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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과 구조주의: 뤼시앙 페브르와 롤랑 바르트의 관계를 중심으로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우수논문지원사업
연구과제번호 2007-325-A00062
선정년도 2007 년
연구기간 1 년 (2007년 12월 01일 ~ 2008년 11월 30일)
연구책임자 고원
연구수행기관 한양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아날의 역사학과 구조주의는 20세기 프랑스 인문학의 흐름을 대표하는 양대 축이라 할 수 있다. 아날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19세기의 전통적 역사학을 비판하며 등장했다. 아날의 역사가들은 다양한 인접 학문들과의 교류를 통해 역사학의 대상을 확대하고 새로운 방법론들을 도입하면서 근대 역사학의 혁신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이들은 정치사 중심의 전통적 역사학을 넘어서 사회사, 경제사, 문화사, 망탈리테사 등의 새로운 영역으로 역사학의 영토를 확장시켰다. 20세기 중반 이후 아날이 프랑스 역사학의 주류로 군림하고 있을 때, 구조주의는 인문사회과학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철학, 인류학, 언어학, 사회학, 문학, 지리학, 정신분석학, 심지어 마르크스주의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거의 모든 학문들이 구조주의의 물결에 동참하고 있었다. 20세기 프랑스라는 동일한 시공간에 공존하던 아날과 구조주의는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을까? 아날과 구조주의의 관계와 관련하여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은 아날을 대표하는 역사가 페르낭 브로델이 1958년에 발표한 「역사학과 사회과학들: 장기지속」이라는 논문이다. 이 글에서 브로델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인류학이 ‘시간’이라는 핵심적인 요소를 배제한 채로 정태적이고 폐쇄적인 사회구조를 설정한다며 격렬하게 비판한다. 브로델의 비판은 역사학과 구조주의의 갈등을 보여주는 하나의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되어 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프랑수아 도스와 같은 이들은 역사학과 구조주의의 적대적인 관계가 1960년대까지 계속되다가 1970년대에 들어서야 브로델의 ‘후계자들’이 역사인류학을 통해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를 수용하면서 상호 우호적인 관계로 변형된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렇지만 1970년대 이전 아날의 역사학과 구조주의는 정말로 적대적인 관계였을까? 물론 브로델이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인류학에 비판적인 반응을 보인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초기 레비-스트로스 역시 『야생의 사고』 마지막 장에서 보여준 것처럼 ‘역사’, 그 자체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인류학이 프랑스 구조주의의 흐름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레비-스트로스가 구조주의의 대표자 가운데 한명인 것은 분명하지만, 구조주의 내부에는 다양한 사상과 흐름들이 존재한다. 구조주의의 내적 복합성과 다양성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보다 풍부하고 생산적인 논의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구조주의의 대표자 중 한 명이었던 철학자 미셸 푸코는 아날과 매우 우호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브로델은 푸코의 열렬한 후원자였으며, 푸코 역시 자신의 이론과 아날의 친화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푸코는 아날의 창시자인 뤼시앙 페브르의 “진정한 후계자”로 간주되곤 했다. 여기서 우리는 구조주의를 이끈 푸코가 페브르의 후계자로 불렸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페브르는 아날의 역사가들 가운데 구조주의와 가장 밀접한 연관을 가진 인물이었다. 우리는 흔히 구조주의의 전성기를 가져온 주역으로 레비-스트로스, 푸코, 롤랑 바르트, 자크 라캉, 이 네 명을 꼽는데, 이 중 레비-스트로스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은 모두 페브르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푸코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페브르의 후계자로 간주되었다. 1930년대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정신분석학자 라캉을 인정하고 그를 모든 비판으로부터 옹호했던 인물이 바로 페브르였다. 문학비평가 바르트의 경우는 페브르와 이론적으로 보다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바르트의 문학비평과 페브르의 역사학 사이의 이론적 연관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아날과 구조주의의 관계를 기존의 시각과는 다른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는 페브르의 문학사회사가 바르트의 구조주의 문학비평에 끼친 영향을 추적하면서 이를 통해 아날의 역사학과 구조주의가 맺고 있는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관계에 대한 인식을 한 단계 높이고자 한다.
  • 기대효과
  • 가. 아날 역사학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증진: 그동안 우리나라 역사학계에서는 아날의 역사학에 관한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 연구들은 아날의 역사학을 단지 역사학의 영역에 국한지어 고찰하였을 뿐, 프랑스 인문학이라는 전체 공간 속에 위치지운 적은 없었다. 그 결과 아날의 역사학이 동시대 다른 학문들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전체 학문의 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에 관한 연구 역시 거의 이루어지지 못한 상황이다. 20세기 프랑스 인문학의 중심 조류였던 구조주의와 아날 역사학 간의 관계를 분석하는 본 연구를 통해 앞으로 20세기 다양한 학문들의 발전 과정에 아날이 끼친 영향에 관한 또 다른 연구들이 활성화되길 기대한다. 나. 현대 프랑스 지성사에 대한 이해의 확대: 20세기 프랑스 지성사에 관한 연구는 문학비평계와 철학계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반면 역사학계에서의 연구 성과는 거의 전무하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은, 프랑스 지성사의 전개 과정에서 역사학이 담당하는 역할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현대 프랑스 지성사의 전체적인 모습을 올바로 조망하지 못했던 것이다. 프랑스 구조주의의 전개 과정에서 역사학의 기여를 추적하는 본 연구를 통해 앞으로 현대 프랑스 지성사에 대해 보다 심도 깊고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다. 역사학의 새로운 가능성 모색: 아날의 역사가들은 폐쇄적이고 고립적인 19세기 역사학에 반대하며, 인접 학문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개방적인 역사학을 주장했다. 인간에 관한 모든 학문들의 발전에 도움을 주는 역사학을 지향한 것이다. 그러나 아날 이후 역사학은 인접 학문들과의 관계를 스스로 단절하고 다시 자신의 고유한 테두리에 안주하는 과거의 역사학으로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현재의 상황을 고려할 때 본 연구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페브르와 바르트의 관계는 아날의 작업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역사학과 문학이라는 서로 상이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 두 인물의 이론적 관계는 역사학의 역할과 가능성이 얼마만큼이나 확장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학과 구조주의의 관계를 고찰하는 본 연구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역사학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인식의 확장이며, 그에 따라 역사학의 새로운 진로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는 것이다.
  • 연구요약
  • 이제까지 역사가들은 아날과 구조주의의 관계를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인류학에 대한 브로델의 비판을 통해 설명해 왔다. 브로델과 레비-스트로스가 갈등적이었던 것처럼 아날과 구조주의 역시 대립적인 관계로 간주되었고, 20세기 프랑스 인문학을 대표하는 두 흐름의 화해는 1970년대에 들어서야 아날 3세대 역사가들의 역사인류학을 매개로 가능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었다. 그렇지만 구조주의는 내부적으로 다양한 성향과 흐름을 가지고 있었다. 레비-스트로스가 구조주의 전체를 대변할 수 없을뿐더러 구조주의 인류학이 구조주의 사상 전반을 아우를 수도 없다. 구조주의를 대표하는 레비-스트로스, 푸코, 바르트, 라캉 등은 각기 상이한 모습과 지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비-스트로스는 구조주의를 잘 짜여진 엄격한 체계로 정의하려 했던 반면, 바르트에게 구조주의는 하나의 운동(mouvement)일 뿐이었다. 이러한 구조주의 내부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아날과 구조주의의 관계를 올바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연구는 페브르의 문학사회학이 바르트의 구조주의 문학비평에 미친 영향을 고찰하면서 아날과 구조주의의 관계를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한다. 아날과 구조주의는 브로델과 레비-스트로스의 경우처럼 갈등적인 관계로만 엮어 있었던 것은 아니며, 페브르와 바르트가 보여주듯이 이론적으로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바르트가 제시한 구조주의 문학비평의 이론적 토대 구성에 페브르의 역사학이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아날과 구조주의가 이론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구조주의라는 거대한 흐름이 태동할 때 이미 그 한 부분에서 아날의 역사학이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브로델과 레비-스트로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페브르와 바르트 역시 아날과 구조주의의 관계 전부를 설명해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구조주의는 다양한 조류들의 복합체이며, 레비-스트로스건 바르트건 이들은 모두 구조주의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단지 한 축만을 이루고 있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이는 구조주의만의 모습이 아니다. 아날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날의 창시자인 블로크와 페브르, 그들의 후계자 브로델, 그리고 이후의 많은 역사가들, 이들은 모두 아날이라는 하나의 이름 하에서 서로 복잡하고 다양하게 엉켜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연구에서 살펴보는 페브르와 바르트는 아날과 구조주의의 관계에서 일부분을 차지할 뿐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다. 20세기 프랑스 인문학을 대표하는 아날과 구조주의라는 거대한 두 흐름이 서로 교차하고 갈등하며 전개해나간 기나긴 과정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역사가들에게 남겨진 중요한 과제이다.
  • 한글키워드
  • 아날,롤랑 바르트,구조주의 문학비평,역사이론,프랑스 지성사,문학사회사,뤼시앙 페브르,구조주의
  • 영문키워드
  • Annales,French intellectual history,Theory of historiography,Structuralist critique,Structuralism,Lucien Febvre,Social history of literature,Roland Bart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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