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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세기 退溪學派의 心學思想 硏究 : 사상의 자기 원인적 발전 양상 규명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0-327-A00116
선정년도 2010 년
연구기간 2 년 (2010년 05월 01일 ~ 2012년 04월 30일)
연구책임자 정도원
연구수행기관 성균관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구는 16–17세기 퇴계학파(퇴계 이황과 그로부터 직접 수업을 들은 직전문인(直傳門人)들) “심학(心學)”사상을 분석하여 퇴계학파 발전의 내적 필연성을 규명하고자 한다. 이는 16세기 이후의 도학시대(道學時代)를 사회경제사나 철학적 이론이 아닌 도학 자체의 논리에 의해 분석함으로써, 조선 후기 사상사를 ‘사상의 자기 원인에 의한 필연적 전개’라는 측면에서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본 연구는 특히 “심학”이라는 조선 유학의 “도학”적 특징과 17세기까지 이를 선도하던 “퇴계학파”에 특히 주목한다. 주자가 40대에 중화신설을 정립한 이래 주자학의 본령은 16자 전심법(傳心法)으로 대표되는 이원론적인 심학사상에 있었고, 15세기 이래 회의되던 주자학의 이원론에 확실한 이론 기반을 제공함으로써 조선 주자학의 진로를 확정한 것이 퇴계 이황이다. 학파를 막론하고 퇴계의 이런 입지는 확고하며, 당파적 이해가 갈리기 전까지는 학문적 견해 차이에도 불구하고 학파간의 교류 역시 활발하였다. 이는 조선 후기 유학사 분석의 시작이 퇴계학파의 심학에 관한 분석으로부터 시작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정치적 주도권을 노론이 장악하고 인성물성 등에 관한 일련의 논의가 노론계에서 벌어짐으로써 조선 후기 유학사의 주류가 율곡을 계승했다는 주장이 대세지만, 사단칠정논쟁 이후 예학의 시대까지(16-17세기)의 흐름은 이러한 흐름의 원류가 퇴계학파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게 한다. 특히 율곡학파에 앞서 퇴계학파에서 이미 인성물성 등에 대한 검토를 진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조선 주자학의 전개 양상 분석을 위해 분석을 서둘러야 할 것은 퇴계학파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조선 도학이 두 학파간의 긴장과 교류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심학과 퇴계학파를 중심으로 한 조선 도학 전개의 내적 필연성 분석은 매우 시급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현재 우리나라 학계의 조선후기 사상사에 대한 연구는 사학계의 사상사 분석과 통사적 서술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이러한 분석이나 서술은 사상의 발전 양상과 역사적 맥락을 파악하는데 용이하며, 직관적인 이해에도 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사상 외적 요소와 시간의 추이에 따라 사상사를 파악함으로써, 사상 발전의 내적 필연성을 규명하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기존의 연구에서는 이기심성론(理氣心性論)에 대한 논리적 분석을 통해 이 문제를 보완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상 외적인 배경과 시간의 추이에 이기심성론에 대한 논리적 분석을 결합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일견 조선 유학사의 논리적 전개과정과 사회역사적 맥락을 동시에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는 조선 유학이 근본적으로 내성외왕(內聖外王), 즉 “심학”에 근거하여 외왕(外王)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 즉 내성외왕이라는 목적과 방향성이 전제되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이기심성론에 대한 철학적 해명만으로는 조선 유학사에 대한 서술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기론은 원래 개인의 수양과 사회적 실천이라는 도학적 실천의 결과물이었다. 따라서 이기론은 개인 수양과 사회적 실천을 일관시킬 수 있는 철학적인 키워드가 아니라 설명의 키워드여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존 연구에서는 이기론을 철학 영역으로 독립시켜 수양론이나 경세론과 분리시켜 다룬다. 그러므로 실제 수양의 동기와 체득의 과정에 담긴 논리적 필연성을 종교적 신념으로 간주하거나 사회적 실천은 사상 자체가 아닌 사회역사적 산물로만 해명되는 경우가 많다.
    이기론이 이처럼 개인의 수양이나 사회적 실천과 분리되면, 도학 실천의 핵심인 “예(禮)” 역시 개인의 수양과 사회적 실천을 일관시키지 못하고 사회역사적인 개념으로만 변질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사단칠정논쟁이나 인심도심논쟁의 바로 다음 세대에 예학(禮學)이 급격히 발전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어, 복제시비(服制是非)들 단순한 당파싸움이나 사회구성체에 관한 논쟁 정도로만 한정할 수밖에 없다. 주자학 발전의 필연적 결과임을 입증할 수 없으므로 후기 논쟁 사이의 연관성을 설명할 수도 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송학이 성립된 이유이자 조선 주자학의 두드러진 특징이기도 한 “심학”을 중심으로 한 문제 접근, 즉 ‘주자학 자체의 논리에 의한 발전’이라는 시각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심학은 개인의 수양과 사회적 실천을 연결하는 핵심 개념이고, 이기심성론 및 예학 발전의 필연성을 설명할 수 있는 중심개념이다. 그러므로 조선 유학사 특히 16세기 이후의 도학시대 해석은 “심학”이라고 하는 도학 자체의 논리에 기반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 기대효과
  •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면에서 학술적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심학이라는 측면에서 사상사를 해석함으로써 기존의 통사적 서술이나 이기론 위주의 분석을 지양하고 조선 주자학 자체의 논리에 근거하여 설명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사상사 해석에 새로운 방법론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16세기의 이기 중심 논의가 17세기 예학 중심 논의로 전개된 성리학적 필연성을 규명함으로써 기존의 사상사 분석에 보다 풍부한 해석 가능성을 보탤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본 연구의 기본 주제는 16–17세기 퇴계학만을 대상으로 하며 주제 역시 심학에 초점이 맞춰져있지만, 이를 확장하면 17세기 예학의 발전이나 조선말기 의리사상까지 이어지는 조선 주자학의 자기전개과정을 일관된 시각에서 볼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다. 율곡학파의 학설전개 과정이 퇴계학파의 전개과정과 일정정도 유사하다고 볼 때 이를 조선 유학사 일반으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 역시 시사할 수 있다.

    셋째, 17세기 예학의 발전, 조선말기 의리사상까지를 주자학적 필연성에 근거하여 일관되게 설명함으로써 기존의 사회경제사적 맥락에서의 사상사에 대한 통사적 서술을 보완할 수 있다. 이는 현실과 이론의 지양이라는 새로운 지평 마련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또한 본 연구에서 추출된 내용은 조선 심학에 대한 안내서 및 일반인을 위한 격언집과 같은 형태로 번역 출간되어 조선 유학 이해를 심화하고 인성교육을 위한 교육자료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 연구요약
  • 본 연구는 심학이라는 조선 유학의 특성이 가장 두드러진 퇴계 이황의 학문과 그 계승자들의 심학을 분석함으로써 조선후기 유학사를 새롭게 분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대략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의의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1) “심학”을 전제로 한 사상 분석:본 연구는 심학을 ①내성이라는 목적성, ②미발과 이발에 걸친 실제 수양경험 및 ③방법론 등으로 나누어 살필 것이며, 이기심성론을 이에 대한 이론적 해명으로 활용할 것이다. 내성을 향한 목적성과 실제 수양경험은 사승과 학파로 연결되는 역사의식 및 도통의식을 설명할 수 있고, 실제 수양경험의 방법론으로의 정식화는 심학 이론과 이기론, 사회적 실천의 필연성 및 방향을 연결시켜줄 것이다. 전자가 도통의식과 학파 문제로 연결된다면, 후자는 “위기지학”이라는 도학의 내성외왕의 특성을 전제로 이론적 차원의 문제를 설명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심학을 파악하고 이기론을 그에 대한 이론적 해명으로 이해할 때, 당파적 이해가 엇갈리고 복제시비가 본격화되는 시기에 호발에 대한 논쟁이 치열하게 재연되는 원인도 설명할 수 있다.
    (2) 교류 서신의 유기적 분석과 ‘학파’ 발전의 필연성 도출:본 연구에서는 심학을 배경으로 ‘학파’ 차원의 심학적 특징을 도출하여 도학파 자신들의 논리에 근거한 학파 발전의 필연성, 즉 사상의 자기 원인적 전개 과정을 규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본 연구가 분석하고자 하는 16-17세기 퇴계학파의 실제 논의현장을 복원할 필요가 있다. 당시 학자들의 학문적 중심과제를 복원하고 분석하여 현재의 문집 등을 재검토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서류의 비율이 아닌 중심과제에 대한 접근 비율이 분명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들이 작성한 어록이나 교류 서신 등에 대한 분석을 보다 치밀해야 할 것이다.
    현재 학술논문의 서신 분석은 한두 주요 서신에 대한 분석을 기반으로 관련 사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연구하는 학자가 한정되어 있고, 학문의 독창성 파악이 우선이기 때문에, 굳이 학파 단위를 굳이 염두에 두고 분석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본 연구에서는 학파단위로 접근하고, 학문의 독창성이 아닌 사상의 자기 원인적 전개의 필연성을 규명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퇴계로부터 직접 수학한 문인들의 서신 중 심학에 관련 된 내용은 모두 추리고, 다시 이를 주고받은 순서와 비중에 따라 재구성함으로써 유기적으로 소통되는 학문의 현장을 직접 관찰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를 통해 퇴계학파의 심학이 형성되는 과정이 보다 명확해질 것이며, 당시의 학문적 관심사 즉 논의의 내용에 대한 통계적 확인 또한 가능해질 것이다.
    (3) 사회적 실천의 기준, “의리”의 해명
    학파 차원의 심학적 특징은 학파 단위의 사회적 실천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본 연구에서는 학파 차원의 사회적 실천을 “의리”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에서 찾고자 한다. 의리는 심학의 외연이다. 의리의 실천이 개인에게 적용될 때 출처가 문제되고 사회에 적용될 때 경세(실학/예학)가 나타난다. 그러므로 학파 차원의 심학적 특징은 학파 차원의 의리를 구체화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어야 한다. 본 연구에서는 심학이 의리로 전개되는 과정(출처 / 경세 / 실학 / 예학)을 분석하여 퇴계 직전제자들의 다양한 활동 양상을 심학의 성숙으로 설명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이는 조선 유학자들의 사회적 실천을 사회경제적 맥락에서만 파악하는 한계를 극복하고, 조선말기 항일의병투쟁까지 이어지는 “의리” 사상을 일관되게 설명할 수 있는 틀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4) 분석방법의 사상사적 확장 가능성 모색
    이상의 성과에 근거하여 17세기 이후 퇴계학 전개의 내적 필연성을 규명하는 것이 이 연구의 마지막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16–17세기 퇴계학파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이 연구는 이후의 사상사를 해석할 수 있는 하나의 시도라는 의의를 가진다. 그러므로 이는 이후 시대의 사상사 해석으로 연결될 수도 있고, 동시대 다른 학파의 분석에도 응용될 수 있다. 퇴계 문하나 율곡 문하만이 아니라 멀리는 주자학 발전의 필연적 과정에 대한 설명과도 이어질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본 연구의 성과는 학파의 발전 원인과 사상사 발전의 필연성, 나아가 주자학 발전의 내적 필연성까지를 확인하는 작업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 한글키워드
  • 도학시대,사상사,직전제자,퇴계,이발,내성외왕,서신교류,예학,도학,이기호발,수양,심성론,이기론,주자학,의리,경세,복제시비,어록,퇴계학파,심학,미발,예,율곡
  • 영문키워드
  • Controversy of Mourning Clothes,Policy,The Study on Li,The History of Confucian Philosophy,The History of Korean Philosophy,A Study on the Tao,analects,corresponding writings,Toegye School,A Study on the Mind,First Studies Discples,Occurrence,The Age of the Tao Study,Toegye,Li,Pre-revealation,Yulgok,Mutual Revealation,Self-Cultivation,The Theory of Human Nature,The Theory of Li-Qi,Neo-Confucianism of Zhouxi,Morality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현 조선 유학사 연구는 서구 근대의 학문관에 기초한 학문분류 및 분석을 선호한다. 그러나 조선 유학은 도학 실천을 중심으로 한 학문이며, 성학이라는 실천 목표로 포괄된다. 따라서 조선 유학에 관한 분석은 철저히 조선 유학 혹은 주자학, 도학 등의 학문 자체 논리에 입각하여 진행될 필요가 있다. 전통적인 학문분류 개념인 이학, 심학, 도학, 성학 등은 학파의 구분을 넘어 내용을 중심으로 한 분류이며, “위기지학”을 전제로 한다. 각각의 개념은 자체로 완결된 체계를 가지며, 서로는 중층적으로 맞물려 있고, 이학과 심학이 서로의 始終이 되어 순환적으로 검증하는 구조를 가진다. 따라서 이학과 심학을 중심으로 전 사상을 평가하거나 추정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이런 맥락에서 조선 도학을 “이학-심학”의 관계를 중심으로 파악해야 하며, 조선 유학을 대표하는 퇴계와 율곡의 성학 혹은 도학 체계에서 이러한 구조를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본다. 理氣의 互發 속에서 尊理의 당위를 강조하는 퇴계의 󰡔성학십도󰡕는 이학과 심학을 이원적으로 배치하면서도 心學, 즉 敬을 중심으로 일관시키고 있는 반면, 一途說을 주장하는 율곡의 󰡔성학집요󰡕는 成己成物이라는 일원적 도학의 당위성 속에서 閑邪存誠의 矯氣質論을 구성하여 誠意의 틀로 논의를 일원화하고 있다.
    양자의 공통점은 동시대 도학자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차이점은 이러한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양자의 학설 혹은 도학 실천의 방법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율곡은 특히 퇴계의 호발설을 비판한 바 있는데, 이는 바로 이러한 도학 실천 방법의 차이에 따른 것이었다. 이학은 심학의 전제이며 심학은 다시 이학으로 검증되고, 도학으로 확장된다. 그러므로 율곡이 퇴계의 호발론을 비판했다는 것은 퇴계의 호발론이 그가 구상하는 일본의 일관된 논의의 근거가 되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사단칠정 혹은 인심도심논쟁은 단순한 형이상학적인 인간학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적 실천의 문제에 집중된 심학 혹은 도학 실천 방법론의 대립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조선 주자학을 심학에 근거하여 전체 체계를 일관시켜 다루어야 하며, 내성외왕의 어느 한 쪽만을 분리하여 이론적으로 천착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퇴계와 그 직전 제자들의 “內聖”에 관한 논의를 분석하여 퇴계학파의 내성학이 가지는 원형적 특성을 살펴볼 때, 퇴계의 학문은 “심위태극”이라는 명제로 이학적 근거와 심학적 귀결을 압축할 수 있고, 그 도학적 전개는 “존체응용”이라는 표현으로 대신할 수 있다. 이러한 논의는 주자의 입론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이에는 ‘상정학 배이교’라는 퇴계의 역사의식이 전제되어 있다. 퇴계의 제자들은 미발심체에 담기는 이학적 本體와 이 심체가 실제 현실에서 주체로서 지각하는 심학적 主宰性에 대한 체득의 문제로 일련의 논쟁을 진행하였는데, 이는 理氣不雜을 주장하는 주자학에서 본체가 과연 活物로서의 主宰者인가 하는 문제와 연결된 것이기도 했다. 퇴계의 제자들은 일반적으로 지각을 가진 活物로서의 心 본체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체인, 보존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이러한 ‘活物로서의 본원’은 퇴계학파 수양의 출발점이자 종착지로서 “심위태극”이라는 말로 압축된다. 이러한 내성은 “존체응용”이라는 방식으로 실천되며, 예학은 그 귀결이 된다. 퇴계의 「무진육조소」에서 제시하는 “重系統”이나 「청물절왜사소」의 夷狄에 대한 權과 勢의 운용 등은 송대 신예학의 종법적 사고와 존체응용의 외왕론이 구체화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직전제자들의 논의에서도 일관되게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다만 존체응용이라는 퇴계의 입론이 왕도를 실현하는 聖王을 상정하는 반면, 제자들의 논의는 內聖의 연장선에서 자신들의 당위적 방향 설정에 머무르고 있다. 이는 퇴계와 제자 간의 개인적 성취의 차이로 해석할 수 있을 듯하다. 일반적으로 외왕은 내성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내성의 완전한 실현을 전제로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 퇴계의 “존체응용”이기 때문이다.
    퇴계학은 주자학적인 틀을 가진 도학으로서, 태극으로서의 心을 확인하고, 動靜을 일관시켜 이를 자기 것으로 체득하는 것을 중시한다. 절대적 기준인 理와 그에 근거한 주체의 성숙을 추구하는 것이다. 외적 실천은 이렇게 획득된 인격의 사회적 전개이다. 따라서 퇴계직전제자들은 動靜을 일관시켜 태극으로서의 심을 확인하고, 禮를 기준으로 사회적인 참여의 기준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태극으로서의 심을 확인하는 과정에 대한 얼마간의 논쟁은 있었지만 학파의 분화로 이어지지는 않았고, 예학적 귀결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다만 상당히 까다로운 사회적 실천 요건은 퇴계직전제자들이 객관적으로 확립될 수 있는 기준으로서의 禮에 보다 치중하게 하는 요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퇴계는 禮를 矯俗의 차원에서 바라보았지만 제자들은 內聖과 실천의 기준으로 확보하고자 하였다. 그들에게 퇴계의 지침은 그 자체가 하나의 원칙이었고, 예학적인 귀결 역시 이러한 노력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학파 전체로 볼 때 퇴계 사후 학문적 단일성이 유지되어 학맥의 분화가 일어나지는 않았으나 도학적 자기화 과정에서 예학적 심화가 있었다고 하겠다.
    학통의식이나 학문내용 등의 맥락에서 볼 때, 한강은 17세기 남인 예학을 대표하면서 퇴계학파의 수장으로 등장하였지만 퇴계의 적전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한강이나 그의 친우 동강의 학문은 덕계-남명을 이은 것으로 파악되고, 퇴계학파에서의 위상은 당파가 고착되던 시기의 정치적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강이 기호남인의 수장이자 영남의 맹주였을 수는 있지만 학문적으로 퇴계학파를 대표할 수는 없는 것이다.
  • 영문
  • 1. The study on Chosun Neo-Confucianism is based on modern western study categorization. But Chosun Confucianism was the system for realization of their idea for Tao or Sage. It is out of western study category. It is the reason why we should study Chosun Confucianism or Neo-Confucianism in its own context.
    Traditionally, Neo-Confucianism has correlated system. One theory -traditionally, called "~ study(學)" - has the self-sufficient system and piled up another one. The theories of Li(理) and Xin(心) are the core of those theory, and they are the other's base and result at the same time. So the core of Neo-Confucianism should be these two theories.
    The studies of Li(理) and Xin(心) of Toegye and Yulgok, the prominent scholars of Chosun Confucianism, may confirm this systemic correlations. They designed their representative works, SeongHakSipDo and SeongHakJipYo, based on their studies of Li(理) and Xin(心). Toegye designed his work dualistic system, pointing Li and running through piety Xin, showing majesty of Li. Yulgok designed unitary system showing appropriateness of TaoXue(道學), perfecting of others through perfection of Self(成己成物).
    They pursuit the realization of Neo-Confucian idea in common but their way to fulfill their common idea was different. The differences of their studies on theory and practice may be found this point. This explains why we should study Chosun Confucianism in the point of Study of Xin, not theory of Li. The Focus of Chosun Confucianism, especially Four-Seven Debates, is not the metaphysical theory of Humanity but the Self trying for realizing the world of Tao, in this poin of view.
    It can be asserted at the result that we should study Chosun Confucianism as a whole practical system not the theory of perfection of Self neither realization of Neo-Confucian idea.

    2. This study pursues the academic truth and its variation of the 16-17th C Toegye School for investigating the self-evolution of Thoughs, especially focus on Xinxie(心學) and Lixue(禮學).
    Toegye School tried to make sure what Taiji(太極) or Xin(心), as the ultimate object, in me is. The mastery of it was their eventual goal. It is obtained by running through dongjing(動靜). But it is very difficult because it is depending on the unity of Ultimate Principle and the essential subject. So they want to get the standard for this goal. It is the Li(禮). Toegye consider it as tools for correcting social folkways, but his disciples regarded it as the standard or principle for Daoxue(道學). Lixue(禮學) was the end of their pursuit.
    Hankang(寒岡) is the leader of South party in 17C and he represented their Lixie(禮學), but he, including Dongkang(東岡), could not be the representative of Toegye school because he’s scholastic mantle and philosophy were from Nammyeong(南冥) and different from those of Toegye school.

    3. This paper tried to search the archetype of the self-cultivation learning of ToeGye and his first academical successors. The goal of ToeGye school’s neo-confucian study is being sage and put it in practice. The subject of practice is the sage and his innateness can be expressed the Great Absolute. This thought was from the teachings of Chu-tzu, but there was the historical sense of responsibility to his own time and nation.
    ToeGye and his student had thought Human Mind, a revelation of the Great Absolute, the real thing which has the discretion. It is the Subject, Reality, and their self-cultivating journey’s end. They think every human being can be a sage by self-cultivating based on this Real Mind. Sometimes this Real Mind can be covered by physiological limitation and acquired selfish desire, but the origin of Real Mind haven’t covered and everyone can recover his Real Mind by self-cultivating. Self-cultivating process of ToeGye School start and end by the Piety. The Piety has three steps. First, self-awakening. Second, preparation before meeting outer things. Third, searching own soul and behavior. All of these steps practiced by the Piety. The Piety is real face of Human Mind. And the Piety is consistent through cognition before and after.
    All of these self-cultivating theory may convert to administration or enlighten people. ToeGye asserted this thought for Sage King as a neo-confucian sage, but his successors followed as a student who try hard to be a sage like his master. Neo-confucian practice should be based on individual perfectness but they were not sage yet.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는 16-17세기 퇴계학파의 심학사상을 분석하여 사상의 자기원인적 발전 양상을 규명함을 목적으로 한다. 연구는 사전연구, 본연구, 마무리의 3단계로 이루어졌고, 기간은 사전연구 및 본연구가 약 1년 6개월, 마무리 연구가 6개월 정도 소요되었다. 각 단계별 연구 내용 및 과정을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1. 사전연구 : 퇴계 심학의 특징을 규명하고, 이를 통해 제자들의 서신 및 각종 교류 자료를 비교 분석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2010. 5월 – 2010. 12월)
    ☞ “도학”, “심학”, “이학”, “성학”과 같은 전통적인 학문 분류 개념을 원래의 의도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과 이들의 학문이 “도학”이라는 공통분모 속에서 “이학”과 “심학”이 상호 연관되는 구조를 보인다는 공통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를 연결하는 방식에서 호발의 이원적 배치와 일도의 일원적 구도라는 차이를 가진다는 점을 밝혔고,이는 이후 퇴계 직전 제자들의 논의를 분석하는 기본 관점으로 활용되었다.
    2. 본연구 : 약 1년 반의 기간 동안 수행된 이 연구에서 퇴계 직전제자들의 서신을 비교 검토하여 제자들 간의 교류 양상을 복원하고, 이 속에서 퇴계학파의 중심인물, 이들이 논의하는 심학의 본질, 그리고 이에 대한 제자들의 이해와 계승양상에서의 변화 등을 추적하였다.(2010. 5월 –2011. 12월)
    최초 계획은 김성일, 김우옹, 류성룡, 이덕홍, 정구, 정유일, 조목, 구봉령, 김부륜, 류운룡, 조호익 등의 직전제자들과 유형원, 이익, 정약용 등의 남인 실학자들의 자료 중의 퇴계 관련 자료를 검토하는 것이었으나, 실제 연구를 진행하면서 정구, 김우옹 등이 퇴계심학의 적통적 계승자 일 수 없다는 점, 정유일, 김부륜 등이 서신 교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미미하거나 타 학자들의 논의 속에서 소화 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되어 논의 방향을 일정 정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실제 제자들 간의 서신 교류에 담긴 학문 논의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조목 – 남치리 – 권우 등과 이덕홍, 류성룡 및 류운룡 등 사이에 주자 중화신설 및 퇴계 심학의 본질 이해에 대한 장시간의 논의가 있었음과 이러한 논의가 주자의 「명당실기」에 대한 퇴계와 연관된 논의로 정리될 수 있음 역시 확인하였다.
    따라서 본연구는 애초의 계획을 수정하여
    ① 계획한 학자들 외에 남치리, 금란수 등의 서신을 추가로 분석하고,
    ② 김우옹과 정구의 서신은 남명학통의 혼입이라는 차원에서 분석하였으며,
    ③ 1.5세대에 해당하는 권우를 추가하여 퇴계 사후 벌어진 일련의 논쟁을 살펴보고
    ④ 금보, 이익 등을 추가하여 퇴계학의 논의 핵심 및 계승 양상에 대한 개연적 추론을 마무리 지었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퇴계학파의 이학과 심학이 상호 연관된 체계로서 “심위태극”과 “존체응용”이라는 틀로 정리될 수 있으며, 퇴계의 직전 제자들은 이를 심(心) 본원에 대한 주체적 확인 노력과 이에 근거한 현실 참여로 계승하려고 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현실 참여의 양 축인 경세와 예학이 “의리”라는 관점에서 일관될 수 있지만, 이에는 도학에 대한 실천적 이해와 성취라는 전제가 필요하며 이에 대한 성취의 차이가 실천적인 측면에서 예학에 대한 집중으로 이어질 수 있음 역시 밝히고자 하였다
    3. 마무리 : 연구 성과를 정리하여 학술대회에서 발표하고, 이를 수정, 보완하여 논문으로 최종 결과물 제출.(2012. 1월-현재)
    추가로 보고될 논문에는 퇴계의 이학-심학 구조의 특징과 이에 대한 제자들의 이해, 그리고 이러한 논의가 가지는 학문 내외에서의 의미를 부각시키고자 한다. 특히 조목-남치리-권우와 이덕홍 사이에 벌어진 일련의 논쟁에 초점을 맞추어 퇴계 사후 퇴계심학이 어떻게 계승되는지를 보다 실제적으로 검토하고자 하며, 이러한 논의가 어떻게 외왕으로 전환되는지 역시 보다 체계적으로 규명하고자 한다. 외왕으로의 전환에서 특히 주목하는 것은 17세기 퇴계학파 예학과의 연결이다. 17세기 퇴계학파 예학을 대표하는 정구의 학문 연원에 대한 의문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정구의 예학이 퇴계학파 예학이라는 점에 대한 이의가 없고, 퇴계예학의 기본 입론이 이학-심학 체계에서 명확히 관측되므로 이를 상호 연결하는 것에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본 연구의 최종 결론에 해당되므로 이상에서 진행해 온 연구 성과를 압축하고, 향후 요구되는 추가 연구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도록 작성하고 있다.
    이상의 연구를 통해 퇴계학파의 학문을 이학-심학의 상호 연관 체계 속에서 내성외왕의 실천적 확장이라는 각도에서 분석해야 한다는 점과 이것이 “내성학”이라는 차원에서 현실적 의의 및 예학적 연결고리에 대한 확인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확인하였고, 이러한 결론은 모두 정리, 보완하여 논문으로 보고되었거나 추가될 것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의 성과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의의를 가진다. 하나는 당파와 구분되지 않고 사용되는 “퇴계학파”라는 개념을 학문 공동체로서의 “학파”로 자리매김하도록 하였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각각 분절적으로 연구되던 주자학의 제 영역을 퇴계학의 경우이기는 하지만 내성외왕이라는 측면에서 일관되게 설명하여, 이를 바탕으로 16-17세기 사상사의 자기 원인적 발전으로 설명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퇴계학파의 학문적 본령을 명확히 제시 혹은 공론화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과 최근 사학계에서 많이 논의되는 근기 남인의 학문 연원 혹은 학맥에 대한 논의를 사상 자체의 맥락에서 재검토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본 연구는 기존의 조선성리학 논의가 이기심성과 경세, 수양 등으로 분절되어 이루어짐으로써 전체계가 일관되는 정합적 구조를 상정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결과 16-17세기 사상사를 사상 자체의 원인에 의한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제대로 설명해내고 있지 못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는 “도학”으로 특징되는 조선 주자학 혹은 조선 성리학에 대한 연구가 내성외왕이라는 송학의 본령에 따라 분석, 통합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이학”, “심학”, “도학”, “성학” 등의 전통적 “학” 개념을 원래의 의미로 사용할 수 있음과 이렇게 할 때 도학 혹은 주자학 자체의 논리에 근거한 분석이 가능함을 먼저 논구하였고, 이러한 논의의 핵심이 이학-심학의 상호 연관체계로 압축되며, 이것이 다시 예학으로 이어지는 일관된 체계를 형성할 수 있음을 밝혔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측면에서 “이학”이나 “심학” 등의 개념을 전통적 의미로 복원할 것과 “내성에서 외왕으로”라는 측면에서 이학-심학의 외왕 혹은 예학으로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사상사를 이해할 것을 요청한다. 이는 16세기 이학-심학 논의가 17세기 예학으로 이어지는 이유를 사상 자체의 맥락에서 보다 유연하게 설명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또한 퇴계학파의 학문을 이학과 심학의 상호 연관 체계라는 측면에서 “심위태극”과 “존체응용”이라는 명제를 적출하였으며, 이를 근거로 퇴계 심학의 본령과 이에 대한 제자들의 계승 노력을 읽을 수 있도록 하였고, 이러한 학문적 일관성이 보이지 않는 정구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가 스스로의 의식에서나 실제 학문에 있어 퇴계보다는 남명을 연원으로 하고 있었음을 밝혔다. 또한 이러한 제자들의 퇴계학 계승이 내성외왕이라는 자기완성의 논리에 근거한 사회참여의 구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내적 성취의 고하를 바탕으로 이들이 능동적 왕도실현의 성학논리에서 보수적인 예학정립 노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내적 필연성을 추론하였고, 이를 師說과의 비교를 통하여 확정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퇴계 사후 문인 사이의 논쟁을 발굴하여 그 의의를 분명히 하고자 하였고, 한강 정구가 직전제자들의 생존 시 학파 내에서의 영향력이 거의 없었던 이유 역시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는 퇴계학을 조술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성호학파와의 학맥 연결에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근기남인의 학문 및 학파적 성격에 대한 새로운 시각에서의 접근을 촉구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판단하고 있다.
    이상의 연구 결과는 기존의 당파 중심의 퇴계학파 연구를 학문 중심의 논의로 전환하고, 이를 전제로 학맥과 시대와의 조우 방식 등을 심도있게 연구하는 토대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며, 특히 현 사상사 연구에서 매우 혼선을 빚고 있는 근기남인의 학맥 및 실학으로의 연결고리를 재검토하는 계기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 색인어
  • 이학, 심학, 도학, 성학, 경, 성의, 퇴계학파, 남인, 도학적 자기화, 예학적 심화, 학통, 心爲太極, 存體應用
  • 연구성과물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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