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에서는 불가코프의 희곡작품에서 사용된 ‘메타드라마’적 기법을 고찰할 것이다. 극작품에는 당시 사회상이나 시대정신뿐만 아니라, 작품의 창작과정과 그 소재들에 대한 광범위한 관심이 드러난다. 이 경우 극작품은 인간의 삶을 보여주는 하나의 창문일 뿐만 아니 ...
본 연구에서는 불가코프의 희곡작품에서 사용된 ‘메타드라마’적 기법을 고찰할 것이다. 극작품에는 당시 사회상이나 시대정신뿐만 아니라, 작품의 창작과정과 그 소재들에 대한 광범위한 관심이 드러난다. 이 경우 극작품은 인간의 삶을 보여주는 하나의 창문일 뿐만 아니라, 극이라는 표현매체에 대한 작가 자신의 이해와 그 창작과정을 반영하는 거울 역할을 한다. 이때 슈제트와 등장인물의 자리에는 극작가 자신, 그의 대변자(페르소나), 그가 사용하는 극적 매체들, 극작과 관객 사이의 상호 작용 등이 들어서게 된다. 극작품이 단순히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작가의 자기분석, 자기비판의 기능까지 수행하게 되는 경우, ‘드라마에 관한 드라마’, 즉 ‘메타드라마’가 되는 것이다. ‘메타드라마’ 연구는 작가 자신이 창조한 극작품과 그것의 매체인 극장에 대한 작가적 의식을 작품 속에서 어떻게 반영하는가를 다루는 것으로서, 극적 환상의 파괴, 관객에 대한 작가의 발언, 극이라는 환상이 발생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극중극의 등장, 역할놀이, 엿보기, 배우와 배역 사이의 괴리 등을 통해 드러난 양상을 분석하는 것이다. 이런 기법들을 통해 환상과 실재의 경계인 무대와 객석의 차이는 사라지며, 무대의 환상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사실로 바뀌게 되며 관객들은 현실의 의미에 대해서 질문하고 자기반성적 태도를 견지하게 된다.
불가코프의 ‘메타드라마’를 연구한다 함은 그 자체로 그의 극작세계를 새로운 개념의 틀로 이해하고자 하는 참신성이 내재되어 있다. 보통 ‘메타드라마’적 기법은 극 속에 새로운 극을 삽입시키는 방식과 극을 만드는 과정을 노출시켜 보여주는 방식, 제4의 벽을 깨고 실재세계에 거주하는 관객과 소통을 시도하는 방식 등으로 제시된다.
이런 자의식적이고 자기반영적 ‘메타드라마性’은 관객이 서있는 현실의 토대를 낯설게 하여 리얼리즘 극보다 더 효과적인 삶의 체험을 전달한다. 불가코프가 이런 ‘메타드라마’ 기법을 적극 활용했다는 사실은 환상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현실이 어떤 것이었고, 현실 자체가 환상처럼 여겨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 환상이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한 사연 등을 밝힐 수 있게 해준다.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았고, 더군다나 자신을 ‘전통주의자’ 라고 규정한 불가코프의 극작세계는 바로 이 ‘메타드라마性’의 개념을 통해서 좀 더 원활하고 일관성 있게 조명될 수 있을 것이다.
불가코프의 극작세계를 ‘메타드라마性’으로 분석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로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는데, 이 특징들은 향후 연구의 방법론으로 발전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흔히 불가코프의 극작품들은 비극과 희극의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특정한 장르적 규범을 유지하지 못하고 두 가지 상반된 성격을 혼합하는 방식은 메타드라마가 유행한 바로크 시대의 연극적 특징과도 일치한다. 둘째, 불가코프의 기본적 품성은 그야말로 ‘연극적’이었으며 그 자신도 스스로 “저는 작가가 아닙니다. 저는 배우입니다”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들 속에는 삶에서 발생하는 연극적 모멘텀을 포착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극중극 구조를 가진 극작품들은 말할 나위도 없고, 심지어 소설 중에서도 청자와 관객을 염두에 둔 작품, 혹은 배우가 연기하는 듯한 작품이 많다. 셋째, 제국의 몰락과 혁명, 내전, 네프 등의 거대한 사건을 겪었던 불가코프에게도 이 현실은 완벽한 확신과 절대적 정확성을 제공하는 세계가 아니었다. 현실을 단지 백일몽이나 환상으로 지각하는 태도, 즉 현실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태는 극작 행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현실과 가상이 엄격하게 분리되고, 무대의 사건이 현실을 모방하고 있다는 굳은 신념은 파기되고, 무대 위의 사건도 현실세계처럼 그저 환상이고 꿈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지배한다. 넷째, 불가코프가 ‘메타드라마’적 사유체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암울하고 비극적이었던 자신의 전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불가코프의 희곡작품들은 대부분 상연금지 처분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상연되더라도 소비에트 비평계에 의해서 혹독한 비판을 받다가 외압에 못 이겨 조기 종연되는 결과를 맞이했다. 그 극단적 괴리 속에서 불가코프는 ‘다르게 말하기’, 혹은 ‘복화술적 말하기’를 익히게 되며, 기법적으로 ‘메타드라마’의 활용은 필연적이게 된다. 이처럼 불가코프의 드라마에서 ‘메타드라마性’은 단순히 연극적 기법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고 세계를 축조하는 하나의 구조로 정착되어 있다. 이를 통해 불가코프가 인식한 현실세계의 정체와 그 의미, 그리고 예술과 현실이 맞닿는 지점과 그 관계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