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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 상세정보

근대 일본 단체의 조선에 대한 조사활동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연구과제번호 2009-327-A00051
선정년도 2009 년
연구기간 2 년 (2009년 11월 01일 ~ 2011년 10월 31일)
연구책임자 최혜주
연구수행기관 한양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구의 목적은 근대 일본이 해외사정을 조사하고 식민사업의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설립한 단체들의 조선사정 조사에 대한 전모를 밝히는데 있다. 그러나 그동안 이 분야에 대한 국내외의 연구는 아시아주의 단체인 동아동문회나 흑룡회 등에 대한 연구를 제외하면 거의 없는 상태였다. 그 이유는 첫째, 한국에서는 일본사에 대한 인식과 연구자 부족, 일본 측 사료에 대한 해독능력 문제로 이 분야에 대한 연구를 소홀히 하게 만들었다. 둘째, 일본에서는 일본의 치부가 될 수 있는 조선 문제를 의도적으로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고, 일본인들이 갖고 있는 전통적인 조선멸시관이 조선 문제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게 만들었다.
    근대 일본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이를 발판으로 대륙침략정책을 추진하게 된다. 이것은 국가권력만이 아니라 조야를 망라한 국민적 합의를 토대로 국가과제로서 설정되었으며 국민적 지지와 동참 아래 전개된 것이다. 일본이 조선침략을 달성하기까지 조선사정을 조사하기 위해 취한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① 메이지정부 내에 정한론이 비등할 때 조선의 사정을 조사하기 위해 정탐 군인을 보내 정보를 얻어갔다. ② 조선 문제에 관심을 갖는 개인들이 조선을 여행하고 조사하여 남긴 안내기나 보고서, 기행문을 이용했다. ③ 조선을 불평등조약으로 개항시킨 이후에는 동경지학협회를 비롯한 단체를 만들어 다방면에 걸친 사정조사와 연구를 통해 조선침략을 기도했다. 단체가운데는 일본만이 아니라 중국이나 조선에 있는 일본인들이 단체의 지부를 운영하면서 그 역할을 해낸 곳도 있다. 단체에 임원이나 회원으로 참여한 이들은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고, 또한 여론 형성을 주도하여 근대 일본의 대외정책을 선도해가기도 했다. 당시 이 단체들은 식민지 개척문제를 일본의 國是로 중요시했기 때문에 식민사상을 보급시켜 나갔다.
    본 연구에서 주목하는 근대 일본의 조사단체에 대한 고찰은 당시 일본의 조선인식을 비롯하여 대외사상, 대외침략 과정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주제의 하나이다. 따라서 본 연구의 목표는 근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어떠한 방법으로 조선을 조사하고 조선 문제에 주력했는지 단체의 기관지를 중심으로 알아보는데 있다. 이를 위해 대표적 조사단체인 동경지학협회(1879년), 동방협회(1890년), 식민협회(1893년)의 그 위치와 역할을 조명하고 구체적인 동향을 파악하려고 한다. 그리고 세 단체의 구성원, 정치적 성향, 사업내용 등을 비교 검토한다.
  • 기대효과
  •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면에서 연구사적인 기여와 기대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① 근대 일본의 해외사정 조사를 담당한 조사단체의 조직과 사업내용을 분석해 그 성격을 밝힘으로써 일제의 조선침략 과정을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 그리고 연구결과를 통해 메이지기부터 일본인들이 만든 왜곡된 朝鮮史像을 해명하여 더 이상 식민사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지 않는 학계에 기여할 수 있다.
    ② 그동안 사료접근이 어려웠던 메이지기에 결성된 단체들의 잡지를 활용하여 한일관계사 연구자들에게 자료접근의 편의를 제공할 수 있다. 이로써 한국근대사연구의 유용한 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다.
    ③ 메이지기 조사대상 지역의 정치․경제․사회․지리․풍속 등 다양한 분야의 사정을 담고 있는 기사를 통해 일본인들의 조선인식을 정리하며 이를 수업교재로 활용할 수 있다.
    ④ 잡지의 원사료를 원문으로 데이터베이스화하여 이를 통해 학문후속세대들에게 사료해독 능력을 배양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전문연구자를 양성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 연구요약
  • <제1차년도: 일본 동경지학협회의 조사활동과 조선인식>
    동경지학협회는 1879년 渡辺洪基가 중심이 되어 군무, 경제상 사업을 진흥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아시아, 일본, 세계의 지리를 연구하기 위해서 설립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다음 세 가지를 고찰하려고 한다. ① 군인과 상인 그룹의 조선 내지정탐: 참모본부에서 파견된 군인들이 어떠한 지역을 조사하여 보고했는지 검토한다. 원산이 개항된 이후 일본상인의 ‘내지행상’은 조선에서 많은 마찰을 일으켰다. 이들이 조선 내지를 다니며 무엇을 조사했는지 아울러 살펴본다. ② 외무성 관료 그룹의 조사: 이들은 거물급 정치인으로 당시 조선과도 밀접한 관련을 갖는 인물이었다. 본 연구에서는 이들이 어떠한 목적으로 파견되어 조사를 하고 어떠한 시각으로 조선 문제를 바라보았는지 검토한다. ③ 지질학자 그룹의 조사: 조선에서 지질학자들에 의해 광상조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청일전쟁 전후 열강의 광업특허권 획득에 영향을 받은 때문이다. 일제가 조선의 자원수탈을 위해 어떠한 방법으로 어느 지역을 조사했는지 검토한다.
    <제2차년도: 일본 동방협회의 조사활동과 조선인식>
    동방협회는 1890년 副島種臣이 중심이 되어 설립된 아시아주의 단체로 사업목적은 주로 ‘동양 諸國과 남양 諸島에 관한 講究’를 내걸었다. 본 연구에서는 동방협회의 기관지를 중심으로 협회의 조직과 임원, 운영, 시찰담, 회원동향 등을 분석하여 조사활동의 성격과 조선인식에 대해 규명한다. 이를 위해 ① 군인들의 정탐 기행에 대한 보고, ② 청일․러일전쟁을 둘러싼 동방협회의 인식, ③ 조선병합과 동화문제를 어떻게 인식하여 조선경영의 방법을 강구했는지 검토한다.
    <제3차년도: 일본 식민협회의 식민활동과 쓰네야(恒屋盛服)의 조선인식>
    식민협회는 열강에 의한 식민지 획득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식민사업의 거점 확보를 위해 외무대신을 지낸 榎本武揚이 중심이 되어 1893년 설립했다. 본 연구에서는 협회 운영진의 정치적 성향과 출신지별 분포를 통해 단체의 성격을 파악하고 협회의 사업목적이 정책결정에 미친 영향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검토한다. 이를 위해 ① 기관지에 수록된 ‘이주방침’, ‘식민정략’, ‘이민론’, ‘식민정책’, ‘식민의 급무’ 등을 분석하여 협회의 식민활동을 살펴본다. ② 식민협회의 간사로 조선에서 활동한 恒屋盛服의 ‘조선반도 식민의 필요성’, ‘조선 식민문제‘ 등을 분석하여 조선인식을 정리한다.
  • 한글키워드
  • 동경지학협회,동방협회,메이지정부,花房義質,渡&#36794;洪基,조선인식,식민사업,아시아주의,조선사정,조사단체,조사,정한론,恒屋盛服,副島種臣,大庭寬一,&#27022;本武揚,大鳥圭介,식민협회
  • 영문키워드
  • Soejima Taneomi,Oba kanithi,Asianism,Circumstances of Joseon,research organization,investigation, The Theory of Conquer Korea,Meiji government,Shokumin kyokai,Toho kyokai,Tokyo-chigak kyokai,Recognition on Joseon,Thuneya Seifuku,colonization project, Watanabe Hiromoto,Hanabusa Yoshimoto,Enomoto Takeaki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이 연구의 목적은 근대 일본이 해외사정을 조사하고 식민사업의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설립한 단체들의 조선사정 조사에 대한 전모를 밝히는데 있다.
    1차 년도에는 <일본 동경지학협회의 조사활동과 조선인식>에서 1879년에 결성된 동경지학협회의 임원진이나 회원들은 메이지시대를 이끈 정치인, 외교관, 군인, 학자들로 일본의 조선정책을 결정하거나 실제로 조선을 침략하는데 관여한 인물도 있었다. 그들은 조선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심어주어 근대일본의 조선인식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동경지학협회의 역할이 중요했던 것은 척식국 등의 관청이나 제국대학에서 혹은 조선 통감부나 총독부에서 본격적인 조사가 이루어지기 전에 선구적으로 조선사정을 조사했기 때문이다.
    동경지학협회 회원들은 조선의 역사는 상고시대부터 일본과 중국에 의해 지배당해 독립한 적이 없는 역사이므로 결국의 일본의 보호와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인식했다. 이러한 역사왜곡은 메이지시대라는 상당히 빠른 시기에 나타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후 침략이데올로기로서의 식민사관을 생산해 나가는 출발점이 되었다.
    2차 년도에는 <일본 동방협회의 조사활동과 조선인식>에서 1891년에 설립된 동방협회의 임원과 회원들은 일본 정계, 관계의 유력인사나 조선 통치와 관련된 인물도 상당수 참가하였다. 동방협회는 학술단체를 표방했지만 동양의 정세가 급박해지면서 외교, 시사, 상공업 문제 등에 적극적인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를 위해 동방의 정치, 인종, 종교, 역사 등을 조사하고 수집한 정보를 통해 해외에 진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동방협회 회원들의 조선인식은 다음과 같다. ① 조선이 쇠퇴하여 멸망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을 보호할 수 있는 나라는 일본뿐이 없다. 중국의 간섭을 배제하고 일본이 동양의 맹주가 되어 패권을 장악해야 한다. ② 일본이 동양의 평화를 보존하고 일본의 자위를 위해 러시아의 침략을 경계해야 한다. ③ 조선경영에 시급한 것은 식림산업이며, 이를 추진한 뒤에는 만주지방으로 침략해가야 한다.
    이 두 단체의 조선에 대한 조사활동은 유사시의 전쟁을 대비한 군인의 정탐조사가 있으며 외무성관료나 정치인들의 內政과 생활상 조사, 중국의 조선정책과 러시아에 대한 경계방법을 조사했다. 상업조사는 개항장과 내지까지 침투하고 있는 중국상인을 배제하고 일본의 상권을 확장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지질조사는 자원약탈을 위해 조선의 광물과 개발가능성이 있는 지역도 조사했다.
  • 영문
  • This study aims to examine the entire picture of how modern Japan conducted research on the circumstances of Joseon with its organizations established to investigate overseas circumstances and secure the base for its colonial project.

    <Tokyo Geographical Society’s Research Activities and Recognition of Joseon> pays attention to Tokyo Geographical Society organized in 1879 to work for its synthetic goals including its military goals. The association’s executives and members include the politicians, diplomats, soldiers, or scholars leading the Maiji Era, and some of them were actually involved in the decision-making process for Japan’s policy of Joseon or the invasion into Joseon. The association spied out the circumstances of Joseon through various routes to put distorted images of Joseon into them and affected modern Japan’s recognition of Joseon. The reason why the association’s roles were crucial was that it conducted research on the circumstances of Joseon initiatively before the government offices like Takushoku (拓植局) or the Imperial (帝國) University, or the Residency-General or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actually performed research on them.

    From <Japanese Toho Association’s Research Activities and Recognition of Joseon>, it inspected the research activities on Joseon by Toho Association which was founded in 1891. The association’s executives and members also included influential figures in political relationships or the figures associated with the rule in Joseon. Although the association claimed to support academic societies, as the circumstances in Asia were getting urgent, it presented aggressive opinions about diplomacy or current events and investigated the politics, races, religion, or history in Asia in order to advance into other countries based on collected information.
    To prepare for the Sino-Japanese War and Russo-Japanese War for soldiers, the two organizations conducted geographic research, investigation on the internal affairs and life phases of the bureaucrats or politicians in th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and also research to find out ways to be alert about China’s policy to Joseon or Russia. The commercial research was to exclude Chinese merchants penetrating into the open port and even internal land and also expand Japan’s commercial supremacy. The geographic research even included the minerals and regions having potentials for development in Joseon so as to absorb its resources.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이 연구의 목적은 근대 일본이 해외사정을 조사하고 식민사업의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설립한 단체들의 조선사정 조사에 대한 전모를 밝히는데 있다.
    <일본 동경지학협회의 조사활동과 조선인식>에서는 1879년에 결성된 동경지학협회의 조사활동을 살펴보았다. 임원진이나 회원들은 메이지시대를 이끈 정치인, 외교관, 군인, 학자들로 일본의 조선정책을 결정하였다. 그들은 조선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심어주어 근대일본의 조선인식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협회의 역할이 중요했던 것은 척식국 등의 관청이나 제국대학에서 혹은 조선 통감부나 총독부에서 본격적인 조사가 이루어지기 전에 선구적으로 조선사정을 조사했기 때문이다.
    동경지학협회의 조선사정 조사는 ① 군인의 내지정탐은 지세의 험준 여부와 풍속, 도로사정, 조운과 육로운반, 조수 간만 차에 따른 배의 통과여부, 강의 요충지 및 결빙상태 등을 조사했다. 이러한 정보는 일본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치르는 데 이용되었다. ② 외무성 관료의 정탐조사는 개항장 교섭을 위한 기초조사를 실시하고 일본의 정치적 경제적 세력을 확장하고 상권을 침탈하기 위해 정탐하고 안내서를 준비했다. ③ 지질학자의 자원조사는 조선의 광산을 개발하기 위해 조사를 하고 열강이 각축하는 상황에서 일본이 현실적으로 차지할 수 있는 이권을 찾으려는 의도였다.
    동경지학협회는 조선은 일본인의 식민으로 건국된 나라이며 수차례 외침을 받아온 사대를 국시로 하는 나라로 일본의 보호와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인식했다. 이러한 역사왜곡은 메이지시대라는 상당히 빠른 시기에 나타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후 침략이데올로기로서의 식민사관을 생산해 나가는 출발점이 되었다.
    <일본 동방협회의 조사활동과 조선인식>에서는 1891년에 설립된 동방협회의 조사활동을 살펴보았다. 임원과 회원들은 일본 정계, 관계의 유력인사나 조선 통치와 관련된 인물도 많이 참가했다. 협회는 학술단체를 표방했지만 동양의 정세가 급박해지면서 외교, 시사, 상공업 문제 등에 적극적인 의견을 제시하였다.
    동방협회의 조사활동은 ① 군인의 정탐조사는 육군의 내지와 북한지역 정탐과 해군의 해안측정과 항만조사가 있었다. 진해만, 영흥만, 마산포에 주목하여 러시아의 남하에 대비했다. ② 관료들은 중국의 조선정책, 러시아에 대한 경계방법, 조선이 일본에게 어떤 이해가 있는가를 조사했다. ③ 상업조사는 개항장과 내지까지 침투해 있는 지나상인을 배제하고 일본의 상권을 확장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④ 지질조사는 조선의 광산에 대한 개략적인 조사와 개발가능성이 있는 지역을 소개했다.
    동방협회 회원들의 조선인식은 다음과 같다. ① 조선이 쇠퇴하여 멸망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을 보호할 수 있는 나라는 일본뿐이 없다. 일본은 동양의 맹주가 되어 중국의 간섭을 배제하고 패권을 장악해야 한다. ② 일본의 자위와 동양의 평화를 보존하기 위해 러시아의 침략을 경계해야 한다. ③ 조선경영에 시급한 것은 식림산업이며, 이를 추진한 뒤에는 만주지방으로 침략해가야 하는데 일본 상공업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① 본 연구과제는 근대 일본이 침략을 위한 방편으로 조선에 대한 사정을 어떻게 조사하고, 조선을 어떠한 눈으로 바라보았는지 밝힌 연구이다. 연구결과를 통해 메이지시기부터 일본인들이 만든 왜곡된 朝鮮史像을 해명하여 더 이상 식민사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지 않는 학계에 기여할 수 있다.
    ② 종래 소개되지 않았던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원문을 데이터베이스화하여 다른 분야 연구자들과 학문적 교류를 확대하여 연구의 지평을 넓힘으로써, 인문학에서 새로운 연구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연구수행 중 수집된 자료는 수업교재로 만들어 석․박사과정생들을 대상으로 사료강독을 실시하고 사료 해독능력을 배양시키는 효과를 달성할 수 있다.
    ③ 연구주제와 관련하여 지리, 문학, 이주문제, 기행 등 다양한 학문분야와 학제적 연구가 가능하다. 각 단체의 잡지에 나타난 담론의 사상적 경향을 파악하여 후속연구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 연구결과를 학계에 논문으로 발표하고 최종단계에서 단행본으로 출간하여 일반 독자에게도 대중서로 활용할 수 있다.
  • 색인어
  • 동경지학협회, 동방협회, 아시아주의, 조선사정 조사, 조선멸시관, 조선인식, 청일전쟁, 러일전쟁, 개항장 조사, 地質調査, 조선침략, 대륙침략, 조선경영, 만주경영, 조선이주, 식민사업 Tokyo Geographical Societ, Toho Association, Asianism, Investigation to Josen, Disdained viewpoint of Josen, Recognition on Josen, Sino-Japanese war, Russo-Japanese war, Treaty port investigation, Geological survey, the invasion on Josen, the continental invasion, managiment of Josen, managiment of Manchuria, the invasion on Josen, Colonial bus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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