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은 동양에 대하여 매혹과 공포감의 대립적인 이미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으며, 그 결과 서구의 ‘오리엔탈리즘’ 역시 양면적인 성격을 띤 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계몽주의 시대에도 그랬던 것처럼 오리엔탈리즘은 유럽의 기독교와 물질주의, 사상적 타락으 ...
서양은 동양에 대하여 매혹과 공포감의 대립적인 이미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으며, 그 결과 서구의 ‘오리엔탈리즘’ 역시 양면적인 성격을 띤 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계몽주의 시대에도 그랬던 것처럼 오리엔탈리즘은 유럽의 기독교와 물질주의, 사상적 타락으로 인한 환멸감에서 시작되었다. 서양의 동양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은 ‘낭만주의’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으며, 먼 곳에 있는 공상적인 ‘타자’로 도피하려는 욕망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아시안 룩 역시 세계화 시대의 다원주의 경향 속에서 이러한 대화의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아시아 국가의 부각이 곧 아시안 룩으로 연결되었던 것도 아시안 룩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이다. 아시안 룩의 출현은 그것이 동양의 내면세계를 상실한 형식의 차용이었던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긍정적 현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오리엔탈리즘이 아시아를 열등한 타자로 간주한다는 본래의 의미가 일부에서 부분적으로 희석되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용어에 대한 의식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그것은 오리엔탈리즘이 동양인을 범죄자, 광인, 여성, 빈민 등과 연관된 이미지로 사용하여 이미 구제할 수 없이 오염된 용어이고, 서구의 정치적이며 지리적인 폭력이기 때문이다. 본 연구에서는 국내의 패션 분야에서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는 ‘오리엔탈리즘 패션’이라는 용어의 부적절함을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째, 오리엔탈리즘은 아시아를 서양과는 다른 이국적이고 이질적인 대상, 괴상하고 후진적이며 관능적이고 수동적인 특성을 지닌, 그래서 서양에 의해 지배되고 교정되어야 할 열등한 타자로 보는 의식을 내포하고 있는 왜곡된 용어이다. 오리엔탈리즘은 정치나 권력의 작용과 함께 위력을 발휘하는 집요하고 교활한 힘으로써 아시아를 일정한 지배의 틀 속에 가두는 문화적 장치와 담론의 체계이다.
둘째, 오리엔트는 원래 남유럽과 북아프리카 그리고 서남아시아를 지칭하는 서유럽 중심의 용어였으나 점차 아시아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확대 변질되었으며, 비서구권 전체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서구의 입장에서 볼 때는 지금까지도 주로 서남아시아를 지칭하는 용어로 빈번하게 사용된다. 사이드와 클라크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도 오리엔탈리즘이 서남아시아를 가리키는 말임을 지적하고 있다.
셋째, 서구 중심적 용어인 오리엔탈리즘은 아시아의 문명을 무시하고, 서구 문명의 역사발전 경로가 동양을 포함한 전 인류사에 보편적으로 타당하며, 저급한 단계에 머물러 있는 비서구 사회는 오직 서구의 문명을 모방・수용함으로써만 발전할 수 있다는 논리의 사상이다. 따라서 세계화의 시대에 구미 선진국에 필적할 만한 발전을 이룩하고 있고 패션 문화와 그 산업이 세계의 중심축 중 하나로 성장한 우리가 이러한 용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넷째,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인체의 착용을 전제로 한 패션의 속성상 서구 패션에 나타난 아시안 룩 대부분은 동양을 비하하려는 의도의 오리엔탈리즘 룩이 아니다. 현대 패션의 유희적인 특성과 미적 범주의 확대 현상으로 인하여 간혹 오리엔탈리즘 적인 특성을 띤 작품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아시안 룩 대부분은 오리엔탈리즘 룩으로 간주하기 어렵다. 서구 패션에 등장한 아시아의 스타일은 아시안 룩, 아시안 에스닉 룩, 동아시아 풍, 한국 풍 등의 용어 사용이 필요하다.
세계 패션의 유행은 파리를 비롯한 서유럽 중심으로 전개되는 시대를 넘어선지 이미 오래 되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는 서구 패션에 아시안 룩의 모티브가 되는 동양적인 이미지만을 제공하는 수동적인 입장이 아니라, 세계 패션 산업의 중심축으로써, 그리고 하이패션의 선도자 중 하나로써 세계 패션을 리드하고 있다. 이것은 다원화 시대의 특징이며 세계는 새로운 형식으로 상호 의존하는 관계를 지향하고 있다. 패션이 서구적인 속성을 띤 문화였으나, 이제는 서구의 것들을 무분별하게 모방하고 수용하는 오류에서 벗어나, 서구 중심의 이분법적 편견을 해체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