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질문이 본 연구의 핵심주제가 된다.
첫째, 공-사 협력 네트워크의 형성 원인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작동되는가? 현재의 무역 분쟁에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경계가 모호해 지고 양 영역간의 (완전히 동질적이지는 않지만) 호혜적인 ...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질문이 본 연구의 핵심주제가 된다.
첫째, 공-사 협력 네트워크의 형성 원인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작동되는가? 현재의 무역 분쟁에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경계가 모호해 지고 양 영역간의 (완전히 동질적이지는 않지만) 호혜적인 상호작용이 활발해 지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구속성, 엄밀성, 위임성을 특징으로 하는 국제법제화 (International Legalization) 현상, 특히 다자무역체제에서의 강한 법제화 (Hard Legalization) 경향에서 찾을 수 있다. GATT에서 WTO 분쟁해결제로의 변화는 외교적 방식에서 법적 방식으로, 그리고 합의적 중재체제 (consensus-based arbitrative system)에서 강제적 재정판결체제 (compulsory adjudicative system)로의 변화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러한 변화는 중요한 국제적, 국내적 효과를 창출하게 된다. 분쟁관련 행위자의 수가 증가하고 분쟁관련 쟁점이 고도로 복잡해지며 전문적인 법률적 해석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활용 가능한 정보와 재원을 누가 확보하고 어떻게 공급하는가 하는 문제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외국의 무역 제한적 제도와 관행을 제거하여 수출을 확대하고자 하는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인 사적 기업들이야말로 이러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주체이며, 또한 자신들의 직접적이고 집중된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자할 여력과 동기를 가진 주체이다. 따라서 WTO의 분쟁해결제도 자체가 사적 기업 및 기업집단의 주도성과 능동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WTO의 분쟁해결기구는 오직 국가들만이 주체로서 참가할 수 있는 (legal standing) 국가간 법정이며, 따라서 사적 집단은 반드시 정부를 통해서만 자신의 이익을 실현할 수 있다. 또한 국가는 무역 분쟁을 제기하거나 방어함에 있어 개별적 사적 이익만을 대변한다기보다, 국가 전체적 이익, 장기적 분쟁 전략, 국제적 평판, 그리고 전반적 외교관계 등을 포괄적으로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 여기에 정부와 사적 기업집단 간의 협력과 갈등의 계기가 있으며, 이를 조율하고 통제하는 네트워크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둘째, 공-사 네트워크는 국가별로 어떤 차별성을 지니고 있는가? 가장 발달된 네트워크를 보여주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경우, 공-사 네트워크는 중요한 차별성을 보여준다. 미국의 경우 분쟁의 준비와 제기과정에서 사적 기업집단의 주도성이 강하고 공적 영역이 이에 대해 조응하는 형태로 네트워크가 운영되는 반면, 유럽의 경우 무역 분쟁의 전 유럽적 대행 주체인 유럽위원회 (European Commission)의 주도에 의해 네트워크가 형성, 운영된다는 점에서 두드러진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는 무역 분쟁과 관련된 정치 제도의 차별성, 기업의 집단행동 조직화의 용이성, 그리고 관료집단의 내적 문화 등 여러 가지 요인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셋째, 분쟁 쟁점의 성격에 따라, 또는 분쟁의 제소/피소에 따라 네트워크의 형성과 작동 메커니즘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제소를 위한 네트워크에서 사적 영역의 주도성이 보다 강화되는 반면, 피소에 대응하기 위한 네트워크에서는 공적 영역의 주도성이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제기되는 쟁점이 국가의 무역정책, 혹은 국내 규율 일반과 관련된 문제일수록 공적 영역이 보다 주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넷째, 한국에서의 WTO 분쟁관련 공-사 협력 네트워크는 어떻게 형성되어 왔으며 그 문제점은 무엇인가? 한국은 지난 10년 동안 WTO 분쟁해결기구의 주된 참여 국가 중 하나로서, 13차례 분쟁을 제기한 바 있고, 13차례 타국에 의해 피소된 바 있다. 또한 제 3자 (third party)의 지위로 분쟁과정에 참여한 것 역시 34차례에 이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쟁의 준비와 제기, 타국과의 협상, 법적 대응, 판정결과의 집행 등 일련의 과정에서, 한국의 공적 영역인 정부 (특히 재정경제부 산하 통상교섭본부 및 쟁점별 유관부처)와 사적 영역인 기업집단 (특히 수출업계 및 국내 경쟁 산업계)이 어떠한 협력 및 조율의 과정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전혀 연구된 바가 없다. 한국에서의 분쟁제기 및 대응의 패턴은, 미국과 같은 사적 영역에 의한 분쟁의 주도, 혹은 유럽과 같은 공적 영역 (특히 European Commission)에 의한 분쟁의 주도와는 상당정도 상이한 방식을 보여주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며, 특히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네트워크와 파트너쉽이 거의 형성되고 있지 못한 사실 자체가 문제인 것으로 보여 진다. 따라서 본인의 연구가, 네트워크의 운영을 위해 요구되는 인적 제도적 정비와 개선의 방안을 제시하는데 실천적이고 직접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