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구원(soteriology)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괴로움의 소멸’, ‘현실적인 고통에서 벗어남’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초기 인도불교에서 현실인식의 출발점은 이러한 괴로움(duḥkha) 또는 고통이 우리 삶의 도처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다는 것이었다. 이 세상 ...
불교에서 구원(soteriology)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괴로움의 소멸’, ‘현실적인 고통에서 벗어남’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초기 인도불교에서 현실인식의 출발점은 이러한 괴로움(duḥkha) 또는 고통이 우리 삶의 도처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다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 있는 그 누구도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없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과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것 사이의 부조화 속에서 결코 만족하지 못하고(unsatisfactory)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심리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고, 항상 다른 어떤 것을 원한다는 점에서 결코 자립적이지 못하다. 불교에 있어서 구원이란 바로 이러한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로부터 영원히 벗어나는 것으로서 열반(nirvāṇa)이란 개념을 통해 설명되고 있다. 어원적으로 보았을 때 열반이란 nir√vā (to go out) 에서 파생된 명사로 어떤 것이 꺼지고 있는 상태를 지칭한다. 이 용어는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바람과 같은 것으로 후 불어서 촛불을 끄는 것(blowing out)과 같이 타동사적으로 해석되어 왔지만, 사실은 자동사로서 더 이상의 땔감 등과 같은 연료가 없어서 불이 자연적으로 꺼져가는 것을 지칭한다. 초기경전은 이렇게 꺼져가는 대상이 현실에서 고통 받는 인간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서 이렇게 꺼져가는 것은 탐냄(rāga), 혐오(dosa), 우둔함(moha)이라고 하는 우리를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로 이끄는 번뇌이다. 초기불교에서 열반(nirvāṇa)이란 바로 이러한 번뇌의 소멸을 지칭하는 것으로 어떤 것에도 조건 지워지지 않은 상태(asaṃskṛta, 無爲)로서 붓다의 깨달음(saṃbodhi, 正覺) 그 자체였다. 이러한 초기불교의 소박한 열반개념은 점차적으로 죽음 이후의 영역으로 확장되게 된다. 붓다는 자기 스스로를 따타가따(Tathāgata) 즉 ‘앞으로 그와 같이 윤회에서 벗어날 사람’이라고 칭하고 있다. 따라서 깨달음을 얻어 더 이상의 번뇌가 없는 사람의 죽음은 일반적인 죽음과 다른 것이어야 했고, 이렇게 윤회로부터 완전히 떠나가는 죽음은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로부터 완전히 떠나간다는 의미에서 열반(nirvāṇa)으로 지칭되기 시작했다. 불교에서는 이를 유여열반(sopadhiśeṣanirvāṇa)과 무여열반(anupadhiśeṣanirvāṇa)으로 구분하는데, 전자가 불교적 수행의 실천적인 목표라면 후자는 불교적 구원의 완성된 결과로 이해되었다. 초기불교는 유여열반이 성취되면 무여열반이 자연적으로 얻어지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전자를 강조하고 후자를 철학적 형이상학적으로 탐구하는 것은 금지하였다. 따라서 따타가따(Tathāgata)가 죽은 후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은 대답되지 않는 질문들(avyākṛta, 無記) 중의 하나로 남게 되었으며, 불교적인 구원의 완성된 결과는 의문부호로 남게 되었다. 비록 붓다 당시에는 교주의 카리스마에 의해 이러한 금기가 지켜졌지만, 붓다 이후에 점차적으로 이러한 금기가 깨어지면서 각각의 인도불교 학파들은 자신들 나름대로 불교적 구원의 완성된 결과로서의 열반(nirvāṇa)이 어떠한가에 대해 탐구하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붓다에 의해 때로는 침묵으로 때로는 비유로서만 주어졌던 불교적 구원의 완성된 모습은 부파불교시대 불교논사들 사이에서 주석적 철학적 해석의 영역으로 다가오게 되었고 다양한 이론과 수많은 논쟁들이 이를 중심으로 펼쳐지게 되었다. 본 연구는 불교적 구원의 총체적인 모습이 붓다 당시에 확정되지 않은 채 남겨져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열반을 구원과 동일시했던 유럽의 초창기 불교학자들 사이에서 열반개념이 가지고 있는 부정의 이미지는 사실상 충격적인 것이었다. ‘꺼지는 것’ 즉 ‘소멸’이란 열반(nirvāṇa)의 글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보면 불교적 구원의 완성된 모습은 부정적이고 허무적이며 단멸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붓다에 의해 의문부호로 남겨졌던 무여열반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에 불과한 것이었다. 사실상 경량부(Sautrāntika)를 제외한 부파불교의 대부분의 학파들은 열반(nirvāṇa)을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해석하면서 불교적 구원의 완성된 모습을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며 영원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기인도불교에서 열반이 가지고 있는 구원학적 측면은 부파불교시대의 여러 논사들에 의해 진행되었던 열반에 대한 다양한 이론들과 수많은 논쟁들에 대한 연구 없이 밝혀질 수 없다.
기대효과
이 연구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의 기조 하에서 자의적이고 편의적으로 해석되어온 초기불교의 열반개념을 오리엔탈리즘적 분석, 문헌학적 분석, 구원학적 분석을 통해 연구하여 잘못 해석되어온 초기불교의 열반개념에 대한 오래를 바로잡고 초기부파불교 시대의 열 ...
이 연구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의 기조 하에서 자의적이고 편의적으로 해석되어온 초기불교의 열반개념을 오리엔탈리즘적 분석, 문헌학적 분석, 구원학적 분석을 통해 연구하여 잘못 해석되어온 초기불교의 열반개념에 대한 오래를 바로잡고 초기부파불교 시대의 열반개념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며 불교의 열반이 가지고 있는 구원학적 측면을 도출하여, ‘구원’이란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불교가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 등과 대화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 나가는 것으로 다음과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1. 오늘날 한국 일본 태국 등을 비롯한 아시아의 불교권 국가들은 경제적 발전과 사회적 개방화를 통해서 더 이상 서구에 대한 열등감 속에 사로잡혀 있지 않으며, 점차적으로 서구중심주의적인 오리엔탈리즘의 편견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재 불교학자들 또한 기존의 비판적 불교학의 타성에서 벗어나 진정 우리 현실에 맞고 진정 불교를 위한 불교학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때가 온 것이다. 본 연구를 통해서 초창기 서구의 불교학자들이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의 사유를 바탕의 불교적 구원의 완성된 모습으로서 열반(nirvāṇa)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편의에 따라 왜곡해온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이들의 연구결과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왔던 불교학의 학문조류를 비판하여 진정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고 건설적인 불교학의 길을 모색한다. 2. 열반이란 어떤 경지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실천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열반 개념이 가지고 있는 애매모호함을 따지는 것 자체가 별로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를 언어적으로 표현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신비로운 영역에 남겨두는 것이 차라리 실용적이며 어떤 종교적인 중요성을 지닐 거라며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과학적 사유가 지배하는 오늘날의 다종교 사회에서는 별로 호소력이 없다. 현대 과학이 제공하고 있는 명확하고 투명한 설명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은 점차 종교적인 영역에서까지도 좀 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며 객관적인 설명을 요구하고 있다. 불교적 구원의 완성된 결과로서의 열반 또한 여기에서 예외로 남아 있을 수는 없다. 따라서 본 연구는 초기부파불교 시대의 열반개념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토대를 재공해 줄 수 있다. 3. 종교간의 대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양자를 아루르는 공통분모가 있어야 한다. 본 연구는 초기인도불교의 연반개념을 구원학의 관점에서 파악하여, ‘구원’이란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불교가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 등과 대화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하여 종교 간의 대화를 촉진시키는 것에 기여할 수 있다.
연구요약
본 연구는 초창기 서구의 불교학자들이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란 서구중심주의적 사유를 바탕의 불교적 구원의 완성된 모습으로서 열반(nirvāṇa)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편의에 따라 왜곡해 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초창기 서구의 불교학 ...
본 연구는 초창기 서구의 불교학자들이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란 서구중심주의적 사유를 바탕의 불교적 구원의 완성된 모습으로서 열반(nirvāṇa)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편의에 따라 왜곡해 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초창기 서구의 불교학이 만들어낸 열반의 이미지를 역사적으로 분석하여 그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부파불교 시대에 열반이 실체화되어가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여러 이론들과 심도있는 논쟁들을 탐구한 후, 인도초기불교에서 열반이 가지고 있는 총체적인 모습을 구원학적 측면에서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첫째, 오리엔탈리즘적 분석: 근대 유럽의 불교연구는 당시 사회전반을 통제하고 있는 기독교적인 분위기와 자신들의 문명에 대해서 식민지의 사상이나 문화를 열등하거나 적어도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인 도구로 보려했던 오리엔탈리즘적인 경향 하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산스끄리뜨(Sanskrit) 문헌들을 중심으로 하는 인도학과 빨리(Pali) 문헌들을 중심으로 하는 불교학은 영국의 식민지 인도와 세일론 경영에 필수적인 첨단학문으로서 각광받았다. 막스뮬러(Max Muller), 조지 터너(George Turnour), 로버트 실더스(Rovert C. Childers), 리즈 데이비스(T.W. Rhys Davids) 등은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서 불교를 연구한 초창기 학자들이었다. 이들은 서구의 지적 체계를 바탕으로 불교를 해석하고, 서구의 지적 체계 속에 불교를 편입시키고, 서구적으로 불교를 해석하려고 노력했으며, 하나의 종교현상으로서 살아있는 불교를 다루기보다는 고문헌을 중심으로 과거의 불교를 연구하고, 성경해석학의 방법론에 근거하여 초기불교문헌들을 서구적 기독교적 시각을 통해서 해석하고 재평가 했다. 초창기 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자의적이고 부정적이며 허무적이고 단멸적인 열반해석이 아직까지 우리사회의 곳곳에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에 대한 반성을 바탕으로 서구 불교학자들의 열반해석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지적하여 좀 더 공평하고 편견 없는 입장에서 열반개념을 재구성 한다. 둘째, 문헌학적 분석: 열반에 대한 서구적 해석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는 포괄성의 결여이다. 열반에 대한 연구가 몇몇 학자들에 의해 특정한 분야에서 고립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어떤 부파 또는 어떤 문헌에 나타난 열반개념 만이 반영되어, 특정 부파 또는 문헌의 열반에 대한 견해를 초기불교 내지 불교 전체를 대변하는 열반개념으로 제시하는 오류를 종종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열반(nirvāṇa)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초기경전에 근거하여 진행되었다. 따라서 초기경전의 여러 부분에 흩어져 있는 고립적인 문구들과 비유들이 자의적으로 해석되어 열반의 개념으로 제시되어 왔다. 하지만 랑스카진이 지적하고 있는바와 같이 번뇌의 소멸을 얻은 아라한이 죽음과 함께 마지막 열반에 도달했을 때 어떻게 되는가 하는 '따타가따(Tathāgata)의 사후상태'에 관한 해답을 초기경전에서 결코 찾을 수 없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인도부파불교를 대표하는 설일체유부, 경량부, 테라와다의 열반에 대한 견해를 아비달마구사론(Abhidharmakośabhāṣya), 청정도론(Visuddhimagga)를 바탕으로 북전 아비달마 문헌 및 대비바사론에 나타난 다양한 이론들을 살펴본다. 그리고 이러한 문헌들에서 인용되는 초기경전의 내용들을 역추적하여 초기경전의 여러 부분에 흩어져 있는 고립적인 문구들과 비유들을 부파불교시대의 여러 학파들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해석되었는가를 집중적으로 밝혀내도록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초기경전의 비유적 개념들이 어떻게 실체화되어 가는가를 밝히도록 하겠다. 셋째, 구원학적 분석: 구원학적 측면에서 불교의 열반에 대한 분석은 최근 스티븐 콜린스(Steven Collins)의 Nirvana and Other Buddhist Felicities를 통해서 심도있게 이루어졌다. 그는 이 책에서 열반을 비롯한 불교의 행복에 대한 관념들을 유토피아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불교의 열반개념이 구원학의 측면에서 가지는 의미를 분석하고 있다. 특히 불교의 열반이 가지고 있는 비유적인 이미지들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모습이 구원학의 측면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사실상 일반 불교인들에게 있어서 열반이란 어떤 개념적인 사유에 의해서 알려지는 것이 아니라 계율을 지키고 선정을 닦고 지혜를 일으킴을 통해서 도달하는 실천적인 목표로서 다가오고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이러한 실천적 목표로서의 열반이 불교적 구원의 완성된 결과로서의 열반과 어떤 차이점을 지니고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고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가를 집중적으로 다루도록 하겠다.
여래의 사후상태가 어떠한가는 전통적으로 보았을때 열네가지 대답될 수 없는 질문들의 하나로 알려져 있었다. 이 이름이 지적하고 있듯이 초기경전은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대답을 주고있지 않다. 다만 몇몇의 실마리들을 통하여 이러한 상태가 어떠한가를 추정할 수 있 ...
여래의 사후상태가 어떠한가는 전통적으로 보았을때 열네가지 대답될 수 없는 질문들의 하나로 알려져 있었다. 이 이름이 지적하고 있듯이 초기경전은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대답을 주고있지 않다. 다만 몇몇의 실마리들을 통하여 이러한 상태가 어떠한가를 추정할 수 있도록 할 뿐이다. 이러한 상태에 대한 초기적인 모습을 우리는 초기경전에서 촛불이 꺼지는 이미지에 비유적으로 설명된 무여열반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알아볼 수 있다. 촛불이 꺼지는 이미지를 통해서 붓다의 열네가지 무기의 질문들 둥의 하나를 대답하려는 시도들은 사실상 무수히 많이 있어왔다. 오토 슈레이더를 예로들면 그는 몇몇 중기 후기 우빠니샤드에서 나타나는 불의 소멸에 관한 이미지가 가져다 주는 비유적인 의미를 통해서 이러한 부분에 답하려 했던 학자들 중의 하나이다. 그에 의하면 소멸된 불은 진정으로 파괴되는 것이 아리라 근원적이고 순수하며 현상적으로 보이지 않는 보이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뿐이다. 즉, 적절한 시간과 알맞은 조건이 주어지면 언재든디 불은 다시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죽은 후에 실제로 파괴되는 것이 아리라 보다 근원적이며 순수한 상태로서 브라만 전통에서 초우주적인 자아인 브라만과 유사한 궁극적인 실체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비록 이러한 브라만 전통의 불의 소멸에 대한 이미지에 기초한 인도적 힌두적 견해가 불교에서 여래의 사후를 불의 소멸을 통해 묘사하는 것에 선행했는지는 아직까지 잘 알 수 없다. 하지만, 경량부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부파불교 학파들이 여래의 사후상태인 무여열반은 어떤 실체로서 있는 것으로 보려고 했다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이와같이 이러한 상태를 있는 긍정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남전 상좌부 테라바다 전통은 열반을 단순히 탐욕, 혐오 그리고 우둔함의 소멸로 보는 테라바다 아비달마문헌의 전통적인 해석을 수정하려 한다. 이들에 의해 제시된 방법은 탐욕 혐오 그리고 우둔함의 소멸을 열반으로 가는 길에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고 열반 그 자체는 이러한 일시적인 상테와는 별개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테라와다 주석전통이 자신들의 열반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를 옹호하기 위해서 어떤 방식을 취하는지를 숫따니빠타에 나타난 우빠쉬와의 질문에 대한 붓다의 답변과 관련된 여러 배경들을 추적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주어진 붓다의 유명한 게송의 함의를 밝혀내어 초기인도불교의 열반개념이 가지고 있는 구원학적 측면을 살펴보도록 한다.
영문
The state of Tath?ata after death has been known traditionally as one of the four unanswered questions. As its name suggests, the early canon does not really give a clear answer, yet gives a clue to deduce how this state can be understood originally. ...
The state of Tath?ata after death has been known traditionally as one of the four unanswered questions. As its name suggests, the early canon does not really give a clear answer, yet gives a clue to deduce how this state can be understood originally. An early idea of this state could be traced through the idea of nirvana without a remainder of clinging which was often explained in terms of the image of a fire extinguished within the early canon. There have been many attempts to fill the silence of the Buddha through clarifying the metaphor of a fire extinguished. F.Otto Schrader, for example, could be the one who interpreted this state positively through clarifying this fire metaphor in terms of the so called common Indian view based on several Upanisads. According to him, an expiring flame does not really go out, but returns into the primitive, pure, invisible state of fire it had before its appearance as visible fire! Thus, the enlightened person after death does not become nothing but returns to the primitive and pure state, like the paramatman, the ultimate reality in Brahmanism. Although it has not been proved that such common Indian view was already presupposed within the early canon when the metaphor of a fire extinguished was used to explain what happens to Tathgata after death, the later sectarian Buddhist schools, excluding the Sautrntikas, seem to accept the idea that the state of Tathagata after death cannot be regarded as mere nonexistence. In order to explain this state positively, the Theravda exegetical tradition had to explain why nirvana could not simply be interpreted as the cessation of passion, hatred and delusion, the definition of the unconditioned given in their abhidhamma literature. The solution given in this tradition is that the cessation of passion, hatred and delusion only appeared on coming to that nirvana, or the state of Tathgata after death, which exists separately from both the aggregates and defilements. I will show how the Theravda exegetical tradition justifies their positive interpretation through clarifying the underlying meaning of the Buddha' famous stanza answering to Upasiva's question in the Pryanavagga in the Suttanipata.
연구결과보고서
초록
불교에서 구원(soteriology)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괴로움의 소멸’, ‘현실적인 고통에서 벗어남’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초기 인도불교에서 현실인식의 출발점은 이러한 괴로움(duḥkha) 또는 고통이 우리 삶의 도처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다는 것이었다. 이 세상 ...
불교에서 구원(soteriology)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괴로움의 소멸’, ‘현실적인 고통에서 벗어남’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초기 인도불교에서 현실인식의 출발점은 이러한 괴로움(duḥkha) 또는 고통이 우리 삶의 도처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다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 있는 그 누구도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없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과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것 사이의 부조화 속에서 결코 만족하지 못하고(unsatisfactory)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심리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고, 항상 다른 어떤 것을 원한다는 점에서 결코 자립적이지 못하다. 불교에 있어서 구원이란 바로 이러한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로부터 영원히 벗어나는 것으로서 열반(nirvāṇa)이란 개념을 통해 설명되고 있다. 어원적으로 보았을 때 열반이란 nir√vā (to go out) 에서 파생된 명사로 어떤 것이 꺼지고 있는 상태를 지칭한다. 이 용어는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바람과 같은 것으로 후 불어서 촛불을 끄는 것(blowing out)과 같이 타동사적으로 해석되어 왔지만, 사실은 자동사로서 더 이상의 땔감 등과 같은 연료가 없어서 불이 자연적으로 꺼져가는 것을 지칭한다. 초기경전은 이렇게 꺼져가는 대상이 현실에서 고통 받는 인간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서 이렇게 꺼져가는 것은 탐냄(rāga), 혐오(dosa), 우둔함(moha)이라고 하는 우리를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로 이끄는 번뇌이다. 초기불교에서 열반(nirvāṇa)이란 바로 이러한 번뇌의 소멸을 지칭하는 것으로 어떤 것에도 조건 지워지지 않은 상태(asaṃskṛta, 無爲)로서 붓다의 깨달음(saṃbodhi, 正覺) 그 자체였다. 이러한 초기불교의 소박한 열반개념은 점차적으로 죽음 이후의 영역으로 확장되게 된다. 붓다는 자기 스스로를 따타가따(Tathāgata) 즉 ‘앞으로 그와 같이 윤회에서 벗어날 사람’이라고 칭하고 있다. 따라서 깨달음을 얻어 더 이상의 번뇌가 없는 사람의 죽음은 일반적인 죽음과 다른 것이어야 했고, 이렇게 윤회로부터 완전히 떠나가는 죽음은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로부터 완전히 떠나간다는 의미에서 열반(nirvāṇa)으로 지칭되기 시작했다. 불교에서는 이를 유여열반(sopadhiśeṣanirvāṇa)과 무여열반(anupadhiśeṣanirvāṇa)으로 구분하는데, 전자가 불교적 수행의 실천적인 목표라면 후자는 불교적 구원의 완성된 결과로 이해되었다. 초기불교는 유여열반이 성취되면 무여열반이 자연적으로 얻어지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전자를 강조하고 후자를 철학적 형이상학적으로 탐구하는 것은 금지하였다. 따라서 따타가따(Tathāgata)가 죽은 후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은 대답되지 않는 질문들(avyākṛta, 無記) 중의 하나로 남게 되었으며, 불교적인 구원의 완성된 결과는 의문부호로 남게 되었다. 비록 붓다 당시에는 교주의 카리스마에 의해 이러한 금기가 지켜졌지만, 붓다 이후에 점차적으로 이러한 금기가 깨어지면서 각각의 인도불교 학파들은 자신들 나름대로 불교적 구원의 완성된 결과로서의 열반(nirvāṇa)이 어떠한가에 대해 탐구하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붓다에 의해 때로는 침묵으로 때로는 비유로서만 주어졌던 불교적 구원의 완성된 모습은 부파불교시대 불교논사들 사이에서 주석적 철학적 해석의 영역으로 다가오게 되었고 다양한 이론과 수많은 논쟁들이 이를 중심으로 펼쳐지게 되었다. 본 연구는 불교적 구원의 총체적인 모습이 붓다 당시에 확정되지 않은 채 남겨져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열반을 구원과 동일시했던 유럽의 초창기 불교학자들 사이에서 열반개념이 가지고 있는 부정의 이미지는 사실상 충격적인 것이었다. ‘꺼지는 것’ 즉 ‘소멸’이란 열반(nirvāṇa)의 글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보면 불교적 구원의 완성된 모습은 부정적이고 허무적이며 단멸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붓다에 의해 의문부호로 남겨졌던 무여열반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에 불과한 것이었다. 사실상 경량부(Sautrāntika)를 제외한 부파불교의 대부분의 학파들은 열반(nirvāṇa)을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해석하면서 불교적 구원의 완성된 모습을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며 영원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기인도불교에서 열반이 가지고 있는 구원학적 측면은 부파불교시대의 여러 논사들에 의해 진행되었던 열반에 대한 다양한 이론들과 수많은 논쟁들에 대한 연구 없이 밝혀질 수 없다. 본 연구는 이러한 부파불교시개의 논사들의 입작으로 돌아가서 열반이 실체화되어가는 과정으로 구원학적 측면에서 고찰해 보았다.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이 연구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의 기조 하에서 자의적이고 편의적으로 해석되어온 초기불교의 열반개념을 오리엔탈리즘적 경향하게서 잘못 해석되어온 초기불교의 열반개념에 대한 오래를 바로잡고, 초기부파불교 시대의 열반개념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며, 불교의 열 ...
이 연구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의 기조 하에서 자의적이고 편의적으로 해석되어온 초기불교의 열반개념을 오리엔탈리즘적 경향하게서 잘못 해석되어온 초기불교의 열반개념에 대한 오래를 바로잡고, 초기부파불교 시대의 열반개념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며, 불교의 열반이 가지고 있는 구원학적 측면을 도출하여, ‘구원’이란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불교가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 등과 대화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 나가는 것을 목표로 했다. 따라서 이 연구의 결과물은 다음과 같은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첫째, 오늘날 한국 일본 태국 등을 비롯한 아시아의 불교권 국가들은 경제적 발전과 사회적 개방화를 통해서 더 이상 서구에 대한 열등감 속에 사로잡혀 있지 않으며, 점차적으로 서구중심주의적인 오리엔탈리즘의 편견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재 불교학자들 또한 기존의 비판적 불교학의 타성에서 벗어나 진정 우리 현실에 맞고 진정 불교를 위한 불교학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때가 온 것이다. 본 연구를 통해서 초창기 서구의 불교학자들이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의 사유를 바탕의 불교적 구원의 완성된 모습으로서 열반(nirvāṇa)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편의에 따라 왜곡해온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따라서 이들의 연구결과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왔던 불교학의 학문조류를 비판하여 진정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고 건설적인 불교학의 길을 모색하는 작은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둘째, 열반이란 어떤 경지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실천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열반 개념이 가지고 있는 애매모호함을 따지는 것 자체가 별로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를 언어적으로 표현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신비로운 영역에 남겨두는 것이 차라리 실용적이며 어떤 종교적인 중요성을 지닐 거라며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과학적 사유가 지배하는 오늘날의 다종교 사회에서는 별로 호소력이 없다. 현대 과학이 제공하고 있는 명확하고 투명한 설명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은 점차 종교적인 영역에서까지도 좀 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며 객관적인 설명을 요구하고 있다. 불교적 구원의 완성된 결과로서의 열반 또한 여기에서 예외로 남아 있을 수는 없다. 따라서 본 연구는 초기부파불교 시대의 열반개념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토대를 재공해 줄 수 있다. 셋째, 종교간의 대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양자를 아루르는 공통분모가 있어야 한다. 본 연구는 초기인도불교의 연반개념을 구원학의 관점에서 파악하여, ‘구원’이란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불교가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 등과 대화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하여 종교 간의 대화를 촉진시키는 것에 기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