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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상세정보
계수 유인 여흥 민씨의 행장〔季嫂孺人驪興閔氏行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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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는 한국연구재단 기초학문자료센터 DB구축사업 참여 관련분야 전문가가 추가 입력한 정보입니다.
| 작성자 |
조관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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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급기관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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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취기관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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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 |
한국어 |
| 색인어 |
행장, 조관빈, 조겸빈, 조태채, 민정중, 거제, 금천, 임인화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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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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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급기관,작성일미상:알수없음
발급기관,작성일미상:알수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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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초록(메인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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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 여흥 민씨(1692~1725)는 민계수의 딸이다. 15세에 조관빈의 동생 조겸빈에게 시집갔다. 2남 2녀를 두었고 산후병으로 죽었다. 조겸빈이 기록한 유사를 토대로 조관빈이 행장을 썼다. 조관빈이 제수를 위해 쓴 제문이 있다.
유인은 민정중의 증손이고 김창집의 ...
유인 여흥 민씨(1692~1725)는 민계수의 딸이다. 15세에 조관빈의 동생 조겸빈에게 시집갔다. 2남 2녀를 두었고 산후병으로 죽었다. 조겸빈이 기록한 유사를 토대로 조관빈이 행장을 썼다. 조관빈이 제수를 위해 쓴 제문이 있다.
유인은 민정중의 증손이고 김창집의 외손이며 조태채의 며느리니, 본가와 외가와 시가가 모두 17세기말의 대표적인 벌열에 속한다. 민정중은 서인으로 기사환국 때 죽었고, 노론 4대신에 속했던 김창집과 조태채는 신임옥사 때 함께 죽임을 당했다. 조관빈과 조겸빈 형제도 이 때 유배되었다. 민씨 부인은 남편 조겸빈이 거제로 귀양갔을 때 따라갔다. 조관빈은 유배지에서 풍토병으로 고생하던 동생이 살아남은 것이 계수의 덕분이라고 했다. 유인은 명문가의 여식으로 명문가에 시집갔지만, 그 34년의 짧은 생애가 17세기말~18세기초 치열한 권력다툼 속에서 희노애락의 극한을 겪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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