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晩明시기 異端的 문학사상의 實學的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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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명 선도연구자지원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04-041-A00351
선정년도 2004 년
연구기간 1 년 (2004년 12월 01일 ~ 2005년 11월 30일)
연구책임자 이기면
연구수행기관 배재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明은 건국과 함께 ‘성리학’으로 사상계를 통일하였고, 과거제도의 정착과 보편화 등으로 인하여 성리학으로 스스로 자발적인 세뇌를 행하였던 지식인 사회에서도 명대 중엽 이후 양명학의 대두와 함께 포괄적인 변화가 이루어졌다. 또한 천주교(서학)의 전래가 조선의 ‘실학’ 발생과 일정 부분 관계가 있듯이, 중국 사상계의 포괄적인 변화에 서학인 천주교가 전혀 무관했던 것만은 아닐 것이다. 王學 좌파의 거두인 李贄 또한 젊은 시절에 마태오릿치를 만나서 서로의 사상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고, 徐光啓 등은 선교사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선에서처럼 그렇게 심한 천주교 박해는 없었기 때문에 기록상으로는 미미하지만 조선의 지식인 보다는 훨씬 자유스럽게 서학을 접했을 것으로 추론해볼 수 있다.

    필자는 왕조교체기에 소위 ‘方外人’의 문학을 하였던 ‘이단적인 지식인’들의 문학관과 경학관이 이전의 소위 ‘정통’ 문인들과는 어떻게 다른가 하는 점을 '실학적인 방법'으로 규명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서 기존의 ‘정통’이었던 ‘성리학’과 최근들어 ‘실학’이라고 구분되는 ‘방외인’의 사상을 비교 분석하여서 ‘중국 실학’의 본질이 무엇인지도 규명하고자 한다.

    李贄, 焦竑, 袁宏道 또한 朱子로 상징되는 기존의 ‘성리학’에 만족하지 못했다. 이들은 항상 성리학의 옹색함에 불만을 표시하였다. 이들은 성리학의 옹색함을 공박하면서 원시유가로의 회귀를 희망하고 있다. 아마도 이들은 성리학 일색인 당시의 시대적 옹색함에 더 큰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시대적 옹색함과 학문적 옹색함에 대항하면서 옹색함과 경직성을 깨뜨리려 노력하였다. 이 또한 중세적 분위기에서는 금기시되어왔던 ‘자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시도할 수 있는 모티브를 제공한 것이다. 이 또한 성리학적 편협성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실학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그간에 필자 뿐 아니라 대다수의 명말 청초 문학이론 연구가들은 대부분 인상주의적 비평 방법과 유물주의적 접근 방식을 적절히 채용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단조로운 접근방식만으로는 새로운 관점 제시에 있어 한계에 부딪쳤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문화의 진화주의와 전파주의를 절충한 ‘실학’적 접근 방식에 의한 연구일 것이라 생각되어 본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 기대효과
  • 三袁에 의한 公安派가 낭만문학의 절정을 이루던 명말은 시기적으로 보면 조선에서 실학이 대두되던 시기와 비슷한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반이었다. 이렇게 본다면 이들의 사상이나 저작이 소위 말하는 당시의 신학풍을 대표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이들이 부르짖은 신학풍은 후의 학문체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사료된다.

    조선에서도 실학자들의 노력으로 새롭게 서민문학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를 놓고 볼 때 명청대의 소설과 민가 그리고 희곡의 비약적인 발전 또한 필자가 주장하는 소위 ‘실학’의 영향이 아니라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필자는 명말 이단적 지식인들의 문학론에 대해서 한국의 실학적 시각을 가지고 접근한다면 명청대의 문학 발전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의 실학을 연구하는 연구방법을 가지고 만명문학을 연구한다면 한중 문학의 共地性과 異地性을 더욱더 명확히 할 수 있으며, 한중간의 문화교류와 교융에 대한 이해를 제고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실학은 국학"이라는 관점에서 탈피하여 동북아시아의 관점으로 보편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필자는 본 연구가 ‘실학’연구의 하나의 돌파구가 되리라고 확신한다. 그 동안의 실학연구는 사학계과 철학계와 국문학계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는 동일분야의 신진연구자들의 피만을 수혈받는 방식이었다. 만시지탄의 감은 들지만 이제라도 새롭게 중국문학 연구자, 그 중에서도 한국 실학의 시발점이라고 하는 16,7세기 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참여함으로써 학문의 ‘이종교배’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또한 국학연구에서는 ‘실학’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중국문학 연구분야에서는 전무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본 연구를 계기로 중국문학연구자의 시각 또한 넓혀지리라 생각한다. 중국문학 그 자체만을 연구하던 것이 대세를 이루었지만, 이제 중국문학과 국학을 혼용한 관점에서 새로운 시야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 처음으로 시도되는 본 연구를 통하여 중국문학을 보는 새로운 관점이 제시되고, 우리의 실학과 중국의 실학이 共時性과 共地性(또는 異地性)을 가진 학문적 상호 교류와 상호 교융의 산물이라는 것이 증명된다면 향후 동북아 협력시대의 새로운 공감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다.
  • 연구요약
  • 1) 왜 ‘실학적 접근’인가? :
    실학자로 분류되는 지식인들은 지배계층에 속해있었지만 피지배대중의 환경을 개선하고자 하였으며, 이와 같은 지식인들의 생각을 집약한 것이 실학사상이다. 필자는 명말의 이단적 지식인들은 바로 문화적 소양을 축적한 시민계층과, 나아가서는 평민 대중을 대변하는 사상의 실천자들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사상을 한국에서 사용하는 ‘실학’의 개념으로 접근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2) '중국적 실학관’이 가진 문제 :
    중국의 실학연구는 지금 기껏해야 이십년 미만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실학연구’의 ‘대상’ 조차 아직 확정된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0년대 이후 葛榮晋 등은 북송대의 이학을 실학의 기점으로 잡아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조선에서 李耳 등에 의해 실학사상이 싹트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의 사상적 주류는 도학이었기 때문에 이이를 실학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필자는 중국학자들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전혀 동의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전면적인 비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학은 이제 우리만의 ‘국학’ 차원을 넘어서서 동아시아 삼국의 공동 관심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3) 무엇을 ‘실학’이라 하는가? :
    ‘실학’의 정의에 대한 논의는 굉장히 다양하다. 아마도 학자에 따라서 십인십색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중국내에서 ‘실학’으로 분류된 사상이나 작품에 있어서도 모순되는 점이 없을 수 없다. 이는 이들이 ‘실학’이라는 체계를 가지고 학문활동을 한 것이 아니고, 시기적으로 공간적으로 광범위한 이들의 여러 가지 학술활동과 여타 행동 속에서 ‘실학적’기준에 의한 교집합을 뽑아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교집합 범위에 들지 않는 부분은 ‘실학적’ 기준에 배치되는 경우도 있다.
    동아삼국은 다행하게도 한자를 축으로 하는 공통된 용어를 사용하여왔다. 명말 문학연구에 있어서 탕현조나 이지나 원굉도 등의 문학자를 ‘이단적’ 지식인이라고도 하고, 한국 한문학적 용어를 사용하여서 ‘방외인’의 문학이라고도 한다. 또한 이들의 문학적 특징을 ‘인성해방’이나 ‘개성존중’ 등의 측면에 치중하여서 분석하는 것이 그간의 대세였다. 필자는 이러한 이들의 경향이 바로 ‘실학’적 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국 실학 연구의 성과를 가지고 이들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4) 중국 실학의 기점은 언제로 보는 것이 타당한가?
    조선의 실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실학의 기점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일치하고 있다. 대부분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뒤에 양반계급이 몰락하면서 평민계급이 역사의 전면으로 나서지는 못했지만 역사의 주체로 나서게 되는 그 순간으로 보고 있다. 외족의 침입에 따른 두 번의 전쟁을 겪고 나자, 지식인들 뿐 아니라 일부 평민들 또한 민족의식을 자각하기 시작했으며, 서민의식이 고취되어서 그간의 봉건의식을 배격하고 민족의 근대화를 촉진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필자는 중국실학계에서 터무니없이 앞당기고 있는 자신들의 실학 기점이 어떤 불순한 의도를 가진 것이 아닌가 하는 측면에서 접근하여 명말 청초의 일련의 문학 사상이 바로 실학의 기점이었음을 증명하고자 한다.
  • 한글키워드
  • 예수회,李贄,공안파,인성해방,자아확립,전파주의,양명학,성리학,마태오리치,朱子,袁宏道,焦竑,천주실의,병자호란,임진왜란,태주학파,왕학좌파,천주교,진화주의,개성존중,삼교합일,실학,이단적 지식인,방외인,서학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1. 서 론
    조선에서의 실학은 ‘중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탈중심주의적 경향’이었다. 이는 ‘중국’과 ‘성리학’이라고 하는 ‘중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우리 민족의 각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만명 시기를 살았던 중국의 이단적 지식인(방외인)의 사상 또한 조선실학의 ‘탈중심주의적 경향’에 근거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하여 만명시기 이단적 지식인의 문학적 주장은 ‘중심주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연스런 역사 발전의 동력에 의한 논리라는 점을 증명하고자 한다.

    2. 중국적 ‘실학’관과 기점 문제
    중국의 실학연구가들은 한일의 실학 개념과는 전혀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탈중세와 근대지향이 아닌 중세의 통치이념철학인 성리학을 ‘실학’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중국학자들이 학술적으로 이러한 주장을 펼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인정하지만,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실학자들이 주장하는 ‘그들만의 실학’에 대해서 고찰할 필요도 있고, 또 그들이 실학이라고 주장하는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 외국학자인 우리가 객관적 관찰자로서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문학사상적 전환점인 명말 시기의 이단적 문학사상에 대해서 ‘실학적’인 관점으로 이해하는 것 또한 무의미한 일은 아닐 것이다.

    3. ‘실학적 이해’의 정의와 필요성
    명말 청초 문학이론 중 방외문학사상에 대한 연구는 ‘인성해방’이나 ‘개성존중’ 등의 측면에 치중하였다. 그리고 대부분은 인상주의적 비평 방법과 유물주의적 접근 방식을 적절히 혼용하여왔다. 그러나 이러한 단조로운 접근만으로는, 명말청초 문학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필자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문화의 진화주의와 전파주의를 절충한 ‘실학’적 접근 방식에 의한 연구일 것이라 생각한다.

    4. 중심주의의 극복과 초월성의 내재화
    1) 중심주의의 극복
    중심주의의 극복이란 한마디로 ‘탈중심주의’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필자는 이지의 동심설이나 원굉도의 성령설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모순과 성리학 일원론으로 모아지는 구심력을 깨뜨리려는 원심력이라고 간주한다. 이지와 원굉도 등이 주장했던 ‘개성’의 문제를 단지 ‘문학적 개성’에만 국한 시켜서 논의할 수는 없다. 이는 이들 방외인들이 살아가던 시대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들의 이러한 노력이 바로 중심의 ‘핵’에서 벗어나고자하는 탈중심주의적 사고에서 기인하였다고 본다. 그러하기에 이들이 주장한 이런 ‘다원화’의 움직임이 바로 ‘실학’ 그 자체라고는 볼 수 없지만 최소한 ‘실학’의 선성이라고 주장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2) 초월성의 내재화
    ‘초월성이 내재화’ 됨으로서 ‘俗’이 ‘聖’을 포괄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지는 인간의 욕구 추구를 당연시하는 등, 욕구 추구의 주체로서 인간간의 동등성을 인정하고 있다. 이는 바로 명말의 시대적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명말의 이단적 지식인들은 ‘거룩한 도’를 ‘먹고 입는’ 문제와 동일시하면서 이들의 절대성을 상대화하였고, 이를 통하여 초월적인 것을 각각의 객체 안에 내재화시켰다.
    필자는 이와 같은 ‘사상가 문인’들의 주장을 문학으로 구현한 사람이 바로 ‘문인 사상가’였던 원굉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들의 내재화 추구는 바로 ‘상대화’와 ‘개별화’라는 형태로 발현되었다. 이는 이전까지의 ‘집단’적 전체적 개념을 개체화시킴으로써 개개의 구성 요소들이 각기 주체가 되는 ‘자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이루어낸 것이다.

    5. 결 론
    21세기는 단순한 개별 문화의 이해에서 ‘문명권’ 이해로 접근해야 한다. 즉 한자문화권이라고 할 수 있는 동북아 문명권 전체를 一以貫之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찾아가는 것이 21세기를 지향하는 우리 중국문학 연구자들의 임무라 할 것이다. ‘실학’을 통해서 중국어문학 연구가 살아있는 학문으로 우뚝 설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아니 최소한 한국적 연구 방법론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영문
  • 明末淸初文學理論硏究家, 大部分注重人性解放和個性方面來硏究. 但是以這樣單線的看法來硏究明末文學發生了一定限制, 因而培養不出來新的看法. 爲了克服這些限制, 應亥導入新的硏究方法. 我看起來, 所謂‘實學’有兩種意味. 第一是克服中心主義. 東亞細亞的‘中心’當然是中國卽中華. 其中性理學是最重要的核心. 第二是超越性的內在化問題. 超越性卽是絶對性. 絶對性之核心也是性理學.
    實學無疑是韓國的硏究成果. 但是從現在起把這些成果看做東亞細亞文明圈的問題. 東亞三國是同一漢字文明圈, 也是儒家文明圈. 1990年以後, 三國硏究家一起討論, 一起硏究實學. 本論文是中文學者用實學的看法硏究明末異端的文學思想家.
    明末文學思想家主張‘情’的文學. 他們主張的就是反性理學乃至非性理學的非溫柔敦厚的文學. 他們注視民間文學. 他們沒排斥老莊思想和佛敎. 所以他們的主張是克服中心主義的, 也是把超越性內在化的文學. 因而我敢主張他們的文學就是實學的文學.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명말은 이전의 중국사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를 잉태하고 있었다. 즉 명대 중엽 이래 중국의 전통적인 봉건사회를 지탱해온 ‘중세적 질서’가 내부 붕괴의 조짐을 보였던 것이다. 이러한 사회변화의 근본적인 이유로써 필자는 본 논문에서 조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외래적 요인 보다는 내부 요인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명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程朱理學만의 사상적 독존이 수백년간 지속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정주이학의 ‘강제적 구심력’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자연스런 원심력’이 작용하기 시작했다. 즉 송명이학은 주지하다시피 "存天理 滅人欲"이라고 하는 윤리학적 명제를 이론적 기초로 삼고 있다. 그러나 사회가 보다 유연하고 다양해지면서 성리학의 이러한 명제는 오히려 사회와 사상 발전에 심각한 장애요소로 작용하게 되었다. 따라서 명대 중엽 이래 문인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개성적 자아의 추구와 사상해방 운동은 성리학에 대한 비판과 성리학적 사고에서의 탈피에서 비롯되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이러한 일련의 사상적 변화 움직임을 실학적 측면에서 논의한 적은 없었다. 중국의 葛榮晉은 송명이학에 대한 일종의 반동으로 태동하기 시작한 명대 중엽 이래의 이러한 일련의 사상적 흐름을 ‘明淸實學’이라 명명하였다. 그리고 이 사상의 가장 큰 특징과 전제를 "개성해방과 이성의 각성"이라 제시하고 있다.
    湯顯祖나 李贄나 袁宏道 등의 문학자들은 당시 문단의 모방과 의고라는 병폐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 이들은 모방과 의고가 ‘인간의 본성’을 훼손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러한 점에서 공통점을 가졌고, 이러한 점에서 시공을 초월한 동지적 의식을 느꼈기 때문에 이들을 ‘一群’으로 묶어서 평가를 해도 결코 지나친 것은 아니다. 이들은 기존의 중세적 신분 사회를 보강유지 하려는 세력에 반하여, 본인들이 의도했던 안했던 새로 등장한 시민계층을 문화의 전면에 내세우려는 혁신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본인은 본 연구를 통하여 明末淸初라는 왕조교체기를 살아오면서 소위 ‘방외인’ 문학을 하였던 ‘이단적인 지식인’들의 文學觀과 經學觀이 이전의 소위 ‘정통’ 문인들과는 어떻게 다른가 하는 점을 한국의 ‘실학적 연구 방법론’을 통해 규명해보았다. 明末이라는 과도기적 상황에서 전통적 程朱理學은 기존의 중세적 신분사회를 보강하고 유지하는 세력을 대변했다. 그리고 명말의 ‘이단적 지식인’들은 바로 문화적 소양을 일정 정도 축적한 시민계층과 나아가서는 평민 대중을 대변하는 사상의 실천자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사상을 한국에서 사용하는 ‘실학’의 개념으로 접근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실학’연구가들은 단지 불교와 도교의 ‘虛’와 ‘無’에 대비하여 성리학의 ‘實’을 강조하면서 송대의 성리학을 ‘實學’의 기점으로 잡는다. 그러나 필자는 실학이란 단순한 철학적 코드가 아니라 사회문화적 코드로서, "‘중심’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원심력의 능동적 동력"이라 정의한다. 따라서 명말 이단적 문학가의 사상은 중심주의의 해체이며, 유일 핵이 다원화된 핵으로 핵분열을 일으키는 것이다.
    만명 이단적 지식인들이 주자학의 핵심인 ‘理(또는 性)’라고 하는 초월적 존재를 극복하려는 시도 자체가 바로 중세와는 다른 근대성을 띤 사상이다. 그리고 이들의 내재화 추구는 바로 ‘상대화’와 ‘개별화’라는 형태로 발현되었다. 이는 이전까지의 ‘집단’적 전체적 개념을 개체화시킴으로써 개개의 구성 요소들이 각기 주체가 되는 ‘자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이루어낸 것이라 볼 수 있다.
    三袁에 의한 公安派가 낭만문학의 절정을 이루던 명말은 시기적으로 보면 조선에서 실학이 대두되던 시기와 비슷한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반이었다. 이렇게 본다면 이들의 사상이나 저작이 소위 말하는 당시의 ‘新學風’을 대표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이들이 부르짖은 ‘신학풍’은 후의 학문체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필자는 본 논문에서 당시의 ‘신학풍’을 ‘실학적’으로 성격을 규명한 결과, 조선에서의 실학과 유사한 배경을 가진 학문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의 실학 연구방법론으로 晩明 문학을 보다 심도있게 연구한다면 韓中 문학의 교융에 대한 이해를 제고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논문에서 필자는 명말 이단적 지식인들의 문학론에 대해서 한국의 실학적 시각으로 접근하였다. 이를 통하여 명청대의 문학 발전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명청대의 ‘신학풍’에 대해서 ‘실학적’으로 이의 성격을 규명하였으며, 이는 조선에서의 실학과 유사한 배경을 가진 학문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조선의 실학 연구방법론으로 晩明 문학을 연구한 결과, 피상적으로나마 韓中 문학의 共地性과 異地性을 더욱더 명확히 하였으며, 한중간의 문화교류와 교융에 대한 이해를 제고시켰다.
    또한 "실학은 국학"이라는 관점에서 탈피하여 동북아시아의 관점으로 보편화시키는 작업에 일조하였다. 필자는 본 연구가 동북아 ‘실학’ 연구에 있어 미미하나마 하나의 새로운 시도가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그 동안의 실학연구는 사학계과 철학계와 국문학계가 주류를 이루었다. 만시지탄의 감은 들지만 본 논문을 통하여 중국문학 연구자, 그 중에서도 한국 실학의 시발점이라고 하는 16,7세기 중국문학 연구자가 참여함으로써 학문의 ‘이종교배’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국학연구에서는 ‘실학’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중국문학 연구 분야에서는 전무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중국문학 그 자체만을 연구하던 것이 지금까지의 대세였지만, 본 논문에서는 중국문학과 국학을 혼용한 관점에서 새로운 관점을 확보하려고 노력하였다. 향후 본 논문을 보다 심화시켜, 우리의 실학과 중국의 실학이 共時性과 共地性(또는 異地性)을 가진 학문적 상호 교류와 교융의 산물이라는 것을 증명한다면, 향후 동북아 협력시대의 새로운 공감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다.
    이제 21세기는 단순한 개별 문화의 이해에서 ‘문명권’ 이해로 접근해야 한다. 즉 한자문화권이라고 할 수 있는 동북아 문명권 전체를 一以貫之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찾아가는 것이 21세기를 지향하는 우리 중국문학 연구자들의 임무라 할 것이다. 본 논문은 ‘실학’을 통해서 중국어문학 연구가 살아있는 학문으로 우뚝 설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자부한다. 최소한 중국문학에 대한 한국적 연구 방법론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자부한다.
    필자는 본 논문을 통해서 조선에서의 실학은 우리의 민족적 각성과 함께 ‘중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탈중심주의적 경향’이라는 사실과, 만명 시기를 살았던 중국의 이단적 지식인들의 사상 또한 조선실학의 ‘탈중심주의적 경향’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이에 따라 중국의 대표적인 실학연구가인 葛榮晉의 주장처럼 ‘실학’이란 유가의 자체 발전논리에 따라 태동한 것이 아니라, ‘중심주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연스런 역사 발전의 동력에 의한 논리라는 점 또한 증명하였다. 이를 통해 중국인들의 ‘국수주의적 실학관’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 또한 지적할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 색인어
  • 실학, 동아시아 문명권, 만명 문학사상, 탈중심주의, 초월성의 내재화, 實學, 東亞細亞文明圈, 晩明文學思想, 脫中心主義, 超越性的內在化 Pragmatism, The Area of East Asian Civilization, Literary Thought in Late Ming Dynasty, Beyond the centrism, Inetrnalization of transcen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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