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진 희곡 <토막>의 공연성 연구 - 1971년 성문각판 『유치진전집』소재본을 중심으로 A Study on "Performance" Mode in Yoo Chi-Jin's Play
- Focused on 「Yoo Chi-Jin's Collected Works」 (Original Version) Published by Sungmoongak in 1971
본 연구는 1930년대 유치진 초기 희곡을 대표하는 <토막>의 1971년 성문각판 『유치진희곡전집』 판본을 기본으로 무대삽화 등 시각자료를 활용하면서 연출적 독법으로 인물의 성격발전과 사건 전개과정을 해명하였다. 우선 작품연구의 기본에 해당하는 판본연구에 기초하여 ...
본 연구는 1930년대 유치진 초기 희곡을 대표하는 <토막>의 1971년 성문각판 『유치진희곡전집』 판본을 기본으로 무대삽화 등 시각자료를 활용하면서 연출적 독법으로 인물의 성격발전과 사건 전개과정을 해명하였다. 우선 작품연구의 기본에 해당하는 판본연구에 기초하여 각 판본의 가치를 재조명할 수 있는 방법론을 모색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최종본의 중요성을 확인해냈다. 둘째로 <토막>의 개작이 유치진의 일관된 의도와 더 정확한 극적 형상화, 공연성의 확대라는 일관된 방향으로 진전되었음을 밝히고자 하였다. 셋째 희곡의 근본적인 시각성을 삽화를 매개로 가시화하여 희곡독법의 한 방법을 실험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무대분할과 인물의 이동 및 행동, 셩격변화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대효과
이 논문은 3가지 측면에서 새로운 연구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우선 이 논문에서 사용된 시각자료를 통한 희곡의 연출적 독법을 확장하여 희곡 및 대본 탐구에 합리성과 객관성, 효용성을 증대할 수 있다. 이는 문학으로서의 희곡 연구는 물론 연출의 작품해석과 연기자 ...
이 논문은 3가지 측면에서 새로운 연구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우선 이 논문에서 사용된 시각자료를 통한 희곡의 연출적 독법을 확장하여 희곡 및 대본 탐구에 합리성과 객관성, 효용성을 증대할 수 있다. 이는 문학으로서의 희곡 연구는 물론 연출의 작품해석과 연기자의 연기설계에도 매우 유용하며 일선 학교의 희곡교육, 희곡장르의 이해와 활용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두 번째로 신문, 잡지 등 문학 작품의 삽화 연구의 기점으로 삼을 수 있다. 말하기에서 보여주기로 진전한 현대문학에서 시각성은 매우 중요한 성격이다. 이를 가시화하는 삽화는 신문소설을 중심으로 일찍부터 시도되었지만 이에 대한 연구는 시작단계이다. 삽화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형상화에 필요한 미적 거리와 사건의 포인트를 짚어내는 극적 이해력이다. 이는 무대를 전제하는 희곡의 시각성과 그 기반이 일치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즉 삽화에는 극적 해석 능력이 전제가 되는 바, 삽화의 연구에서 무대삽화 등 극장르 삽화는 더욱 주목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본 논문에서 사용된 최연호의 삽화를 유치진희곡전집 전체는 물론 근대신문, 잡지 등에 실린 희곡 삽화로 확장해 갈 수 있으며 이는 여타 장르의 삽화 해명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이는 널리 볼 때, 시각매체영역과 전통적인 문학영역의 교류를 확장하는 가교가 될 수 있다. 세 번째로 유치진 작품 세계에 대한 통합적 연구의 출발로 삼을 수 있다. 유치진은 한국근대희곡사 최대의 극작가이며 한국근대연극계의 최대의 연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텍스트를 기반으로 통합적으로 입증된 것이 아니며 본 논문에서 시도된 연출적 상상력에 근거하여 유치진의 작품 세계를 재조명하기는 아직 시도된 바 없다. 본 논문을 통해 그 시작이 가능할 것이다.
연구요약
유치진의 희곡 <토막>은 근대희곡사 최대의 극작가인 유치진의 등단작품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 대한 연구는 그간 주로 초판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으나 유치진은 작품을 출판할 때마다 계속 수정하였고 따라서 최종 텍스트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
유치진의 희곡 <토막>은 근대희곡사 최대의 극작가인 유치진의 등단작품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 대한 연구는 그간 주로 초판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으나 유치진은 작품을 출판할 때마다 계속 수정하였고 따라서 최종 텍스트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새로이 조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1971년 성문각판은 이전 판에 비해 한국어화와 약간 표기상의 변화 정도가 바뀌었을 뿐이지만 결정적으로 무대구상을 보여주는 최연호(崔衍昊)의 삽화가 수록되어 있어 공연에서와는 달리 ‘토막’이라는 극적 무대구상을 유지, 구체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즉 <토막>의 공연성을 다루는 데는 1971년 성문각판이 가장 우선적인 판본인 것이다. 당대 극빈층의 주거지로서 ‘토막’은 땅을 파고 지은 움집이지만 1933년 공연에서는 단순한 농촌의 초가삼간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유치진은 이에 대한 비판을 받으면서도 무대를 수정하지 않았고 이는 끝까지 유지되었다. 아울러 무대 사용에 있어 명서는 온돌에, 명서 처는 부엌 토방에 한정되고 있으며 이 한정된 공간을 넘어 이동하면서 인물의 성격이 변화하여 파국의 상태에 이름을 알 수 있다. 더욱이 매우 대립적인 자질로 구성되었음에도 같은 파국에 이른다는 점에서 공간의 분할과 교차가 주제의 심화에 기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금녀는 부모 세대의 문제를 조정하고 해결하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무대 전체를 활용하고 마찬가지로 오빠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종교적 차원으로 해석하여 희망을 생산함으로써 부모 세대의 비극을 온전히 공감할 수 있도록 무대의 힘을 안배하고 있다. 금녀는 무대 전체를 아우르는 동선을 갖고 있으면서 무대의 상징화에 기여하고 있으며 명서와 명서 처가 도달하는 행동의 종료와는 다르게 삶이 지속되어야 이유에 도달하고 있다. 특히 원망을 부르짖는 명서, 귀기에 사로잡힌 듯 정신착란을 일으켜 그 자체로 공포심을 유발하는 명서 처, 믿음과 신앙으로 이를 이겨내고자 하는 금녀는 간절한 소원이 좌절되고 절망적 상황에 처하여 인간이 보여주는 새로운 대응방식, 엄청난 사회적 시대적 질곡과 억압에 인간은 어떤 행동역학을 보여주는가에 대한 한 모델을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