도 있겠지만, 보다 세부적으로는 어느 영역에서 어느 정도의 영향력 차이가 나는가를 비교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보통은 후자의 경우가 보다 의미 있는 연구가 될 것인데, 그것은 현실적으로 민주국가의 이익집단들이 갖고있는 정치적 영향력의 정도와 그 행사범위 및 목표는 이슈영역마다 다르기 마련인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한국의 재계는 자신들의 이익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경제규제나 분배정책 등과 같은 이슈영역에서는 (심지어 정부의 재벌에 의한 포획 현상이 우려될 정도로)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나, 사적 이익보다는 공적 이익과 관련이 깊은 환경이나 교육 또는 외교정책 등에 대해서는 무력하거나 무관심한 경향을 강하게 나타내왔다. 반면, 상대적으로 볼 때, 일본의 재계는 자신들의 사적 이익 추구를 뛰어넘어 완전고용이나 경제안정 또는 사회적 통합 등의 보다 광범위하고 대국적인 정치목표를 지향하는 경향이 더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사의 이익만이 아니라 국가나 사회전체의 이익에 대하여 고민하고 그 정책결정과정에 적극 참여하는 일본 재계의 리더들과 오직 기업실리에만 치중하면서 정치적으로는 정경유착을 통해 퇴행적인 기능만을 수행하였던 과거 한국 재벌의 모습은 커다란 대조를 보이는 대목이었다.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설명해줄 수 있겠는가? 독립변수의 설정과 그 입증에 관한 문제이다. 재계의 영향력 차이를 설명해줄 수 있는 독립변수에는 여럿이 있겠으나 본 연구에서는 다음의 두 가지 변수에 집중하도록 한다. 첫 번째는 재계가 확보하고 있는 국제경쟁력이다. 이는 국제화의 진행에 따른 다국적기업 등 대기업들의 국내정치적 영향력 증대와 그 범위의 확산 정도는 그들이 국제 경제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는 국제정치경제학의 일반적 통찰에 따른 것이다. 예컨대, 강력한 국제경쟁력을 확보한 대기업 집단일수록 그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내외의 정치, 경제, 사회적 비용을 줄이려 다각적으로 노력할 것이며, 따라서 그렇지 못한 집단들에 비해 보다 광범위한 국내 정책결정과정에 보다 적극적인 개입을 시도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이익추구활동을 직접적으로 규율하는 국내 경제입법 뿐만 아니라 국내질서나 사회안정 또는 형평성의 유지 등과 관련된 공공정책 역시 중요한 이슈영역이 된다는 것이다. 일본의 재계가 자국내 빈곤층의 존재는 사회적 통합을 해치는 것이며 그것은 장기적으로 사회적 비용과 부담을 증가시켜 결국 자신들의 국제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지닌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교육이나 환경, 삶의 질에 관한 문제, 그리고 국제적 수준에서는 협력과 평화, 질서와 안정 등에 관한 그들의 적극적 태도 역시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결국은 이러한 문제들 모두가 자신들의 국제경쟁력 제고와 유지에 영향을 끼치는 것들이며, 따라서 그들은 공적 영역에 속해 있는 듯한 정책 이슈들에 대해서도 지대한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참고로, 한국의 재계 역시 국제경쟁력의 상승에 따라 그 태도가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징후들이 관찰되고 있다. 1993년 이후 삼성이 ‘사회경영’의 개념을 도입해 추진하고 있는 ‘신경영 프로그램’이 그 예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국내 정치제도이다. 특정 이익집단의 정치력은 국내 정치결정과정에서 그 집단이 확보하고 있는 ‘정치적 접근(political access)'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데, 그 정치결정과정은 해당 국가의 정치제도들에 의해 규정되어지는 것이므로, 재계의 정치력은 결국 정치제도에 의해 상당 부분 결정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어느 영역에서 누가 어느 정도의 로비활동을 누구(행정부, 국회, 소수권력가, 정당 등)를 대상으로 할 수 있는 지 등이 정치제도들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정력을 가진 주요 정치제도에는 권력구조, 정당구도, 선거제도 등이 포함된다. 예컨대, 한국 재계의 경우 입법부나 정당을 통한 정책 건의는 거의 없고 오로지 제한된 영역에 국한되어 대통령이나 행정부만을 상대로 로비활동을 하였던 것이 적어도 1990년 대 초반까지의 관찰 결과였는데, 이는 근본적으로 정당의 구조화가 이루어지지 못하여 정당정치가 활발하지 못한 까닭이었고, 정당의 구조화 미비 현상은 다시 선거제도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는 것이었다. 결국 한국의 정치제도가 재계의 정치활동 영역과 그 행태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한편, 노동이나 중소기업 등은 재계가 누린 것과 같은 정치적 접근 기제를 가질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정당정치가 활발한 것도 아니었으므로,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