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일제말기에 일본군이 제주도 전역에 조성해 놓은 전쟁 유적지의 보존 실태를 조사하고, 역사적 성격을 규명하는 작업이다. 제주도에 일제 말기 일본군이 조성해 놓은 군사 시설은 일본인이 한반도에 남겨 놓은 군사·방위관계상 전쟁유적지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 ...
이 연구는 일제말기에 일본군이 제주도 전역에 조성해 놓은 전쟁 유적지의 보존 실태를 조사하고, 역사적 성격을 규명하는 작업이다. 제주도에 일제 말기 일본군이 조성해 놓은 군사 시설은 일본인이 한반도에 남겨 놓은 군사·방위관계상 전쟁유적지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매우 다양하며 규모도 크다. 그러나 이 유적들은 그 동안 방치되어 왔으며, 그것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중요성을 갖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해야 하는지에 관해서 거의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제주도 내에는 일제 말기(특히 1944년 후반부터의 ‘본토 결전’ 시기) 일본군이 조성해 놓은 거대 군사 시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일본군 군사 시설은 육군·해군의 비행장, 포대, 참호, 고사포진지, 육·해군의 훈련장 및 감시초소, 대피소, 진지동굴, 특공대기지, 비행기 격납고, 탄약고, 폭탄매립지 등을 총망라하고 있다. 그 외에도 한라산 중턱에 ‘머리띠를 두른 형국’이라는 뜻에서 ‘하치마키[鉢卷]’라는 군사도로가 만들어졌으며, 각 진지와 진지, 진지와 포구를 연결하는 군사도로도 곳곳에 남아있다.
특히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읍 송악산 일대의 지하참호는 연 면적 57,000㎡에 달하는데, 이는 일본 내에서 가장 큰 군사시설로 여겨지는 해군 제1항공시설 공장(神奈川縣 橫須賀市 소재, 연 34,800㎡)과 천황과 정부기관을 피신시키려 했던 나가노현[長野縣] 마츠시로[松代] 대본영의 지하시설(32,000㎡)보다 규모가 크다. 즉 현재 일본 국내에 존재하는 일본군이 만든 거대 지하참호보다도 1.5배 정도 크며, 총 연장 길이는 15㎞에 달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제주도에 산재해 있는 일본군 전쟁 유적의 현황은 물론, 제주도내 주둔 일본군의 실태, 군사시설의 구축 과정, 제주 주둔 일본군과 제주도민과의 연관성, 제주도의 전략적 가치, 제주도에서의 일본군의 ‘본토 결전’ 준비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는 한국·일본 양국의 일부 연구 실적을 제외하고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는 우선 기초 조사가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전적지에 대한 기초현황 조사에 머물러 있고 역사적 접근 방식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이 시설들과 관련한 일본군의 전략과 전술, 제주도의 전략적 가치 등이 잘 규명되어 않은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또한, 이 군사시설의 구축에 강제 동원된 사람들에 대한 직접 면접 조사 연구가 수행되지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긴 세월 동안 방치되어 온 일제 군사시설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중요성을 갖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해야 하는지도 거의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태평양전쟁 말기 한반도에서의 일본군의 ‘본토결전’의 실상과, 제주도의 전략적 가치를 분석하고, 일본군 전적지의 현장조사를 통해 구체적인 실태를 조사, 정리하는 한편, 당시 강제 동원되었던 제주도민들의 면접 조사를 통해 건설 당시의 상황과 이에 대한 주민들의 전쟁 경험과 인식을 재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