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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代 儒學과의 비교를 통한 朝鮮 性理學의 정체성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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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명 기초연구지원인문사회& #40;창의주제연구& #41;
연구과제번호 2006-321-A00026
선정년도 2006 년
연구기간 2 년 (2006년 07월 01일 ~ 2008년 06월 30일)
연구책임자 장숙필
연구수행기관 고려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공동연구원 현황 주광호(고려대학교)
김문용(한양대학교)
김낙진(진주교육대학교)
안영상(안동대학교)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이 연구는 비교론적 방법을 통하여 조선시대 유학(성리학)과 명대 유학을 비교함으로써 조선시대 성리학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연구이다. 주지하듯이, 명대 유학은 대체적으로 주자학으로부터 양명학으로의 변화 양상을 보인 반면, 조선시대 유학은 초기부터 말기까지 주자학적 경향성이 지배적인 지위를 유지했다는 데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이 점은 조선시대 유학이 한편으로 중국 유학의 영향을 꾸준히 받아들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에서 중국 유학과 분리되어 독자적인 발전 경로를 개척해 왔음을 시사한다. 이 연구에서는 명대 유학의 주요 인물과 학파에 대한 조선 유학자들의 이해와 반응, 문제의식과 지향에서 양자 사이의 동이, 조선적 특성의 형성과 전승의 양상 등을 해명함으로써 그 독자적 발전 경로를 추적한다. 그럼으로써 조선 성리학의 정체성을 규명하고, 나아가 조선시대 유교 문화에 대한 새로운 조망을 시도하고자 한다.
    이 연구의 목적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명대 유학과의 비교를 통하여 조선시대 성리학의 정체성을 해명한다.
    조선과 명의 성리학은 유사한 정치․문화적 환경 위에서 성장하였다. 더구나 조선과 명은 송대로부터 원대에 이르기까지의 성리학적 유산을 공유하고 있는 상태였다. 결국 명대의 성리학은 조선 성리학의 모본이자 대안으로서의 가능성을 갖고 있던 셈이다. 그러나 명과 조선 사이에는 분명한 정치․문화적 간극이 존재했다. 조선 건국 초기부터 표전문(表箋文)을 둘러싼 외교적 갈등이 발생하기도 하고, 중국의 경우처럼 설선․호거인․진헌장․왕수인을 문묘에 종사해야 한다는 중국 사신 만세덕의 요구를 거부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학술․사상의 측면에 한정해 보더라도 명대 학자들의 저작과 사상이 큰 시차 없이 조선에 전래되고 영향을 미쳤지만, 조선의 학자들에게 그것은 모방의 대상이기보다는 비판의 대상이었다. 어떤 면에서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송대부터 확립․전승된 성리학적 爲己之學의 정통을 부지하기 위하여 명대 학자들과 경쟁하고, 이를 통해 학문․사상의 정체성을 형성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자면 조선시대 성리학의 성격을 전체적으로 규명하는 데에는 명대 유학과의 비교 방법을 활용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둘째, 주요 개념 및 이론의 특성에 주목하여 조선 성리학의 주자학적 경향성의 실상을 규명한다.

    조선 성리학의 제1의적 특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단연코 주자학적 경향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주자학적 경향성이란 주자의 직접적인 언설을 범위로 하는 닫힌 체계의 단순한 반복을 의미하지 않는다. 주자의 ‘원의’에 가탁하여 개진한 조선 성리학자들의 논의는 그 나름의 배경과 의도를 함축하고 있게 마련이다. 사단칠정론과 인물성동이론 등 조선 성리학의 대표적인 이론들은 훈구와 사림의 대립 또는 양란과 붕당 갈등의 혼란 속에서 선의 분별과 실천을 담지하려는 노력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하여 형성된 조선 성리학의 제반 이론은, 그것이 ‘조선적’ 색채를 띤다고 인정되는 한, 무엇보다 명대 유학 이론과의 접합점에서 그 특성을 드러내기 마련이었다. 따라서 이 연구는 사단칠정론․인물성동이론 등 조선 성리학사 내부에서 주류를 이루어 온 개념․이론들과 함께, 명대 유학의 이론적 분화 및 그에 대한 조선 학자들의 반응 과정에서 논란이 된 주요 개념․이론들에 주목한다.

    셋째, 조선시대 유학의 주자학적 경향성이 갖는 사상․문화사적 함의를 조명한다.
    전통 문화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외형적으로 남아 있는 것 때문이 아니고, 그것이 우리의 잠재의식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전통문화에는 성리학 뿐 아니라 고유사상이나 불교도 있다. 그러나 근대 이전의 주도적 사상은 성리학이고 그 잠재적 잔영이 지금도 우리에게 가장 많이 남아 있다. 또 우리의 사상사에는 성리학과 다른 후기실학과 양명학 등이 있었으나, 그것이 생활문화에 적용되면서 우리의 내면의식에 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 우리의 내면 의식에 흐르는 역사 문화의 산물로서 주류 정신은, 비록 긍정과 부정의 엇갈린 평가 있을 수 있지만, 성리학이다. 따라서 우리의 문화의 정체성을 밝히는 것은 바로 조선 성리학 사상 문화적 함의를 밝히는 것으로 직결된다.

    본 연구의 목적은 성리학에서 양명학으로 변환하는 명대 유학 사상과 성리학 자체를 심화 발전시켜 가는 조선 성리학의 비교를 통해, 조선성리학의 특징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 문화에 잠재되어 있으며 역사적으로 계승된 내면 의식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기여하고자 하는 것이다.
  • 기대효과
  • 연구결과를 학계와 일반 독서계에 보급함으로써 다음과 같이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연관 주제 또는 인접 분야의 후속 연구 추진에 활용될 것이다.
    우리는 조선시대를 경과하면서 성리학적 질서와 관념을 의식 속에 내면화했고, 역으로 성리학은 그 어느 민족이나 국가에서보다 우리를 대표하는 것이 되었다. 따라서 조선시대 성리학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작업은 곧 우리의 내면 의식의 핵심을 드러내는 것에 해당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 연구의 문제의식과 방법은 연관 주제의 다른 연구로 계속 확산되어 가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조선시대 성리학을 중국 송․원대의 유학 또는 청대 유학과 비교하는 연구가 필요하고, 나아가 동시대 일본 사상 또는 서양 중세 사상과의 체계적인 비교 연구도 가능할 것이다.

    ○ 전통문화의 긍정적 가치를 발견하고 문화적 자신감을 배양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실로 성리학은 조선시대 문화의 꼭짓점에 서서 조선시대 사람들의 생활양식 전체를 지배하였다. 그러나 정작 성리학 전공자들 사이에서는 성리학에 대한 시각이 그다지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듯하다. 이러한 현상은 어디에서 초래되는 것일까? 조선시대 성리학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일제시대부터이다. 이때는 자생적이고 자주적인 근대화의 실패로 인한 자괴감이 안으로부터 일어나기도 하고, 민족문화에 대한 劣敗感이 일본과 서양 제국주의에 의해 조장되기도 하던 때이다. 이러한 양상은 민족문화, 그리고 그 핵심으로서의 조선시대 성리학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힘을 얻도록 하였다. 근래에 이르러 우리는 지난 100년간 지속된 국내외적 상황이 일정한 정도 변화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우선 과거와 분명히 대비될 만큼의 경제적 풍요를 이룩하였고, 제법 현대적이며 합리적인 사회․정치제도를 구축하였다. 외부와의 관계에서도 스스로가 국제적 관계의 능동적 因子일 수 있음을 여러 경로를 통해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종래 ‘근대화’ 구호로 표출된 경제적 욕구 중심의 대중적 관심을 다양하게 변화시키는 효과를 낳았고, 이에 따라 전통 문화와 그 가치에 관한 제반 주장의 정치적 지형도 역시 변화하였다. 이제는 더 이상 전통과 근대 또는 동양과 서양의 대비가 보수와 진보의 대비로 등치되기 어려운 실정이고, 바야흐로 전통문화에 대해 새로운 차원에서 사유해야 할 필요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면 지금 우리에게 전통문화는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 이 질문에는, 그것이 민족적 독창성의 유력한 연원이라는 고전적인 답안 이외에 다른 대안이 있기 어렵다. 다른 민족과의 대비 속에서 민족적 독창성이 문제가 되는 한, 우리의 전통문화야말로 우리 문화의 독창적 발전을 위한 우리의 독점적인 자원이다. 오늘날 이른바 세계화의 대세 속에서 오히려 문화적 독창성이 각종 상품 가치 창출의 배경으로 중시되고, 심지어 문화 자체가 상품으로서 가치를 발현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전통문화에 대한 긍정적이고 자신감 있는 태도는 불가결한 것이다. 남는 문제는 전통문화에서 그것에 대한 긍정과 신뢰의 요인을 어떻게 찾아내는가 하는 것일 뿐이다.
    본 연구는 명대 유학과의 비교를 통해 조선시대 성리학의 정체성을 규명하고자 한다. 여기에서 조선 성리학의 정체성을 규명한다는 것은 그것이 다른 지역의 성리학과 구별되는 특징을 가질 뿐 아니라 그것 자체로 자기 완결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었음을 밝힌다는 의미이다. 성리학은 분명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것이지만 이미 조선 성리학이라 부를 수 있는 어떤 것이 존재하는 한 그것은 조선적인 것이고, 곧 우리의 전통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비록 완전무결한 이론의 결집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하위 담론들이 결합되어 구성한 하나의 거대 담론 체계로서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와 같은 어떤 것이다. 우리는 이 생명체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하여 그것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제고하고, 나아가 우리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의 성공적 수행은 한 마디로, 조선 성리학으로 대표되는 전통문화의 긍정적 가치를 발견하고 문화적 자신감을 배양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 연구요약
  • ① 1차년도 주제 : 명대 유학의 특징과 조선 성리학자들의 반응
    본 연구의 예비적 고찰에 의하면 조선 성리학자들은 명나라 유학자 중 어느 누구의 사상이나 학설도 그대로 답습하려 하지 않았다. 설선이나 호거인 등 명초 성리학자들을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들의 사상․학설을 그대로 수용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정민정의 <심경부주>는 특별히 많은 영향을 끼친 서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진건의 <학부통변>과 <황명통기>의 정민정 비판이 유포되면서 그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인 면 못지않게 부정적인 면을 갖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진건의 사상․학설이 그대로 수용되는 것도 아니었다. 나흠순은 조선의 학자들로 하여금 진헌장과 왕수인의 사상․학설이 주자학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지만, 그도 조선의 학자들에게서 추종받는 인물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동림당은 양명좌파를 비판하고 주자학적 禮制의 회복을 주장함으로써 조선 학자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그들 역시 전폭적으로 지지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면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무슨 이유에서 명대 유학에 대해 이렇듯 거리를 유지했는가? 또, 그들이 명대 유학에 대해 행한 수용과 비판의 기준은 어디에 있었는가? 명대 유학의 학파별 또는 인물별 사상의 특징과 그에 대한 조선 유학자들의 반응을 검토하는 본 과제의 1차년 연구는 바로 이러한 물음에 답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2차년도 주제 : 명대 유학과의 비교를 통해 보는 조선 성리학의 특징
    명대 유학과 조선 성리학의 이론을 비교할 때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은 이론마다 그것이 형성되고 기능하는 나름의 담론 지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동일한 언표일지라도 그것이 처한 담론 지형이 다를 경우 그 이론적 가치와 의미는 다를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이기론 분야에서 조선 성리학자들의 주목을 받은 명대 유학의 대표적인 이론은 나흠순의 이른바 理氣一物說이다. 나흠순은 담약수․왕수인과 토론을 벌여 그들이 주자학을 벗어나려는 것에 대하여 강력히 제동을 걸고 주자학적 전통을 지키려고 했던 인물이다. 그는 이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주자가 ‘理와 氣는 두 가지 物’이라 했던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理는 氣의 理’이고, 따라서 ‘理와 氣는 一物’이라고 하였다. 여기에 한정해 본다면 그는 氣論者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심성론을 전개하면서 그는 ‘性卽理, 心卽氣’라고 하여 性과 心을 理와 氣로 구분하고, 그것을 구분하지 않는 진헌장과 왕수인이 ‘認氣爲理’의 논리에 빠졌다고 비판하였다. 이에 담약수․왕수인 계통의 학자들, 특히 황종희는 심과 성을 구분하는 나흠순의 논리가 ‘리는 기의 리’라는 그의 주장과 모순될 뿐 아니라 그 자체로 기론이라 할 수도 없다고 비판하였다.
    이렇듯 명대 유학의 지형 속에서 나름의 복잡한 배경으로 갖는 나흠순의 이기일물설이 조선 성리학자들에게는 기론자로 단순화되면서 비판의 표적으로 자리를 잡는다. 사단칠정론을 전개하면서 리와 기의 분리를 강조 했던 퇴계는 나흠순을 담약수보다 더 주자학에 파괴적인 인물이라고 주장하였다. 반면에 리와 기는 분리될 수 없다는 전제 하에 ‘氣發理乘之’ 一途說을 주장한 율곡은 나흠순의 이기일물설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논리를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언급을 남겼다. 이후에 퇴계학파는 율곡의 이 언급을 근거로 하여 나흠순과 유사하다는 점을 율곡학파 비판의 주요 논거로 들고, 율곡학파는 이를 변명하기 위하여 나흠순 비판에 나서는 형세가 이루어졌다. 심지어는 그와 매우 유사하게 이론을 전개한 韓元震조차 그가 주자학을 파괴하는 인물이라고 비판하는 데 열중하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결국 조선의 담론 체계 속에서 나흠순은 주자학의 옹호를 위한 노력 등 그의 또 다른 면모는 가려진 채 대표적인 기론자로서의 함의만 부각된 셈이 된 것이다.
    본 2차년도 연구는 조선 성리학과 명대 유학에서 상호 비교 가능한 패턴을 추출하여 비교하고, 이에 근거하여 조선 성리학의 특징을 구체적으로 규명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에 비교를 위해 추출하는 명대 유학과 조선 성리학의 이론 패턴은 기론-이기이원론, 중화적감론-사단칠정론, 성론 및 만물일체론-인물성동이론, 공부론-경 중심의 수양론, 독서론-독서궁리론 등 다섯 가지이다. 이 다섯 가지 짝 이론들 사이의 문제의식과 지향의 동이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조선 성리학 이론들의 특성과 그 사상․문화사적 함의를 추출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본 연구진은 조선과 명대의 이론들이 서로 다른 담론 체계에 속해 있었음을 중시하고, 언표된 것 이면의 실질적인 함의를 추출하는 데 특별히 노력을 경주하고자 한다.
  • 한글키워드
  • 명대유학,조선성리학,비교철학,이기이원론, 인물성동이론,독서궁리론,만물일체론,중화적감론,경론,사단칠정론,양명학,주자학,정체성
  • 영문키워드
  • Ming Neo-confucianism,Comparative Philosophy,Neo-confucianism of Zhu-Xi, Li-Qi Dualism,The Theory of the Human nature and Animal nature,The Theory of Reading and Inquiry,One-Body of myriad things, One Theory of the Mean and the Harmony, The Piety Theory,The Four-Seven Theory,Neo-confucianism of Yang-Ming, Identity,Joseon Neo-confucianism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조선 성리학자들은 명초의 대표적인 정주학자인 薛瑄과 吳與弼,胡居仁 등이 元代 科擧之學의 폐단을 교정하려고 格物窮理보다는 主敬涵養의 궁행실천에 치중함을 높이 평가하였지만 이들의 이론과 실천의 불철저성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비판함으로써 사림파 이후 조선유학자들이 갖게 된 절의의 실천에 대한 자부심과 이론적인 철저성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주었다. 명대 유학의 이기론은 초기의 주리론으로부터 기론으로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이기일원적 경향을 띄는데, 호발론자인 퇴계에 의해 이기일물설이라고 비판되었다. 퇴계학파에 의해 주기론자라고 비판받은 율곡학파도 일물설은 부정한다. 여기에서조선유학은 도덕의 근거인 리를 중시하는 주리적 이기이원의 입장을 결코 벗어나지 않는 특징을 볼 수 있다. 퇴계는 존덕성과 경을 중시하였지만, 이는 인간의 도덕적 본성과 그 주체인 마음에 관심을 집중하는 송대 성리학의 일관된 전통에 충실한 것으로서 양명의 심학과는 다른 것이다. 왕양명은 心卽理를 제창하여 '心이 無體'이면서도 ‘是非로 감응하는 주체’를 설정하고, ‘감응 주체’를 未發(寂)과 已發(感)이라는 中和論과 결부시켜 理氣의 통합체로 良知라는 개념으로 정립하였다. 조선의 사단칠정론은 주자의 心統性情論을 바탕으로 미발의 性에서 이발의 情으로 발현되는 과정을 명확히 하려고 中節의 의미가 핵심 문제로 제기 되어 반면에 선과 악의 구분 의식이 강하고, 그것을 리와 기와 관련시켜 정형화하려는 의도가 깊이 침투되어 있다. 명대 유학이 주자학에서 양명학으로 경향이 전환되면서 性論에 대한 관심이 축소되고 氣를 매개로 삼아 만물의 전체성,통합성을 강조하는 만물일체론적 사고가 확산되었다. 호락논쟁은 동론이든 이론이든 이들은 사물의 다름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는 사물에 대해 인간의 우월성과 도덕가치를 절대화하려는 특징을 보인다.호락논쟁은 동론이든 이론이든 이들은 사물의 다름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는 사물에 대해 인간의 우월성과 도덕가치를 절대화하려는 특징을 보인다. 명대의 양명좌파는 독서궁리를 완전히 경시하였는데 이에 비해 조선의 독서궁리론은 이미 이황ㆍ이이 단계에서부터 확립되어 왔던 것으로서 19세기 말까지 대다수 학자들을 통해 주자학적 세계관을 확산ㆍ강화해 가는 장치로 작동하였다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 영문
  • A study of the Identity of Joseon Neo-confucianism in comparison with Ming Neo-confucianism
    In this study, We had tried to find the mirror effects of Ming Confucianism from the Neo-Confucianism of Joseon Korea by means of the comparative methodology which is the tool to analysis the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between Ming Dynasty Confucianism and the Confucianism of Joseon Korea. As the output of this study, we found out the decisive factors which made both the identities of the Neo-Confucianism of Joseon Korea and the certain evolving courses of Confucianism which not ended in Yangming study. The first factor is the thoroughness of practice, self-cultivation, and social responsibility of the Joseon scholars. The second factor is the endeavors of the Joseon scholars to build the basis of the sound criteria of ethical activities. The third factor is the unity of the Joseon society which made the uniformity of Joseon Neo-Confucianism.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이 연구는 비교철학적 방법을 통하여 朝鮮 유학(性理學)과 明代 유학을 비교함으로써 조선시대 성리학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연구이다. 주지하듯이, 명대 유학은 대체적으로 주자학으로부터 양명학으로의 변화 양상을 보인 반면, 조선시대 유학은 초기부터 말기까지 주자학적 경향성이 지배적인 지위를 유지했다는 데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이 점은 조선시대 유학이 한편으로 중국 유학의 영향을 꾸준히 받아들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에서 중국 유학과 분리되어 독자적인 발전 경로를 개척해 왔음을 시사한다. 이 연구에서는 명대 유학의 주요 인물과 학파에 대한 조선 유학자들의 이해와 반응, 문제의식과 지향에서 양자 사이의 同異, 조선적 특성의 형성과 전승의 양상 등을 해명함으로써 그 독자적 발전 경로를 추적하여 조선 성리학의 정체성을 규명하고, 나아가 조선시대 유교 문화에 대한 새로운 조망을 시도하고자 하였다. 첫째, 명대 유학과의 비교를 통하여 조선시대 성리학의 정체성을 해명하고, 둘째, 주요 개념 및 이론의 특성에 주목하여 조선 성리학의 주자학적 경향성의 실상을 규명하며, 셋째, 조선시대 유학의 주자학적 경향성이 갖는 사상,문화사적 함의를 조명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본 연구는 조선 성리학자들의 성리학을 명대 유학과의 관련 속에서 연구한 결과 조선성리학이 명대유학과는 다른 발전 경로를 거쳐 성장 발전함을 밝혔다. 이러한 경향은 이기론과 수양론, 독서법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성격은 실천성에 있으며, 현실에서의 윤리의 객관적 기준을 찾고, 사회의 질서에서 전체적 조화와 역할의 구별의 문제에 관심이 있었으며, 공부방법에도 욕망의 조절과 의리(정의)의 실현에 목표를 둔 독서법이 특징이다. 사단칠정론, 인성물성론 등 조선의 성리학의 특징을 이루는 담론체계는 중국의 영향보다는 조선 성리학의 내적 경향이 더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고 볼 수 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조선 성리학자들은 명초의 대표적인 정주학자인 薛瑄과 吳與弼,胡居仁 등이 元代 科擧之學의 폐단을 교정하려고 格物窮理보다는 主敬涵養의 궁행실천에 치중함을 높이 평가하였지만 이들의 이론과 실천의 불철저성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비판함으로써 사림파 이후 조선유학자들이 갖게 된 절의의 실천에 대한 자부심과 이론적인 철저성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주었다. 명대 유학의 이기론은 초기의 주리론으로부터 기론으로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이기일원적 경향을 띄는데, 호발론자인 퇴계에 의해 이기일물설이라고 비판되었다. 퇴계학파에 의해 주기론자라고 비판받은 율곡학파도 일물설은 부정한다. 여기에서조선유학은 도덕의 근거인 리를 중시하는 주리적 이기이원의 입장을 결코 벗어나지 않는 특징을 볼 수 있다. 명대의 백사와 양명에 대한 나흠순과 진건의 비판이 객관적 진리판단의 기준에 대한 요청에 근거하는 것으로, 이 요청을 공감하고 있던 이황,이이 등의 조선 성리학자들은 나흠순과 진건을 전면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주자학적 관점에서 이에 대한 해답을 구한다. 왕양명은 心卽理를 제창하여 '心이 無體'이면서도 ‘是非로 감응하는 주체’를 설정하고, ‘감응 주체’를 未發(寂)과 已發(感)이라는 中和論과 결부시켜 理氣의 통합체로 良知라는 개념으로 정립하였다. 조선의 사단칠정론은 주자의 心統性情論을 바탕으로 미발의 性에서 이발의 情으로 발현되는 과정을 명확히 하려고 中節의 의미가 핵심 문제로 제기 되어 반면에 선과 악의 구분 의식이 강하고, 그것을 리와 기와 관련시켜 정형화하려는 의도가 깊이 침투되어 있다. 호락논쟁은 동론이든 이론이든 이들은 사물의 다름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는 사물에 대해 인간의 우월성과 도덕가치를 절대화하려는 특징을 보인다. 명대의 양명좌파는 독서궁리를 완전히 경시하였는데 이에 비해 조선의 독서궁리론은 이미 이황ㆍ이이 단계에서부터 확립되어 왔던 것으로서 19세기 말까지 대다수 학자들을 통해 주자학적 세계관을 확산ㆍ강화해 가는 장치로 작동하였다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본 연구의 문제의식과 방법은 연관 주제의 다른 연구로 계속 확산되어 가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조선시대 성리학을 중국 송,원대의 유학 또는 청대 유학과 비교하는 연구가 필요하고, 나아가 동시대 일본 사상 또는 서양 중세 사상과의 체계적인 비교 연구도 가능할 것이다.
  • 색인어
  • 조선 성리학, 명대 유학, 薛瑄, 吳與弼, 胡居仁, 格物窮理, 主敬涵養, 이기론, 주리론, 기론, 이기일원, 이기이원, 이기일물설, 호발론, 주기론,율곡학파, 조선유학, 백사, 진헌장, 양명학, 왕수인, 나흠순, 진건, 이황, 이이, 心, 定理, 心卽理, 未發已發, 寂感, 中和論, 理氣, 良知, 사단칠정론 주자학, 心統性情, 中節, 동림학파, 동림당, 독서법, 경, 수양론, 존천리, 알인욕. 전통, 고유성, 특수성, 독자성, 문화적 다양성
  • 연구성과물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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