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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사1) 고려시대 역사·문화의 다원성과 통합성
고려의 문화적 다원성ㆍ다층위성과 소통의 이중주 ― 경쟁ㆍ자율ㆍ통합의 조건을 중심으로 ―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토대기초연구지원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4S1A5B4062928
선정년도 2014 년
연구기간 3 년 (2014년 11월 01일 ~ 2017년 10월 31일)
연구책임자 채웅석
연구수행기관 가톨릭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공동연구원 현황 박종기(국민대학교)
홍영의(국민대학교)
김재홍(국민대학교)
한혜선(이화여자대학교)
한준수(국민대학교)
최봉준(가천대학교)
신안식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오늘날 국가의 제일적 중앙집권화와 통제는 현 사회구조의 틀에서는 유지하기 어렵다. 우리 시대는 자율과 공존의 틀에서 통합이라는 시대적 요구가 있다. 이러한 시대의식을 어디에서 찾고 대안을 마련할 것인가는 우리 학계의 몫이자 책무이다. 자율ㆍ공존ㆍ통합은 당대 사회의 다양성에서 찾을 수 있다. 그 하나가 고려사회가 지닌 다원성에서 나타난다. 고려사회의 새로운 민족통합방식과 그에 기초한 다원주의 역사, 다양성과 통일성, 개방성과 역동성을 지향했던 고려의 역사전통은 우리에게 해결점을 모색해주는 주요 수단이 될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주제는 고려사회가 지닌 다원적 특성을 보다 극명하게 나타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연구를 통하여 고려왕조가 지닌 500여 년의 장기지속성의 가치[다양성과 통합의 효율성]를 발견하여 현 사회구조의 여러 양태를 비교하고, 그 대안과 해법을 찾아 새로운 인식 전환의 가능성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고려 문화의 다원성과 통합성 관련 기초 자료 집성을 통해 국가 내지 중앙과 지방의 지역성, 문화적 특성의 정리와 연구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다. 고려 문화의 다양성과 통합과정을 국가ㆍ중앙ㆍ지역의 관점 또는 공동체 속에서 문헌자료[연대기ㆍ개인자료 등] 분류와 고고ㆍ미술사 등과의 학제적 융합을 통해 자료 분류를 우선하여 자료의 시ㆍ공간적으로 정리와 배열을 통한 색인어(Key Words)를 추출하여 본 연구 주제의 토대를 마련하고, 이를 통해 고려사의 다양하고 새로운 연구의 진전과 활성화를 도모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가정책과 의례[팔관회ㆍ연등회]와 지방 공동체 의례[향도ㆍ성황 신앙]를 통한 통합이데올로기’, ‘특수계층[문벌ㆍ관료ㆍ지방유력자ㆍ부곡제지역민ㆍ상인ㆍ수공업자 등], 특정시기[문종대ㆍ의종대 등], 특정인물[김부식ㆍ윤언이ㆍ정지상 등], 특정지역[서경ㆍ동경ㆍ남경]을 통한 시ㆍ공간적 변화과정’, ‘ 사상적[불교ㆍ유교ㆍ도교ㆍ민간신앙] 접근을 통한 지역의 공동체 결속과 통합과정의 추이’, ‘문화사적 접근[공예ㆍ불화ㆍ불상ㆍ석탑 등의 유물]을 통한 중앙과 지방의 다양성’, ‘중앙과 지방사적 관점[대도회와 지방(3경ㆍ12목) 등]을 통한 지역성과 차이’, ‘대외 교류[송ㆍ요ㆍ금ㆍ원]와 구성원, 문화 수용의 영향을 통해 고려문화의 다원적 관점’ 등을 중점적으로 추적하고자 한다.
  • 기대효과
  • 한반도에서 실질적인 통일왕조 국가를 수립하였던 고려시대는 10세기에서 14세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동아시아 세계의 중요한 구성원으로서 당시 세계질서의 형성과 변동에 일정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였다. 대외적으로 대륙의 한족(漢族)과 호족(胡族) 문화가 때로는 침략자의 형태로 때로는 우호적인 모습으로 한반도를 엄습하는 과정에서 고려는 대륙정세의 변동을 슬기롭게 이용하여 민족국가의 정체성과 민족구성원의 동질성을 고양시켜나갔다. 대내적으로는 전근대 한국사의 고유한 자기질서 구축과 운동의 법칙을 관철시켜나갔다. 고려는 바로 이러한 역사운동과정에서 그 기초와 토대가 마련되었으며, 역사적인 성격 또한 그러한 운동과정 속에서 정형화되었다.
    고려시대는 다원성과 다층위성을 특징으로 하면서도 그렇다고 층위 간에 격절되었던 것만은 아니고 서로 소통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500여 년간 한 왕조로서 통합을 유지할 수 있었다. 소통은 중앙집권화의 기조 속에서 지역사회의 자율성을 인정한 지방지배제도, 경쟁원리를 전제로 한 입사제도와 관료제도, 전국적으로 잘 정비된 교통 및 물류제도 등에 의하여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었다. 각 층위나 영역의 문화요소나 문화 영위자 등이 한편으로는 서로 경쟁적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공존을 지향하고 소통ㆍ교류하는 시스템을 구성하였다.
    한국사의 전체 흐름 속에서 고려왕조의 역사적인 위치를 어떻게 규정지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 방면 연구자들이 줄기차게 고심하여왔던 연구과제의 하나였다. 한국 근대역사학이 한 세기의 연륜과 더불어 그동안 많은 연구 성과를 축적하여 왔지만 연구자 개개인이 부닥치는 궁극적인 문제는 자신이 전공하는 시대를 전체 역사상 속에서 어떻게 규정지을 것인가 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역사 연구자 개개인이 부닥쳤던 그러한 치열한 문제의식이 우리 역사인식의 폭과 깊이를 더하여 주었으며,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역사학을 탄탄한 학문적 토대 위에 올려놓게 된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본 연구의 주제의식은 고려왕조가 장기 지속할 수 있었던 독특한 역사성이나 시대의 성격이 무엇이었을까 하는 의문을 푸는 작업에 있다. 연구의 목표는 우선 고려시대 역사ㆍ문화의 다원성 관련 국내외 문헌자료 기초 정리와 함께 고고ㆍ미술사 관련 유물의 분석과 의미를 통해 고려시대 역사ㆍ문화 관련 다양한 연구주제의 확산을 선결과제로 꼽았다. 이 과정에서 고고ㆍ미술사 등 학제 간 융합 연구의 활성화가 이루어질 것이며, 고려시대 역사ㆍ문화의 대중화 및 문화산업에 기반이 될 원천자료의 수집과 정리도 진행될 것이다. 특히 고려시대의 새로운 민족통합 방식과 다원주의 역사를 조명하고, 고려시대 역사ㆍ문화의 ‘다원성과 통일성’ 나아가 ‘개방성과 역동성’의 원천을 찾기 위해 먼저 3개년간의 중심 주제를 선정하였고, 각각의 중심 주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소주제를 개발하였다. 여기에는 문헌자료를 포함한 역사학뿐만 아니라 고고ㆍ미술사와의 학제적 접근을 통해 학문적 융합을 꾀하였다. 나아가 연구팀이 여러 주제를 전부 소화할 수 없는 까닭에 관련 학회(강화고려역사재단ㆍ한국중세사연구회ㆍ한국고고학회ㆍ한국미술사학회)와도 공동학술연구발표회 형식으로 결합하여 해결할 것이다.
    그동안 기존 고려시대사 연구가 정치제도의 구조와 정치 지배세력의 역학관계, 신분구조의 특성, 사상으로서의 불교ㆍ유교의 작용문제, 지방제도의 군현관계와 지방민 등에 대한 연구는 일정한 성과를 얻었다. 그러나 고려사회의 시스템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의 근원적 문제는 아직 주목하지 못했다. 더구나 갈등구조가 드러날 때 어떻게 효율적으로 조절하였는가의 문제는 풀어야할 과제이다. 고려시대는 문화적으로 다원성ㆍ다층위성을 보이면서도 층위ㆍ영역 간의 경쟁과 소통이 이루어진, 다른 말로 표현해서 ‘문화적 다원성ㆍ다층위성과 소통의 이중주’ 양태를 보이는 가운데 역동성도 컸다는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고려의 ‘문화적 다원성ㆍ다층위성과 소통’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문헌자료와 함께 고고ㆍ미술사 자료의 분석을 통해 규정해보려는 것이 본 연구의 장점이다.
  • 연구요약
  • 본 연구는 고려왕조가 지닌 500여 년의 장기지속성의 가치를 발견하여 현 사회구조의 여러 양태를 비교하고, 그 대안과 해법을 찾아 새로운 역사인식 전환의 가능성을 제시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3차년에 걸쳐 체계적인 내용을 가지고 보다 효율적인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우선 1차년에서는 ‘경쟁과 조절’이라는 주제로 6가지 측면에서 연구될 것이다. 예컨대 고려는 사상과 종교에서도 다양성을 누렸다. 유교에 있어서는 고려 건국의 주체세력이었던 지방세력의 진출과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중앙집권체제의 정비에 따라 그 운영원리로서 신라시대의 족적 관념 대신에 새로운 유교정치사상체계를 수립하였다. 고려의 사상계는 불교와 함께 유교가 2대 주류를 이루어 공존을 모색하고 상호 영향을 주면서 발전하게 되었다. 역사인식은 현실인식으로부터 출발하여 나타나는 정체성)이다. 정체성은 문화적 소속감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으로 문화적 기원이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인가 하는 관념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고려의 문화적 지향도 중국의 문물을 수용하여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보편문화에 참여하고자 하는 측면이 있는 반면, 고려의 고유한 문화적 속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측면도 당연히 존재하였다. 이 양자를 조화시키고자 하는 ‘제3의 길’도 존재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사상사와 문화사, 역사인식에 대한 연구에서 이와 같은 면은 모두가 동의하면서도 정작 연구성과로 나타난 것은 많지 않았다. 이것은 본 연구를 통하여 규명할 필요가 있다.
    2차년에서는 ‘관계와 소통’이라는 주제로 6가지 측면에서 연구될 것이다. 여기에서는 중앙과 지방을 이어주는 ‘네트워크’ 형성의 내용과 특징을 규명해 보려고 한다. 고려의 군현제는 기본적으로 국가권력이 지방사회를 편제한 제도이다. 국가에서 군현제를 설정한 것은 행정을 수행하고, 치안을 유지하며, 부세를 수취하고 체제를 유지하고자 함에 일차적인 목적이 있었다. 이 제도를 통해 권농ㆍ교화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그것에는 국가권력ㆍ지방유력자ㆍ지방민의 관계가 응축되어 있다. 군ㆍ현ㆍ부곡ㆍ촌락 등은 행정 명령 전달과 조세ㆍ역역ㆍ수취를 위해 중앙 정부가 설치한 지배의 거점단위였다. 지방사회는 지방세력과 민에게는 각종 생산물과 재화를 창출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의지를 정치적으로 실현하는 자율의 공간이었으며, 중앙 정부로서는 지방제도를 통해 견제하고 그를 통해 각종 조세와 역역을 수취하여 왕조정부의 물적인 토대를 구축하려는 지배의 거점이었다. 고려시대의 중앙과 지방을 이어주는 실제적인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 서해안 지역에서 발견되는 각종 해저 유물들이다. 이들 유물들은 그동안 문헌자료에서만 살펴볼 수 있었던 고려의 물류이동의 실제적인 모습을 연구할 수 있는 좋은 사례이다. 이를 위해서는 역사학, 고고·미술사 분야의 긴밀한 협력이 요구되며, 공동연구를 통해서 고려시대 생활사에 대한 보다 입체적인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3차년에서는 ‘개방성과 정체성’라는 주제로 6가지 측면으로 연구될 것이다. 고려시대는 당ㆍ송ㆍ거란(요)ㆍ여진(금)ㆍ몽골(원)ㆍ명 등 다양한 국제환경 속에서 500여 년의 왕조를 유지하였다. 고려가 건국되던 9~10세기는 동아시아에서 당 중심의 기존 국제질서가 붕괴되던 시기였고, 이어 고려가 집권국가체제를 강화해 갈 때 송이 중국을 통일하였다. 송이 통일왕조를 이루었지만 북방 민족들이 강성하면서 동아시아의 세력 판도는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였다. 고려는 거란과 무력대결을 한 후 조공-책봉 관계를 맺고 교류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고려 문화의 국제성에서 북방문화와의 교류와 그 영향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는 점이 최근 연구에서 드러나고 있다. 거란과 통교한 이후에 송과는 한동안 외교관계가 끊겼지만, 이른바 사헌무역의 형식으로 경제ㆍ문화적 교류를 지속하였다. 송의 상인들은 고려와의 사이에 외교를 매개로하는 외교사절로서 역할하기도 하였다. 고려는 거란에 이어 여진의 북방국가와 공식적 외교관계를 맺고 교류하는 한편 이러한 송 상인이 중심이 된 국제교역체계에 접속함으로써 무역과 문화 교류가 다면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었다. 동아시아에서 국제정세가 안정되고 교류가 확대되면서도 그 이면에서는 국경분쟁, 송의 연려제요ㆍ연금제요책 등으로 상호 견제와 갈등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몽골이 세계제국을 건설하기 전까지 동아시아에 절대강자가 없는 상황에서 이른바 다원적 국제질서의 면모를 보였다.
    결국 본 연구는 각각의 주제에 대한 다양성 때문에 연구 인력의 외부지원도 필요하다. 그런 만큼 관련 학회와의 공동연구도 절실히 필요하고, 학제 간 연구는 고려의 역사ㆍ문화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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