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결과를 보면, 첫째, '평화여성회'가 결성된 것은 1990년대 탈냉전의 흐름, 1970년대 부터 이어져온 한국여성평화운동의 흐름과 동력, 평화운동의 글로벌라이제이션을 배경으로 이루어졌다. '평화여성회'의 주체집단은 '평화여성회 창립준비위원회'의 여성들을 통 ...
연구결과를 보면, 첫째, '평화여성회'가 결성된 것은 1990년대 탈냉전의 흐름, 1970년대 부터 이어져온 한국여성평화운동의 흐름과 동력, 평화운동의 글로벌라이제이션을 배경으로 이루어졌다. '평화여성회'의 주체집단은 '평화여성회 창립준비위원회'의 여성들을 통해 볼 때, 한국여성운동지형에서 여성단체연합 소속의 진보적 여성, 교회여성연합회 등 기독교 여성단체 소속 여성들이 주류였다. 둘째, '평화여성회'의 이념은 단지 '여성의 권익향상'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경험에서 여성의 억압을 주조하는 사회구조의 변화를 목적으로 추구하는 이념적 지향을 지녔다. '평화여성회'의 운동목표는 민족의 평화통일, 나아가 동아시아와 전세계의 평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평화여성회'는 평화통일문제, 평화군축문제, 평화문화문제를 핵심적 운동과제로 정의하였다. 셋째, '평화여성회'의 탈식민주의적 인지적 실천을 보면, 평화통일, 평화군축, 평화문화를 한국여성의 경험에서 평화적 과제로 정의해내고 있었다. 서구의 여성평화운동과 비교할 때 평화통일을 운동과제로 정의한 것, 그리고 평화군촉과 평화교육의 내용이 서구의 것과 완전히 달랐다. 또한 평화통일 문제, 평화군축 문제, 평화문화 문제를 '평화여성회'는 가부장제, 군사주의,(신)식민주의 동아시아 체제에서 연관지었고 이에 저항하는 인지적 실천을 추구하는 탈식민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넷째, '평화여성회'의 탈식민주의적 인지적 실천은 현실적으로 제약받았고 문화적으로 제약받았다. 우선 현실적으로 한국에는 군사안보에 입각한 국가안보, 부국강병적 민족주의 문화가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화적으로는 인간안보, 적극적 평화개념 등 서구 페미니즘과 평화연구의 지식이 지구화되면서 '평화여성회'의 의제도 이러한 서구의 문화적 지식 코드에서 재구성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평화군축의 인지적 실천이 방위비삭감, 군개혁 등 우회적인 내용으로 채워졌고, 이것조차도 대중적인 공감과 지지를 받지 못했으며, 전반적이고 완전한 군축으로 실천되지 못하였다. 그리고 평화문화 운동에서도 미국의 친우봉사회 프로그램의 적용 등 평화통일, 평화군축과 연계되지 못하는 한계와 딜렘마를 보여주었다. 이 연구는 한국과 해외의 한국학이나 여성학의 교육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