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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 상세정보

창암 이삼만 평전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학문후속세대양성_시간강사(인문사회)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1-35C-A00203
선정년도 2011 년
연구기간 1 년 (2011년 11월 01일 ~ 2012년 10월 31일)
연구책임자 조인숙
연구수행기관 원광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1. 창암 이삼만(1770년∼1847년)은 19세기 호남 제일(第一)의 대서예가로서 충청도의 추사 김정희(1786∼1856), 평안도의 눌인 조광진(1772∼180)과 더불어 조선 후기의 3대 명필로 꼽힌다. 창암은 당시의 소중화(小中華)에 매몰되지 않고 중국 청대 조류에 휩쓸리지 않는 조선선비로서의 명덕(明德)을 지켰으며, 법고창신(法古創新)을 바탕으로 서예에 대한 끊임없는 정진과 어떠한 고난과 어려움에도 세속에 물들지 않고 조선 고유의 토속성과 질박한 서풍인 ‘창암체’를 개발하여 통영(通靈)에 이르러 오늘날 신필(神筆)의 경지를 이룩한다. 토속성의 대표 아이콘(icon)으로 불리는 창암체는 한국서예의 조선진체로 거듭나면서 전라도의 향색을 기반으로 조선의 바람찬 글씨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는 후손이 끊기어 오늘날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것이다. 더구나 추사 김정희의 그늘에 가려 그 신필(神筆)의 경지가 조명 받지 못했던 것은 내내 아쉬움으로 남아 왔다. 이에 창암 이삼만에 대한 재평가로, 학계 및 일반인들의 인식 제고와 전통에 대한 역사의식과 조상에 대한 선양의식으로, 신진작가 양성 및 현대인의 가치관을 높이고, 예술·문화 발전에 학술적 가치 증대와 그에 대한 이미지 창출을 확고하게 자리매김 하고자 한다.
  • 기대효과
  • 1)온고지신의 영혼성을 중시하며 전통서예의 사회문화적 기능과 우리 것에 대한 경외심을 진작하는데 기획의도가 있음에 따라 창암 선생에 대한 그동안의 보이지 않았던 영역과 선생의 예술인으로서의 자세를 부각시킴에 따라 현대인의 삶과 예술에 질적 변화를 가져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기대함.
    2) 유난히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조선의 시대 상황 하에서도 우리 것에 대한 애정과 순 토종 서예미에 천착했던 창암 선생이기에 오늘날 우리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예술 후학들에게 진정한 서예술에 대한 면모로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유와 자신을 돌아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확신함.
  • 연구요약
  • 창암 이삼만의 창작력은 기존 서풍(書風)의 모방과 필사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의 것을 우리의 서취(書趣)와 서지(書紙)에 맞춰 재창조하는, 문화적 독립의 자각정신(自覺精神)에서 비롯된다. 우리의 전통 속에 잠재해 있는 이와 같은 문화적 정신성과 창조력이, 오늘날 한갓 구습이나 문화의 잔유물로 여겨지고 있음을 깨닫는다면, 이제라도 우리의 전통문화에서 파생되는 정신성과 창의력, 민족의 미의식이, 현대 서예술로 재창조될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 된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연구자는 이러한 창암에 대한 가치를 중시하여 비영리 순수 민간단체인 '창암이삼만선생서예술문화진흥회' 산하 '창암서예학회'를 주관하여 창암에 대한 전문 학술대회로서, 동양철학, 미학, 서예에 관련된 전국 각 대학 교수들의 주제 발표와 토론 내용으로, 연 1회 개최하며 2011년 현재 제4호째의 논문집을 발간해 왔다. 이는 연구자 본인이 한국서예사에서 누락된 창암의 예술혼을 발굴하고 조사 연구하기 위하여 추진 발족한 것으로, 추사보다 16년 선배이면서 신필의 경지에 이르렀음에도 손이 끊긴 바람에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함을 아쉬워하다 2006년도부터 학술대회를 개최하여 제1호, 2007년 제2호, 2009년 제3호, 20011년도 제4호를 발간하게 된 것이다.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창암 이삼만의 삶과 예술'을 학술화하기 위한 노력을 전국을 통해 수집,조사,연구, 정리하기까지 15 년이란 세월이 걸렸으면 마침내 2010년 「창암 이삼만 서예술철학 연구」라는 박사 논문으로 이론적 결실을 맺고 그에 대한 대중들의 확고한 인식을 위해 전국의 창암 유묵 300여 점을 협조 받아 2010년 12월 예술의전당에서부터 서울, 정읍, 전주, 광주, 서귀포전을 기획하여 2011년 7월 13일까지 현재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여느 전시 사상 유래가 없던 것으로 장장 8개월여의 기간이라는 점과 전국 5개 도시 순회전이라는 점에서, 보다 심화된 창암 연구와 '창암학'의 필요성이 절실히 요청되는 바, 본 연구의 추진력이 되는 셈이다.
    지금까지 발표된 창암에 대한 글과 논문을 연대별로 정리하여 조사한 바에 의하면, 1911년 이래로 족보 및 글과 함께 실린 묵첩, 각 잡지나 기관지․신문에 실린 글을 비롯해서, 창암 학회지에 투고된 일반논문 33편, 각 대학의 석사 논문 6편, 박사논문으로는 2010년 6월에 발표된 「창암 이삼만 서예술철학 연구」1편이 유일하게 전부다.

    이러한 기존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이러한 기초적 토대를 딛고 창암 작품에 대한 발굴과 수집․연구로 그의 작품 분석 및 미학적․철학적 메시지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어야 할 것이며, 현재 우리들의 삶에 풍부한 자양분이 되어 창암 평생의 바람대로 인륜을 널리 이롭게 하는 지침돌이 될 수 있도록 자료의 수집과 연구가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서예술 분야에 관련된 학문뿐만 아니라 주변 학문의 학자들이 다양한 이론 전개로, 창암에 대한 다각도의 연구를 개진해 준다면 다양한 콘텐츠로 서예술의 학문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활 전반에 많은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해 본다. 이는 그동안의 연구 결과, 창암은 서예술적인 분야뿐만 아니라 독창적인 창착열과 교육열․시심(詩心), 그리고 자료 수집과 분석력에서도 두루 해박한 지식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 내용으로는
    1) 19세기 3대 명필인 창암 이삼만의 생애와 사상 정리 및 창암의 예술혼과 미학적 분석, 유묵을 수집·정리하여 재평가하는 창암 관련 한국 최초의 본격 이론서이자 유묵모음
    2) 창암의 삶과 예술, 사상 등을 철학,미학적 논의와 더불어 연구․정리하고 그의 생필 유묵의 내용과 300여점의 도판을 곁들인 평전 발간(750 여쪽 전후 분량, A5, 양장)
    3) 유묵 발굴․수집 및 조사․연구 및 해제․탈초 등이며
    연구의 의의는
    1)창암 이삼만은 추사 김정희에 가려 그동안 그 예술성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인물로, ‘유수체(流水體)’로서 17세기 옥동 이서, 공재 윤두서, 18세기 백하 윤순, 원교 이광사를 이어 19세기 조선진체를 심화·확장하여 완성시킨 조선시대 대표작가로 재평가되어야 하며
    2) 창암의 전기 및 대표작은 물론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유묵 300여점으로 창암의 학문과 예술을 실제로 학계는 물론 일반인들의 인식에 확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데 있으며.
    3) 창암의 예술관으로부터 한국서예사의 위치 확립, 서예는 백성을 위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인본주의 사상, 유가와 도가철학의 절묘한 소통에서 비롯된 그의 예술혼과 윤리의식의 진작으로 현대인의 정체성을 확인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도 그 의의가 있다 하겠다.
  • 한글키워드
  • 동양철학,기오이적,역동미,토속미,이삼만,조선진체,대우수전,졸박미,천연미,예술철학,창암
  • 영문키워드
  • the philosophy of calligraphy,Chang-am,Joseon true writing style,King Yu’s Zhuan writing,plain beauty,dynamic beauty,eastern philosophy,the philosophy of art,Gi-o-ee-jeok,rural beauty,natural beauty,Yi Sam-man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1. 창암 이삼만(1770년∼1847년)은 19세기 호남 제일(第一)의 대서예가로서 충청도의 추사 김정희(1786∼1856), 평안도의 눌인 조광진(1772∼180)과 더불어 조선 후기의 3대 명필로 꼽힌다. 창암이 고금을 통해 대서예가로서 존경받는 것은 당시의 소중화(小中華)에 매몰되지 않고 중국 청대 조류에 휩쓸리지 않는 조선선비로서의 명덕(明德)을 지켰으며 작고 연미(燕尾)한 서체로 출세지향적인 조선 서예가들의 입신출세 지향적인 풍토에서도 오로지 홀로 대자(大字)서예를 강조하며 부무실 계곡의 물과 바위·산천초목의 자연을 닮고자 노력하여 그 기개와 인품이 고스란히 서예로 묻어나왔기 때문이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을 바탕으로 서예에 대한 끊임없는 정진과 어떠한 고난과 어려움에도 세속에 물들지 않고 조선 고유의 토속성과 질박한 서풍인 ‘창암체’를 개발하여 통영(通靈)에 이르러 오늘날 신필(神筆)의 경지를 이룩한 점이다. 토속성의 대표 아이콘(icon)으로 불리는 창암체는 한국서예의 조선진체로 거듭나면서 전라도의 향색을 기반으로 조선의 바람찬 글씨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는 후손이 끊기어 오늘날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것이다. 더구나 추사 김정희의 그늘에 가려 그 신필(神筆)의 경지가 조명 받지 못했던 것은 내내 아쉬움으로 남아 왔다. 이에 창암 이삼만에 대한 재평가로, 학계 및 일반인들의 인식 제고와 전통에 대한 역사의식과 조상에 대한 선양의식으로, 신진작가 양성 및 현대인의 가치관을 높이고, 예술·문화 발전에 학술적 가치 증대와 그에 대한 이미지 창출을 확고하게 자리매김 하고자 한다.
  • 영문
  • This research explores the philosophy of calligraphy(書藝術哲學) by Chang-am Yi Sam-man(李三晩), who is the great calligrapher in late Joseon dynasty. The purpose of the research is to examine the calligraphy world of Chang-am, created during his life exclusively devoted to the calligraphy, from the art-philosophical perspective.
    The purpose can be summarized in following two. One is to take the calligraphy philosophy of Chang-am as an occasion to recover our good real-nature. The other is to pay a tribute to the calligraphy philosophy itself by Chang-am, who devoted his whole life to the calligraphy as a 'proud calligraphy artist'.
    The late Joseon dynasty when Chang-am practiced his calligraphy was a period of escalated identity confusion, compared to previous society. As the skepticism on the absolute values defined by the Neo-Confucianism supremacists gained weight, people began to have more interest in the import and accommodation of foreign cultures. As Ching dynasty replaced Ming dynasty in China, the Sinocentrism was cognized from new perspective and particular approaches to our traditional culture were attempted. Multifarious thoughts prospered to create new values replacing existing values. Almost all areas such as politics, economy, society, culture and philosophy went through the pain of big change during this turbulent period.
    Despite the prevailing social trend, Chang-am’s calligraphy philosophy exclusively devoted to the calligraphy on the foundation of aesthetic characteristic of Confucianism and the born personality of Chang-am himself. Chang-am believed that the harmonious aesthetic consciousness of 'most virtuous and most beautiful' and 'harmonized beautiful outlook and inside with high integrity' is for the eventual human principles. His personality was condensed from the Taoist thoughts, which took the nature as the beginning point and final point.
    Though the Korean calligraphy had been under continuous influence of Chinese calligraphy, the fact that Korean calligraphy had unique identity with proven creative capability is a positive aspect. However, until now, there has been no research on the 'trend and spirit and form' of Korean calligraphy, which defines the whole Korean calligraphy.
    Therefore, it was concluded that the origin of Chang-am calligraphy share the flow and spirit with Korean calligraphy. The art of calligraphy, the calligraphy styles by age, the calligraphy groups and philosophical thinking were examined in this research, which resulted in the finding of the big branch in Korean calligraphy, namely the 'Joseon true writing style'.
    This research explores the background, the forming process and the characteristic of 'Chang-am style' and suggests the big mountain called 'Joseon true writing style', condensed from Chang-am’s calligraphy theory, to the Korean calligraphy history, together with its artistic and philosophical meanings.
    The period of 'Joseon true writing style' is from 'King Yu’s Zhuan writing(大禹手篆)', by King Yu of China, until the establishment of 'Chang-am style', in 18th to 19th century of late Joseon dynasty. The definition of 'Joseon true writing style' is Korean 'spirit of keeping real shape(眞景精神)', which is the self-realization spirit of cultural independence, expressing Korean subjects in Korean style, more than the imitation or copying of Chinese writing style. 'Joseon true writing style' is the living and dynamic calligraphy style, which describes the Korean landscapes and shapes of Koreans living as they are, such as thoughts, unique living style and people’s characteristic, based on the 'spirit of keeping real shape(眞景精神)'.
    Especially this research paper clearly proves that the ultimate purpose of Chang-am was 'helping the humanity', because Chang-am declared 'the spirits of King Yao and King Shun' in 'King Yu’s Zhuan writing(大禹手篆)' and the meaning of 'Yi-jing(易經)' as Oriental cosmology and followed the principle of nature. This resulted in the finding the origin of Chang-am calligraphy and the real identity of 'Joseon true writing style'.
    The creation of 'Chang-am style' went through the processes of 'highly virtuous character(人品高)', 'learning old wisdom(師法古)', 'extreme skill(極工)' and 'communication with spirit(通靈)'. 'Chang-am style' let us experience the realm of 'the great refinement does not have remains and the great writing is the nature itself(逸韻無跡得筆天然)'. Further, the aesthetic characteristics of 'Chang-am style', such as 'natural beauty'(天然美), 'plain beauty'(拙樸美), 'rural beauty'(土俗美) and 'dynamic beauty'(力動美), are internalized in 'Chang-am style', creating the artistic spirits of 'learning old to create new'(法古創新)’, 'the great sound does not have remains'(逸韻無跡) and the 'great writing is the nature itself.'(得筆天然)
    One of the important points of this research paper is the analysis of Chang-am’s calligraphy artworks. 32 calligraphy works of Chang-am currently existing in good preservation condition are analyzed in this research. 'Tombstone writing of Officer Lee'(李公友溎之墓碑, 1796, Chang-am 27 years old) is the work of his earliest work when he had learned the calligraphy art and the 'Thousand characters'(千字文, Kai writing 21-folds, Chang-am 77 years old) and 'Stone monument in Nam-go-jin'(南固鎭事蹟碑, 1846, Chang-am 77 years old) are the works made one year before he died. 32 works between these two works are explored by their dates in this research, so that the characteristic and artistic soul of Chang-am calligraphy can be experienced, since everything about an artist is spoken by his artworks.
    Chang-am wrote the calligraphy theory book, 'Gi-o-ee-jeok'(機奧異跡), where he re-interpreted existing writing methods such as 'writing method of 8 strokes'(永字八法), 'brush using method'(運筆法), 'structuring method' (結構法), 'brush holding method'(執筆法) and 'studying how to write'(論習字紙筆法), so that calligraphy learners can learn it easier. He created natural terms of his own such as 'horse-hoop and silk-worm-head method'(馬蹄蠶頭法)’, 'new writing method of 8 strokes'(新永字八法) and 'great writing is the nature theory'(得筆天然論). He also tried hard by inserting many illustrations so that calligraphy beginners can have their calligraphy foundation solid. These were the elementary calligraphy learning methods to make solid foundation of 'highly virtuous character'(人品高) and 'learning old wisdom'(師法古), which Chang-am emphasized during his whole life.
    Chang-am gives us live description of a person, who refined his nature, studied hard and returned it to the society from his birth till death by his art, in addition to his contribution to the calligraphy artistic history. This is the lesson for people today, letting us aware of our identities. Now that it has been proven that 'calligraphy' itself is 'the duty'(道), it may be time to discuss about the appropriateness of the 'calligraphy ethics' later.
    The significance of Chang-am calligraphy philosophy can be summarized in following five areas. The modern adaptation of tradition, overcoming the classic aesthetic beauty awareness, the encouragement of innovative creativity, the identity establishment of Korean calligraphy art and the identifying of Korean calligraphy trend.
    Chang-am calligraphy suggested us the direction of Korean calligraphy and brought a big turning point to our awareness by 'looking from new perspective on the old thing' by 'learning old to know the new.' And this research had another significant meaning in its finding of the 'eternal mentor value' of Chang-am calligraphy.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창암 이삼만(1770년∼1847년)은 19세기 호남 제일(第一)의 대서예가로서 충청도의 추사 김정희(1786∼1856), 평안도의 눌인 조광진(1772∼180)과 더불어 조선 후기의 3대 명필로 꼽힌다. 창암이 고금을 통해 대서예가로서 존경받는 것은 당시의 소중화(小中華)에 매몰되지 않고 중국 청대 조류에 휩쓸리지 않는 조선선비로서의 명덕(明德)을 지켰으며 작고 연미(燕尾)한 서체로 출세지향적인 조선 서예가들의 입신출세 지향적인 풍토에서도 오로지 홀로 대자(大字)서예를 강조하며 부무실 계곡의 물과 바위·산천초목의 자연을 닮고자 노력하여 그 기개와 인품이 고스란히 서예로 묻어나왔기 때문이다.
    창암의 서예술에 관한 연구는 2005년 전북 정읍의 ‘창암서예학회’의 활동 이전에는 답보(踏步)상태였다고 할 수 있다. 정확한 근거 자료에 의한다기보다 그저 주위에서 들려주는 구전(口傳)과 풍문에 의해 의지할 뿐, 창암의 명성에 비해 거의 불모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창암서예학회의 본격적인 학술발표 이후 활기를 띠기 시작하여 서예술계의 대표적이 학자들이 가세하여 더욱 힘을 얻은 셈이다. 더구나 2007년도부터 창암서예학회에서 장학제도를 도입하여 ‘창암 논문 공모전’을 열자 젊은 학자들이 서서히 눈을 돌리고 있다. 덕분에 재야에 있던 창암 예찬론자들과 서화가·화상·박물관·미술관 관련 규레이터들이 많은 관심과 지지로 이를 예의 주시하며 지켜보고 있다.
    창암의 출생과 수학과정 등 창암 주변의 일상(日常)을 세밀하게 정리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연구된 기 자료물을 존중하며, 논문 및 기고문 등을 분석하고, 최근에 발굴된 여러 편의 「창암 묵첩」을 보다 정교하게 살폈다. ‘창암 학회’의 논문집과 그 밖의 연구되어 온 논문들과 최근에 발굴된 여러편의 ‘창암 묵첩’을 통해 그의 작품 감상은 물론이거니와 작품의 해제와 낙관에 나타난 글 내용을 통해 전후 사정을 잘 파악하기 위해 자료해석학적 방법에 의해 진행한 것이다. 특히 창암은 조선의 뭇 선비·학자들처럼 잘 정리된 문집 형태의 자료가 없는지라 주로 붓으로 작품 겸해서 직접 쓴 서첩 형태의 자료이기 때문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창암의 초서로 된 작품 해제 및 탈초는 많은 분들의 도움이 필요하며, 서예술 작품의 흔적을 따라 그의 생전의 삶의 궤적을 찾아 확인해야 하는 난제들 또한 어는 정도 해결되었다지만 더 정확한 정보를 위해 매우 유의해서 다뤄야 할 부분이다. 또한 본론에서는 그의 수많은 작품을 통해 그의 사상과 예술혼·미학적 입장을 철학적 견지로 고찰·정리해야 하기 때문에 창암 서예술의 밑거름이 되는 기본 정신을 잘 파악해야 한다. 또한 2010년 창암 탄생 240주년을 맞이한 기념으로 전국에 산재된 300여 점의 창암 유묵을 발굴, 조사, 연구하여 서울, 정읍, 전주, 광주, 제주전이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어 소장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힘입어 이미 기초자료로 구축되어 매우 유용하게 될 것이다. 특히 창암 서예술의 창작 원리는 창암 스스로 정리한 『서결(書訣)』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나 있으므로, 서예술론의 문맥을 이해하여 ‘서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를 고찰 한다. 이어서 그가 조선진체를 완성하기까지 서예사적 배경과 그의 서예술 연원을 연계하여, 보다 선명하게 논의하는 것이 미래 창암에 대한 연구·평가의 튼튼한 초석(礎石)이 되겠기에 보다 객관적이고 냉장한 입장에서 본고를 피력하고자 한다. 이는 창암서예술이 현대 한국서예술의 답보 상태를 열어서 한국서예술의 나아갈 바를 제시하고 그에 대한 창작의 동기를 부여하여 서예술 작품에 활기를 불어 넣어 주는 계기를 마련해 주리라는 확신에서이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을 바탕으로 서예에 대한 끊임없는 정진과 어떠한 고난과 어려움에도 세속에 물들지 않고 조선 고유의 토속성과 질박한 서풍인 ‘창암체’를 개발하여 통영(通靈)에 이르러 오늘날 신필(神筆)의 경지를 이룩한 점이다. 토속성의 대표 아이콘(icon)으로 불리는 창암체는 한국서예의 조선진체로 거듭나면서 전라도의 향색을 기반으로 조선의 바람찬 글씨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는 후손이 끊기어 오늘날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것이다. 더구나 추사 김정희의 그늘에 가려 그 신필(神筆)의 경지가 조명 받지 못했던 것은 내내 아쉬움으로 남아 왔다. 이에 창암 이삼만에 대한 재평가로, 학계 및 일반인들의 인식 제고와 전통에 대한 역사의식과 조상에 대한 선양의식으로, 신진작가 양성 및 현대인의 가치관을 높이고, 예술·문화 발전에 학술적 가치 증대와 그에 대한 이미지 창출을 확고하게 자리매김 하고자 한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창암 서예술의 창작 원리는 창암 스스로 정리한 『서결(書訣)』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나 있으므로, 서예술론의 문맥을 이해하여 ‘서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를 고찰 한다. 이어서 그가 조선진체를 완성하기까지 서예사적 배경과 그의 서예술 연원을 연계하여, 보다 선명하게 논의하는 것이 미래 창암에 대한 연구·평가의 튼튼한 초석(礎石)이 되겠기에 보다 객관적이고 냉장한 입장에서 본고를 피력하고자 한다. 이는 창암서예술이 현대 한국서예술의 답보 상태를 열어서 한국서예술의 나아갈 바를 제시하고 그에 대한 창작의 동기를 부여하여 서예술 작품에 활기를 불어 넣어 주는 계기를 마련해 주리라는 확신에서이다.
  • 색인어
  • 창암,이삼만,조선진체,창암체,법고창신,창암이삼만서예술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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