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년도 연구는 식민지 시기 역사극을 대상으로 역사극의 개념과 범주, 한국 역사극의 시원과 이론 정립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2차년도 연구는 역사극의 양적 팽창과 아울러 역사극에 대한 특권적 위상을 부여한 제도적 인식이 공고해지기 시작한 해방 직후부터 1980년 ...
1차년도 연구는 식민지 시기 역사극을 대상으로 역사극의 개념과 범주, 한국 역사극의 시원과 이론 정립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2차년도 연구는 역사극의 양적 팽창과 아울러 역사극에 대한 특권적 위상을 부여한 제도적 인식이 공고해지기 시작한 해방 직후부터 1980년대까지의 역사극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1, 2차 년도의 연구는 역사극 목록의 데이터베이스화 및 역사극의 내재적, 사회문화사적 주요 코드와 경향성, 담론적 구조를 살펴보았다.
3차년도 연구는 199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극을 대상으로 이 시기 역사극의 주요 특징인 ‘역사극의 탈역사화’ 경향을 규명하는 데 연구 목표를 두었다. 1,2차 년도와 마찬가지로 먼저 이 시기 역사극의 목록을 데이터베이스화 했으며, 소재 및 주제의 변주 양상과 여러 매체간의 상호텍스트성, 새로운 역사쓰기의 양상 및 경향성을 분석하고자 했다. 본 연구팀은 이 시기 역사극의 주요 특성을 ‘일상, 개인, 팩션’이라는 키워드로 추출해내고, 이를 토대로 역사극의 다양한 담론적 구조와 연극적 실천의 사회문화사적 의미를 심도있게 규명하였다.
연구자 A는 「역사극의 탈역사화 경향: 역사의 유희와 일상사적 역사 쓰기」라는 연구를 수행하였다. 1990년대 이후 한국 역사극은 이전 시대의 역사극과 주제 및 소재의 접근방식, 역사 다시쓰기의 방식에서 획기적으로 달라진 양상을 보인다. 원본으로서의 역사와 거대서사에 대한 불신, 역사의 발전과 총체성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면서 역사극은 탈역사화하고, 개인과 일상, 팩션이 역사극의 주요 코드로 부상한다. 역사의 재현보다는 허구성이 두드러지고, 컨텍스트에서 일탈하여 역사를 자유롭게 유희하는 경향이 지배적이 된다. 근대적 역사극이 역사라는 내용에 종속되었다면, 이 포스트모던 역사극은 허구라는 프레임으로 역사를 새롭게 스토리텔링하는 새로운 역사쓰기를 지향한다.
이를 규명하기 위해 연구자는 1990년대 이후 대두한 포스트모던 역사극의 경향 중 역사의 유희, 일상사적 역사쓰기와 식민지 근대성의 재현 양상을 주목하고, 이러한 새로운 역사쓰기가 지향하는 목표와 표상의 문제, 텍스트적 전략을 3편의 역사극, 박근형의 <대대손손>(2000), 박수진의 <용병>(2000), 성기웅의 <조선형사 홍윤식>(2007)을 중심으로 살펴 보았다. <대대손손>은 현재를 시작점으로 놓고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는 플롯구성을 통해 단일민족 신화를 해체하며, 동시에 식민의 역사가 단순히 일제의 강압에 의한 것만이 아닌, 한국인의 자발적 협력에 의해서도 형성된 것이라는 것, 다시 말해 식민의 역사에 우리 자신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폭로한다. <용병>은 식민지시기의 독립운동과 광복 후 전개되어온 현대사를 대비시킴으로써 여전히 지속되어온 식민성, 즉 포스트콜로니얼한 현재를 부각시킨다. 과거는 구원을 호소하는 현재의 요청에 따라 출몰하는 ‘역사의 유령’으로 제시된다. 가공의 일기, 편지 등 사적 기억에 의한 역사를 몰락과 파국의 현재와 대비되는 메시아적 이미지로 소환함으로써 역사를 정치화하며, 역사에 정치적 소망을 부여한다. <조선형사 홍윤식>은 1930년대를 자본주의적 일상이 뿌리내리기 시작한 현대의 기점으로 접근하며 일상의 미시적 재현을 시도한다. 본 연구는 식민지 경성의 일상적 삶을 구성하는 기호의 목록들이 문명과 야만, 근대와 전근대로 이분화된 것이지만 서사가 진행되어 갈수록 서로 뒤섞이며, 후자가 전자를 압도하는 표상체계로 반전됨을 밝혔다.
연구자 B는 「연극, 영화 사극, 방송 사극의 상호텍스트성」 연구를 수행한다. 역사소설과 역사극 그리고 역사영화는 상호연관성을 갖는다. 한국 역사극의 탄생과 융성이 역사소설의 이론과 성과에 상당한 영향을 받으면서 이뤄졌다면, 탈근대 영상시대를 맞이해서 역사극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매우 좁아졌다. 역사극이 아날로그 문화라면, 사극영화나 사극드라마는 디지털 문화를 대변한다. 특히 클리퍼드 기어츠의 말대로 장르가 흐려지는 경향성이 나타나는 탈근대에서 팩션과 같은 ‘혼종’ 장르의 출현은 근대의 학문분과들과 장르들의 분리를 재결합하는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이같은 새로운 경향성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경계를 넘어 차이를 가로지르는 학제 간 연구가 필수불가결하다. 학문 현실은 분과과학 사이에 장벽이 존재하고 있는 데 반해, 대중은 역사나 소설 또는 연극의 ‘순종’ 장르보다는 팩션류의 ‘혼종’ 장르에 열광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인문학 위기’의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영상시대를 맞이해서 연극의 위기가 나타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역사극의 위기가 발생하고 있다면, 본 연구는 오늘날의 역사극은 이같은 탈근대의 조건 속에서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하는지를 전망해 보고자 한다. 최근 연극, 영화, 방송드라마, 소설 등에 나타난 팩션이나 역사 대중화 현상은 역사서술의 중심이 미시사로 전환되는 최근 역사학 경향성의 반영이다. 본 연구에서는 역사성과 허구성의 접합 장르로 출현한 역사극, 역사소설, 사극영화, 방송사극 등의 상호텍스트성을 밝히고, 여러 매체간의 변주 양상을 분석함으로써 이같은 사회문화사적 현상들의 의미와 무의미를 규명한다.
연구자 C는 「타자의 역사 - 정복근의 역사극을 중심으로」라는 연구를 수행한다. 역사극은 1980년대까지 일종의 정형화된 틀을 가지고 있었다. 즉 국가나 민족, 혁명이나 전쟁, 노동과 계급투쟁 등과 같은 거대하고 중요한 사건들을 소재삼아 작가의 역사의식을 통해 맥락을 잡아주고 미래를 위한 전망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이에 반해 1990년대 이후 나타난 역사극은 이러한 고정 관념을 깨뜨리고 거대 담론이 아닌 일상사와 미시사적 접근으로 급속히 전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극작가 정복근의 희곡은 한국연극계에서 드물게 정치․사회사로부터 문화사적 시각의 역사 읽기로 넘어가는 한국역사극의 변화 양상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본 연구에서는 정복근의 역사극에서 역사 속에서 사라져간 개인이 발견되고 주목받으면서 거대 담론으로서의 역사보다는 소문자 역사들이 중시되며, 소외되었던 타자들이 역사극 안으로 들어오게 되는 양상을 살피려고 한다. 정복근의 ‘다르게 읽기’ 방식은 역사극이 전통적으로 유지해왔던 역사를 보는 관점과는 다른 맥락에서 역사를 파악하려는 시도이다. 넓은 의미로 말하자면 승자 중심적인 역사의 서술의 관행에 의문을 품고 소수자의 입장, 즉 패자의 지평으로 세상을 본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며 그 서술은 어떻게 수정되어야 하는가를 제시하고자 한다. 즉, 지금까지 역사를 지배해왔던 ‘큰 사람들’에서 벗어나, 박해받고 소외되었던 ‘작은 사람들’의 눈으로 역사를 바라보고자 한다. 이는 기존의 역사극이 유지해왔던 역사의 이해와 서술방식을 해체시키는 작업이다. 이를 살피기 위해 본 연구에서는 1990년대 이후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발표한 정복근의 역사극 <덕혜옹주>(1995), <나, 김수임>(1997), <짐>(2007), <나는 너다>(2011) 를 분석대상으로 삼는다. 이들 희곡은 민족, 국가, 계층, 젠더, 인종 등 다양한 측면에서 소외된 타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확인하게 해준다. 본 연구는 근대의 역사극이 표방해온 정치사, 사회사 중심이 거대 담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보여주고, 이 과정에서 주변부의 세계에 존재했던 하위주체 혹은 개인의 일상에 대한 재조명과 소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탈근대 역사극의 특성을 밝힌다.
연구자 D는 「재일 한국인 극작가 정의신의 낯선 역사 재현 - <야끼니꾸 드래곤>을 중심으로」라는 연구를 수행하였다. 21세기의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전개되면서 국가와 민족 간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더불어 국내-국외 간 인구의 유입이 증가하면서 한국 현대 연극에서도 소수자 혹은 타자의 출현이 극적 징후로 나타나고 있다. 소수자들은 국가 내부에 안정적으로 귀속되지 못한 존재, 즉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면서도 공식적, 비공식적 차원에서 사회의 일원으로 수용되지 못한 집단을 의미한다. 이들이 2000년대 한국연극에 극적 주체로 호출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한국 근현대사 속의 난민, 빨치산, 포로, 전범, 혼혈인, 비전향 장기수, 사상범, 재일 한국인을 포함하여 전 세계에 산재한 재외(在外) 한국인 등이 해당된다. 본 연구는 세 번째 유형에 해당하는 작품 중에서 재일(在日) 한국인의 존재와 역사를 예각화한 <야끼니꾸 드래곤>(정의신 작/연출, 2008)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와 재일 한국인, 국가 외부와 내부를 넘나드는 역사와 연극의 낯선 조우 방식과 그 내용상/형식상의 특이점을 고찰했다. <야끼니꾸 드래곤>은 거대 담론의 역사를 비판하며 작은 사람들, 변두리 개인들의 역사를 새롭게 제기하는 일상사의 맥락과 역사관을 같이하는 연극이며, 재일 한국인을 연극 주체로 내세운 소수자 연극이라고 할 수 있다. 재일 한국인(자이니치) 극작가 정의신의 <야끼니꾸 드래곤>(2008)은 일본 내 재일 한국인의 삶을 통해 물리적으로 국경 외부의 공간에서 살아야하는 ‘실향’의 존재를 전경(前景)에 내세운다. 이 작품은 식민 제국에 의해 이루어진 식민지적 체험 뿐 만 아니라 사회적, 심리적으로 구조화되어 각인됨으로써 식민 이후에도 작동하는 식민주의를 형상화하고 있다. 일본 제국에 의한 ‘식민지 지배’와 그 이후에 벌어진 ‘전쟁’과 ‘분단’이라는 역사적 상황, 그 위에서 탈식민주의적 시각에 대한 문제제기를 시도한 작품인 것이다. 한국 현대극에서 소수적 주체의 출현은 민족담론과 국가주의 담론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의 필요성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희곡적 가능성을 기대하게 한다. 국가·국적·에스닉 경계의 배타적 경계 확정이 무효화되고 있는 현재의 전지구적 문화 흐름 속에서 문화의 교류와 연대를 위해 한국 극예술의 현재와 미래를 구성하는 중요한 연구대상임이 분명하다고 본다.
본 연구팀이 당초에 계획했던 3차년도 연구주제는 다음과 같다.
총론: 역사극의 해체인가 진화인가
각론1: 역사극의 탈역사화
각론2: 일상사의 연극적 재현
각론3: 하위주체의 역사극
각론4: 역사극, 영화사극, 방송사극의 상호텍스트성
본 연구팀이 실제로 3차년도에 수행한 연구주제는 애초의 계획을 근간으로 하면서 역사극 작품의 특성 및 주제를 고려하여 보다 폭넓고 심층적인 연구로 발전시켰다. 연구자A는 ‘역사극의 탈역사화와 일상사의 연극적 재현’이란 주제를 다루었으며, 연구자B는 역사의 해체인가, 진화인가란 문제제기와 더불어 ‘역사극, 영화사극, 방송사극의 상호텍스트성’이란 주제를 다루었다. 연구자C는 ‘타자성의 관점에서 하위주체의 역사극’이란 주제를 연구하였고, 연구자D는 그동안 한국연극 연구에서 배제되었던 재일한국인 연극, 다시 말해 ‘소수적 주체의 낯선 역사쓰기’란 주제를 다루었다.
본 연구팀은 3년간에 걸쳐 ‘한국역사극의 역사’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그동안 연구책임자 1인, 공동연구자 1인, 전임연구원 2인, 총 4명이 강도높은 공동연구를 진행하였다. 그리하여 1차년도에 각각 1편씩, 모두 4편의 연구논문을 학술지에 발표하였으며, 2차년도 역시 4명의 연구인력이 각각 1편씩 총 4편의 연구성과를 냈다. 3차년도는 현재까지 2명의 연구자에 의한 2편의 연구논문이 게재 확정(12월말 발간)되었으며, 나머지 2명의 연구자도 곧 연구성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3년 간의 연구성과를 수합하여 단행본 <한국 역사극의 역사>(태학사, 2013년 발간예정)를 발간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