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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수령의 지역에서의 교유와 문자 수수 -19세기 상주목사 홍한주의 사례를 중심으로-
Collegial Relationship and Literary Reception - Focus on the Example of Governor of Sangju, Hong Han Ju, in 19th Century -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우수논문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3S1A5A2A02031351
선정년도 2013 년
연구기간 1 년 (2013년 07월 01일 ~ 2014년 06월 30일)
연구책임자 최은주
연구수행기관 & #40;재& #41; 한국국학진흥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1) 조선후기 사회 제 방면에서 서울과 지방의 분리 현상이 심각하던 당시, 학술문단 및 문학 분야 역시 이러한 분리 현상에 따라 서울과 지방의 차이가 급격하게 두드러지기 시작하였음.
    (2) 이 때 서울은 외국 서적의 빠른 유입으로 이미 다양한 지식 정보가 유통되어 그 습득이 매우 용이했던 데 비해 지방은 외부의 자극에 노출되지 못해 변화 발전의 계기와 발판을 전혀 구축하지 못하고 있었음. 더욱이, 영남과 같은 경우는 정치적 고립에 직면하여 환로가 차단되면서 폐쇄적 보수적 경향이 심해지고 있었음.
    (3) 고립된 영남은 결속력 강화의 수단으로 講學의 전통을 고수하게 되는데, 이에 기반해 경학 탐구에 치중하며 문학은 말단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더욱 팽배해지게 됨. 그러나 서울에서는 이미 문학이 경학으로부터 분리되어 전문화되기 시작하였고, 위항문학의 등장과 같은 혁신적 경향이 확산되어 다양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음.
    (4) 당시(19세기) 이러한 서울의 다양한 변화 발전의 중심에 경화세족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변화를 온몸으로 체험하고 더불어 최신 지식정보를 가리지 않고 습득했었음.
    (5) 이러한 사회적 또는 학술 문단의 변화 흐름을 인식한 가운데, 경화세족 출신인 洪翰周(1978~1868)라는 인물이 당시 보수적 폐쇄적인 남인 중심의 영남 지역에 수령으로 부임한 사실을 포착, 그가 尙州牧師에 재직하며 쓴 󰡔辛酉日史󰡕라는 일기를 기초 자료로 삼아 그가 출신이 다른 수령으로서 지역에서 정치적 문학적 교유관계를 어떻게 형성하고 구축했는지 더불어 문학적 교유의 실상이 어떠한지 탐색해 본 것
  • 기대효과
  • (1) 지역 문학사의 실제 규명 : 중앙문단 또는 인물 중심의 문학 연구를 탈피, 조선후기 지방 문학계의 실제 동향을 일기 자료를 통해 규명. 아울러 문학 활동을 수반한 지역 문인들의 미시적 생활상을 규명.
    (2) 지역 미시사의 생생한 복원 : 정치적 인맥 기반의 영향에 따른 수령의 교유 활동을 통해, 그를 둘러싼 역사적 사실들을 포착. 지역 내 정치 사회적 미시사를 생생하게 복원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음.
    (3) 대립과 단절이 극심한 현대 정치 사회적 관계, 그에 대한 해답 모색 : 홍한주의 상황이 현대 정치 사회적 상황과 잇닿아 있음을 인식, 지역 내에서의 그의 처세와 활동을 살피는 가운데 긍정적 부정적 요소들을 도출하여 갈등을 해결하고 소통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해답 모델을 제안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
  • 연구요약
  • 조선 후기 京 ․ 鄕의 분리 현상이 제 방면에서 매우 뚜렷해지고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분리 현상은 학술 문단의 동향에서도 점차 두드러지고 있었는데, 그 원인은 서울은 외국 서적의 빠른 유입으로 이미 다양한 지식 정보가 유통되어 그 습득이 매우 용이했던 대신 지방은 외부의 자극에 노출되지 못해 변화 발전의 계기와 발판을 전혀 구축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영남 남인들은 환로가 차단되면서 결속력 강화 수단으로 講學의 전통을 고수하게 되는데, 이에 기반하여 경학 탐구에 치중하며 문학은 말단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더욱 팽배해지게 된다. 이에 반해 서울에서는 이미 문학이 경학으로부터 분리되어 전문화되기 시작하고, 위항문학의 등장과 같은 혁신적 경향이 확산되어 다양한 변화가 두드러지고 있었다. 당시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고 또 가속시켰던 부류들이 있었는데, 바로 경화세족들이었다.
    본고는 이러한 시각에서, 19세기 서울의 다양한 변화 발전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더불어 최신 지식정보를 가리지 않고 습득했던 경화세족 출신의 洪翰周(1798~1868)라는 인물이 당시 보수적 폐쇄적인 남인 중심의 영남 지역에 수령으로 부임해 구축했던 교유관계와 문자수수의 양상을 밝힌 것이다. 살펴 본 결과, 홍한주는 당대 정치·사회 정세와 지역의 사정을 탄력적으로 수용하면서 자신의 출신과 정치적 지향 그리고 문학적 취향을 적절히 구분 발휘하며 교유관계를 구축하였다. 문학적 교유의 측면에 있어서는, 문예지사로 자부했던 홍한주가 당파 및 신분계층에 구애 받지 않고 문예적 성취가 있는 지역의 일부 문인 및 위항인들과 오로지 문예만을 추구하는 교유를 펼쳤음을 볼 수 있었다. 그 파장이 크지는 못했지만 변화의 시대에 당시 지역에도 특히 보수성이 강했던 영남에도 이러한 문학 역량을 갖춘 위항인과 문인들이 존재했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이는 중앙문단에 가려진 조선 말기 향촌 사회 문학의 동향과 변화에 대한 미시적 접근의 차원에서도 일정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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