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존 애쉬베리(John Ashbery, 1927- )의 『볼록거울 속의 자화상』(Self-Portrait in a Convex Mirror)을 통하여 포스트모던 측면에서 그의 시적 방법을 밝혀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칼스톤(David Kalstone)은 「볼록거울 속의 자화상」이 어떤 이미지나 의미를 구 ...
이 논문은 존 애쉬베리(John Ashbery, 1927- )의 『볼록거울 속의 자화상』(Self-Portrait in a Convex Mirror)을 통하여 포스트모던 측면에서 그의 시적 방법을 밝혀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칼스톤(David Kalstone)은 「볼록거울 속의 자화상」이 어떤 이미지나 의미를 구축했다가 곧 헐어버리는 것을 보고 이 작품을 “페넬로페의 피륙(Penelope's web)”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자화상」은 애쉬베리가, 이탈리아 화가 파르미지아니노(Parmigianino)의 반구면(半球面)에 그린 그의 자화상을 보고 그것을 근거로 하여 자신의 이야기와 예술관을 담은 시이다. 이 시는 그 그림처럼 나르시시즘적 성향이 짙으며, 페넬로페가 베를 풀어서 다시 짜는 것과도 비슷한 데가 있다. 애쉬베리는 파르미지아니노의 자화상에서 그의 나르시시즘을 읽어내면서 자신이 만든 이미지나 생각을 자주 허물어 버린다. 그런데 이 그림에는 화가의 나르시시즘을 깨뜨릴 위협적인 ‘손’이 있다. 그 손은 찌르듯 하면서도 옆으로 비키는 이중적인 것이다. 따라서 그 손이 취한 동작은 무의미하며, 진실로 중요한 것은 지금 흐르고 있는, 아직 질서가 잡히기 이전의 ‘현재’이다. 애쉬베리의 해체와 뒤집기는 일반화와 패턴화가 모든 예술을 망친다는 견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베의 날실과 씨실의 교직은 한 문장이 발화되는 과정과 유사하다. 야콥슨은 한 문장의 발화를 ‘선택의 축’과 ‘조합의 축’(axis of combination)으로 도식화하면서, 시의 변별적 특성을 “시적 기능은 등가(等價)의 원칙을 선택의 축에서 조합의 축으로 투사한다(The poetic function projects the principle of equivalence from the axis of selection into the axis of combination)”고 공식화한다. 시적 텍스트에서는 선택의 축에 있는 수많은 등가의 요소가, 이 조합의 축의 구성 요소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 선택의 축에 놓일 수 있는 요소는, 음소, 낱말, 어구, 문장, 연형(聯形), 비유 등이었는데, 애쉬베리는 시에도 예컨대 주제의 축, 언어의 축, 문체의 축, 톤의 축, 수사법의 축, 시점(視點)의 축 같은 것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시에서는 시점(視點), 입장, 문체, 톤, 언어 등이 수시로 바뀌고 겹쳐지고, 반복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들 각각에 축을 세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 축이 각각 피륙의 날실과 같다. 시점의 축의 경우, 복수의 시점, 복수의 투시법이 드러나서, 전통적인 투시법이 붕괴된다.
그런데 날실에 붙은 요소는 고래로부터 있어온 재료로, “스테레오타이프”이다. 애쉬베리는 이 스테레오타이프로 이질성이나 이질감이 드러나도록 날실의 요소를 적절히 배열하여 피륙을 짠다. 그는 날실의 여러 요소들을 스치듯이 언급하거나 이용하는데, 이것은 “낯선 스테레오타이프”를 얻기 위해 날실이 가지고 있는 이질적 이미지를 숨 가쁘게 연결하기 위한 것이다.
‘에크프라시스’(ekphrasis)는 말하자면 문학작품에 들어 있는 조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의 축 위로 유사체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나서 얻는 공간성은 에크프라시스와 비슷하다. 애쉬베리는 자신의 시가 에크프라시스의 상태가 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따라서 그의 문체는 대체로 유보적이고, 산문적이고, 구어적이며, ‘연상’(association)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베틀의 북은 날실을 스치고 지나가듯 다양한 모티프를 거침없이 언급한다. 이 북은 문체, 시점(視點), 수사법, 언어, 시형 등의 스펙트럼도 자유롭게 꿰어낸다. 또 파르미지아니노의 자화상과 애쉬베리의 자화상은 많은 면에서 서로의 반향이 되는데, 이때 이 반향을 일으키게 하는 것도 이 가상의 북이다. 이 북은 한 가지 질서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연결만 시킴으로 다핵화․다성화가 가능하도록 한다. 북은 심지어 상대적인 ‘나’(I)와 ‘당신’(you)도 무리 없이 이으며, 상반된 개체의 정체성까지도 무너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