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혜성’, ‘선물’, ‘보살핌’, ‘환대’, ‘자선’, ‘기부’, ‘중간 경제’, ‘제 3 섹터’, ‘비영리 경제’ 등과 같은 개념들에 주목하는 최근의 사회과학 연구 동향은 ‘경제적 인간’ 모델이 보여주었던 이론적 한계와 실천적 퇴조를 강조하면서, 인간의 삶 자체에 내재된 ‘비공리 ...
‘호혜성’, ‘선물’, ‘보살핌’, ‘환대’, ‘자선’, ‘기부’, ‘중간 경제’, ‘제 3 섹터’, ‘비영리 경제’ 등과 같은 개념들에 주목하는 최근의 사회과학 연구 동향은 ‘경제적 인간’ 모델이 보여주었던 이론적 한계와 실천적 퇴조를 강조하면서, 인간의 삶 자체에 내재된 ‘비공리성’의 본질과 경제·정치의 공공적 가치의 심원한 뿌리로 복귀하려는 경향을 일정하게 반영하고 있다. 경제적 합리성의 획일적인 논리에 구속되지 않는 신뢰, 우정, 공감, 상호부채감, 연대의 네트워크에 대한 이론적 탐색 역시, 이러한 지적 조류가 인간학적 가치와 굳게 결속된 ‘사회적 삶’의 긍정적 표상을 그려내려는 중대한 기획에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 조류에 합류하고 있는 다양한 이론적 자원들의 궁극적인 토대를 발굴하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려는 노력은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본 연구는 사회적 삶이 근거하고 있는 비공리적 차원의 심화된 이해를 위해, 비공리성을 정초하는 내적 논리의 복합성을 체계적으로 논의하고, 이 논리의 현실적인 전개 과정에서 드러나는 의미 구조의 변동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즉 이 연구 기획은 인간 삶의 비공리적 측면이 지닌 도덕적 규범성을 해석하는 이론적 작업의 성과, 그리고 비공리성의 이상적 규범과 구체적 현실 간의 역동적 접합과 그 내적 모순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의 이론적 유산" 그리고 증여 규범의 비공리적 속성의 현실적 전개를 역동적으로 포착하게 해주는 “장기기증의 사회학"을 제안한다. 주지하다시피, <증여론>은 역사적이고 집합적인 삶의 비공리적 차원이 펼쳐지는 다양한 모습들과 그 하이브리드(hybrid)한 현황들을 인류학적/사회학적 시각에서 고찰했던 마르셀 모스의 대저작이다. 이 저작은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와 ‘교환’ 개념, 바타이유의 ‘에로티즘’과 ‘일반경제론’, 부르디외의 ‘상징적 자본’과 ‘상징적 재화의 경제’ 등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테마들을 거쳐 창조적으로 계승되어왔다. 이러한 테마들은 개별 이론가들이 취했던 증여의 제도적・인지적・규범적 차원에 대한 상이한 개념화 작업의 결과이자, 현대 사회의 증여 실천의 역동적인 모습에 관한 탐색을 돕는 이론적 지침으로 작용한다. 연구자는 모스의 <증여론>에서 논의된 사회적 삶의 비공리적 차원을 통해 증여의 사회학적 문제의식의 기원을 해명하고, 이 기원에서 유래하는 상이한 이론적 분기점들에 주목함으로써 애초의 증여론이 지녔던 사회학적 가치의 과밀화/과소화 흐름들의 요인을 분석하고자 한다. 한편 <증여론>이 보여주는 비공리적 인간 교류의 삶의 양태가 ‘죽은 과거’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생생하게 보존되고 있다면, 현대사회의 증여 실천 속에서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사회적 소통의 사례에 주목해야 한다. 연구자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장기기증’을 매개로 형성되는 장기증여자와 수증자의 인격적 교류의 문제를 탐구하고자 한다. 이는 <증여론>이 배태한 다양한 사회학 이론들의 현실적합성을 판정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한다. 사실 장기기증의 사례는 주고/받고/답례하는 증여의 호혜성이 있는 그대로 실현되지 않는 ‘현대적 증여 실천’의 한 형태이다. 동시에 이 사례는 인간의 죽음, 장기의 의미를 둘러싼 의학/국가/시장의 개별적 담론들이 각축을 벌이는 논쟁 지점이다. 따라서 장기기증은 ‘비공리적’인 삶에 내재된 내적 갈등, 즉 과학적 기술 절차, 국가주도 사회정책의 강제성, 그리고 순수한 이해관계의 내적 추구가 상호 충돌하면서 조형되는 오늘날 증여 실천의 역설적인 논리를 해명할 수 있는 유용한 사례이다. 이러한 연구지향을 통해 연구자는 사회적 삶의 비공리성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이나 허무적 비관을 이론적으로 교정하고, 그 구체적인 역동적 현실을 분석함으로써 현대의 증여 실천이 보여주는 심원한 논리 구조를 해명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