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조선청년들의 삶에 대한 이해는 주로 거시적 차원의 역사변동이라는 측면에서 연구가 집중되어왔다. 그러나 식민지 혹은 탈식민지 공간에서의 당대 청년들이 일상공간에서의 경험했던 미시적 체험과 자의식의 발달은 한인청년들의 다양한 패턴과 특성을 보여 ...
일제강점기 조선청년들의 삶에 대한 이해는 주로 거시적 차원의 역사변동이라는 측면에서 연구가 집중되어왔다. 그러나 식민지 혹은 탈식민지 공간에서의 당대 청년들이 일상공간에서의 경험했던 미시적 체험과 자의식의 발달은 한인청년들의 다양한 패턴과 특성을 보여 준다.
이 연구는 근대 동아시아사회의 형성에서 한민족의 해외이주공간 특히 일제강점기에서 한국과 주변강국인 일본, 중국, 러시아 등지로 확대되어진 한민족 이주과정에서 청년세대의 독특한 사회적 자아상의 형성과 그 행동패턴을 초래라는 사회적 요인들에 대해 연구하고자 했다.
일제 초기와 일제 말기의 강압적 지배에 저항하여 형성된 대규모의 항일저항, 혹은 강압적 방식에 의한 대규모의 강제동원이 일어났다. 이 시기에 청년들은 역사상 가장 방해한 차원에서의 국가간의 이동을 펼쳐왔다. 민족사적 고난과 시련을 담는 19세기 이전까지 보기 드물던 수많은 근대 문학적 서사를 가져왔다. 가령 김동환의 국경의 밤과 같은 작품이나, 음악 장르에서 두만강, 제물포, 목포항, 부산항이 하나의 이별과 정한의 서사로 묘사된 것은 이를 반영한다. 독립운동의 애환이 새겨진 이러한 공간적 개념들이 머나먼 타향이나, 이국만리로 표현되거나 한때 한민족이 활동했던 독립운동의 거점지역으로서만 기억될 뿐 이들 공간이 가지는 문화적 자원성과 그 공간이 가지는 아시아문화의 소통과 향유, 창조의 개념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부족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민족의 민족사적 지평으로서 일제강점기형 디아스포라적 접근을 하는 데는 소홀한 측면이 많았다.
(2)정주지 공간의 문화환경
특정 공간과 장소에 대한 역사적 기억의 공유와 같은 문화현상은 역사적 공간에서의 문화적 연대와 소통의 계기를 제공하는데도 학술적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공간에 대한 애착은 다양한 형태의 해외 근거지에 대한 고향관념을 형성시켰다. 일상적으로 고향이라는 시공간적 관념은 매우 독특한 것이다. 그것은 고향, 고향사람에 대한 귀속성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시원의 시간과 공간으로 각인되어진 감정으로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시공간은 일종의 태어난 곳의 사람들=우리 의식을 공유한 역사적 시간과 지리적 공간, 언어에 의해 형성된 감정에 의한 공동체로 간주된다. 일제강점기 고향의 관념은 이산의 소용돌이 속에서 편안한 땅에 대한 동경과 망향의 표상으로 발전했다. 모든 사람들은 태어나고 자란 곳, 조상이 물려준 문화를 간직한 공동체에 대한 관념을 통해, 정주된 땅이라는 의미의 고향(故鄕)이라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 특히 일제강점기 고향을 떠나 귀국하기 어려운 이들에게 고향의 정체성은 점차 고국과 민족에 대한 표상으로 자리 잡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거주지에 대한 애착을 통해 새로운 기억의 정체성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재일동포의 역사적 기억의 공간이자 체험의 공간인 장소로서 오사카(大阪), 도쿄(東京), 재중한인 동포들의 오랜 고향인 연변(沿邊)이나 상해(上海), 재러 고려인들의 마음의 고향 연해주의 여러 정착촌, 미주한인들이 식민지 조선에서 벗어나 정착했던 하와이, 샌프란시스코, 로스엔젤레스, 뉴욕, 시카고 등은 서로 다른 문화환경에 노출된 한인청년들의 정서와 역사적 유대형성에 중요한 공간이었다는 점에서, 그 인식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이들의 삶은 단순한 고국을 잃은 망명자의 삶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인 속에 존재하는 한국인, 중국인 속에 존재하는 한국인의 모습으로 재현된다.
이러한 연구는 대부분 일제시대의 식민지 국가폭력에 의해 국가 밖으로 내쳐진 존재라는 개념에 오히려 가까웠으며, 이런 가운데 적극적인 해외청년들의 이주와 활동, 학력성취와 직업적 성취 혹은 독립운동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행동했던 패턴에 대한 연구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방치된 부분이었다. 이 연구는 이러한 기존 연구경향에 새로운 변화를 제공할 수 있다. 한국청년의 해외이주과정 특히 해외거점 독립운동기지가 왜 독립운동이라는 거시적인 목표뿐만 아니라 교포사회의 중요한 안전판으로 작동했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해외거주 조선청년들의 다양한 이주와 정착 및 불안이 어떻게 청년문화의 변화에 영향을 미쳤는지 검토하고자 했다.
청년들의 항일운동은 반드시 일제의 지배공간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본으로 유학을 가거나, 역으로 일본유학 이후 항일운동에 참여한 경우도 적지 않다. 이는 식민지적 개념이라기 보다는 근대 동아시아 지역의 선진지역인 동경으로의 유학이 가지고 있는 어떤 문화적 잇점이 분명히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